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서는 주로 현대의 생명과학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설명은 쉽게 되어있는 편이지만 전문용어가 조금 나온다.(하지만 용어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호메오박스나 에이즈바이러스를 병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 등이 가장 인상깊었다. 저자는 또한 갈수록 그 토대가 약화되어가는 일본의 과학을 걱정하면서, 일본의 과학교육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도 느꼈지만, 일본과 우리가 겪고 있는 교육문제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일본을 한국으로, 문부성을 교육부로 고쳐놓는다 해도 말이 될 것 같을 정도니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도, 최신의 생명과학의 성과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이 책은 유용하다. |
| 다치바나 다카시의 몇몇 책들이 국내에 출간되었을 때 나는 이런 사람이 존재함 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퇴근후 TV를 켜는데 어느 프로에선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삶과 현재의 모습, 고양이 빌딩 등을 보고 저런 사람이 쓴 글은 얼마나 대단한가 평가해 보자는 맘으로 책을 구입했다. 처음 읽기 시작한 책은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 "우주로 부터의 귀환"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결론적으로 아하 그렇구나....라고 결론 짓고 싶다. 읽는 책마다 정리된 책 구성과 구분 그리고 사실적이면서 저자의 폭넓고 깊은 지식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단어나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의 글에 대해 작가가 독자를 배려하는 맘인지는 몰라도 각주나 여러 방법들로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즐겁게 읽고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과는 달리 책에 감동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일부분은 어디 저널이나 신문 등에 기고 되었다는 둥 어디서 강연한 걸 축소하거나 이해를 돕고자 설명을 덧붙였다는 등의 웃기지 않은 해설이 뉴스 논설을 보는 듯하다. 저널리스트이기에 더욱 사실적이지만 감동을 읽고자 원하는 독자들에겐 매우 건조하기까지한 내용에 실망이 많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3권이나 읽으면서 처음 리뷰를 작성하였다. 읽은 3권의 책 중에 권한다면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먼저 그리고 다음이 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공학도 이기에 이렇게 권하게 된 것같아 공학도가 아닌 독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리뷰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
| 이틀간 회사를 오며 가며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21세기 知의 도전》이라는, 그렇게 쉽지 않은 책입니다. 온라인 서점의 서평을 보니 전문적인 내용을 꽤 쉽게 설명했다는 글도 있던데, 저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만,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이오 테크놀로지, 특히 유전자 조작(조작이라는 말에 이미 좋지 않은 의미가 포함된듯한)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게 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20세기의 과학 혁명에 대해, 2부는 21세기 바이오 테크놀로지에 대한 현재와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책의 리뷰를 쓸 때가 가장 힘듭니다. '요약'을 하기도 만만찮고 - 왜냐하면 제가 잘 모르니까요 - 그 느낌이라고 하는 것도,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생명 공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그 느낌이 비록 짧은 몇 마디의 문장으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아주 큰 의미를 주는 책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분명하니까요. 책 읽는 폭을 좀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면 좀체 흥미를 느낄 수 없었으나, 점점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럴수록 저는 점점 더 작아지구요. 어디 가서 '안다'는 말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책 내용 자체의 지식보다 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
|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좋고 나쁘고의 큰 기준이 되는 소설과는 달리 실체적 지식을 다루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나면 좋고 그 기준을 가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때문에 알찬 내용의 성의 있는 책을 단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내용은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그 언변과 이미지에 눈이 멀어 극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 분야에 관심만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생각이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여 올바른 판단의 기준에 근접해 가게 되지 않을까 한다. 과연 그 시기가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책에 대해 냉정하게 나쁘다고 할 만한 식견도, 결단력도 없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사담이 길어졌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좋아하고 있다 뿐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책을 접할 때 소극적인 비판조차 내놓지 못한다. 아니 그 이유는 단지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자신감 있는 필체의 배경이 되는 지식의 저변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 ‘21세기 지의 도전’에서 통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유전자공학으로 대두된 21세기의 새로운 인식의 변화에 무조건적인 비판(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판)을 내놓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자칫 마녀사냥이 되기 쉽다. 나 역시 그, 다치바나 다카시의 의견만을 수용한다면 그 반대급부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카시 자신도 우려를 품고 있다. 그 역시 어떤 분야의 발전은 비판이 없으면 오로 곳이 설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비판에 대한 비판은 배경지식이 없는 것에만 한정된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히 그의 기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비판 속에서 밖에 태어날 수 없는 진주를 가려낼 눈을 내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 시야가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다카시의 글에 무조건 수용의 백기를 들고 이 책을 읽게 된 나의 감흥이란, ‘참 좋다. 읽기 잘했다.’ 이다. 20세기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접했을 때는 처음 접하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고 21세기의 열쇠, 유전자 공학 분야의 현재와 대두되고 있는 문제와 그에 대한 의견을 읽을 때는 자신의 무지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학부시절에 ‘생명공학’이라는 타과 전공수업을 수강한 경험이 있는데 그 당시 내 발표 주제가 유전자조작식품이었다. 