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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 최부란 사람에 의해 쓰여진 '표해록'이 사회나 국사 교과서에 실렸다면 모를리 없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창피한 일이지만 들어본적도 없다. 아마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세계적인 기행문 임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일것이다. 폭넓은 이해와 관심의 대상이 아닌 역사를 외워야할 재미없는 과목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이다.
파도를 헤치고 역경을 넘어
이글은 최부가 제주도에 경차관으로 나라 일을 보던 중 아버지 상을 당해 급히 고향 나주로 오다가 풍랑을 만나 끝없는 바다를 표류하며 조선사람 누구도 가본적없는 곳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표류기이자 중국 견문록이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 땅에 닿으나 두번씩이나 해적들을 만나게되어 매맞고 가진 것 다 뺏기고 다시 표류를 거듭하다가 닿은 곳이 중국 강남의 절강성, 어렵게 뭍에 올랐지만 이번엔 왜구로 오인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조선의 관원임을 입증하는 엄격한 심문을 거처 비로소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된다. 조선 사람으로는 드물게 양자강 이남을 여행한 후 서울로 돌아 오기까지 135일. 그 여정을 자세하게 묘사하여 그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눈앞에 보는듯하다. 조선 시대 선비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유롭고 섬세한 필치로 자세히 그릴수 있었을까? 법도와 예의만을 따지고, 고지식한 이제껏 알려진 조선 사대부의 선입관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과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더불어 세계 3대 중국 여행기에 꼽힌다.
조선 선비의 기개를 보이다
최부는 바다를 표류하는 중 배가 난파할 위험에 놓여 모두가 당황해 할때도, 해적을 만나 죽음이 목전에 닥쳤을 때도, 중국에서 왜구로 오인받아 중국 관료들의 조사당할 때도 조선의 사대부임을 잊지않고 언제나 당당함을 하였다. 그만큼 올곧고 부끄럼없는 진정한 선비 였다. 그는 북경에 당도해 황제를 알현할때 상복을 벗고 길복을 입으라는 부당한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결국 잠시 갈아 입는 정도로 타협하였지만) 조선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으며 다방면에 걸처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인물이었다. 표해록 곳곳에 그가 백성들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
이책이 고전인 관계로 어려운 단어나 그당시 관습,관직이나 지명등은 이해를 돕고자 자세히 부연 설명을 하여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늦게나마 소중한 기록을 읽을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자라나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세계 어느곳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소중한 기록인 '표해록'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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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헤마다 참으로 많은 기행문들이 출간된다.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의 생활터전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자기가 겪은 일들이 즐겁건 괴롭건간에 기록해두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 <표해록>에서는 조선의 선비인 최부가 추쇄경차관 신분으로 제주로 파견을 갔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해 험한 날씨에도 급히 육지로 가는 배를 탔다가 비바람을 만나 14일간 표류한 끝에 가까스로 중국에 도착하게 된다. 중국에서도 당시 시대의 문제였던 해적으로 오인받기도 하고, 해적으로 위장당해 죽음을 당할 뻔하기도 하지만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소국이었던 조선인이지만 중국인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에도 중국을 오가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식으로 표류를 당해 본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흔하지 않았던지 임금의 명으로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그 기록이 바로 <표해록>이다.
.. 책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깊이가 얕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체라 어른이 읽기에 조금 거슬릴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상으로 심란한 중에도 낯선 땅에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최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응원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귀에 넣기만 하면 모든 언어를 통역해주는 바벨피쉬와 같은 물고기가 앞으로 발명(발견?)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 많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당시에 비록 중국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과거급제한 엘리트라 중국인들과 한자로 필담을 나누는 최부의 모습은 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게 할 정도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책을 읽고 보니 초등학생인 조카들에게도 꼭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과중한 부담을 지니고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유를 알고 공부하는 것과 목적없이 공부하는 것은 그만큼 성과도 다르고 즐거움의 양도 물론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을 전해주면서 최부가 중국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당당한 모습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 주면 앞으로의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된다. 책의 원본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성인을 위한 책도 나온다면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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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에 띄어 얼른 집어 들었는데 읽다 보니 어린이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어린이용은 대부분 어려운 내용도 쉽게 설명하고 두께도 얇아 읽기에 편하다. 중요한 것만 쏙쏙 뽑아 알려 주는데 이오덕 선생이 말한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써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만화로 된 어린이용 '자본론'을 한 번 읽어 보라. 내 말이 틀린지!
