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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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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읽기>,<내 사랑 미술관>,<프리다 칼로> 이 책들은 나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천천히 그림읽기'는 그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내 사랑 미술관'은 일상의 탈출을 꿈꾸던 나에게 적은 비용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였다. '프리다 칼로'...이름도 생소하기만 했던 맥시코 여류화가,이 책은 선물로 받은 것인데,당시만 해도 화가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물론 선물한 이도 그림에 대한 식견을 내가 가지길 바라며 보내 준 것은 아니였다.그녀의 치열한 삶이 나에게 자극이 되여 주길 바랄 뿐이였다.그런데 나는 그녀의 그림에 매혹되였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미술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순례자의 책>을 읽으면서 위의 책들이 생각 난 것은 책 속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인 '살아있는 도서관'때문이였다.
살아있는 도서관... 책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단순히 읽는 것 만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완득이'를 읽으면서는 어릴적 가난을 떠 올렸을 것이다. '내 영혼의 그림여행'을 읽으면서는 마음의 위로를 얻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책 읽기 경향은 살아 있는 도서관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이미 살아 있는 도서관운동이란 것이 있어서 사람을 책처럼 대출해주는 축제가 있다고 하니 퍽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는 것,그것으로 인해 상대방이 용기를 얻을 수도 기분이 좋아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상상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순례자의 책>은 순례의 길을 찾아 나서는 장마다 순례자에게 흥미로움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놀라웠고,책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배경들은 더 많은 책의 역사와 조우하고 싶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순례자'라는 제목 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해 주는 것도 없을 거란 생각까지 들면서.. 이제,책의 적을 찾아서의 모티브가 되였던 <책의 적>을 만나러 길을 떠나야 겠다. 책의 적을 찾으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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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로 소설 위주였고, 책 자체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거기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읽어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였다. 책을 신봉하고 책을 애지중지하는 '애서가' 타입은 아니다. 자연히 책의 역사나 책에 대한 철학 같은 것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스토리에만 관심있는 나에게도 아주 친절하게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소설과 책의 역사가 만났다. 역사와 소설을 결부지어 지은 소설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종류와는 조금 다르다.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고 역사서이면서 역사서가 아니고 철학서이면서 철학서가 아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이다.
이 책에 담긴 10편의 이야기들. 모두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조금 알아듣기 힘들거나 이해가 잘 안되어 앞뒤로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인피에 대한 이야기나 조선시대 패설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도 중간에 뭔가 훌쩍 뛰어넘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매력은 대단하다. 이 책을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읽고 아침에 학교를 갈 때 까지 나는 그 책 내용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학교도 가기 싫었다. 침대에 벌렁 누워 이대로 학교를 안가도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진심으로 바랬다. 그정도로 이 책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 소설이 다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10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콕 집어 이야기의 마지막에 역사와 맛있게 버무림을 한다. 나는 역사책을 진득하니 잘 못읽는 편이지만 이 책의 짧게 실린 역사들은 앞의 이야기를 떠올려가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어려운 말들이 나를 중간중간 멈추게는 했지만. 출판에 대해 다루기도 하고, 책을 빌려주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책의 축제, 책으로서의 인간 등등... 이 책은 끊임없이 우리 역사에 있었던 책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것도 하나같이 흥미로운것들로만.
소설, 역사, 그리고 이 책의 나머지 파트는 철학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내 태도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오래동안 책은 그저 대상일 뿐이었다. 이야기가 적혀있을 뿐인. 책을 소장하고 있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책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고 인간의 책에 대한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내 머리속에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책의 날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시작은 인간이다. 인간이 책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인간이 먼저인가, 그것은 아니다. 시작은 인간이 했으나 계속 엎치락 뒤치락하며 인간과 책은 평행선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책을 만들어 냈으나 책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을 벗어나 있는 존재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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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에 관한 책이다. 각종 서평집이나 비평집을 비롯해 책 관련 인문서는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나 또한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라 이런 종류의 책이 궁금했다. 책에 관한 책이긴 한데 서평집이나 비평집이 아닌 소설집이라는 게 독특했다. 책을 소재로 10개의 단편이 모인 이 책은 왜 이런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배경설명이 이어진다. 그래서 친절하면서도 독특한 책이 만들어졌다.
