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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출공직에 여성 대표성을 확대하고자 한 프랑스 페미니즘 운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이지만, 그가 프랑스에서 형성된 페미니즘에 대한 철학적 관념을 책으로 펴내자, 미국의 다른 페미니스트 역사가가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그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이 초국가적 페미니즘의 좋은 사례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녀동수’ 캠페인의 시작과, 이법의 제정을 둘러싼 프랑스 정치철학과 현실정치, 캠페인의 전개 및 법 제정과정 그리고 페미니스트 내부의 논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남녀동수’ 법이란 대의기구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대표성을 위하여 2000년 4월 제정되에 6월6일 국법으로 선포된 법으로 대표자 선출시 ‘남녀동수’공천을 장려하도록 명문화 되어 있다고 한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래로 프랑스적 보편주의는 법 앞에서 평등을 보증하는 것이며, 이러한 보편주의는 추상적 개인을 시민의 대표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표로 취하는 정치학의 개념에 의존한다고 한다. 시민권을 위한 재산자격이 없어진 1848년 여성들은 그들의 성차로 인해 시민권을 향유하지 못하였으며, 그녀들이 투표권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1970년, 80년대 프랑스의 대의제의 위기에 대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을 때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이 받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교정하기 위한 그들의 분투의 역사를 보면, 프랑스에서의 성적 차이에 대한 인식은 그들의 정치철학인 추상적 개인주의 라는 전통적 개념마저도 비켜가는 어찌할수 없는, 여성차별 극복에 대한 방해물로서의 위험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좌파집권기 페미니스트들은 정치영역에서의 여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성 할당제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여성들의 요구에 대해 1982년 헌법위원회가 거부하였을 때, 그 이유는 성적 특성을 가진 대표자는 추상적 개인주의 원칙과 양립할수 없다는 것 이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1980년대 말 전개된 대의제의 위기에 관한 다양한 토론에서 선출공직에서의 여성부재가 위기의 징후이자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추상적 개인들이 될수 없다는 역설 속에서 싸워왔다면 ‘남녀동수’지지자들은 여성은 오직 여성만을 대표한다는 성적차이를 부정하고, 여성도 남성처럼 국가를 대표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남성들 만큼이나 다양한 의견과 판단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허구적인 보편성에서와 같이 사회적 차이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해부학적 이원성을 추상적 개인주의의 첫번째 원칙으로 만듦으로써 프랑스 정치체제에서 진정한 보편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것 이었다. 즉, 추상적 개인에 성적 특성을 부여함 으로써 추상적 개인인 여성을 말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이들이 주장하는 ‘남녀동수’에 관한법은 여성을 정의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보는 차이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보편주의적 원칙을 이행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적 차이와 공화주의에 관한 격렬한 논쟁들은 ‘남녀동수’라는 용어를 일반대중들에게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운동은 내부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의 도전을 받고, 대의제의 위기와 맞물리고, 프랑스의 정치역학과 경합하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진정한 보편주의는 인간들이 두개의 성으로 되어 있다는 것, 즉 인간의 성에는 보편적으로 성적 특성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었다. 이러한 보편주의를 정치영역에 적용한 것이 바로 남성과 동등한 수의 여성을 모든 경우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포함하고, 이들이 여성이라는 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선출된 개인이 될 권리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남녀동수’의 진정한 의미였다. 법은 순수원칙에 대한 일반의지의 만장일치적 표현이 아니라 협상과 타협의 산물이라고 한다. 수많은 논쟁과 타협을 거친‘남녀동수’법은 이를 저지하려는 남성 정치인들의 온갖 방해와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2000년 1월 법안으로 제출되어 산고 끝에 4월27일 상,하원에서 가결되고 6월6일 국법으로 선포 되었다. 그러나 그후 이법 아래에서 치루어진 각종 선거의 결과를 보면 비례대표 위주의 선거에서, 그리고 권력이 적게 위협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선거에서는 효과적 이었으나, 권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수대표제 선거에선 법에 순응하는 척 하면서 법의 정신을 위반하는 정치인들의 창의성을 예상하지 못해 효과가 미약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한차례 선거가 지나가고 나자 이법의 효과성에 대하여‘남녀동수’지지자들은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남녀동수’라는 본래 개념과 그 이름으로 통과된 법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이름으로 법을 만들고, 이제 다시 그 본래 개념에 다가가려 하는 그들의 투쟁이 어떻게 성취될 것 인지는 미래에 알 수 있을 것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