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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서문의 글은 책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었다. 확실히 어느 누구의 글도 김 교수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교수에 대한 설명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다. 현명한 독자는 행간을 읽지만 얼치기 독자는 곁다리를 만진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법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 나는 김명호 교수의 말과 행동에 마음을 뺐겼다. 그는 현실과 허구를 통틀어 근래에 본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거대 권력의 폭력과 회유, 기만 앞에서 절대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영웅은 또한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막말을 뱉는 악당이었고, 독학으로 법을 공부해서 판,검사의 오류를 꾸짖는 천재성은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데에도 탁월히 발휘되었다. 괴팍한 천재. 고독한 투사. 인문․사회 부문에서 만난 소설․희곡적인주인공에게 빠져 책장은 휙휙 넘어갔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상서롭지 않았다. 2007년 1월 15일. 판결에 불만을 가진 수학 교수가 석궁으로 판사를 습격하다. 평생 서로 만날일이 없을 것 같던 단어들이 한 줄에 다 모여있다. 언론은 재빨리 ‘테러’라고 이름지으며 김교수의 행위에 집중했다. 반면에 독자들은 사건의 이유를 헤아렸다. 이런 식이었다. “나도 쏘고 싶었다.” 김교수의 분노는 개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김 교수가 석궁을 든 이유를 알기 위해 책은 김교수의 지난 행적과 법원과의 악연을 더듬어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수의 법관들이다. 아, 이 자리를 빌어 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들이 없었다면 책의 재미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엄한 법복과 진지한 표정 속에 그런 재능이 꿈틀대고 있을 줄이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검사와 판사들은 장담컨대 그 어느 대답에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말하고 증거를 날조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피고를 위협하고 서로의 죄를 덮어주는 그들은 치졸함에 있어 기존의 어떤 악역보다도 앞선다. 나무등걸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상한 나라-고고한 석조 건물과 엄숙한 목재 가구로 만들어진-를 만나는 심정은 당황함과 황당함과 우스움이 혼합된 감정이었다. 이 법관 같지 않은 법관들과 교수 같지 않은 교수가 벌이는 대결 덕분에 나는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즐거운 책이었다. 처음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 사람이 누군가하며 저자를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아, 이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이지. 갑자기 입맛이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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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법원은 가급적이면 멀리해야 할 곳으로 여겨진다. 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급적이면 법원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깐 돌려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법이란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처럼 선량한(?) 보통 사람들에게 법원은 든든한 곳이어야 맞는게 아닐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에 호소하고 법은 나를 지켜줄거라는 확신이 내게는 왜 없는걸까.
한 때 '석궁 테러'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테러'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의 주장처럼 '석궁 시위'로 부르는 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으니 '석궁 사건'이라 통칭해야겠다. 석궁 사건은 판결에 불만을 가진 대학교수가 석궁을 들고 담당 판사의 집앞에 찾아가 다툼을 벌인 사건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을 접하고는 그저 '얼마나 억울했으면 판사를 찾아가 그런 일을 벌였을까'하고 가볍게만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그 일 말고도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내게 '석궁 사건'은 그냥 그렇게 잊혀졌다.
<부러진 화살>을 마주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진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함이 컸다. 어쩌면 한 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뒷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무기력하게도 만들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였다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이토록 졸렬할 수 있음이 나를 분노케 했고, 법을 집행 한다는 사람들의 위법행위들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선하게만 산다고 해서 법이 꼭 내 편이 되주진 않음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조교수였던 김명호 교수는 1995년 대학별 입학 고사 수학 문제 채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출제된 문제의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측에서는 조용히 덮고 넘어가길 바랬고 잘못된 문제에 대해 모범답안을 만들고 부분 점수 채점 방식을 택하고 김 교수를 채점 위원에서 빼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그 후로 김 교수는 당연시 됐던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조교수 재임용에서도 탈락되고 만다.
