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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잡이 무사를 뜻하는 일본말 '사무라이'는 우리말 '싸울아비'가 일본으로 건너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불러보면 아주 비슷하다. 경상도와 일본은 그리 멀지 않았으니 말이 옮겨갔을 수도 있다.
사무라이는 주군(영주)을 위해서는 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이들이다. 어려운 때라 먹여주고 잠잘 곳을 주는 영주를 떠나서는 살기가 어려운 탓이리라.
이런 사무라이를 그린 일본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다른 나라 영화는 드물다. 짐 자무쉬 감독이 1999년에 만든 <고스트 독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에서나 볼 수 있을 뿐...
그런데 프랑스 영화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이 1967년에 만든 <사무라이 : 한밤의 암살자 Le samouraï>다. 조지 펠레그린이 쓴 소설 <낭인 The Ronin>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영화다.
사무라이야 주군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지만, 여기서는 돈을 받고 시킨 일만 하는 '사람 사냥꾼'을 그렸다. 그래서 사무라이와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닌자와 비슷하다고 할까...
2.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 사냥꾼(킬러)의 모습은 어떨까? 사람을 죽인다고 무시무시하게 생겼을까? 곁에 가기만 가도 찬바람이 씽씽 부는 사람들일까? 피도 눈물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나 할까?
사람 사냥꾼을 그린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혼자 산다. 마틸다를 만날 때까지 <레옹 Léon>도 혼자 였고, <고스트 독>에서도 혼자다. <니키타 Nikita>도 혼자가 외로워 사랑하고 싶었어도 잘 되지 않는다.
제프 코스텔로(알랑 드롱)는 서른 살의 잘 생긴 사내다. 그런데 혼자 산다. (아가씨들이 싫어할 만큼 못 생겨서 혼자 사는 건 그래도 덜 억울할텐데...흠잡을 데 없는 얼굴이 아깝다...) 언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고,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므로 같이 사는 게 어렵다.
한 때 사랑했던 잔 라그랑쥐(나탈리 드롱)가 아직도 애틋한 눈길을 주지만, 코스텔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일을 해야 하므로...
코스텔로한테 떨어진 일은 나이트 클럽의 사장 마떼이를 죽이라는 것.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사내든 계집이든 가리지 않는다. 죽이라면 죽일 뿐...더 말할 까닭이 없다. 그러니 가서 죽이고 제 몸만 빠져 나오면 된다. 그리고는 받기로 한 돈 가운데 남은 돈이나 받으면 끝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을 테고...
3. 그런데 일이란 게 늘 생각대로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코스텔로가 마떼이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어떤 아가씨와 마주친다. '이를 어쩐다...같이 죽여...각본에 없는 일인데...그냥 가자...'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는 발레리(카티 로지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조상님이 돌보셨어...고맙습니다...) 말끔한 사내이긴 해도 총으로 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인데 지나쳐 갔으니...
프랑스 경찰이 어수룩하지 않으니 곧 마떼이를 죽인 사람을 찾으려 눈이 벌겋다. 클럽 가까이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을 죄다 잡는다. 그 가운데는 알리바이를 맞춰놓고 가까운 호텔에서 카드 놀이를 하고 있던 코스텔로도 들어있다.
경찰(프랑수아 페리어)은 발레리를 비롯해서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앉혀놓고 물어본다. 무대에 오른 사람이 그날 클럽에 와서 사장을 죽인 사람이냐고...
버버리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잘 생긴 젊은 사내를 찾아내라는 것. 코스텔로를 올려다 보는 발레리, 발레리를 내려다 보는 코스텔로...
4. 말이 많지 않은 영화다. 코스텔로는 차갑고 무덤덤한 얼굴로 움직인다. 잘 생긴 알랑 드롱이 아무 말없이 쳐다볼 때나 움직이는 모습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다.
코스텔로가 차 안에서 다른 차에 탄 라그랑쥐를 볼 때,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문 사이로 서로 바라보는 눈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을 말없이 드러낸다.
"당신이 날 보러 올 때가 좋았어요..." 라그랑쥐가 코스텔로한테 마음을 털어놓지만 이미 사랑은 떠나버린 뒤다. 아름다운 라그랑쥐의 사랑도 뿌리칠 수밖에 없는 코스텔로의 삶이 안타깝다.
"왜 마떼이를 죽였어요?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발레리가 묻자, 얼굴빛 하나 고치지 않고 코스텔로는 말한다. "난 몰라요. 돈을 받고 시키는대로 할 뿐..."
일어난 시간을 따라 무슨 일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나, 코스텔로를 따라 다니는 경찰과 지하철에서 이들을 따돌리려는 코스텔로의 머리 싸움도 볼만 하다.
용의자들을 세워놓고 클럽 사람들한테 찍어보라고 하는 모습은 어딘가 경찰 답지 않다. 그러다 누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쩔려고 맞보게 하는지...보는 건 그렇다 쳐도 이다, 아니다는 그들이 안 보이는 다른 곳에서 말 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아쉬운 대목이다.
사랑 타령에 목숨을 거는 프랑스 영화가 많은데 사랑을 제껴둔 영화라 그런지 눈길이 더 간다. 사람 사냥꾼도 사람답게 살 자리를 만들어주는 감독의 끝마무리도 괜찮다.
5. 40년이 지난 영화여서 걱정이 되었지만, 디브이디는 아주 깔끔한 화면에 소리도 좋다. 영화를 만들 때의 뒷이야기들을 감독을 비롯해서 몇 사람이 들려주는 보너스가 있어 좋아했는데, 그림의 떡이다. 프랑스말만 나오니 어쩐다...하는 김에 끝까지 잘 만들어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