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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있는 것들은 매우 단편적이다. 이슬람 하면 우선은 떠오르는 것이 테러와의 전쟁을 한 이라크였고, 그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전쟁, 그리고 호메이니가 이끌었던 이란의 혁명, 최근 들어서는 이집트를 필두로 불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알수있는 것이, 그나마도 뉴스나 서구세계에서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있는 것이 사실인지, 왜곡인지의 여부는 본인의 판단에 따를수밖에 없다. 어느 종교나 근본주의자들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슬람을 테러나 지하드와 동격으로 놓은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이득을 보는 자들의 편견을, 우리가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디선가 본 글이지만 이슬람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순결한 종교라고 한다. 나야 종교하고는 무관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느 종교가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는 없지만 호불호는 있을수 있고, 그렇게 볼때 짧은 지식이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현재가 과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역사속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일독을 하기가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니지만, 이슬람이라는 문명이 서구사회에 끼친 영향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말하기를 역사는, 문명이란 번성한 뒤에는 서서히 몰락하다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과거 무슬림 세계는 기독교인, 유대인, 힌두교인, 불교인들이 함께 번영을 누리고 일했던 곳 이라고 알려준다.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시대의 씨앗을 뿌렸고, 근대 유럽과 세계 문명의 많은 측면을 가능케 해주었다. 그러나 무슬림 세계는 21세기 초반까지 잊히고, 무시 당하고, 오해 받고, 억압되었으며 심지어 조작되기까지 하였다. 저자는 이 책이 이슬람을 비롯한 그 어떤 종교서적도 아니라고 말한다. 즉, 신학이나 종교적인 교리를 다룬 책이 아니라, 이슬람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문명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예언자 아브라함에서 기원한 신의 계시는 각기 개성을 가진 세가지 종교로 나타났다. 이 세 종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신을 숭배하며,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바로 그 세 종교이다. 570년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마흔살쯤 되었을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 무함마드가 노래한 신의 계시를 정리한 것이 코란, 즉 가브리엘이 예언자에게 전해준 신의 말씀이 되었다. 예언자가 죽고 후계자에 대한 갈등과 분열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언자의 후계자들은 강력한 두 경쟁국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서로 싸우느라 힘을 소진하자 이들을 병합하여 이슬람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타 종교에 대해 관용을 보였으며, 여러 문화가 다양하고 풍요롭게 섞인 독특한 혼합문화를 만들어 냈다. 8세기 이슬람 제국의 정복전쟁은 프랑스 투르 전투에서 프랑크 지휘관 찰스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할 때까지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그 전투에서 승리가 없었더라면 유럽은 아랍의 정복아래 들어갔고 이슬람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 이슬람 제국의 정복전쟁이 남긴 유산은 유럽인들의 정신적 상처와 아랍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역사는 이슬람의 황금기를 잊으려 했고, 타문화와 융합된 무슬림 문화를 고려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갔다. 이 시기 이슬람의 위대한 사상, 발명, 예술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 갔으나, 16세기 이슬람의 황금기가 끝나고 유럽이 제국주의 세계의 중심이 되자, 유럽시각 중심으로 역사가 다시 쓰여지면서 이슬람의 황금기는 삭제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의 도시들과 이슬람 황금기의 도시들을 시간을 넘어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대한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어떻게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유럽에 어떻게 전래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잊혀진 과학자들이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이 현대 서구문명의 토대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근대 들어 유럽제국주의의 부흥은 이슬람지역에 가해진 또 하나의 비극이 되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무슬림 세계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데에만 수많은 시간을 허비 하면서 퇴보를 경험한다. 지금도 그들은 유럽에 이은 미국패권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있다. 분쟁지역으로 고착화된 그들의 세계는 아마 옛 영광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13세기 몽골의 세계 정복시기, 몽골인들이 이슬람 지역을 정복하면서 중국인, 이슬람, 유럽인의 사상과 문화를 바탕으로 풍요롭고도 역동적인 혼합체를 만들어냈듯이, 그들은 또 다른 황금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꿈틀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시 잊혀진 역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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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유명한 기타연주곡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슬람양식 궁전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트레몰로주법으로 현란하게 연주하는 작품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알 안달루스)의 그라나다는 본시 이슬람왕국으로, 15세기 이사벨라여왕은 그라나다를 점령하고 이제껏 이슬람왕국의 본보기였던 그 곳의 문물과 문화 파괴를 자행했지만 알함브라궁전의 황홀한 매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궁전만큼은 보존하여 현재까지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모스크들은 파괴되고 같은 자리에 성당이 들어섬으로써 이슬람예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드문 것은 없애버리고 흔한 것만 남아돈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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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펼칠 때부터 예감했다. 