곧바로 김 교수는 법원에 재임용 탈락이 잘못되었고 부교수로 승진 임용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해외로 나가 10년의 세월을 힘겹게 보내고 귀국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또 다시 받아들여 지지 않고 판사가 법전에 적힌 그대로 판결하지 않았다며 석궁 사건을 벌이게 된다. 김 교수는 몸싸움을 벌이다가 담당 판사가 상처를 입은거라 주장하고 판사는 김 교수가 자신을 겨냥해 석궁을 발사 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법정에서 있었던 변론들을 제법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읽고 있자니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검사들은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는 이미 김 교수의 유죄를 확정하고 판결에 임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김 교수가 석궁을 들고 담당 판사를 찾아간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어야 겠지만 그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음에도 살인미수의 혐의를 두는 것은 너무 한 처사 아닌가. 김 교수에게 살인 할 의도가 있었음을 증명할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김 교수측이 신청하는 증인은(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증인들이다) 받아들여 주지 않고, 중요한 증거품인 사라져 버린 부러진 화살에 대한 부분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피해자의 옷 등에 묻은 혈액이 누구의 것인지 검사해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너무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입에서 맴돌았다. 더구나 판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던 김 교수는 4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지금 내가 쓴 서평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시종일관 감정은 배제하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김 교수 이외에도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법 피해자들을 만난 인터뷰도 실려 있고 '석궁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났지만 저자의 또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물론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법부에 불신을 보일 때에는 불신하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 중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삼성에 죄가 없음을 인정하고 삼성의 손을 들어 줬다.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옳은 판결이라 생각했을까. 곰곰히 생각 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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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사건'을 기억하는가? 한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는 '테러'. 그 동안 언론에서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가십 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는 근본적이고도 회의적인 질문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를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그 말은 그 사람의 심성이 착하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런 온유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은 무섭고 두려운 실체다. 그들에게 법과의 대면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신세를 자칫 망치게 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앞서 조미영 씨가 말했듯이 자신의 억울함을 법에 호소해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거나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게 한국의 법 현실이다.
이 책은 르포처럼 현장감 있는 장면과 목소리를 전달한다. 김 교수를 둘러싼 공판과정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간다. 글을 읽을 수록 저자의 표현대로 김교수가 '팍팍'하고 '불편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설령 누군가가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많고, 타인의 선처나 바라는 비굴한 사람일지라도, 체제로부터 부당하게 핍박받는다면 그를 옹호하는 것이 좀 더 인간적이고, 그럴 때 용기를 내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빡빡한 삶인가. 그러나 난 그걸 나쁘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해서 그를 대면하는 게 괴롭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가 주는 피곤함은 상식과 기본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문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석궁을 들고 법관에게 항의를 하러 간 김 교수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진 않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그에게 그런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가 요구하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기각할 정당성도 없다. 그것도 판결에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증거의 확인(피해자 증인 대질, 혈흔분석, 석궁의 확인, 부러진 화살의 추적)이 왜 무시되는가? 아마도 '감히'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법의 수호자들'은 '감히' 국민의 기본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건가?
그러나 법이 있다고 해서, 혹은 법이 누구나 따라야 할 의무나 규범으로 부과되었다고 해서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엄정한 독재 정권 시절에도 법은 있었고, 당시의 현실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쓰여 있는 헌법도 있었다. 1971년 전태일이 분신할 때에도 그는 무슨 '계급혁명을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이승만 정권도,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정권도 다 법치를 외쳤다. 법의 지배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보통의 시민보다 영향력이 큰 사회적 강자 집단들과 국가의 권력 집단이 법의 지배에 따르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보통의 시민들이 법의 지배에 따르는 것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가족들과 오락삼아 화투를 치기도 한다. 그 때 종종 나오는 농담조의 대사 중에 '법대로 하쇼'라는 말이 있다. 피박, 광박을 모두 면한 다음에 하는 대사인데, 이번 판을 지더라도 크게 잃을 게 없다는 나름의 배짱(?)인 셈이다. 시시껄렁한 농담이기는 하지만, 나는 왠지 다른 생각이 든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왠지 떳떳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아쉬울 것이 없는' 혹은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 같다는 점이다. '법치'를 강조하는 현 정부와 경찰이 그러하지는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지 않냐고? 글쎄, 그렇다면 '법대로 하라'고 똑같은 대사를 외치는 김 교수는 왜 무시되어야 하는가.