조선 성종 때 사람 최부는 추쇄경차관(도망친 노비를 찾고 관리를 감찰하는 직책)으로 제주에서 일하던 중 아버지 상을 당한다. 급히 고향 나주로 가다가 풍랑으로 표류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적까지 만나 매맞고 가진 걸 다 뺏기기도 한다. 어찌어찌해 닿은 곳이 중국 절강성. 그런데 이번엔 왜구로 오인 당한다. 필담으로 겨우 조선의 관원임을 밝혀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성종의 명으로 이 과정을 기록해 왕에게 바친 것이 바로 이 표해록이다.
당시에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요동을 거쳐 황제가 있는 북경으로 가는 것이 공식 외교사절이 다니는 길이었다. 이에 따라 온갖 물산이 넘치는 경제 중심지 중국 양자강 유역을 여행한 조선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깝게는 고려때 까지도 우리 안마당 같던 서해와 산동반도 일대 중국 연안지역이 우리 역사에서 멀어진 까닭이기도 하다. 표해록이 귀한 이유는 조선 선비가 바로 이 지역을 지나며 풍광이며 문화, 음식, 제도 따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데 거의 유일한 기록인 듯도 하다.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엔닌(일본 승려)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에 꼽힌다고도 한다.
유난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최부가 거지꼴로 중국 절강성 연안에 닿으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몰려와 가진 걸 다 뺏고 목을 베려 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며 애원하니 인근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틈을 보아 재빨리 땅에 내려 도망쳤다.
나중에 들으니 최부 일행 마흔 두 명이 오자 바다를 지키는 수군 대장이 "왜구의 배 열 두척이 습격을 하러 왔다!"고 먼저 보고를 하고 그 증거로 최부 일행을 죽여 공을 세우려 했던 것. 이렇게 거짓으로 자신의 실적을 높이고 승진에 목을 매던 것은 명나라의 고질병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같이 싸웠던 진린도 처음에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다가 목 벤 왜군 머리를 양보하자 입이 쩍 벌어 졌다는 기록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디나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라가 망하려면 이런 놈들이 득세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충신을 내치는 풍토가 만연한 것이 공통점이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도망칠 자들이 이들이라는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명군은 왜 그렇게 왜구의 머리에 집착 했을까? 사실 왜구는 우리 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큰 골치덩이였다. 갑작스럽게 해안지방에 출몰해 노략질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기 때문. 1533년(가정31년) 한 무리의 왜구들이 동남해안을 따라 절강, 항주, 안휘성 등 강남지방을 차례로 휩쓸면서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왜구 무리들은 80여 일동안 약 4천여 명의 농민들을 살해했다. 당시 왜구들의 잔인한 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될 정도였다.
"곡식창고를 약탈하고 민가에 불을 질렀으며 백성들을 죽였다. 시체와 피가 산과 강을 이룰 정도였다. 어린 아이를 기둥에 묶어놓고 끊는 물을 끼얹는 것을 놀이삼아 했으며 임신부를 보면 뱃속에서 태아를 끄집어내는 등"
왜구들의 잔학상이 이와 같았다. 2차대전, 남경학살 때도 일본군은 변한 것이 없었다.
