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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조선건국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승자의 역사서술에 의해 매몰차게 평가 받은 인물이다. 때문에 정도전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조선건국의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제목대로 정도전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조선일보 주말 섹션에 연재했던 시리즈 '이한우의 역사 속의 WHY'를 골격으로 새로운 글을 추가해 만든 것으로 조선왕조에 대해 우리가 의문시해온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일단 이 책이 단순히 흥미거리에 치중해' 조선왕조'라는 소잿거리를 다룬 것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저자의 말'을 보면 저자의 역사관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한국사람이며, 현재의 대한민국은 식민시대를 거치긴 했지만, 조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끔은 부끄러운 점도 많지만 조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것 없는 문화유산을 갖고 있고, 강대국들 틈에서 당당히 독자성을 지녀온 국가이다. 때문에 조선을 이해한다는 것은 겸허하고, 당당하게 현재의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매끄러우며,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용의 눈물'을 필두로 사극이 각광을 받으며, 퓨전 사극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 간의 차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세밀하게 들어가다 보니 어려운 한자어 투성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지만, 약간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책에서 다룬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태종이 정안대군 시절에 명나라에 갔다가 나중에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와 만나는 장면이다. 각자의 왕조의 기초를 든든히 세운 두 사람이 제위에 오르기 전 만난 것인데,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범상치 않음을 예견했다고 하니 영웅은 서로를 알아보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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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왜'라는 단어와 '정도전'이란 단어가 내 눈에 확 띄었기 때문이다. 최근 역사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가 조선 후기에 가면 왕권은 사라지고 신권들의 세상이 되는데 애초 개국 초기에 그런 나라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막상 사림들에게는 욕을 먹는 상황을 보면서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한 내가 꾸준히 본방의 사수하는 유일한 TV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네가지'라는 코너가 있다. 그들의 구호가 "왜?"이다. 왜라는 단어가 요즘 내 머리속에 강조되어 있어 이 책을 보자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송시열한테 간신이라 명칭을 들었던 정도전에 대한 사림들의 생각이 별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저 기록상으로 남아있는 정도전에 대한 기술 뿐....
조선의 설계자라는 명칭을 듣는 정도전은 이성계의 나이어린 왕자들을 밀다가 죽음을 당했다. 견훤에 대한 역사 공부가 모자랐는지 아니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자만했는지 모르겠다. ]
나머지 내용들은 잘막잘막하게 실록이나 선비들의 문헌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올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읽어 두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읽다보면 역사적 평가에 대한 견해가 나와 좀 다른 곳도 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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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어차피 사료와 유물, 그리고 상상력이 더해져 창조된다 이렇게 자주적이고 다양한 시각의 역사 연구는 꼭 필요하다 조선은 500년의 역사를 가진 왕조였지만 우리가 기억하기에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럽고 기억하기 싫은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아픈 상처일지라도 솔직하고 깊이있게 파헤쳐 오늘을 사는 지혜로 삼아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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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는 역사를 강조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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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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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엔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나보다. 책 한권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다.
청계천을 파고, 운하를 만드는 것들이 이미 조선시대때 시작된 것이다. 단지 지금은 되풀이 될 뿐인 것인가
또 역모가 있으면 조정에서는 도 이름을 바꾸었다. 그 중에 충청도의 도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도의 이름에 사용되는 지명의 첫 글자를 아무 곳에서나 딸 수 없고, 계수관이 이어야 한다. 도를 대표하는 관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충청도에는 충주, 청주, 공주, 홍주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충청도, 청주에서 역모가 있으면 충공도, 충주에서 역모가 있으면 청공도, 청주, 충주에 있으면 공홍도....이렇게해서 실록에는 수도 없이 바뀌어 경우의 수를 따져 12회는 바뀌었단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실려 있어서 정말 우리 주변의 것들이 예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고,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공부하고, 체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옛날 관직, 부서, 인명 등이 아직도 친숙하지 않아서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
내가 조선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어찌 서양 것만 볼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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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이야 컴퓨터의 발달로 누구나 쉬이 제 원하는 바를 적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만인이 사용하는 인터넷이 있으니 제 생각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타인과의 교류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과거엔 오늘날과 같은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특히 인쇄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의 지배계층만이 문자생활을 향유하던 시절에는 더더욱, 기록은 특권과도 같았다. 오늘날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다름 아닌 기록이다. 기록의 주체는 승자이다. 모든 기록에는 승자의 관점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여타 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우리로서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객관적이라 할 순 없음에도 우리는 승자의 기록을 ‘정사’라고 말하며 이를 우대(?)