그냥 슬슬 넘겨서 읽어야 할 책은 아니라는... 무신론자인 내게 이슬람이란 격식 까다롭고, 첨예한 종파 대립(시아 VS 수니), 현 지구상에 테러로 얼룩진 어둠의 종교 정도로만 다가온다. 허나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이라크 자살 폭탄테러 사건, 이스라엘과 인근 중동국가들의 끝없는 전쟁과 보복을 지켜보면서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더불어 온전히 이슬람을 알고 싶어졌다. 과연 이슬람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사를 가졌고, 왜 오늘날까지 이렇게 피의 얼룩으로 지난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을 통해 몇 가지 오해에 대한 답을 얻었고, 서양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 역사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읽는 호흡이었다. 도저한 종교의 역사를 책 한권으로 다 이해하기에는 사전지식이 너무나 부족했고, 장대한 역사적 시간을 추적해가며 읽어내려가기에 나의 책 읽는 호흡이 너무나 짧았다. 결국 야곰야곰, 곱씹으며 읽어야만 했다. 우선 수북이란 출판사의 기존 책들에 호감을 갖고 있었고, 더욱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완벽한 인증(^^)이 더해졌기에 책의 퀄리티는 이미 담보된 상태였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집중하며 읽어 나갔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방식으로서 이 책은 현대적 삶에서 역사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도입부를 전개한다. 프랑스 투르, 이라크 바그다드, 인도 방갈로르, 캘리포니아, 카타르 도하, 스페인 코르도바, 이란 마슈하드, 워싱턴 DC 등 총 8개 장소에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와 그가 발딛고 서있는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를 통해 잃어버린 이슬람의 역사를 반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를 추적하는 방식이 상당히 세련됐고,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웠다.
이슬람을 새롭게 바라본 사실은 바로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다. 아랍 이슬람의 지배자들은 당시 식민지 주민들을 개종시키려는 어떠한 종교적 전략도 없었다. 전도나 포교활동은 금했지만, 기존 지역의 여타 종교들을 나름 존중하는 방식을 취했다. 두 번째는 그들의 놀랄만한 지적, 과학적 소양이었다. 서구 문명의 토대라고 단언할 수 있을만큼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이슬람. 이슬람을 통해 전 세계 문명의 진화는 더욱 빠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17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엄청난 만행이다. 유럽 제국주의로 인한 중동, 이란,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일대의 이슬람권에 가해진 그들의 침탈 행위는 이후 미제국주의와 맞물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요즘 개인적인 관심사는 단연 이슬람의 문양이다. 기독교하면 십자가, 불교는 불상...이렇게 직접적인 오브제가 바로 떠오르는데 이슬람은 단지 화려한 장식 패턴 정도만 생각난다. 프랑스의 건축가 장누벨의 프랑스 이슬람문화원만 보더라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슬람의 건축 및 디자인적 오브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 꼭 이슬람 사원을 가보리란 마음을 먹게 한다. 또 하나는 바로 터키로의 여행이다. 지정학적 위치가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이며, 특유의 색깔 또한 유럽과 이슬람이 혼합된 야릇한 느낌을 준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책에 대한 디테일한 역사는 행간을 통해 종교를 넘어서는 한 시대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이슬람의 잃어버린 역사를 다 알았다고 할수는 없겠다. 허나 적어도 서구에 의해 잊혀지고, 왜곡된 역사의 한 자락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를 추적해가는 시선 또한 단단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이슬람을 조금은 진지하게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이라도 지금의 이슬람이 왜?라는 의문이 드는 분들에게 강력히 일독을 권한다. 대신 야곰야곰 곱씹을수록 제대로 맛이 우러남을 알아주시길... 이 책을 휴가지에서 읽은 터라 내내 기억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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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 이슬람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먼거리에 있어서, 여타의 문화권에 비해 익숙하거나 친숙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과격 무장 이슬람 단체에 의해 발생한 9.11사건이나 한국인들에 대한 납치․살인 사건 등으로 인해 이슬람하면 과격무장단체, 테러 등이 먼저 떠오른다. 지은이는 위와 같은 점을 인지하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는 단편적인 것이고, 실제 이슬람이 가지는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슬람이 만들어 놓은 문화가 같은 시대의 다른 문화권과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이슬람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한다.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배우는 것은 학창시절 수업시간 이외에 책을 통해 이슬람을 접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종교적인 이야기나 이슬람 사회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다. 그래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다. 책은 총 8개의 장에서 이슬람이 이룩한 문화적, 예술적, 과학적 업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마치 눈앞에서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쓰고 있다. 현재와 당시의 모습을 대비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지은이는 이슬람에서 발달한 과학, 수학, 예술 등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를 촉발시키고, 계몽시대를 거쳐 근대 서구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서, 이슬람 문명 황금기에 활약한 위대한 과학자, 사상가, 예술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이 책처럼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은 드물지 않나 한다. 