작가 소개를 읽으면서도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시간강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다녔단다. 그러다가 출판사에서도 일하고 결국 그만둔 뒤, 도서관에서 도서관련 강좌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최종 목표는 '글쓰기'다. 그의 최종 목표에 가장 근접한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소재로 놀랍고 기발하며 때론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참혹하기까지 한 10가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각 단편의 소재는 상상의 도서관, 소설, 분서, 제본과 인피 장정, 책 대여점, 말하는 책의 역사, 장서가와 도서관리법,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와 필경, 책 도둑, 책의 다양한 역사 등이다. 모두 책에 관한 이야기지만 조금은 모습을 달리해 다양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각 소설의 시대 배경도 다양하고 문체도 다르게 구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10개의 단편이 실렸지만 분량 자체는 얇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읽는 데 소요한 시간보다 읽고 그 내용을 소화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책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애서가', '장서가'의 존재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나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이 구겨질까 노심초사하는 애서가도 아니오, 그렇다고 책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는 장서가도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읽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다. 이는 책 외에도 읽을 수 있는거라면 길에 뿌려진 전단지라도 주워서 읽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읽기 중 책을 읽는 게 가장 즐겁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애서가나 장서가는 '읽는다'는 행위보다 '책'자체에만 의미를 둔다. 이는 책이 읽고 기록하는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보여주고 수집하는 행위를 위한 도구로 여긴다는 점에서 불편한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북카페 활동을 하면서 나 또한 책수집이 목적이 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흔히 '책에서 봤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책에 쓰인 기록이 '절대 오류가 아니다'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종종 책에선 오타나 탈자가 발견되고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책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소설집을 읽고 든 생각은 '책에 쓰인 모든 기록을 믿지 말자'이다. 황당한 결론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책을 만들거나 쓰는 걸 업으로 삼지 않는 한 일반인에게 독서는 그냥 선택할 수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거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독서록을 작성하는 일이 폭력으로 느껴진다.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 독서를 하는 것이지 누군가 강제적으로 읽으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작용보다 반작용이 더 크게 일어날 소지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작용, 반작용은 물리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닌 셈이다.
근래에 책, 독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반인이 늘어나고 있다. 아니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풍조가 너무 넓게 퍼져있다. 이렇게 책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책에 스스로를 옭아맨 그물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 굴레에서 벗어나기, <순례자의 책>을 읽고 내가 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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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도서관, 상상의 책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 소설에 빠진 조선 사람들 <상동야화> 분서의 역사 <분서> 제본과 인피 장정,<비블리오마니아의 붉은 도서관> 걸어다니는 책 대여점.가시혼야 <들은 대로> 사람, 말하는 책의 역사 <살아 있는 도서관> 장서가들과 그들의 도서관리법 <꿈>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와 필경 <어느 필경 수도사의 고백> 책도둑, 그 기막힌 역사 <다큐멘터리 책의 적을 찾아서> 책, 그 다양한 역사 <순례자의 책>
<<순례자의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작은 단편집이 총 10편 들어있는데, 모두다 책을 사랑하는 10편 모두 하나같이 매력적인 주제로, 짧지만 급전개되는 내용들과 사실을 토대로 소설로 승화시킨 김이경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깐깐한 독서본능>>의 저자 윤미화 씨의 서평을 읽고 관심이 가게 된 이 책을 구입하고 읽기를 정말 잘 한 것 같다.각기 다른 내용들이고 연관된 내용은 없지만.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책을 좋아했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여 글로 옮겨 놓아 재미와 감동을 준 작가에게 감사함이 절로 나온다.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책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하지만 곳곳에 인문학과, 철학, 역사, 예술, 문학 등이 모두 담겨져 있는 이 책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라 생각된다.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을 읽을 때는 인생을 헛되고 집착하며 살면 안되겠다는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하고, <상동야화>를 읽을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을 내어서 상대방에게 분풀이를 할 수도 있다는 책의 위력의 또 다른 단상을 찾을 수 있었고, <분서>를 읽을 때는 책을 읽지 않고 남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 나라와 백성을 말아먹은 무능한 왕에게 돌을 던지게 하였다.
