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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에 대한 기억은 철강도시라는 것, 제니퍼 빌즈가 주연한 영화 <플래시 댄스>의 무대였다는 것, 그리고 동부를 여행하는 길에 외곽도로를 지나갔다는 것 정도입니다. <플레시 댄스>에서는 낮에는 제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플로어 댄서로 일하는 여주인공이 어려운 여건을 뚫고 무용수로 성공을 일궈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피츠버그의 여름은 어떨까 싶어 고른 책입니다. 특히 격동기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어,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대학을 갓 졸업한 주인공 아트. 그는 리포트 제출 때문에 마지막으로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멋있는 청년 아서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여인 플록스를 만나게 되고, 아서의 친구 클리블랜드와 제인 등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찬란한 청춘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나들고 고통스럽게 자아를 찾아 나간다.”라고 간단하게 요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공 아트의 아버지와 친구 클리블랜드가 속해 있는 갱스터 사회나, 아트와 그를 둘러싼 젊은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라서인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라던가,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 소설, 음악 등이 비교적 생소하였기 때문에 친절한 주석에도 불구하고 금방 와 닿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트가 한눈에 반한 아서, 그리고 아서가 소개해준 플록스와 금세 친해지면서 삼각관계에 빠져드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트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입해서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이성에 눈을 뜨기 전까지 동성 친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소인으로 이성보다는 동성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을 동성애자라고 부르고 있고 성소수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동성애자는 역시 동성애 성향의 상대와 관계를 맺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서는 이성에는 관심이 없는 동성애자로, 아트는 양성애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보다 질투가 심한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서가 아트와 플록스 모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트의 아버지는 뉴욕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전국구 갱스터 두목으로 가끔 피츠버그에 와서 조직을 관리하고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분명하게 설명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아트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어머니의 죽음이 아트에게 정신적 충격으로 잠재되어 있고,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살고 있음에도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즉, 아트를 둘러싼 환경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장애요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물론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너 명의 여자를 사랑했고 섹스를 하기도 했지만, 나의 유약했던 어린 시절과 당시에 경험한 성(性) 정체성의 혼란, 힘센 남자아이들로부터 ‘계집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당한 모욕과 주먹질(78쪽)”을 당했다고 적고 있지만 아서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동성애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성장하면서 약해보이기 때문에 여자아이 취급을 당하는 남자아이들이 적지않지만 그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6월에 플록스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7월에는 그녀와의 사랑이 안정적인 상태가 되지만, 도서관에서 같이 일하는 아서와 플록스는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아트에 대한 권리를 두고 심적 갈등을 빚는 것 같습니다. 플록스는 아서와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지만,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법이지요. 클리블랜드로 인하여 아버지와 충돌이 있었던 날 아트는 아서와 관계를 맺고, 플록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트와 플록스의 관계를 파경에 이르게 됩니다. 과연 아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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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무엇과 같다, 이런 말은 하지 마.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니까. –p147
술집에 피클 계란말이 안주가 있는 한, 희망을 품을 만한 이유는 있는 거지. –p149
학교 도서관은 내 대학 생활 가운데 무기력의 중심이었던 곳이었다. 나는 공허한 일요일이면 슬프고도 냉소적인 내 전공 경제학의 흐릿한 매력을 느껴보고자, 과일의 핵과 같은 창백하고 적막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 p. 12
아직 ‘사춘기 말기’상태를 벗어나고 못한 채 대학시절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고 있는 아트 벡스타인은 어느 날 리포트 제출 건으로 학교 도서관을 마지막으로 찾아 갔다가 동성애자 아서를 알게 된다. 한때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닐까 고민했었던 그는 아서를 통해 다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서는 아트에게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아름다운 여인 플록스와, 위태 위태한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오토바이족 클리브랜드를 소개해준다.