명은 여러 차례 토벌하려 했지만 바다를 막는 정책으로 수군을 등한시 했기에 이기기는 커녕 연전연패, 왜구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화 '동방불패'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왜구는 치고 빠지는 '전투력'이 높았다.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 일설에는 이 해적떼가 동남아를 거쳐 인도까지 원정을 다닐 만큼 항해술이 뛰어 났다고 하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과 중국을 먹고 인도까지 정복하겠다는 망상을 품었던 건 바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니 왜구를 소탕했다면 군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로또를 뽑은 것과도 같은 셈. 거기다 적의 머리를 베어 증거까지 내민다면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 것. 그러니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어서 말도 할 줄 모르는 조선인 몇 명 죽이려 했던 건 썩어 빠진 명나라 관료제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던 명나라에 홀연히 영웅이 등장한다. 척계광(戚繼光). 절강지역의 군사 책임자로 부임한 그는 몇 번의 패배 후 왜구의 전술을 깊이 연구, 대비책을 세우고 군사를 훈련한다. 이윽고 강군이 된 척계광의 군대는 연전연승, 적을 섬멸하여 이 지역에서 왜구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 군대의 이름이 바로 척계광의 군대라 하여 척가군(戚家軍).
척가군은 조국과 백성을 위하여 싸운다는 결의에 차 있어 그 사기와 전투력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엄격한 규율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집합 명령에 정렬한 장병들, 이때 큰 비가 내렸다. 곧 해산 명령이 내려질 줄 알았으나 명령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아침 일찍부터 한낮까지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전원이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이처럼 엄한 군기를 가진 이 부대를 척가군(戚家軍)이라 불러 칭찬했다. 마치 송나라 악비(岳飛)의 악가군(岳家軍)을 보는 듯. 이랬으니 왜구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것. 이것이 1550년대 중반의 일. 표해록을 지은 최부는 이보다 약 80년 앞서 절강 일대를 둘러 본 것이다.
표해록,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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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케 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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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부는 제주에서 부친의 상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가지만 부친을 잃은 안타까움에 날씨따위는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지금처럼 바다의 날씨나 풍랑의 안내 또한 없었고, 커다란 배가 있지 않았기에 큰 폭풍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또한 길을 잃었을테다. 최부 또한 하늘의 날씨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제주를 출발했지만 제 시간에 육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생사의 기로를 마주한 체 바다에서 떠돌아 다니게 되었고, 최부와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기록이 바로 표해록이다.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는다는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하멜표류기, 동망견문록등 이름이나 겨우 아는 내게 우리나라 사람이 쓴 표류기가 있었다는 사실자체도 놀라운데, 일본을 비롯한 나라에서도 출판될 정도의 유명한 고전이라는 것에 조금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내 아이들에게만은 고전을 제대로 읽혀보자 마음먹었었는데, 고전은 정말 무한대인것 같다. 앞으로도 배울것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 것, 우리이야기이다.
예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최부는 표류생활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고충을 당했던 기록이 책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사실 그대로의 기록을 최대한 알려주기 위해 일자별로 자신이 쓴 글의 형태로 보니 더욱 표류의 일상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지도상으로 보면 엄청 난 거리의 표류였으며, 함께 하는 뱃사람과의 갈등, 해적,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사람, 왜구로 오해받는등 수 없는 사건을 겪었지만 중국 황제의 상을 받을 정도로 기개있고 대단한 사람이였던것 같다.
처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해하기 막연했지만 점점 극박해지는 상황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최부의 올곧음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의지 약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생을 포기했을 지도 모르는 표류생활이었을 테다. 최부를 따라 넓고 넓은 바다를 여행하는 동안 드 넓은 아시아의 새로움을 발견해본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보다는 포기가 어쩌면 더 쉽다고 느끼고 있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대리 경험이 될 듯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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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커다랗고 탄탄한 여객선이나 비행기가 있어서 지구 곳곳을 다닐 수 있다지만 옛 선조들은 어떻게 바다여행을 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노를 저어서 가는 배를 타고 목숨을 걸고 여행을 했을 당시의 사람들을 사실 현대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가늠하기란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릴적 노를 저어서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배를 타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물살이 잔잔했지만 강 바닥이 보이질 않은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빨려들어갈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하물며 망망대해 바다에서 오고가는 배는 어떠했으랴.