<비를리오마니아의 붉은 도서관>을 읽으면서는 책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책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의 욕망(사람의 가죽을 벗겨 책 표지를 장식하게 하기까지 하는) 중 그릇된 욕망을 품게 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고-사실, 멋진 서재를 갖는 것은 나의 꿈이자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지만,,,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엽기적인 애서가로 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들은 대로>에서는 걸어다니는 책대여점이 현대에서만 생겨난게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는 점에서는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왜 그랬었을꺼라 생각을 못했을까?도서관에까지 발품을 팔거나 책방에서 책을 구입해야 책을 읽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살아있는 도서관>은 덴마크에서 처음 시행한 '사람 도서관'에서 저자가 모티브를 얻어 쓴 것으로 '책읽어주는 사람'의 개념과는 좀 다르지만 낯설지 않음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과 활성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꿈>이란 제목의 단편집은 이 책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글로써, 중국에서 최대 장서가였던 자가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남겨놓은 '장서각'의 책들을 읽고 싶어 그 집에 단지 책만을 사모하여 혼인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장서각이란 곳에 시대적 배경과 사상에 의해 여자란 이유로 구경조차 못하고 죽은 비운의 여인 실존인물 전수인 이라는 여자의 안타깝고 기구한 운명을 들여다보게 했다. <어느 필경 수도사의 고백>은 중세 수도사로써의 책을 필사하는 일에 수도사의 사적 감정이나 사심이 들어가는 등 변질된 모습에 사죄하는 기도로 <<장미의 이름>>의 수도사들이 생각이 났다. 범죄와 비밀을 안고 있었던 그 수도원의 모습과 영화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인 숀 코네리의 모습도.....
<다큐멘터리 책의 적을 찾아서>는 세계 책의 날을 맞아 토틀리오 시의 축제에 참가한 장서가 및 애서가들이 분서를 시행했던 진시황과 히틀러를 두고 누가 더 나쁜지 재판을 여는 등의 축제를 벌이며 책의 적을 찾아보는 글이다. 히틀러가 분서를 행할 때 그를 선동하여 광란의 분서축제를 벌이며 도운 괴벨스라는 인물에는 아낌없는 저주를 퍼붓고 싶기도 했다.또한, 모든 역사 속에서 행해진 전쟁중에 적국의 도서관의 파괴와 분서는 그들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에 짜증이 화악~!흠흠..
