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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다큐피디의 강렬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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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저널리즘이 위기다. 제작비의 삭감으로 기획물들의 진행이 좌초되고 있고, 피디집필제를 강요하면서 취재에도 바쁜 피디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 피디저널리즘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방송의 위기로 이어진다. 앵무새처럼 ‘댕전’뉴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방송사에는 피디들이 보도팀과는 또 다른 탐사 저널리즘의 세계를 열었고, 방송사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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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저널리즘이 위기다. 제작비의 삭감으로 기획물들의 진행이 좌초되고 있고, 피디집필제를 강요하면서 취재에도 바쁜 피디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 피디저널리즘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방송의 위기로 이어진다. 앵무새처럼 ‘댕전’뉴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방송사에는 피디들이 보도팀과는 또 다른 탐사 저널리즘의 세계를 열었고, 방송사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하지만 안팎의 수많은 갈등들이 쏟아지면서 위험은 증대되고 있다. 방송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민주화의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피디저널리즘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는 정길화 피디가 이 위기를 조심스럽지만 깊게 파헤친 책을 내놓았다. ‘어느 다큐멘털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라는 부제가 붙은 ‘기록의 힘, 증언의 힘’(시대의 창)이다.


‘추적 60분’이 가장 먼저 피디저널리즘을 표방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피디저널리즘을 각인시킨 프로그램은 MBC ‘피디수첩’이었다. 피디수첩에는 인상적인 피디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정길화 피디를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경상도 엑센트가 남아있지만 끈기있는 보도로 각인됐다. 이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통해 피디저널리즘을 정착시켰다. 물론 멕시코 이주민의 한을 다룬 <에네껜>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에게 정길화 피디는 글로 기억되기도 했다. 피디연합회장을 할 때 썼던 ‘기형도 시인’에 대한 칼럼을 필두로 가끔 그가 쓰는 글들은 당대 현안을 가장 깊게 성찰한 의미있는 글들이었다. 이번에 펴낸 그의 ‘기록의 힘, 증언의 힘’은 그가 최근 쓴 그럼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책은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지상파 방송과 미디어 공공성’,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로 구분되어 있다. 사실 글을 쓴 주제들이 목적들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일관성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록의 힘, 증언의 힘’(41페이지), ‘최진실을 위한 만가’(146페이지), ‘대기자 김중배 50년 봉정식’(210페이지) 등만 읽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제작할 때 한사코 증언을 거부한 이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이번 일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것은 기록과 증언의 힘이다. 사실의 위력, 진실이 주는 파괴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노자>에 나오는 말로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성긴 듯해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 없다. 이 시대 ‘하늘의 그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전파인 것 같다. 전파는 천망天網의 메타포로 그럴싸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역사의 단초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후대의 사가와 다큐멘터리스트는 여기에서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지금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적고 있다. 다큐멘터리스트로 그의 사명감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는 다큐로는 기적적인 43%의 시청률을 올린 <인간시대> ‘최진실의 진실’을 연출했었다. 그런 그에게 최진실의 자살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소회를 적었다. <인간시대> 제작 당시에 느꼈던 최진실에 대한 느낌과 더불어 그녀의 인생 여정을 회고했다.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을 한 그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쓴다. “2008년 가을날의 신새벽에 그녀가 내린 결정은 그런 모든 것들이 마침내 한계에 바닥쳤을 때 내린 최후의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문득 시인 존단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시구가 생각난다. 가로되 “어느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저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 종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부연하면 이 종은 한국 사회에 울리는 경종警鐘이 아닐까 한다.”라는 부분에서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까지 중첩되어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또 올 2월26일에 있었던 김중배 대기자의 봉정식에 관해 쓴 글도 그가 지금 겪는 언론 민주화의 위기를 너무도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기자들의 사표와 같은 김중배 대기자의 일성을 전한다. “한가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정색한 후,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민주화 세상에 접어들었지만 민주화가 공고화되지 못하면서 다시 역풍의 반동시대가 되고 있다”며 스스로의 반성을 촉구했다고 전한다.