'김 교수의 생각대로만 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김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그 지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순식간에 책을 다 읽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 편의 재미있는 블랙코미디 추리극을 만나게 될터이니.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고는 블랙코미디 추리극이 아니라 비극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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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가 상영되었다. 남부군, 하얀전쟁 등 문제작들을 만든 정지영감독이 안성기를 주연으로 해서 만든 영화, 제목은 '부러진 화살' 원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07년 1월 15일 전대미문의 판사 석궁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다.
이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르포작가 서형에 의해 이미 이 사건의 실체가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사회면에 톱을 장식하며,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엽기적인 사건으로만 기억되었는데, 사건의 진실은 의외로 처절하고, 고독하며, 분노에 차게 한다. 고지식하고 철저하게 원칙주의자인 한 수학교수의 타협을 모르는 성정과 우리나라 법원의 권위적이고 고루한 습성이 부딪치면서 전대미문의 법정 촌극을 빚어낸다.
사법부는 강하고 피고인은 약하므로 피고인이 사법부에 용서를 빌고 선처를 구하는 것이 보통이고, 사법부는 어른의 태도로서 준업하게 피고인을 꾸짖으면서도 피고인의 반성을 이유로 관용을 배푸는 시늉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법정 풍경이다. 그런데, 이명호교수는 그 성정 그대로 철저히 법전을 읽고 준비를 하여 사법부를 조롱하고 욕보인다. 법정에서 이명호교수가 내뱉는 충격적인 발언과 행동들은 우리 법정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고, 어떤 재판부 판사는 그 말의 직격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법복을 벗는다.
저자는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모두 인터뷰하고, 재판을 직접 참관하면서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의 실체를 담담하게 밝혀 나갔다. 이명호교수가 크게는 사법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이명호교수의 입장만을 두둔하지 않았다. 이명호교수는 일반인이 보기에 유별나게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고, 바늘 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로 설명된다.
석궁테러의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나,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으로 테러를 하려고 한 시도 자체로서 이명호 교수의 태도는 용납될 여지가 약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없이 법원에 대한 위협을 과장하여 4년의 실형을 확정한 법원은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법원의 권위는 어디로 부터 나오는가? 누구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판결이란 이상적인 목표일지는 몰라도 판사는 적어도 약자의 이야기를 성실히 들어주고, 끝까지 진실의 실체를 추구하고자 하는 구도자적이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많은 판사들이 정의와 공평의 관념에 따라 재판을 하겠지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벽이 결코 낮지 않는 현실에서 법원은 좀 더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명호 교수라는 인물을 바람직하게 생각할 수 없다. 정의를 위한 법정 투쟁이라고는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한 고집쟁이의 시간낭비로 보일 뿐이다. 그로 인해 혁명적으로 법정의 정의가 세워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판사를 해칠 목적으로 석궁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다는 변론은 전체적인 사실관계로 볼 때,형량을 줄이기 위한 변명으로 보인다.