이 [표해록]은 ’최부가 경차관 신분으로 제주에 갔다가 고향 전라도 나주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 급히 배를 빌려 떠나면서 시작’된다. ’경차관이란 신분은 지방에 파견하는 벼슬로, 군대를 살펴보고 관청의 곡식 손실을 조사하고, 흉년 든 해에는 백성을 굶주리지 않도록 돌보고, 관청에서 사람을 가둘때 법에 따를 절차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도망친 노비를 찾아내는 임무를 맡는 벼슬(책 속 다듬어 쓴이의 말 중에서)’이라고 한다. 그런데 임무를 맡은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뱃길은 위험해서 꼭 날씨나 바람등을 살펴보고 떠나야하는데, 조선시대에서는 특히 유교사상에 어버이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하므로 급하게 서둘러서 가기로 하고 심상치 않은 날씨 속에서 배를 빌려서 출항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바다에 표류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발견한 섬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해적을 만나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중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정말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는 믿기 힘들 정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는 것 자체로도 참으로 힘든 여정인데 뒷편에 이어지는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믿기지 않은 이야기가 기다린다. 조선 시대의 표류기를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아서 읽기 쉽고 재미있게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단락을 중간중간 나누어서 <다듬어 쓴 이의 말>이라는 코너가 있어서 혹시라도 그 부분을 읽고 이해하기 힘들었는 문장이나 단어 등을 재확인 할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해서 더 깊이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알찬 구성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의 표류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책의 머리말 끝부분에 보면 이 표해록은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부라는 분의 성품 또한 글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선비로써의 꼿꼿한 자세와 힘든 상황에서도 변명하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의연한 선비의 기개에 찬사를 보내마지 않았다. 조선 선비 최부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일을 토대로 기록된 책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도 실감나며 시대를 살다간 조선 선비의 의연한 자세에도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고전으로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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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서를 즐기는 편이지만 최부라는 이름은 낯설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보다 이름 없는 선비들의 생애에 관심이 더 많아 책을 읽다 처음 대하는 이름을 발견하면 잊지 않으려고 두 세번씩 입속으로 불러보는 습관이 있다. 그럼에도 최부는 낯선 이름이다. 어느 책에선가 그의 이름을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력은 그것을 불러오지 못했다.
최부(崔簿, 1454~1504)는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되어 제주에 파견된다.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 나주로 돌아오던 중 제주 앞바다에서 표류한다. 최부의 일행은 표류한 지 14일 만에 중국 임해현 해안까지 밀려갔고, 온갖 고초를 당하며 중국 강남 및 산둥 등지를 거쳐 북경을 통해 135일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최부 일행이 중국에 체류한지 135일 만에 8,800여 리의 남북을 관통하여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자 성종은 그간의 상황을 정리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최부는 일기 형식으로 그간의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표류란 배가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바람과 물결에 따라 정처 없이 흘러 다니는 것을 말하고, 표해록이란 최부 일행이 명나라에 상륙한 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겪었던 온갖 고난과 위험을 겪은 기록이다.
최부의 [표해록]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견문록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표해록]은 당시 중국 명나라의 사회 상황과 정치, 경제, 문화, 교통 군사 등을 세밀하게 기록한 문헌으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달한 '강남'지방에 관한 기록은 최부의 견문록이 최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하겠다.