그 당시 그 발표를 위해 나름대로는 성의 있게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료의 출처가 대부분이 인터넷 상의 사견이었다. 그 부족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흑묘백묘 식의 빈약한 논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다카시가 꼬집는 어리석은 비판이 바로 내가 아니었던가. 다카시의 논리를 극단적인 유전자조작 옹호론으로 본다하더라도-실제로도 다카시는 찬성론의 입장이지만 극단적인 판단은 경계하고 있다.― 그 의견에 어떤 비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나의 유전공학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카시의 논조를 뒷받침하는 20세기와 21세기의 지에 대한 지식이 한없이 부족한 나와 같은 이들은 이 책을 통해 바이오테크놀러지에 조금 더 친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전문적인 분야(내 전문분야가 아닌)에 대한 반감으로 바이오테크놀러지에 거리감을 가지기 쉬운 여러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쉽게 읽히는 반면에 내용도 알찬 책임이 틀림이 없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것이지 다카시의 논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현상과 문제를 대하는 입장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또한, 윤리적 또는 종교적인 문제로 바이오테크놀러지의 발전에 우려를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기대 이상의 효용이 있을 것이다. 그 우려의 반대에 앞장서있는 다카시의 논조를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반격의 여지를 탄탄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21세기 지의 도전’ 이라는 이 거창한 제목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이다. 분명 21세기의 지(知,) 즉 바이오테크놀러지로 수렴되는 그것은 인류의 전환점을 찍을 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아직은 대립된 팽팽한 의견 속에서 힘겨운 도전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거창한 도전은 특정한 선구자들의 몫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이들의 생활 근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게 지금의 바이오테크놀러지는 ‘22세기의 지의 도전’이라는 책이 나올 법할 즈음에는 뉴턴의 법칙 같은 상식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바이오테크놀러지의 도전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그 도전에 의해 인간의 미래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 21세기의 큰 태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단순하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은 이 책은 우리를 그 관심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이미 몇 년이 지난 이 책에서 그 관심을 얻은 내 자신이 이미 최종화가 방영된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고 광분하는 꼴이라 부끄럽지만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서슴없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 어떤 모습의 미래가 펼쳐지든지 간에 미래는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라면 그것은 반드시 현재와 접속되어 있다. 20세기 인간의 존재 방식은 극적으로 변했다. 사람의 귀를 등에 달고 있는 쥐의 모습을 본다면 바이오 혁명의 진전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장기 이식등은 이제 낡은 기술이 되었고 인류는 자기의 세포로부터 새롭게 또하나의 심장을 만들어 낸다. 과학이 인류를 변화시켰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궁극적인 원리를 추구하며 왔고 그 이상 궁극적인 어떤것이 존재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궁극을 해명해야할 단계에 와버린지도 모른다. 21세기 의료는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예측할수는 없지만 돼지로부터 장기를 이식받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수 있을까? 그 어느 문제도 해답은 간단하지 않다. 옳은 답을 내기 위해서는 모든 변화에 따른 새로운 휴머니즘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인간의 가치관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원리까지 내려가는 논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들이 시대는 과학 없이는 어떤 것도 해나갈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동시에 과학이 과학만으로 끝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과 기술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가져다 준 안락함과 편안함이 우리가 과학의 진보에 안정되고 균형있는 흐름을 이어나가는 전망을 제시하는데 싹을 튀울수 있는메시지가 될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 다치바나 다카시 선생님의 국내 번역 4번째 저작이다. 국내번역 전작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 이은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저작이다. 1부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뤄놓은 과학지식 중 최첨단의 지식들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주로 분자생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간중간 일본과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비평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치바나 선생님의 강점은 어려운 첨단 과학 지식을 정말 쉽게 설명한다. 아마도 그의 방대한 독서에서 비롯한 지식이 어려운 지식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치바나 선생님의 비판은 정말 매서울 정도다. 일본 과학 교육의 문제점, 과학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낮은 인식, 관료들의 과학에 대한 무관심은 일본을 미래가 없는 나라로 이끌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어떤가. 일본이 이런데 우리는 과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끝부분에서 다치바나 선생님은 신참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여러분들의 연수 프로그램을 보니, 내일 오후내내 NHK에서 나온 맨손체조 강사에게 체조와 건강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정말 여러분에게 그럴 만한 여유가 있는가. 오후 내내 맨손체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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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접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바로 "21세기이 지의 도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화두가 되는 바이오공학의 발전과 그 추세에 대해서
알수있었다. 21세기를 좌우할 지적 혁명이 생명공학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 분야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바이오공학을 대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싶다.