안성기의 법정 연기가 압권일 것같은 영화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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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판사들은 법의 공정한 집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재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저자는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런 질문들을 따라 읽으면 궁금한 답변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답답하기만 하고 명쾌한 판단이나 설명 같은 건 없다. 책의 앞부분애소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말은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상은 아니었다. 1991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조교수로 임명된 김명호 교수는 교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별 입학고사 수학 문제 채점 위원으로 들어갔다가 본고사 7번 문제의 오류를 발견했다. 학생 모두를 0점 처리, 또는 15점을 다 주는 방식을 건의하였다가 미움을 사 채점위원에서 쫓겨났다. 그 후 부교수 승진도 좌절되고 조교수 재임명도 탈락되었다. 10여년간 외국 학교를 떠돌다가 2005년 귀국 후 10년 전의 일을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시험 문제 오류 보다는 김명호 교수 개인의 인간적 자질을 문제 삼았다. 다른 동료 교수의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에게 숨을 쉴 여유를 주지 않고, 조금만 잘못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은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나 재판을 맡은 판사를 비방하며 일인 시위를 하였다. 다른 해직 교수들이 복직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김명호 교수는 대법원 법률 해석이 불법이라고 사법부와 정면으로 맞선다. 2007년 개인의 자질을 운운하며 김명호 교수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던 박홍우 판사의 집으로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한다. 제대로 발사되지도 않은 김명호 교수의 석궁은 대한민국 재판부를 향한 정면 도전으로, 철저히 계획된 살인미수 혐의가 되어 4년의 형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사건의 전말과 달리 내용은 좀 실망스럽다. 다양한 견해를 실었으면 좋았을텐데, 사건의 전말만 적어놓고 더 이상 쓸거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것처럼 책의 3분의 2는 안 읽어도 별 지장이 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부분은 판결 기록을 복사해 놓았다. 독자가 일일이 그런 판결 기록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의문이다. 김명호 교수가 사법부를 향해 쏜 화살이 부러졌다면 저자의 펜도 객관적인고 정확한 취재에서 벗어난 것 같다. 어쩡쩡한 마무리로 개운하지 않다. 좀 더 철저한 취재와 재판 과정, 객관적인 여러 방면의 인터뷰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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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계에 이만큼 사연이 있을 듯한 사건도 흔치 않아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정확히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게운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대에 부족하다. 그것이 저자의 말처럼 우리 평범한 보통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한 절제된 여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충분히 참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통의 부재를 더욱 왜곡하고 악화시키는 것이어서 안타깝고 아쉽다.
김명호 교수가 불만을 가지고 공격한다는 '법대로 하지 않는 판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저자가 주안점을 두고자 했다는 판검사 양반들의 실제 모습과 그들이 주관하는 법정의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풍경이 무엇인지 알 듯하면서도 정확한 실체가 잡히지는 않는다.
형사재판에 대하여 경험이 있고 형사소송법을 배워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속기록을 옮겨 놓은 부분이 보이는 것만큼 통쾌하고 속시원한, 신뢰받지 못하는 사법부에 대한 통렬한 공격이라기 보다는 그 본 모습이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돈키호테나 말이 안되는 문장을 의미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심지어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형사재판의 실무가 암호처럼 그들만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된다. 권위적인 재판과 공정치 못한 절차적 보장에 대하여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너무나 타당하다. 그러나 어떠한 숨겨진 의도와 불순한 목적으로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 의미있는 비판으로 지지를 얻으려면 감에 근거한 성급한 결론내기에 앞서 좀 더 치밀한 논리와 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김명호 교수를 또 다른 아집과 권위 그리고 독선으로 똘똘뭉쳐 자기를 파멸시킨 편집증환자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값을 물을 수 없는 권위적 사법의 순수한 희생자로 미화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중간에서 예리한 칼날을 가지고 관절과 힘줄을 발라내어 금을 긋듯 정확한 위치를 설정해 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좀 더 철저한 취재와 연구, 다양한 관점과 법리에서 생각해 보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듯 싶다.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무의미한 구호와 별반 다르지 않고, 불쌍한 쪽을 정하여 심정적으로 그 편을 드는 소박한 정의감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을 넘어 서서 우리 마음 속에 울려퍼지는 감동을 주고 인생에 여운을 선사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법은 필연적으로 공정할 수 없는 자본가들의 계급지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선언이 더 솔직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통의 부재가 절망스러웠고, 결코 만날 수 없고, 만날 것 같지도 않은 평행선과 정직하려고 했던 수학교수가 좋은게 좋다는 식의 한국사회의 이해할 수 없는 셈법에 걸려 희생하고 좌절하는 한국적 비극이 오버랩되면서 한동안 우울한 감정에 힘들었다.