그 해 여름 아트와 친구들은 함께 어울려 지낸다. 사실 그 해 여름은 술, 파티, 마리화나, 연예사건, 삐뚤어진 욕망으로 얼룩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마침내, 클리브랜드의 표현을 빌자면 ‘검문소’에 다다랐다. 이것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가는 클리브랜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재난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즐기다가 결국 피할 수 없는 검문소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분증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통과받고는 불운이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p101
한편 클리브랜드는 아트의 아버지가 유명 갱단의 거물임을 알게 되고, 아트를 통해 아버지를 소개받고 싶어한다. 평소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던 아트는 클리브랜드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그를 통해 아버지가 속한 세계의 추악함을 목도하게 된다.
처음에는 클리브랜드가 나를 현실의 박물관에 있는 각 전시실로 안내하고 있다고 상상했다. 실제의 모습을 반영해 정성스럽게 만든 주택들은 단지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사람이 살고 있는 진짜 집은 아니라고 여겼기에 그 안에서 상스럽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p253
나는 나 지신을 벽이라고 믿어온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벽은 두 공간을, 두 세계를 가로 막고 서서 분리시켜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쓸쓸하고 어두컴컴한 복도에 자리 잡고 서서 점점 커지는 문에 불과했다.(…) 벽은 늘 안 된다고 말하지만, 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이다. –p266~267
아트는 그 어지러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크게 나아간다.
작가는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책에서 청춘의 부산함을 아주 잘 살렸다.
휴가철 이 책을 펼쳐놓고, 내게도 있었을 '그들의 마지막 여름'과 같은 그 시절에 대해 감상에 젖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해가 저무는 푸른 하늘과 그 끝에서 소리 없이 치는 번개를 바라보며, 귀뚜라미 소리와 물 위를 떠도는 친구들의 외침소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재키 윌슨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감을--혹은 맥주를 마셔 내 뱃속 한가운데 자리 잡은 미약하고도 기분 좋은 어떤 감정을--느꼈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슬픔과 너무나도 닮아서 나는 곧 머리를 떨구었다.” --- pp. 168-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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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
원제는 "the mysteries of Pittusburgh"
1980년대 초,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피츠버그 특히 아서와 플록스에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아서와 플록스가 도서관 쪽으로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특히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도 싶지만 그의 이러한 경험은 그의 유년시절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사실적인 기억이라기보다 과거를 망각하는 황폐한 추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나라는 놈이 늘 그렇듯 과장해서 추억한 것이리라.
2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가졌던 개인사에서 기인한 감정을 풀어가는 방식인 동성애 코드와 갱단의 모습은 다분히 이질적인 문화지만 감정의 매듭을 풀어가기 위한 방식으로 큰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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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책 이야기야 늘 하고 있지만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했거든요. 오늘은 한 번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이 책이 '왁! 완전 재미있어!'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내가 아는 세상과 당신이 아는 세상, 그 차이가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줄테니까.
혹시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 이라는 책 읽어봤어요? 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아직도 못 읽었어요. '못'읽은 게 아니라 읽는 걸 잊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읽어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눈 앞에 재미있는 책이 나타나면 금방 또 잊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이 두 책이 자주 내 발목을 잡아요. 출판사가 광고효과를 노린 건지도 모르지만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일탈 등을 그린 작품들의 표지에는 으레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계보를 잇는다' 거나, 그 두 작품을 뛰어넘는 수작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표현이 적힌 책을 읽었을 때는 늘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대체 뭐가 뛰어나다는 거지?' 하고.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이해못한 건지, 아니면 작품이 정말 재미가 없는 건지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죠.