한다. 특정 기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역사를 현대와의 대화라고 많은 이들이 인식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떠한 관점에서 지난 역사를 바라본 것일까? 기존에도 조선시대를 해석한 역사서는 많았다. 정통 사학에 기대기도 했고, 때때로 흥미 위주의 야사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들도 등장했다. 이 둘은 마치 끊임없이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는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권력을 쥔 자의 손에서 만들어진 조선의 역사, 그 이면에 담긴 진실 혹은 거짓을 파헤치겠다는 의도 하에 정사뿐만 아니라 야사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정사와 야사를 아우르며 서로 비교하여 야사를 통해 정사에 생명을 불어넣고 정사를 통해 야사의 진위를 걸러내는 작업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바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사와 야사는 전체로서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두 개의 눈이다. –p20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배척하지 않는, 둘의 융합을 통해 태어난 새로운 조선시대는 과연 어떻게 그려졌을까? 가장 특징적인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의 생활상을 다룬 부분의 존재가 아닐지 싶다. 정사의 경우 왕과 양반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계층만을 그려냈기에 일반 민중의 삶을 들여다 볼 여지가 없다. 또한 발생했던 사건 하나하나를 다룸에 있어도 유교 의식이 깊이 뿌리내린 그들로서는 완곡히 돌려 말하거나 아예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사건의 소소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마시킨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우리는 야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사방지는 정말 남녀 양성 인간이었을까?>, <조선 최고의 음란 서생 박생> 등의 부분이 바로 야사의 힘을 빌렸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야사의 힘을 빌림으로써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내용만이 아니다. 일례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충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성삼문에 대해 이 책은 다른 평을 내리고 있다. 죽는 과정의 장렬함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성삼문의 망설임이 거사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우유부단한 성삼문이라니,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미지여서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피난 가기 바빴던 유약한 왕 선조와 조선 제2 의 중흥기를 이끌었단 평을 듣고 있는 정조 역시 실록으로부터 벗어나니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재탄생 했다. 이 즈음 되면 묻게 된다. 내가 아는 걸 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였듯 이 책 한 권으로 조선 500년 역사 전체를 훑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아무리 많은 책을 퍼낸다 한들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시키는 것은 애초부터 허황된 꿈인지도 모른다. 다만, 끊임없이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 이 책이 작으나마 하나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책은 역사를 해석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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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실록에 나오는 조선조의 역사를 다른 모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사실을 알려준다는 목적으로 나온 책인것 같은데 그러한 소망 보다는 흥미위주의 내용들로 구성이 되어있는것 같다. 아무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 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면 사장이 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수가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인것 같다. 2. 군 주 왕조의 초기에는 전 왕조를 제거를 하면서 뿌린 피의 냄새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왕들의 발언권이 강력하고 왕들이 직접 전투를 한 경우도 많아서 권력을 휘두르는 신하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적었다. ※ 초기의 정도전은 왕이 군림을 하는 왕조가 아니라 신하들의 우두머리로써의 왕인 일명 봉건주의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을 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정계를 개편을 하기 위해서 후처의 자식인 방석을 태자로 삼았는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버리는 일에는 많은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여야 하였는데 범과 같은 왕조의 개창에 많은 공헌을 한 전부인의 왕자들에 대한 대비가 적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를 못하고 죽었고 정도전을 죽인 실질적인 조선의 창건군주인 태종이 자신을 몰락을 시키려고 하였던 정도전의 위상을 진창에 버리면서 그의 이름은 조선왕조 500년동안 복원이 안되고 역신의 대명사로 남았다가 고종때 대원군의 뜻에 따라서 복원이 되었다. ※ 조선의 왕들은 자신들이 신봉을 하였던 불교도 마음대로 밎지를 못하는 정도로 신하들에게 압박을 당하였는데 이런일들은 왕들이 자초를 한 영향이 있는것 같다. 태종은 신권을 누르기 위하여서 자신이 모든일을 처리를 하였고 세조도 자신의 권력을 강화를 하였지만 몸이 약하였던 세종은 많은 권력을 신하들에게 주었고 그들의 권력을 강화를 시키어서 자신의 뜻대로 일을 하는 절대권력을 누리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던것 같다. 신하들이 권력을 가지고 서로 파를 나누어서 싸움을 벌이던 중기부터는 왕조가 무너지고 봉건제나 귀족제로 변화를 할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그러한 일들은 양반들이 목숨보다도 신봉을 하고 있던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문제가 많아서 그런 문제들을 피하고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는 당인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리그안에서 싸움을 벌이고 민생에 대한 문제는 뒤로 보낸것 같다. 왕들의 자식과 친척들인 왕족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생활을 하였을것 같지만 그들도 인간의 욕망인 권력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할수가 있는 일들이 적었다고 할수가 있다. 왕족들을 권력에서 물러나게 만들어서 조선왕조의 유지기간 동안에 나름의 왕족간의 권력투쟁이 적었다고 생각을 한다. 3. 양 반 조선의 양반들은 초기에는 성리학만이 아닌 여러가지의 기술을 익히는것이 장려가 되었는데 그러한 이유는 정치에 참여를 하고 민생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바로 양반 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양반들이 그러한 일들을 알고 있어야지만 민생에 도움을 줄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실생활에 보탬이 되는 학문들은 잡학이라고 하여서 천시를 하고 경전만을 연구를 하는 분위기가 생기어서 중기 무렵의 새로운 학문인 북학에 심취를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서자나 권력에서 멀어진 양반들인 상황이 발생을 하여서 그들의 지식을 실생활에 접목을 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4. 결 론 우리가 잘모르고 있던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책인것 같은데 실록을 배경으로 하여서 민초들의 이야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왕실이나 양반들의 이야기들이 많을것이 아쉬운 점인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