조갑제가 오늘처럼 이상하게 변하기 전, '사형수 오휘웅의 이야기'에서 보여주었던 철저한 직업의식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면 불순하고 정말 웃기는 일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정말 나를 슬프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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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불만은 품은 대학교수가 담당 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한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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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블로그에 느낌을 남겨둘땐 책의 경우 내가 다시 찾아보고 싶은 부분을 아무때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의 경우엔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받은 영화를 보는 경우를 제외하면) 느낌을 남겨놓기 위해 다시 작품을 보는 일은 거의 없는터라 왠만하면 그날그날 그 느낌을 남겨둔다. 머리에 생각을 정리한 시간을 주면 줄수록, 그 순간의 느낌보다는 머리에서 재구성된 느낌이 남게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작년 말, 한편의 영화를 만났다. 작품이 참 좋았다. 개봉하면 꼭 보라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배우들의 호연과 실제 벌어진 일을 담아내는 연출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거운 소재를 관객들에게 진지하게 전달하면서 침울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유쾌하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리뷰는.. 보름정도 지나 1월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서야 겨우 올릴 수 있었다. 정지영 감독, 안성기 주연의 영화 '부러진 화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리뷰를 올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사회적인 문제나 가치를 따져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편향된 가치관을 혐오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서 그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작품에서 비판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함께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이 일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들을 찾아봤다. 오늘 만난 이 책이 그중의 하나였다.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인터뷰를 하는 일을 하는 서형이란 분이 만난 김명호 교수와 일명 '석궁테러'라 불리는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등을 상세히 담은 논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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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서형의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대학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한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일반적으로 이 사건은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가 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부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와 잘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흉기를 사용하여 테러를 감행했다"며 흥분하거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법원 앞에서 일인 시위를 매일 해왔던 사람이고 재판 중인 판사를 전부 고소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매도했다.
김 교수는 당당했다.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판사들처럼 무서운 범죄자는 없습니다. 그들의 판결문은 다용도용 흉기이며, 본인은 수십만, 수백만의 그 흉기에 당한 피해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본인은.. 법 무시하고 판결하는 판사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언론이 나서서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법치주의? 똥 싸고 자빠졌다" "나도 석궁을 쏘고 싶었습니다" 라는 반응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사법 불신"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가.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체 석궁 사건이란 뭐란 말인가. 김 교수는 지금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있다. 사법부에 대한 그의 도전은 일단 좌절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일까. 사법부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또 다시 부러질지라도 계속 날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짧은 서문 결과적으로 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김 교수의 생각대로만 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을 긴장시킬 만큼 상당한 법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런 김 교수는 재판 과정의 "불법성" 내지 "법대로 하지 않는 판사"의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그것은 사법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김 교수의 방법과 관련해, 좀 더 유연한 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변의 시각이 원고에 포함된 것을 김 교수가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우선 평범한 보통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이고 권위적인 법률의 언어에 의해 압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판사가 몇 조 몇 항의 법조문을 위반했는지를 따져 보고 법에 따라 재판을 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법의 수호자라는 이유로 권위와 존경을 요구하는 이른바 '판검사 양반'들의 실제 모습과 그들이 주관하는 법정의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풍경이었다. 결국 이 책은 어떤 대단한 사람의 존경스런 행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살면서 주변에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판사와의 한판 승부라고 할 수 있다.
짧은 결론 김명호 교수는 석궁 사건을 '석궁 테러'라고 보는 것에 반대하면서 꼭 '석궁 시위'라고 말한다. "석궁 시위는 국민 저항권 차원이 정당방위이자 법을 묵살한 판사들에 대한 시위"이기 때문이란다. 김명호 교수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피곤한 사람이라는 거다. 김명호 교수는 물러섬이 없다. 적당함도 없다. 옳으면 옳고 아니면 아니다. 얼마나 빡빡한 삶인가. 그러나 난 그걸 나쁘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해서 그를 대면하는 게 괴롭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가 주는 피곤함은 상식과 기본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문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건 사소하고 귀여운 불편일 뿐이다.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는 김 교수를 그냥 봐주면 되는 것일 뿐, 더 이상 그걸 핑계로 석궁 사건 재판과 같은 야만과 비이성의 추악한 일에 눈감아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그들이 오늘도 우리를 판결한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차가운 감방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 만큼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결코 외면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말 것. 지금 우리가 그래야 할 것이다. .........................................................................................................................................
딱 나만큼의 관심 정도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2007년 1월 15일 이른바 '석궁 사건'으로 알려진게 그 시작일거다. 하지만 김명호 교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5년 1월경 대학별 고사 수학과목 채점 위원으로서 출제 오류를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한 그 시점으로. 그러니까 이 일은 겨우 5년째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17년이란 인생길을 험난하게 만들어버린 일이라는 거다. 어제 블로그에 올렸던 영화 '부러진 화살'의 감상평에 적어놓은 것처럼 당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이 사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는 2011년 1월 4년의 실형을 마치고 출소했다.