이 책도 그랬어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일탈과 예상되는 결말을 그린 이 책 표지에도 여지없이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언급되어 있었고, 나는 또 '으흐흐흐흠;;' 하고 당황스러워했죠.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했고요.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이런 삶을 살았어'라고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단 한 번의 일탈 없는 평탄한 인생을 걸어왔기 때문일까요. 물론 나도 괴로운 적도 많았고, 내 자아라거나 인생 자체에 대해 고민한 적도 많았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방황은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주인공은 아트라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한 남자에요. 그는 도서관에서 매력적인 아서와 아름다운 여인 플록스를 만납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서가 게이라는 걸 알아챈 아트는 아서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에 대해 늘 경계하지만 어느 순간 그를 사랑하게 돼요. 하지만 플록스와의 관계를 끊지는 못하죠. 그들은 아서의 친구 클리블랜드와 제인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여름을 보내는데요, 그런데 아트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알아요? 아트의 아버지는 갱단이에요.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같아요. 아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 대신 죽음을 맞았고, 그 일이 있은 후 아트는 계속 방황한 것처럼 보여요. 아버지와도 거리를 두려고 했고. 하지만 클리블랜드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게 된답니다.
아트는 굉장히 우유부단한 사람이에요. 그 때 그 때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아서, 혹은 플록스와 섹스하죠.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서인지, 플록스인지조차 알지 못해서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줘요.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한 방황?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아버지와의 관계? 그렇죠. 방황할 수도 있죠. 아직 젊으니까 즐기고 싶을 수도 있고, 자기가 진정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지 고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트는 '고민'이라는 이름으로 방황이 아닌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자기 자신을 지킬만한 중심이랄까 강함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들, 술,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뤄지는 섹스. 그러다 누가 하나 죽고나서야 살짝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보이고, 결국은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이 끔찍했지만 아름다웠네 어쩌네 하면서 끝을 맺죠. 몰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답답했고, 인생이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닐텐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푸른 하늘 밑에서 나도 누군가와 저렇게 두 다리 쭉 뻗고 지내고 싶다고 생각할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하지만 원래 작가의 문체가 그런 건지 번역이 그런 건지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읽고나야 앞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지 겨우 이해한 문장도 있었고, 내용을 유추해야 하기도 하고. 정서적으로도 잘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별 세 개 반을 준 건, 어쩌면 한 번 더 읽으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별의 갯수는 나중에 또 정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한 번 읽어봐요.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고,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해요. 아! 근데 게이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면, 조금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네요.
음. 글이 너무 길어졌어요. 재미있는 책이었다면 '완전 재미있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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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단인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흥청망청 살고 있던 대학생 아트는 졸업을 앞두고도 미래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아무런 야망도 계획도 의지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 여름, 새로운 자유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던 그는 우연히 게이인 아서를 만나게 된다. 아서를 통해 그의 친구인 클리블랜드와 제인, 그리고 매력적인 플록스를 알게 된 아트는 그해 여름이 다른 해완 다르게 전개될 것을 직감한다. 제인에게 반한 아트는 그녀의 애인이라는 클리블랜드가 어떤 인간인지 흥미를 갖게 되고 그가 몹시 복잡한 성격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집으로 남자 애인을 데리고 오던 아버지, 불행한 결혼 생활에 질려 자살한 엄마, 죽이고 싶어했을 정도로 붙어다니던 동생, 한마디로 콩가루 가족의 모든 것을 갖춘 집안에서 성장한 클리블랜드는 이제 날이면 날마다 술에 절어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파괴 성향만큼이나 그의 치명적인 마력에 아트는 압도되고 만다. 