몇몇 사람들은 생명공학은 그 분야의 전문가나 연구자만 알면 되지 않겠느냐하고
반문할것이다. 전체적인 과학과 지식이 복합화의 추세를 보이는 현 세계에서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고 매도하는 특히 21세기 최고의 지의 중심인 생명공학분야를
무시한다면 그 누구든지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는 힘들것이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는 법대생이고 장래에 검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한분야의 전문가인 스페샬리스트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한다.
한분야의 전문가는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양한 교양과 지식을 지닌
제너럴한 스페샬리스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특히 대학에 입학하여 지성의 문을 처음으로 여는 많은 신입생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이 책으로 인해 지식에 눈을 뜰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 인간은 모두 유전자 재조합의 산물인 것이다. - 의미없는 과거는 없고 의미없는 현재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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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에서 20세기 말을 정리하고 21세기를 전망해봐는 의미에서 준비했던 어느 프로그램의 내용을 활자화한 것이란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열심히 취재한 결과물이란다.
자연과학이 세상을 선도하고 변화의 근원지라고 굳게 믿고 있는 다카시 선생은 책 한권 내내 과학얘기만 디립따 했다. 또한 그의 레파토리 중 하나인 일본학생들의 학력저하를 깊이 우려했다. 그리고 미국에 대비한 일본의 지력(知力)이 형편없음을 보이며 분발을 촉구한다.
그는 20세기는 물리학의 시대이고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생명공학의 오늘과 발전전망을 보여준다. 나름대로 쉽게 설명한다.
과학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말은 맞다. 굳이 과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없는 단순한 생산방식인 포드의 assembly line하나가 세상에 일으킨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음을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기'에서는 서기를 포기하고 포드기라는 역법을 쓴댄다. 20세기 소년에서 '친구력'을 쓰듯이
자연과학이 응용과학을 선도하고 과학으로 바뀐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 뒤이어서 사회과학이 따라간다는 이종수 교수님의 말씀이 천지당만지당하다.
21세기 생명공학의 주요분야는 '유전자'란다. 워낙 미디어에서 많이 떠드는 내용들인지라 익숙하긴 한데 정작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최첨단 과학의 최일선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조감도정도는 잡아봐야 하지 않겠냐? 그게 21세기의 최소한의 교양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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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바이오의 세기가 될것이라 예측한다.
전세계에서 P53 유전자에 대해 단계별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지금 P53의 경우 상품이 아닌 치료단계인 3단계 테스트 중이기에 치험에 자원한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
| ‘21세기 知의 도전’은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며 20세기 과학을 정리하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그래서 20세기의 시작은 아인시타인에 의해 시작되었고 에너지 노예 개념과 정보 노예 개념을 통해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정보화 시대로 21세기는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산물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별 무리가 아니지만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분자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바이오 테크놀러지로 보인다. 그렇지만 퉁구스카 대폭발 같은 내용까지 담고 있는 점을 보면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점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관심을 끌 내용까지 담아야만 하는 TV 프로그램의 한계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분자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바이오 테크놀러지에 대한 소개가 탁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암 유전자에 대한 내용이나 DNA 재조합에 관한 내용 등 너무나도 흥미롭게 잘 쓰여 있다. 또한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을 꼽으라면 바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 저자인 만큼 보통 일본인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낮다는 것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 과학자 역시 일본어로 쓰는 논문이나 피인용이 거의 되지 않는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직 일본 과학기술수준 만큼 되지 못하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일본 못지 않게 시들어가고 있는 우리 현실 또한 매우 우려스러움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