위에도 적어놓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은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사회에 사법부 관계자들을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일부러 초대해서 봐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면 아플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정지영 감독인 만큼 영화는 그의 소신이 담겨있는 작품이기에, 영화가 좋았다 괜찮았다 별로였다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현실의 사건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쪽의 입장에만 귀를 기울인다는건 어쩌면 가장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이 책은 내 기대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다. 저자는 서문에 이 책에 대한 김교수와 자신의 생각차이를 분명하게 밝혀놓고 있다.
김 교수는 법만 지키면 누구에게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입법부에 개정 청원을 하면 된다고 확신한다. 이 점에서 김 교수는 재판이 법에 따른 것인지를 당당하게 따지지 않고 판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법 피해자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법의 원칙이 지배하는 그런 세상에 익숙하지가 않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적 원칙이 우선하는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법치는 그 하위 원칙 내지 수단적 가치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 점에서 나는 법 조문을 이용하면서도, 때로는 선처도 구하고 필요하면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판사들을 압박함으로써 원하는 판결을 얻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이 법을 다루는 방법도 긍정할 만하다고 보았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울 뿐이다.
보통의,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김명호 교수를 보면, 그는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은 법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아니, 대응하지 않는다는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안에 경험을 축적하게 마련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다르게 내릴수 있는 주관적인 판단은 결코 100% 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독특한 건 그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100% 확신한다. 스스로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여기서 잘잘못을 가리자는 건 아니다. 그걸 완벽하게 가릴 수 있는 사람도 없을거다. 만약 있다면 그에게 이 사회의 모든 사건의 판결을 맡기는게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일일테니까. 그저 개인적인 내 생각은 이 책의 6장 '석궁 사건을 보는 시선들'에 적혀있던 의견들 중에서 2008년 3월 25일 방영된 MBC PD수첩 "누가 판사를 쏘았나 : 석궁 테러 미스터리" 담당피디 김보슬 님, 2007년 2월 20일에 "석궁 테러 관련 : 이용훈 대법원장의 거취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며"라는 글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차례 법원 내부통신망에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서울중앙지법에 재직하던 정영진 판사의 입장을 섞어둔 지점에 존재한다.[책 안의 내용은 따로 담아둡니다.]
물론 법과 원칙에 대해서만큼은 김명호 교수의 입장에는 완벽하게 공감한다. 영화에서 배우 안성기 씨의 연기와 목소리를 통해 만났던 대사들과 이 책안에 담겨있던 재판기록에 적혀있던 그의 확신은 나 역시도 법과 원칙을 생각할 때 가져야겠다고 노력하는 자세이다. 법치국가를 원합니다. 즉 다시 말해서 법만 지키면 윗사람들 눈치 안 봐도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단순합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겁니다. 법? 얼마나 단순합니까? 초등 내지 중등 수준의 국어 독해력, 천자문 정도의 한자 실력, 논리력 세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법전을 읽고 이해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나요?
다만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간 점에 있어서는 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명백하게 상대에게 어떤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에게 위협을 가한 행위는 분명 그의 잘못이다. 상해 의도가 있든 없든 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들고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를 인정하는 법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 법은 사라져야 한다. 아무튼, 잘못의 유무를 떠나 이 문제에서 잘못의 크기만큼은 비교할 수 없기에, 그가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쏜 그 심정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단지 법관에 대한 테러로만 이슈화 되었던 사건이지만, 그 재판과정에서 사법부는 석연치않은 재판 진행과 판결로 이 '석궁 사건'을 사법불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서형의 '부러진 화살'은 석궁 사건을 통해서 법을 다룬다는 이유로 최고의 존경을 강요하는 국가의 권력 조직인 사법부를 구성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되지 않고는 공정한 법의 실현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냥..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 교수가 판사한테 석궁 쏜 사건" 딱 이만큼이 전부였던 이 일에 대해, 이젠 꽤나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식의 판단을 내리는 가는 이 작품을 만난 개인의 몫이다. 나에겐 영화 한 편이 가진 힘이란게 이런거구나 새삼 다시 느낀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처럼 법은 수학과 같습니다. 법은 모순이 없어요. 법을 안 지켜서 문제가 되는 거지, 법은 아름다운 겁니다. 라는 그의 신념이 더이상은 이게 재판이오? 개판이지. 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재판. 우리가 원하는게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걸.. 생각해보고 간다.