항상 서구사회의 문화와 문물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서구 중심의 역사를 배우다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슬람 문화권의 인물들은 다소 생소하게 다가온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다보니 이름도 거의 비슷 비슷해 보인다. 역사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야 하는데, 단편적인 인물들만 눈에 들어오다보니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은이는 책 맨 앞에 연표를 곁들이고 그림이나 지도 등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인물들에 대한 사진과 간단한 약력도 수록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서구 중심의 사회에서 최근 중국이나 라틴 아메리카, 인도 등이 괄목한 성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있고 다문화 가정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문화를 일도양단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모든 문화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그 문화를 형성한 사람들은 어디에 살든 평화, 사랑,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거나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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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저자의 표현대로 “잃어버린” 이슬람의 찬란했던 과거를 상기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또한 이 과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상호간의 관용만 가지면 지금의 피흘리는 폭력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저자는 “서구와 이슬람 간의 커다란 오해의 간극이 시급히 메워져야 한다.”(14)고 생각한 나머지 이 글을 쓰게되었노라고 기술한다. 그러나 궁금해진다. 과연 서구와 이슬람 간에 이해와 관용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테러와 보복이 난무하는 것일까? 저자의 전제와는 반대로 서구 세계, 특히 오늘날의 전지구적 헤게모니를 움켜진 미국이 이슬람의 과거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찬란한 과거를 고의적으로 삭제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야 메소포타미아와 유프라테스 강변에 자리한 유구한 문명의 유적지에 폭탄을 퍼부을 수 있고, 그 구덩이에서 석유를 파내어갈 명분이 생기기 때문은 아닐까? 책 뒤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하나같이 구하기 어렵지 않은 영어 자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지, 또 얼마든지 이슬람의 찬란한 과거를 손쉽게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문명의 충돌>같은 저술들이 매번 등장하면서 서방과 중동의 충돌이 정당화되는가? 새뮤얼 헌팅턴이 역사학자가 아닌 정치학자라는데 하나의 단서가 있지는 않을까? 2. 중세 스콜라 철학을 완성시켰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존했던 기존의 신학에서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끌어왔다. 그렇다면 천년 넘게 잠들어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깨운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유럽인이 아니었다. 바로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던 이슬람 학자 이븐 쉬나(아비센나)와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에 의해서였다. 이들의 책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중세 유럽의 철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대로 천문학, 수학, 의학, 예술 등 숱한 문화와 문명들이 중동에서 유럽으로 속속 유입되어 들어왔다. 이것은 결국 유럽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 반대도 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회화에서 발명된 원근법이 이슬람 회화에 유입되면서 화풍에 변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저자도 인정하다시피, 과거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은 오롯이 이슬람의 것들은 아니다. 인도와 중국,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영향 아래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 것들이다. 이로서 우리가 알게되는 사실은, 문명의 속성이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흐른다는 것이다. 문명이 어디에서부터 발원되었는지를 밝히는 역사적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닐까? 그로 인해 나라 간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문명의 소유’를 주장하게 되면 우리는 ‘문명의 충돌’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3. 저자는 무슬림과 이슬람 문명에 대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과거 그들의 역사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면서 정작 오늘날 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인권이나 이슬람의 근본정신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 책의 의도가, 저자가 밝히고 있는대로,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풀고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이슬람 문명을 찬양하거나 호교(護敎)적인 성격을 띈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글머리에를 요르단의 후세인 왕자가 썼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은 더더욱 증폭된다. “첫 무슬림 황금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새로운 황금기가 태동하고 있다.”(400)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순간, 책은 끝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그네들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그 뿐이다. 서로간의 오해를 푸는 것은 단지 지나온 역사를 바르게 알아가는 이성적인 행위보다 더욱 감정적이고 또한 정치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4. 여기서부터는 정말 사족이다. 번역에 대해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원문주의자’(15, 16쪽)라고 번역된 어휘를 보며 아마도 원서에서는 문맥상 fundamentlist로 씌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원문주의자’라는 번역보다는 ‘근본주의자’가 바르지 않을까 한다. 종교학이나 사회학에서 보통 이렇게 번역하기 때문이다. 투르 전투의 승자 찰스 마텔Charles Martel(25쪽)은 그가 프랑크족인 것을 감안하여 샤를 마르텔이라고 했어야 바르지 않을까? 그 손자를 샤를마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더더욱 일관성을 위해서 영어식 발음보다 프랑스어로 해주는 것이 좋지 않았겠나 싶다. 