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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평가가 좋은 책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저는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로그의 글 쓰는 솜씨가 유감 없이 발휘된 작품이니 만큼 왠만한 책들에 비하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여자 주인공 로렌은 전편인 One night for love에서 오빠처럼 함께 자란 네빌과의 결혼 식장에서 그의 죽은 줄 알았던 부인이 살아 나타난 바람에 졸지에 버림을 당한 걸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참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물에 너무 완벽하여 그닥 매력적인 인물이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이 책 주인공이 그 로렌이라기에 글쎄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습니다.로렌이 그동안 레이디라는 마스크에 숨겨져 있던 혹은 스스로 억압했던 자아를 남자 주인공의 도움과 사랑으로 찾아가는 내용이 이 책의 주 줄거리인데요. 뭐랄까요 너무 어른스럽고 모든 일을 성숙히 처리하는 여자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열정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랄까요? 참 잔잔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더군요.
여주 로렌은 결혼식장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후 친척들의 과도한 보호 아래 여전히 레이디로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며, 임신한 런던 숙모 집에서 컴페니언으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주 키트 최악의 평판을 자랑하는, 한때는 한낱 백작의 차남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백작 후계자가 된 레이번스 버그 자작입니다.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날 남주는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우아한 사교계 사람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 윗통을 벗어던지고 동네 깡패들과 3대 1 맞장을 뜨고 있었지요. 남주에 대해 최악의 인상을 갖고 있던 여주에게, 가장 dull한 레이디로 여주를 지목하고 친구들과 일정 시간내로 그녀와 약혼하겠다는 내기를 한 남주가 계획적으로 접근합니다.
남주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습니다. 백작의 후계자가 아니고 그저 백작의 차남이던 시절 남주에게는 소꿉친구이자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는데요(5월말에 나오는 Slightly Scandalous 주인공). 그저 백작의 둘째 아들에 불과했던 그에게 공작의 딸이었던 그녀는 너무 과분한 상대였나봅니다. 그녀의 오빠인 뷰캐슬 공작(slightly 시리즈 혹은 베드윈 시리즈 가문의 수장)과 그의 아버지 레드필드(?) 백작은 백작의 장남, 즉 남주의 형과 그녀를 약혼시키는데 동의합니다. 공작의 딸 그녀, 정확한 영문은 모르겠으나 그 약혼을 거부하지 않고요.
결국 남주, 형을 때리고 한밤중에 그녀의 집에 찾아가서 그녀의 오빠 중 한 명과(slightly wicked의 주인공) 싸우는 사건을 일으킨 후 집안에서 완전 버림받은 채 군대로 떠납니다. 슬슬 군대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국가를 위한 지령을 완수하는데 보람을 느끼던 즈음 남주의 형이 죽게 되고 남주 그저 힘없는 백작의 차남에서 백작의 후계자 레이번스버그 자작이 됩니다. 이번에는 뷰캐슬 공작과 레드필드 백작님이 무슨일을 계획하셨을까요? 후후 전에는 절대 안된다고 끝끝내 떼어놓았던 두 연인을 다시 약혼시키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짭니다. 남주 당연히 그에 순순히 따를 만큼 순둥이가 아니고요.
이런 연유로 남주는 아버지와 그 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약혼자로서 거절하지 못할 완벽한 레이디로 여주 로렌을 지목하고 친구들과 내기까지 해가면서 여주를 약혼자로 만들어 집에 데려가 모두를 뻥찌게 만들 생각을 했던 거지요. 여주를 꼬여내기 위해 남주 온갖 감언 이설을 하지만 여주, 잘생긴 외모와 달콤한 말에 넘어갈 어리숙하고 순진한 데뷰땅트가 아닙니다. 남주가 프로포즈하는 날 여주는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당신이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거짓임을 안다고 하며 사실을 말하라고 차갑게 말합니다. 남주 여주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며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여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하는 거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주, 남주의 프로포즈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진짜가 아닌 가장으로 당신의 약혼녀가 되어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지 않도록 도와 주는 대신에 자신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여름을 달라고 합니다. 그동안 완벽한 레이디의 껍질 속에 살던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껍질을 벗을 기회를 주고자 그리고 남주와의 파혼을 통해 더 이상 훌륭한 결혼대상이 되는 레이디로서가 아니라 휴양도시 배스에서 독신녀로 조용히 살아갈 결심을 하고 말이지요. 그렇게 남주와 여주의 기억에 남을만한 여름이 시작됩니다. 남주에 의해 여주, 난생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 나무에 올라가고, 한밤에 남주와 외딴 오두막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 후 말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 잠만 자고 호호, 어린아이들과 언덕을 구르고, 나중에는 항상 우아한 옷으로 숨기기만 했던, 태어난 그대로의 몸으로 깔깔 웃으며 남주와 함께 수영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서서히 레이디의 껍데기를 벗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남주에 대한 사랑이 커 가는 과정이 함께 진행됩니다. 진짜 혈육이 아니었던 가족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완벽한 레이디가 되어야 한다고 평생 스스로를 다그쳤던 로렌이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표정은 진지함에도 불구 언제나 웃는 듯한 매력적인 눈을 가진 블론드 남주도 인상깊었고요. 최악의 평판을 자랑하는 난봉꾼이라지만 역시 로맨스 소설의 남주답게 아픔을 간직하고 가볍지 않은 자아를 가진, 여주가 껍데기를 벗을 수 있도록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헌신적으로 여주를 대하는 이 남주 캐릭터 참 멋졌습니다.
이 책 특별히 반전이나 자극적 요소 등 흥미를 끌 부분들은 없습니다만 참 잔잔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왜 평판이 좋은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편으론 너무 평판이 좋은 책은 자극적인 재미를 좋아하는 걸로 거의 확실하게 추정되는 저의 평범한 취향에는 조금 긴장감이 부족하게 느껴지네요. 발로그의 새 시리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베드윈가 사람이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을 놓치지 마시라고 권합니다. 발로그의 또 다른 멋진 책이 손에 걸리기를 희망하며 이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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