그리고 꼭 하나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저자의 말이 있었다. 법은 누굴 위해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그 말은 그 사람의 심성이 착하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런 온유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당신이 애초에 화살을 부러뜨려 놓는다면, 어떤 활 시위에 걸고 날린다 하더라도 그 화살이 제대로 된 과녁을 향해 날아갈 가능성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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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람들 가운데 법, 경찰, 법원과 친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법 없이 사는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 법으로 사는 인간들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 걸까. 법은 정말 약자의 편에서 부조리함을 벗겨줄까?
여기 법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 <부러진 화살>이라고, 대한민국 사법주를 향해 석궁을 쏘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아무래도 석궁사건하면 연일 신문방송에서 다뤄온 주제라 대충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피의자가 석궁으로 담당판사를 쐈다'라는 게 뉴스의 요지다. 결국 기나긴 재판으로 그는 4년형으로 선도받고 감옥에 있다.
주인공은 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니, 사실 세부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도대체 왜 석궁을 쏘았나를 명쾌하게 밝혀줄 것 같았다. (최소한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줄거리는 조금 복잡하다.
일단 사건의 개요를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성균관대 입시오류부터 시작된다. 입시체점과정에서 김명호 교수는 문제의 수학적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학교측(다른 교수들)은 묵살한다. 그냥 대충 넘어가자는 것이다.(이 대충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같다-수학자적인 완고함인 듯) 결국 김 교수는 수학학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조용하게 문제를 풀어낼 것을 결국 복잡하게 얽히게 만들어버렸다.
이후 그는 학교(교수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결국 교수임용까지 좌절되면서 성균관대를 상대로 교수지위확인소송까지 벌이지만 패소하고 만다. 이에 항소하지만 또 패소, 결국 이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다 발사한 것이 사건의 전초전이다.
이후부터는 재판과정의 부조리함을 다루고 있다. 애초부터 김명호 교수는 대충(?)이란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듯 보인다. 재판과정에서 대충이란 통하지 않는다. 검사와 판사들조차 말이다.
증거주의 재판에서 증인출석이 왜 이뤄지지 않는지, 증거확인을 위한 담당형사부터 피해 판사출석까지 묵살당하고, 오히려 사건정황을 피의자로부터 친절히(?)청취하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재판이 진행될 수록 김 교수의 당당함에 모든 재판관들이 어리둥절하고 당황한다. 그들 모두 재판과정에서 법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사실 하고싶어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오히려 검사에게 판사에게 법대로 증인출석을 요청하고, 증거물의 채증을 확인하라고 요청한다.
사법부의 전체 불신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위한 판사들의 노력으로 재판은 계속 이어지고......
법원에 관심없던 사람도 이 책으로 꽤 상당한 법률지식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법원이라고는 드라마밖에 못 본 나한테는 정말 이런 재판도 있구나 싶었다.
법원의 권위에 당당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바로 김 교수의 대충(?)할 수 없는 근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중에는 석명권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석명권(형사소송규칙 141조)은 검사의 발언(공격)에 불분명한 곳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신청하는데, 재판장이 검사나 피고인(변호인)에게도 신청할 수 있다. 이 석명권을 통해 재판관을 직무유기로 고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런 당당함이란 때론 통쾌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법부의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그도 대단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일반시민이라면 어떠했을까 싶다.
절충안이라고 하지 않나? 검사와 변호사를 통해 대충 형기를 줄이도록하고 자신의 잘못은 선처해달라고 요청하면 될 터. 대부분 이런식으로 온정주의를 동원하는 모습들이 기존의 법정풍경이 아니던가.