그런 점에서 투르의 성자 마틴(23쪽) 역시 생 마르탱이라고 번역해야 맞을 것이다. 또한 브리타니(27쪽)보다는 브르타뉴가 맞을 것 같다. 대학(72쪽)이라는 번역어는 더욱 생뚱맞다. 무슬림들이 Dar al Hikma라고 부르는 지혜의 집에 해당하는 것일텐데, 영어 원서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듯이 대학은 아닌 것 같다. 칼리프에 의해 세워진 일종의 집현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학이란 12세기에 유럽, 특히 르네상스를 맞으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에 확산된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대학 등을 말한다. 이것들과 12세기 바그다드에 세워졌던 ‘대학’들은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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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고른 책이다. 솔직히 표지가 그럴 듯 해서 고민없이 골랐다. 그런데 조금 읽어보니 역사 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기초적인 정보제공도 부실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딱히 얻을만한 지식과 재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 분량은 상당하다. 양장까지 입혀놓은 통에 지하철에서 읽기에도 벅차다. 결국 절반을 읽지 못하고 내려놨다. 좀 아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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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말은 흔히 들어 본 말일 것이다.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승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그리고 위의 두 말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승자는 자신을 정당화 하고, 추앙 한다. 그러나 패자는 왜곡 하고, 은폐 한다." 물론 위의 말들이나 본인의 풀이를 100%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틀리다고 할 수도 없다. 역사는 일반적으로 승자 중심으로 씌어 지기 때문이다. 승자의 편에 선, 혹은 승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가 역사를 쓰기에 역사는 승자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부당하게 사라진 역사가 상당히 많다. 그 중 하나가 이슬람의 역사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독교에 비해 남겨진 역사적 자료가 적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기독교에게 패배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배라는 말은 현재 세계의 주류는 서구 사회와 문화인데 그 기저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상대적 의미이다. 이슬람은 7세기 초 예언자 무함마드부터 시작하여 한때 중근동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유럽의 일부를 아우르는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였다. 중세 및 근대에 유럽에 맞서는 당시 세계의 강자였다. 그러나 마지막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멸망을 끝으로 세계의 패권을 기독교에 내주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은 패자가 된 까닭에 그 역사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 물론 그것을 모두 기독교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몽골 제국의 침입, 자신 내부의 다툼 등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이슬람 제국에 대해 상당 부분 왜곡되고, 가려졌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유럽의 많은 기술과 문화는 이슬람에서 왔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 이슬람의 역사는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의 역사는 표면적 역사일 뿐 실제적 역사는 대부분 사라져서 모를 것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도 이슬람 '종교'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이 책은 사라져버린 이슬람의 역사를 발굴하여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표면적 역사나 종교에 대해서가 아니라 실제적 역사를 말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단지 '종교로써의 이슬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등 '실제로써의 이슬람'을 보여준다. 사라져버린 이슬람 세계의 모습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준다.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비밀, 즉 서양 세계는 이슬람 세계의 지식을 발판으로 세워졌다는 그 놀라운 비밀을 밝힌다. 이슬람 세계가 얼마나 지적이고, 멋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아마도 그것을 몰랐던 이들은 상당히 놀라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내용 전개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진행 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에 따라 시간을 넘나들며 진행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산만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료의 한계로 이슬람 세계를 온전히 재조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이 책은 승자 중심의 시각으로 낮게 바라보았던 이슬람 세계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문화로써, 존중된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해준다.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종교로써의 이슬람'이 아니라 '실제로써의 이슬람', 이슬람의 세계를 보여 주기에 혹 기독교 입장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의 내용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에게 이슬람의 사라진 역사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 비록 더 깊이 있는 부분은 알 수 없지만 - 이슬람에 대해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고 싶은 이는 읽어보면 좋은 것이다. 승자는 역사에 자신의 치부를 가린다. 혹 그것을 드러내더라도 미화한다. 반면 패자의 치부는 더욱 드러내고, 좋은 점은 왜곡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손의 입장에서는 그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나의 자랑거리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치부도 함께 고백할 수는 없을까? 남의 자랑거리도 높여주고, 치부는 가려줄 수 없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냉혹하다. 