돈이 떨어진 클리블랜드는 아트에게 아버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평생 아버지가 하는 일엔 발꿈치도 닿지 않으려 노력했던 아트는 클리블랜드의 요청에 식겁한다. 갱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잘 아는 아트로썬 클리블랜드를 말려보려 하나, 쉽게 돈을 벌겠다는 그의 결심을 꺽진 못한다. 한편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아트는 점점 아서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플록스와 사랑을 키워 나가던 그는 아서와 동침 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플록스는 화가 나서 펄펄 뛴다. 자신이냐 아서냐 하나만 고르라는 플록스의 최후통첩에 골치가 아파진 아트는 클리블랜드마저 갱단에 합류하자 어쩔 줄 몰라한다. 아트의 동성애를 알게 된 아트의 아버지는 아들을 타락으로 몬 친구들에게 복수하겠다며 나서는데... 과연 다섯 친구들의 운명을 어떻게 될 것인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영감을 받아 쓰기 되었다는 저자 자신의 성장소설이다. 좋은 음악들과 무지막지 좋은 책들을 배경으로 해서, 아들이 갱단이 되지 않길 바라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그와 그의 돈에 기대 사는 아트, 동성애자이자 나르시스트인 아버지에 자살한 엄마를 둔 클리블랜드의 번민과 일탈, 미천한 신분을 감추고 귀족처럼 살아가는 게이 아서등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다이나믹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흡입력있는 탄탄한 문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설득력있게 설명되던 가족사, 쉴 새 없이 터져대는 사건들로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등 장점이 많았지만, 뒤로 갈수록 마무리가 시원찮다는 점이 그 모든 장점을 말아먹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 성장이라는게 그가 사랑하는 한 남자와 잤고, 또 다른 남자는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란걸 알고는 뒷맛까지 영 개운치 않았다. 난 다른 사람의 섹스사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아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남자, 어찌나 징징대고 , 토하길 잘하고, 결단력은 없고, 줏대가 없던지...부패와 부정의와 폭력등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갱 단 아버지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도무지 아버지의 수표를 받아 사는 주제에 이 여자 저 남자와 섹스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성장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공감이 안 간다. <위대한 개츠비> 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플레이보이 잡지 서평은 쓰고 있던데, 그건 딱 그 잡지다운 분석이고. " 술집과 침대밖에는 갈 곳이 없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일탈을 그렸"다는 표지 문구엔 허허 웃고 말았다. 이 책을 잘 요약한 설명이긴 한데, 참나, 그러니까 그게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냐 이 말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그게 엄청난 자랑거리가 되려나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에겐 차마 들어주기 고약한 고역거리란걸 알아주셨음 좋겠다. 그나저나 미국이란 나라, 사는게 한가하긴 한가보다. 기껏 성장통이란게 이런 것이 전부라니 말이다. 그러게 너무 한가한 것도 인간에겐 그다지 좋은게 아니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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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과장된 오늘 밤,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어 보이는 내 눈에는 그들이 마법의 힘을 발산하는 아서의 모습이나 그의 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너무 눈부셔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39p
헤어진 여자친구, 갱 단원인 아버지, 그리고 피츠버그에 홀로 있는 나. 어느 여름. 마지막으로 갔던 학교 도서관에서 이름이 같은 아서라는 멋진 청년과 독특한 분위기지만 분명 아름다운 플록스를 만나게 된다. 분명한 것은 그 두 사람이 먼저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아서와 함께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될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또 제인과 그의 애인 클리블랜드의 존재까지 알게 되었다. 악명 높은 클리블랜드는 보지는 않았으나 다들 당연한듯 입에 올리는 궁금한 인물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제인 덕택에 클리블랜드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였고.
"아트 벡스타인이 쓴 '갱 단원의 아들'이라는 책을 찾고 있어." 82p
아트 벡스타인은 아르바이트 가게로 자신을 잡으러 온 어느 오토바이 족을 보고, 드디어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자에게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였다. 장난끼로 똘똘뭉쳤던 그는 바로 클리블랜드였다.
20대의 피어오르는 젊음을 간직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소설. 아트가 수시로 마치 영화배우처럼 잘 차려입은 그와 그녀들(그해 여름 새로이 알게 된 플록스, 아서, 클리블랜드, 제인 모두)에게 감탄하며 그들의 친구임을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아트는 그들에게 푹 빠져 있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플록스와 아서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까지 말이다.