물론, 그의 강직함은 그 주위 모두를 내팽개치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란 조금의 여유조차 주지않고 무시하거나 쓰레기로 취급하는 그의 성품때문이리라. 수학의 결론이 분명함이 습관처럼 굳어진 그의 수학자적인 자세로는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되지 못하리라.
물론, 어느 한편을 두둔하기 위해 이 책이 써여지지 않았다고 저자 역시 강조한다. 그 역시 김 교수로부터 썩 기분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저자는 있는 현상을 살펴보려했고, 수 많은 인터뷰가 그 뒷받침을 대신한다.
최근에 화제가 됐던 김보슬 MBC PD수첩의 인터뷰도 실려있다.
결국,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의 화살을 쏘았던 김 교수는 4년형으로 감옥에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소리치려는 시도는 결국 감옥으로 끝맺었다.
왠지모를 답답함이 남는 결과였고, 이 책의 끝맺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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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로 기억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mbc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다룬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방송은 김명호 교수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판결은 유죄 판결이 났는데, 왜 방송은 김명호 교수를 옹호하는지,대법원 까지 간 이 사건이 방송에서 옹호되는 것은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처음부터 이 재판은 잘못된 것이고,판사들은 눈뜬 장님이란 말인가? 법의 수호자라고 하는 판,검사들의 실제 모습과 그들의 주관이 법정의 희극이면서도 비극적인 이 사건을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저자는 이책을 통해 김명호교수를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2년동안의 긴 시간을 저자는 김명호교수의 사건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은 무섭고 두려운 실체로 인정되지만, 대한민국의 지식인 교수라는 분의 입장으로도 법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김명호 교수는 정의를 부르짖고 싶었다, 하지만 법과현실은 그가 정의를 부르짖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흑을 백이라고 말해야하는 현재의 상황에 반기를 들고 싶진않다. 나도 나의 편안함, 합리화를 위해서 언제든지 흑을 백이라고 말할게 뻔한 이치다. 진실이나 정직함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닐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침묵으로 정직함 이상의 가치를 추구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우리들은 잘 안다. 하지만 현실의 냉혹함,몰인정함에 우리는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권위주의와 지역주의를 싫어한다. 특히 권위주의는 왠지 구역질 나는 기성세대의 표본 같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권위주의 장난이 아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사,판사들의 권위주의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지만. 현 실정에서 사법부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우리나라에선 전혀 없는듯 하다. 그들의 판결은 신의 판권인 신권인 것이다. 물론, 전체 검,판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관행 전 서울 고법 부장판사의 법조 브로커 사건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정말 국민들을 위한 판결을 하는 것인지 의문점이 생긴다. 조 관행 전 판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다른 판사들도 다 그렇게 비리를 저지르는데, 왜 나만 처벌하느냐?는 말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법관이 변호사와 결탁해 판결을 구매하는 이런 쳐 죽일 판사를 더구나, 무죄라고 주장하는 이 파렴치한 판사를 법원은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풀어주었다. 간혹 금품수수등, 비리로 재판을 받는 판,검사들을 보곤한다. 그들에게는 재판부는 항상 솜방망이 선고만 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판사,검사는 양심을 파는 법조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기의 안위를 위해, 조직을 위해 양심을 팔고, 합리화를 주장하는 속물 법조인 나부랭이 말이다. 내가 직접 김명호 교수의 사건 현장에서 그때의 상황을 목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종 정황과 진술등이 김명호 교수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우리는 이제 법의 지배를 요구 하려면 거의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투사가 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 다는 사실을 김교수의 사건을 통해 목도 하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진실은 신만이 안다고 , 하지만 어떤 영화에 나오는 개망나니 형사의 말을 빌리자면, " 공고 야간 꼴찌에서 이등 하던 나도 알고, 옆집 똥개도 알고, 똥고 미친년도 안다" 사법부가 잘못되었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속담이 있다. 정작 국민이 사법부에 할 수 있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란 말인가? "비상식이 상식을 힘으로 누르는 것에 대한 몸부림,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세상에 거듭 말을 거는 것은 괴롭다"고 말하는 작가 서형님의 힘찬 외침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항상 사회적 관심에 앞장서는 좋은 도서를 출판해 주시는 후마니타스 출판사 여러분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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