만약 모두가 나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관대 할 때에, 모두에게 객관성을 유지할 때에 누구는 승자가 되고, 또 누구는 패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로 나뉘어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참으로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만큼은 이상 속을 거닐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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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양수업 덕분에 '내 문화'가 아닌 '남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 한참 이것저것을 챙겨 보고 있었다. 특히 널리 알려진 서양문화보다는 넌지시 알려진 또 다른 문화에 매력이 느껴졌다. 이러한 이유로 검색된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은 꽤나 신선했다.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은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픽션(fiction)과 논픽션(nonfiction)을 적절히 배치하여 구성하고 있다. 물론 픽션과 논픽션의 범위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결정적으로 그것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전체적인 흐름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개인이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관심사가 아니면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내용의 기반이 되는 일반적인 기초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접하게 되는 글은 ‘이야기’라기보다 단순히 나열된 ‘글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린 역사』의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단어들, 더불어 시간적 흐름과 인물의 등장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가 약간의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역사의 주인공을 이슬람이라고 칭한 점, 서양의 기술과 문물, 각종 문화도 그 시작은 이슬람 문화라고 이야기 하는 점이 신선했다. 일반인에게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단면적인 종교적 색채로 다가오기가 쉽기 때문에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이슬람 문화권의 역사적인 개론을 알아보고자 하는 이 책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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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짦고 깊지 않은 지식으로 평가되는 이슬람, 특히 우리는 cnn에서 보여지는 이슬람에 대해 알고 있을뿐이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있다. 과격하고 우매하며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곳! 그것이 우리에게 비친 이슬람이 아닐까? 이슬람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데에는 "페르세 폴리스"라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다. 실제 주인공이자 감독의 시선에서는 우리가 우매한 이들이고 편협한 이들처럼 느껴지는 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과연 이슬람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시아파가 무엇인지 그들의 역사속에서 현재의 이슬람을 찾아볼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책은 "서양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이슬람의 역사를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과 비교하며 조명하고 있다. A.D 570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 태어남을 시작으로 1922년 오토만 제국의 멸망까지를 연표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책은 그들 스스로도 잊고 지내던 그들의 역사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로 부터 끌어내어 비교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역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예술, 건축, 시 철학 그리고 과학등 전분야에 걸쳐 이슬람이 유럽과 더 나아가 지구곳곳에 끼친 영향, 현대의 기술과 과학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이런 작가의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면 유럽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들, 근대 과학자의 천재적인 실험과 노력에 의해서 발견되고 발전되었다고 믿어졌던 것들에 대한 진실을 볼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책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뿐 아니라 문화전 분야에 두루보이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원하는 서구와 이슬람간의 오해의 간극을 메워야한다는 것, 문명간의 충돌의 전제조건들을 재조명 한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에게 복종할것, 하루에 다섯번 기도문을 외우면서 메카쪽으로 기도를 드릴것 , 참욕을 억제하는 마음가짐을 가질것, 라마단기간동안에는 해가 뜰때부터 질때까지 즐거움을 자제하고 금할 것, 가능하다면 메카로 성지순례다녀올것 -P 34 한세기, 황금기를 거친 무슬림. 그들의 희망의 세기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것인가? 작가는 현실의 이슬람권에 대한 시선들을 조금은 바꿔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적어도 이책을 덮고 난 지금 난 그에게 설득당했고 이슬람문화에 매혹당했다. 그리고 기꺼이 그들이 다시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이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할것이고 난 그들이 그런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언제가 황금기였고, 우리의 코란은 무엇이며 우리는 새로운 태동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슮람 그들과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걱정스런 생각을..... 작가가 표현한 그대와 나는 똑같은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누구는 가라앉고 누구는 떠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흙일 뿐 그이상 아무것도 아니지요 . 이말을 아직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도 이말을 이해하고 음미하는 날이 오게 되길 ..... 그리고 작가가 원하듯 대화를 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때가 빨리 오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