"넌 미친 여자친구를 버리고 또 다른 여자친구를 얻었어. 그녀도 하찮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립스틱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직업도 있지. 네 인생은 한마디로 '수표 고마워요, 아버지'야." 219p
25살에 논문으로 제출한 이 소설이 너무나 뛰어났던 까닭에 담당 교수님이 에이전트를 소개해주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베스트 셀러에 오른 소설. 영화로도 만들어져 2009년에 미국에 개봉되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마이클 셰이본의 데뷔작인 이 소설 이후로도 그는 수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로 거듭났다. 퓰리쳐상, 휴고상, 네뷸러 상 등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는 그의 능력은 작품 속에서 더욱 빛이 나는 듯 하였다.
갱 단원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든 나는 친구인 아서의 말 그대로 '수표 고마워요 아버지'였는지 모른다. 그런 나에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두 사람이 나타났고, 두 남녀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밝은 세상에 나아가길 바랬던 터라 아들이 사귀는 여자, 혹은 남자친구들까지도 아버지에게는 하나하나 걸러보고 평가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사실 어느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힘을 가진 아버지의 권력은 더욱 막강했던 터였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젊은 날의 열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지만, 나또한 20대를 보내고, 어떤 이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이들의 사랑처럼 눈먼 곡예를 하듯 완전하게 나를 잃는 사랑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가 표현해낸 사랑이야기보다 나는 그의 하나하나의 상세한 묘사들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해하기 힘든 성적인 면들보다는 그저 아트가 살고 있는 집을 묘사하고, 제인의 아버지의 말투를 묘사하는 등의 색다른 표현 기법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수프와 샐러드를 먹는 동안, 내가 아기였을 적에 엄마와 함께 포브스 구장에 놀러갔던 잊지 못할 일요일 이야기를 아버지가 꺼내는 바람에 나는 계속해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내 팔에 온통 소름이 돋을 만큼 아주 오래되고 예쁘장한 이야기였다. 228p
내 팔에 온통 소름이 돋을 만큼 아주 오래 되고 예쁘장한 이야기라는 그 이야기에 나는 그대로 시선을 고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누워서 그해 여름은 참 열에 들떴던 때였지. 하고 과거를 회상하듯. 어쩌면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 이야기 또한 아트에게는 아주 오래되고 예쁘장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트가 표현한 바는 역설적인 표현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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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책소개를 읽자마자 바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책이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청춘소설에 내 마음까지 덩달아 10년은 젊어진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싱그러움에 넋을 놓게 되었다 파릇~! 파릇~! 한 그들... 청춘이기에 가능한 삶이 아니었을까...
아트와 아서..그리고 플록스.. 또한명 클리블랜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피츠버그에서 그들의 여름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뜨겁고 끈적하며.. 그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트는 게이인 아서와 연인 플록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그들때문에 자신의 성정체성마저 의심하며 방황하는데... 그에게 또하나의 혼란을 가져다 주는 인물 클리블랜드가 등장하며 그의삶은 열기를 더해간다 클리블랜드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것이었을까...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고~ 조직의 일원으로 행동하며~ 남의 물건이나 훔치는 그런 인생을 진정 원한 것이었을까 읽으면서 나 또한 클리블랜드의 마지막이 느껴졌으며 그래서 많이 안타까웠고.. 그의 삶이 조금은 시원해지길 원했다 마지막까지 아트와 아서는 우정과 사랑을 함께한 사이인것 같다 진흙탕같은 인생을 살지만 그래도 난 그들이 한없이 투명해 보였다 [그날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상처받은 일요일이었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p.290 피츠버그의 그들 역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상처받은 영혼들이지만.. 시간은 더디게.. 그러나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들의 방황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흥청망청 살아도 좋고~ 자신의 존재성을 의심하며 괴로워해도 좋고~ 사랑에 아파해도 좋다 청춘이라는 이름이 그들 뒤에 버티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여름은 치열하며~ 지루하고~ 또 싱그럽게 지나갔다 작가가 매우 젊은 나이때 쓴 첫 소설이라 그런지 젊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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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다.....그 시절을....언제부턴가 생각을 않게 되었다.. 나..주인공 아서 벡스타인은 이제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고 인생의 앞날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을 보낸다..