<순례자의 책>이야기는 황제의 명을 받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최고의 책을 찾기 위한 신하의 여정이야기로써 나 역시 신하와 같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지....왜 이리 읽는 행위에 집착을 하는 것인지....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 동굴벽화나 점성술,파피루스 두루마리, 양피지 두루마리,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곳에 인류는 무엇을 그리 남기고 싶어했고... 또 무엇을 읽기를 희망했던 것인지....되짚어보게 한다
총 10편의 이 책을 읽으면서 <<젠틀 매드니스>>나 <<위험한 책>>의 느낌도 살짝 풍기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모두 다 만족할 만한 내용들이고 매력적인 내용들이었는데 특히나 가장 좋았던 것은 '비록 허구이지만 책'이란 매개로 여러 흥미로운 상상을 하였던 것과 과거의 엽기적이며 광적인 애서가들의 삶과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또는 일어났던 해프닝 등을 엿볼 수 있었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선택하자면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작가가 덧붙이는 '소설 속 책이야기'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어떤 뜻으로 이 책을 쓴 것인지 자세한 배경과 지식을 풀이한 덕에 같이 생각해 보게 하고 덤으로 지적 경험까지 할 수 있었던 것 이 아니었나 싶다.글쎄....독서 에세이집이 아니지만 소설같지 않은 수필집? 아니...수필집같은 소설책이 더 맞는걸까?...암튼 김이경 작가와 타임머신을 타고 기분좋은 여행을 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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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을 읽으며 책 자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되짚어 보았다. 책은 나에게 어떤 것이었나? 내게 첫 책이 무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당여하지 할 것이다. 첫 책을 어찌 기억해? 하지만 내겐 좀 다르다. 난 어릴 때 집에 그림책 하나 없었고 그 흔한 한글 책 하나 없었다. 엄마랑 아기랑이라는 잡지 미슷한 책이 아마도 첫책인 듯한데 그 책 속에 여러 가지 직업 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고 부모님이 물으셨고 나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내게 했듯 누구에게 했듯 약속은 약속이어서 나는 아주 오래 도록 화가가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콩쥐 팥쥐와 김유신 같은 책이 집에 왔는데 모두 내 나이에 비해 턱없이 글씨가 많은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몇 달에 한두 권 씩 생기는 책 (모두 어디서 얻은 책 )은 내게 단물과 같아 외워 버릴 지경으로 읽었고 나는 계림에서 나온 책들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책은 내게 무척 소중해서 용돈이 생기면 책을 사서 읽었고 나중에 책이 많아지자 부모님은 안 읽은 건 처분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도서관을 만들 테야 하면서 절대 한권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하다못해 편집증이 생겨 책마다 번호를 매기고 도서관처럼 그 자리에 꽂아둔 적도 있다. 그러다 고등학교 선생님 한분이 말하기를 책은 장식이 아니라고 하셨다. 안 읽고 꽂아두거나 다 읽어서 다시 읽지 않는 책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나는 책을 일고 계속 읽을 책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곤 했는데 당시는 내가 준 것을 나타내고 싶어 그랬는지 내가 감동받은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많은 메시지를 적어 주곤 했다. 나 역시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읽은 데까지 접어 두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책을 내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를 다닐 때 같은 과 남학생이 책을 읽으면서 짜증을 내었다. 그 이유는 아버님이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그 책에 밑줄을 그어 주고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주고 글을 써서 주었는데 책 내용이 당췌 머리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 말은 책을 선물로 주면 자신의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그저 그 자체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그 뒤 웬간해서 책에 줄을 긋거나 낙서를 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더더욱 그런 책을 선물하지 않게 되었다. 내 생각을 강요한다고 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많은 갖고 픈 책이 읽고 픈 책으로 바뀌었다. 책은 갖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고 책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에. 순례자의 책은 매 짧은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책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모두 기발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인데 그에 따라 붙는 책에 대한 설명 역시 무척 놀랍고 신기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붉은 도서관이었고, 죽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순례자의 책을 읽으며 책을 좋아하는 이로써 책을 가지고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참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늘 내 책장을 둘러 본다. 아직 안 읽은 책은 없는지 또는 읽다만 책은 없는지 읽기 싫은 책은 없는지 아끼는 책 다시 읽고 픈 책은 어떤 책들인지 그리고 안 보고 꽂아둘게 뻔한 책 몇권을 포장하였다. 더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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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는 어렵다. 특히 '책'이라는 소재로 써야한다면 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순례자의 책'은 참 대단하다. 저자가 들려주는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역시 글은 다양한 경험과 끝없는 배움의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책에 수록된 10개의 이야기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만큼 독특하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은 일본 영화 '천국의 책방'을 떠올리게 한다. 이승에서 못 채운 100년을 보내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고나 할까? 내가 만약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죽어서 저승으로 간다면 과연 자서전을 잘 쓸 수 있을까? 올 곧게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책의 적을 찾아서'가 아닐까싶다. 제목에서 말하듯 '다큐멘터리'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책의 적은 책'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열띤 토론은 책을 읽는 나 자신을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책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책 속의 이야기들과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 그리고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반질거리는 종이의 느낌은 책을 만든 이의 정성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꽤 괜찮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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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이 뭐랄까, 파란만장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알고 보니 어린이 책도 썼단다. 즉 이 작가의 어린이 책을 보았던 적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곳(영역)에서 책을 만나게 되다니. 여하튼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책을 참 많이 읽었구나라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잡다한 지식도 상당히 많은가보다였다. 그런데 작가 소개를 보니 내 짐작이 맞았음이 드러났다. 도서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되겠지.