정피디의 글이 생동감 있는 것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도현도 말하고, <색, 계>의 탕웨이도 말하고, <지리산>의 이병주도 말하고,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동료 이채훈 피디에 대해서도 말하고, 정현종을 두고 문학에 대한 꿈도 말한다. 때문에 다큐멘털리스트의 좀 지루한 글 같지만 차분히 읽다보면 감수성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또 강준만 교수의 발문이나 주철환, 손석희, 김미화의 짧지만 강렬한 촌평도 정피디의 넓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핑그레 미소짓게 한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09.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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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서평] 기록의 힘, 증언의 힘" 내용보기
기록이라는 것이 가지고 힘은, 얼마나 클까? 그 일상의 담담함을 묵묵하게 담아   내는 힘은 사람들의 생각에 얼마만큼 파급력을 가져올까? 그 힘의 결과는 그   일상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강으로 흘러갔을때 나타난다.   기록은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그저 담아내면 되는 것이다. 때로 연출   이라는 의도에 의해서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소중한 시간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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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 것이 가지고 힘은, 얼마나 클까? 그 일상의 담담함을 묵묵하게 담아

 

내는 힘은 사람들의 생각에 얼마만큼 파급력을 가져올까? 그 힘의 결과는 그

 

일상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강으로 흘러갔을때 나타난다.

 

기록은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그저 담아내면 되는 것이다. 때로 연출

 

이라는 의도에 의해서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소중한 시간과 감동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연출이 필요한때도 있지만 선의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창조가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지만 그 의도된 창조를 넘어선 삶이 빚어내는 순백하고 담백한

 

삶 그대로의 진실이 나올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삶이 주는 축복이고 메세지이다. 그건 감사하게 받아 기록하면 되는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느꼈을때, 그 열망에 목구멍까지 뜨거운

 

불기운이 올라와서 무언가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순간에

 

기록하는 자들은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그 작업을 한다. 그 열망을 토해내지 않으면

 

자신이 타버릴것 같은 그 기운을 감당할 수 없고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창작하는 자가 될것인가? 기록하는 자가 될것이냐의 기로에서 많이

 

갈등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기록으로 남겨지는

 

또는 사실적으로 쉽게 쓰여지는 작품들을 폄하하는 평을 하는 말을 들었을때

 

많은 회의와 분노가 느껴진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예술도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지지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만

 

으로 창조되지는 않는다. 진실을 알고 싶고 그것을 제대로 역사에 후대에 남기고

 

싶은 열망, 그것은 본능이 주는 힘이다. 최근에 캠코더로 주변의 일상을 촬영을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되어 그 모든것을 담아서

 

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남겨주고 싶었다. 그러한 의도로 시작된

 

영상의 기록물은 많은 반대와 공격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심지어는 촬영하는

 

도중에 당장 카메라 끄라는 제재와 인신공격과 예상치 않은 반대의견과 입장

 

들로 인해서 촬영은 둘째치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문하는 힘겨운 시간까지

 

가져야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왜 이런 공격을 받아야할까? 이 작업이 내가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강행

 

해야할 만큼의 보답으로 나에게 돌아올까? 아니 그보다도 나보다는 나에게

 

공격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굴욕을 당하면서 만들어서 그들에게 보여

 

줘야할 의무가 과연 나에겐 있는 것일까? 그렇게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간에 만들어진 감정의 부딪침속에서, 기록하고 싶었던 경험과 시간들은

 

과거속으로 흘러갔다. 처음의 의도대로 작업을 하여 나의 작업에 지지와 후원을

 

해주었던 사람에게도 반대와 공격을 했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그 결과물을

 

선물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간과 삶의 역사가 증명을 하리라.  

 

 

 

이 책을 보면서 진실을 담기 위해 움직이는 그 기록의 현장에서 어쩔수 없이

 

부딪치는 그 삶의 애환들을 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도 그 당시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해도 나중에는 시간이 말해주리라. 시간은 진실을 말해

 

주리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편에서 보도연맹 관련 장석윤씨의 마지막 증언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런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마지막 진실을

 

증언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생존자일 수 있는데 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입밖으로 세상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과 거리감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전 장관은 세상을 떠나고 그때 좀 더 간곡하게 호소를 해볼

 

걸 그랬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시대>라는 프로도 참 예전에 재미

 

있게 봤었는데 '최진실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최진실의 일상을 그렸다는

 

글을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예리한 그의 지적들이 깊이있게 다가온다.

 

'마이클 클라이튼과 나'라는 제목에서는 너무나 재미있게 작가소개와 작품을

 

설명해주어서 나의 다음 읽어야할 도서목록의 상위에 올라와버렸다.

 

이 책에 대해 손석희교수가 뒷표지에 부러운 처지에 심술이 날 지경이라는

 

말을 이제는 이해가 된다. 정말 마이클 클라이튼에 관한 이야기에서 질투가

 

날 정도로 그 작가를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멋진 평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기록물을 남기려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그 당시는 진실이었던

 

것이 시간속에서 다르게 변질되어 후대에 다르게 전달되는 것을 보고 그

 

잘못을 반복하려하지 않음이다.

 

 

 



s*******t 2009.07.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