최부는 해적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왜구로 몰려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심하게 매를 맞고, 쫓기는 상황에서도 조선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킨다. 최악의 상황,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에서도 최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조선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대처하자 중국 벼슬아치들도 그를 알아본다. 중국인들이 왜적이 아닌 진짜 조선 선비인지 알아보기 위해 최부에게 조선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최부가 막힘없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 인물들에 대해 상세히 답변하자 그들은 최부의 식견에 대해 놀라 감탄하며 선물과 음식을 내놓는다.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누며 조선 선비의 기상과 조선을 알린 최부의 깊은 학문과 고매한 인격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최부는 정말 자랑스러운 조상이며, 청소년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다. 처절한 고난과 목숨의 위태로움 앞에서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일행을 독려한 점, 중국 벼슬아치 앞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조선 사대부의 투철한 기상을 보여준 점, 순발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일행 43명을 모두를 살린 지도력, 깊은 학문과 뛰어난 식견으로 무장한 30대 실력가 최부를 알게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 그러나 최부는 연산군의 폭정과 훈구파의 모함으로 귀양 길에 오르게 되고1504년 갑자사화 때 51세의 나이로 사형당한다. 청렴하고 정직하고 곧은 선비의 억울한 죽음은 당시 조정과 재야, 그리고 오늘의 나를 무척이나 안타깝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부를 모르는 것도 안타깝다. 곧은 절개와 높은 인격을 갖춘 훌륭한 선비 최부가 이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나아가 교과서에도 실리기를 바란다.(이미 실렸다면 정말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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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선의 기록을 담은 책을 만났다. 사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루하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하기 때문에 쉽게 손이 내밀어 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역사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된 책은 그 시대의 새로운 사실을 기록한 책이었다. 과거 여행기에 대한 책에는 ‘하멜 표류기’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표해록」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조선사람이 남긴 세계적인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선비가 드넓은 아시아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조선인 ‘최부’가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오늘날의 전라남도 나주를 가기 위해 배에 올랐지만, 풍랑을 만나서 명나라까지 가서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이었다. 즉, 「표해록(標海錄)」이란, ‘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관한 기록’이라는 의미다. ‘최부’는 중국의 모습, 풍속, 자연 등을 직접 보았기에 이 책에서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부’가 바로 기록한 것이 아닌 그의 외손자인 ‘유희춘’이 엮어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본 이야기였고 ‘최부’의 표류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더욱이 이 책은 조선 선비의 눈으로 본 소중한 기록이기에 책장 한 장 한 장이 아쉽게 느껴졌다. ‘최부’는 14일이나 표류했었으며 중국에 발을 내딛고 조선으로 오기까지 135일 걸렸다고 한다. 폭풍을 만나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침착한 그의 모습에 놀랐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명나라의 모습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고전도서라는 점에서 어떨까? 라는 생각했지만, 어른들도 읽기에 무방할 정도였고 어려운 단어를 쉽게 풀이라고 각주를 달아놓았기에 어른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부’가 남긴 「표해록」은 세계 3대 중국 견문록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과거 ‘하멜 표류기’만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의 무지함을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서도 「표해록」이라는 ‘표류기’가 있다는 것을 인제야 알게 되었다는 점이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였다. ‘최부’를 따라 함께 여행한 중국과 그가 겪은 일을 읽으면서 대단한 기행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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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스님 옌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와 더불어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세계적인 기행 문학으로써 손색이 없는 <표해록>를 만났다. 성종 18년 11월에 지역 행정을 감독하고, 도망친 노비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관리인 추쇄경차관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이듬해 정월 30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 나주로 배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폭풍이 불어 닥칠것이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 없이 아들된 도리로써 한시 바삐 상주의 예를 지키기 위해 배를 띄워 가는데.......예상대로 최부일행의 배는 거친 풍랑을 만나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어 고생을 하였다. 표류하는 도중에도 최부는 조선의 옳곧은 학자임을 알수 있는 자신의 잘못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글귀에 존경스럽고 참선비임을 알수 있었다. 표류를 하던 최부 일행의 배는 중국땅에 이르는데, 그곳에서도 왜구라는 오해로 모진 고초를 당하고 죽음 문턱 까지 가게 되지만 일행들을 아끼며 조선의 관리라는 자신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히고 용서를 빌때는 빌고 도망쳐야 될때는 도망을 치면서 중국 관리에게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여 결국엔 손님 대접에 선물까지 받으며 마지막 연경을 통해 조선땅인 의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최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것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 당시 중국의 역사와 문학, 바다의 색깔이며 자연 풍경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적고 있어 더 문학작품으로써 손색이 없는것 같다. 처음 이책은 ’중조견문일기’ 였는데 정식으로 왕의 명령을 받아 중국을 다녀온 사람의 견문이 아니기때문에 <표해록>으로 바꾼듯 하다고 전해진다. 막혔던 바닷길때문에 교류에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라 국제 상황과 정세를 알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으로 인정 받게 되었기에 그 가치를 먼저 알아본게 일본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표류기는 하멜표류기나 걸리버여행기같이 다른 나라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가치를 인정한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이 모르고 있었다니........문학의 가치가 높은 <표해록> 꼭 읽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