딱히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마지막 과제만 제출하면 모든것이 끝날것이다...그리고 우연히 만나게된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또다른 아서...그는 게이이다..처음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지성을 겸비한 그에게 친구로서의 감정을 가지는 나!!~ 마이클 셰이본!!!~~~이사람 정말 글 하나는 잘 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인가?..하지만 문화적 가치관과 감성의 공간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그리고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또한 문장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섬세한 묘사와 재치있는 필력에 책을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다...물론 가장 중요한 젊은시절의 성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들지않게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고 사랑에 대한 의미를 편안하게 되묻고 있다....스물다섯살에 첫 데뷔작이다...그때의 작가의 느낌이 있는 그대로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것 같다...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걸작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찾게 되었다고.. 사실 난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적이 없다..물론 이 책 때문이라도 읽어야할 멋진 소설임에 분명할 것이다.. 수많은 청춘을 다룬 성장소설이 존재해왔다.. 늘 사랑을 다뤘고 아픔을 다뤘고 눈물을 다뤘다..영화던 소설이던 누구에게나 흔하게 접해본 분야임에 분명하다..그들의 인생속에 들어가보는 짜릿한 관찰자의 느낌...그리고 공감....행복했다... 돌아가고 싶은 그때.. 나만의 아픔과 행복이 존재하던 시대...이제는 더이상 오지 못할 젊음.. 뒤돌아보지 않은체 질주하며 사랑하고 피터지게 반항하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리워 눈물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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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설하면 떠오르는 책이 몇 권 있다. 어릴 때 읽은 《얄개전》, 《비밀일기》, 《빨강머리 앤》, 《허클베리핀의 모험》 같은 책들과 대학생 때 읽은 하루키나 장정일의 소설이 그렇다. 미국은 젊은 나라여서 그런지 젊음과 청춘에 대한 예찬이 문화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1985년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시작하던 저자 마이클 셰이본은 자신의 자전적 청춘소설을 써 내려간다. 가장 잘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초보작가의 노하우이기 때문에 사변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산업도시 피츠버그를 배경으로 잊지못할 여름을 같이 보낸 친구들과 이제는 빛바랜 잃어버린 우정을 그린다. 책의 원제는 《피츠버그의 미스테리The Mysteries of Pittsburgh》. 당시 22살의 저자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비밀」이 소설의 저변에 흐르는 기본적인 배경이 된다. 누구나 하나씩 자신만의 독특한 비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비밀스러운 사정이 없는 사람은 무척 평범한 천재거나 무척 비범한 바보일 것이다. 주인공 아트 벡스타인(Art Bechstein)의 비밀은 성정체성과 가족사와 연관이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점 보드워크 북스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보내던 평범무쌍한 청춘. 그런데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자신과 같은 이름의 꽃미남 아서 르콩트(Arthur Lecomte)를 만나고 아서를 통해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 보낼 새로운 친구들과 조우하게 된다. 소설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선이 맞물려 있다. 주선은 주인공 자신의 성정체성과 연관된 러브스토리다. 아트는 아서 르콩트와 불문학 전공의 「사악한 사랑의 간호사」 플록스 롬바디(Phlox Lombardi)와의 사이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간다. 그에게 사랑보단 우정이 보다 심오한 문제로 다가온다. 소설 초반부의 동성애 코드와 화려한 파티 분위기 때문에 영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1999》와 비슷한 색조가 연상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의 선은 갱단두목인 주인공 아버지와 아서를 통해 알게 된 「악의 화신」 클리블랜드 어닝(Cleveland Arning), 그리고 그의 까탈스런 연인 제인과 연관있다. 이쪽 분위기는 부드러움과 거침 그리고 들뜸과 안정이 조금씩 뒤섞인 누와르풍이다. 양성애와 동성애 같은 성적 소수자의 삶을 그려낸 이 소설은 퀴어소설인가. 내가 보기엔 다만 성장소설에 그칠 뿐 퀴어의 정치적 의미에까지 나아간 문제작은 아니라고 본다. 아버지와 클리블랜드의 직업이 갱이고 마초적인 성격을 부각시킨 것도 결국 성정체성 문제를 확대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인 셈이고, 성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자기탐구가 약한 편이다. 그렇지만 남자 이성애자가 말하는 「내 안의 레즈」와 여자 이성애자가 말하는「내 안의 게이」와는 다른 차원의 성정체성과 커밍아웃이 솔직대범하게 묘사되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산 작품이지만 국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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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폭풍처럼 거센 장맛비가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초복과 중복이 지나갔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인정사정없이 내리 쬐는 햇볕과, 어릴 적 즐겨먹었던 짜파게티처럼 까맣게 변해가는 피부뿐이다.