처음 읽으면서 잠시 헷갈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장르이며, 목적이 무엇일까하고 말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모두 다른데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실제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니까 앞에 나오는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고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정보인 셈이다. 처음에는 모두 진실인 줄 알았다. 사실 그 때는 작가의 말이나 소개를 안 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렇듯 있을 법한 이야기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누군가는 분명 그런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인피 장정에 관한 것이더라도.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책'이라고나 할까. 책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분서, 제본, 필사, 도서관 심지어 책 도둑까지. 각각의 이야기가 형식이 모두 달라 그것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정보를 얻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서관에 잘못 꽂혀 있는 책은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대형 도서관이 책에 위협이 된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재해가 나면 대규모 손실을 초래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 건물에 나누어 보관할 수도 없으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집에 책이 점점 많아지면서 고민도 늘어난다.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때로는 온 책장을 뒤져야하기도 하고 어떻게 꽂아야 효율적일까 고민도 된다. 물론 공간을 점점 점령하는 건 차치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고민은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혹은 더 급한 책이 있어서 못 읽는 책을 쳐다보는 것은 차라리 스트레스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라는 점이었다. 현재형을 쓰지 않고 과거형을 쓴 이유는 이 작가가 서문에서 이이야기했듯이 폐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아주 조금은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이 좋은 걸 어쩌랴만은, 어쨌든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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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솔직히 휘리릭~ 읽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책에 대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과 새로운 생각까지 얻게 되어, 언제부터인가 책과 함께 하는 생활에 슬슬 단조로움에 빠져들던 내게 독특한 재미를 던져준다.
서두의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처음엔 아주 짧은, 동화 같은 상상이 3년 동안 가지를 치고 꼬리를 물어' 바로 이 책 '순례자의 책'이 되었다고 하는데, 작가의 상상이 수천 년 동안 인간과 함께 한 '책'의 역사를 들려주는 듯 새롭고 생생하게 다가와 놀랍기만 하다.
약간의 긴장과 무서움이 살짝 들기도 하는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에서는 인간 사후 누구나 자신의 살아 생전의 삶이 담긴 자서전을 제대로 써야 니르바나로 갈 수 있다는 내용에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상동야화'에서는 <기연>이란 책을 둘러싼 사건에 침이 꼴깍 넘어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비블리오마니아의 붉은 도서관'에서 들려주는 인피 장정에 대한 것이었다. 여태껏 우리는 순진하게도 책의 역사에서 책의 재료가 된 것은 거북의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 파피루스와 같은 식물이나 양이나 소의 가죽 등등을 거쳐 오늘날의 종이에 이르렀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름아닌 사람의 가죽이 성서와 교황의 교지로 만들어지기까지 하였다니... 정말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무엇때문에?? 게다가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도 인피 표지책이 있다고 하니...허거덩!
그밖에도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일본에서 성행했던 책 대여상 가시혼야의 이야기며 사람을 한 권의 책으로 보는 살아있는 도서관 등등의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소설 속 책이야기>코너의 역사적인 기록과 증거를 통해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아마도 작가는 처음의 막연하고 순수했던 한 조각의 상상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탄탄한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 현재의 모습으로 재구성하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매일같이 책 속에 담긴 활자가 전해주는 내용을 읽으며 적지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책' 자체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해보지 않았던 탓일까.......
책 속의 내용이 아닌 온전히 '책'에 대한 이야기에 예상치 못했던 재미를 실컷 느껴보게 되는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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