바다나 계곡, 수영장에서의 물놀이와 같은 피서계획이 없는 올 여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불쾌지수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방법이 없을까? 이열치열이라고 땀 쭉 빼며 운동을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요즘 일거수일투족이 너무 귀찮다. 요리조리 고민 해봐도 시원한 에어컨과 선풍기 앞에 편안히 누워 손목만 까딱까딱 하면 되는 독서가 해답이다. 독서 피서계획 제 1탄은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이다.
책의 저자는 퓰리처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거머쥐며 젊은 작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마이클 셰이본이다. 저자와 책에 줄줄이 사탕처럼 달린 화려한 수식어는 언제나 그렇듯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뿐만 아니라 표지에는 맑은 강을 침대삼아, 푸른 하늘을 이불 삼아 편안히 뻗어있는 두 쌍의 다리가 그려져 있는데, 여름하면 떠오르는 바다나 계곡처럼 진부한 묘사와는 달리 색다른 시원함이 더위를 쫒아준다. 이쯤 되면 이미 넉 다운,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표지에서 풍기는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과 달리 20대 청춘의 방황과 감성을 담은 내용은 적잖이 분주하고 버라이어티하다. 따라서 흥미진진함이 잔득 배어 있지만 왕왕 아쉬운 점 또한 보인다. 공간적 배경이 미국이라서 일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자아내는 간극 때문에 등장인물과 같은 세대임에도 감정의 교집합이 많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이 4년 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나이가 어연 2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나이에 주인공의 방황은 왠지 철없어 보인다.
“젊은이여, 너에겐 네 생의 본질을 찾을 때까지 끝없이 방황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라는 멋진 말도 있지만 이러한 방황은 20대보다 10대의 청소년에게나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여태껏 청춘 소설을 읽으며 가졌던 느낌과 분명 궤를 달리하고 있음에도 400페이지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리는 점은 정말이지 놀랍다. 다른 문화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점과 같이 괴리감도 느껴지지만 분명 색다른 신선함도 존재한다. 또한 방황이라는 추상명사의 기저에 있는, 동년배라면 국가를 막론하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을 풍부하면서 섬세한 문체로 절묘하게 그려내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잘 짜인 휴머니즘 영화에서나 느끼던 그러한 몰입감을 이 책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이것이 진정한 피서가 아닐까? 탄탄한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의 바다에 몸과 마음을 맡겨 즐기다보면 온도는 얼마나 되는지, 지긋지긋한 습도 때문에 얼마나 찝찝한지 따위의 생각은 싹 가신다. 짧았지만 즐겁게 읽었던 만큼 첫 번째 독서 피서는 성공적이다. 남은 2달간, 무더위를 잊혀주는 수박화채처럼 시원하면서 달콤한 책들을 많이 만나길 바란다.
● 책 속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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