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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성장소설들을 보면, 그 속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한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닌 어렴풋이 뭔가를 느끼는 것이리라 ㅡ. 그런 보통의 것들(?)과는 다르게 현실을 아는 어린 소녀를, 나는, 『길 위의 소녀』를 통해 만나게 된다.
![]() 학교 수업의 발표 주제를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숙자"라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을 하고 마는 「루 베르티냑」ㅡ. 그녀는 160의 아이큐로 두 번이나 월반을 한 고등학교 1학년의 지적 조숙아이다. 이미 내뱉은 말을 해결(?)하고자 그녀는 파리 시내 기차역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노숙자인 18세의 소녀 「노」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원제가 “노와 나(NO ET MOI)”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두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특한 생각으로, 다양한 실험도 스스로 하는 루. 그런 그녀가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 세상을 향한 순진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노숙자인 노를 데리고 와 함께 지내고, 그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과시하게 되는 두 소녀의 생활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꿈과 희망, 그들이 놓인 참담한(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현실이 펼쳐진다.
나는 평등과 박애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인간이 모두 평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 P113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르는 『길 위의 소녀』속의 세상을 똑똑하면서도 순진한 루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세상과 현실 속의 세상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며, 그녀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많은 생각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혹은 쓸데없거나 이상한 것으로 비춰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이다. 지금 당장 하는 그녀의 그런 이상적인 실천들이 성공이든 아니든, 그녀는 성장한다. 어른으로 ㅡ.
![]() '사물은 존재하는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 어른이 되려면 분명히 그런걸 받아들여야 한다. - P90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다 ㅡ. 세상에 길들여지면 그 때에 가서 "어른"이라는 수식이 붙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ㅡ. 그리고 그런 내가 바라보는 노와 루의 모습들 ㅡ. 키스할 때 혀를 돌리는 방향을 고민하던 루가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림과 동시에 그녀는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루와 비슷한 이상을 꿈꾸던 나를 기억해본다. 그리고 나 스스로 또 다른 멋진 현실을 그려본다. 독특하면서도 유쾌함 가득한 감동을 안고 있는 『길 위의 소녀』, 멋진 만남이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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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복합적 성향을 띄는 인격이 아니어서 소설의 느낌이 좀더 산뜻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평온한 안식처의 혜택을 전혀 선물받지 못한 인생의 주인공 소녀 "노"와 섬세한 이해력과 바람직한 부모의 됨됨이를 골고루 갖춘 뛰어난 가정환경속의 천재소녀 "루 베르티냑"의 신뢰감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상실하지 않고 사는 아직은 희망이 보이는 세상의 결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노숙자. "루 베르티냑"은 "노"에게 다가감을 머뭇거리지 않는다. 노의 어떤모습에서 루는 자신과의 동질성을 감지했던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세상의 아주 불행한 모습의 생존자들에대한 관심과 이해를 유도하기도 하는 마음 훈훈한 소설한 편이다. 루에게는 천재적인 두뇌와 그녀의 진가를 제대로 발견해준 "뤼카"의 사랑도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상한 부모님까지...... 하지만 역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매력은 "노"를 위한 그녀의 아름다운 관심과 용기, 믿음을 지켜낸 멋진 용기라고 생각된다. 이런 아리따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알고 있다면 대단히 행복한 사람일거라는 부러움도 인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복잡하게 계산하다보면 결국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서로가 담겨져 있는 다른세상을 인정해버리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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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Et Moi
나는 노를 길들였다. 노는 나를 떠났다.
루는 월반을 두번이나 한 영재다. 하지만 지적미성숙아이다. 노는 노숙자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는 아니였지만,,,,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그런 노숙자이다. 이런 노와 루는 서로를 길들여져간다.
루는 오스테를리츠 역에 사람을 구경하러 간다. 그곳에서 노를 만난다. 몇푼이 절실한 노를 만난다. 그런 노를 루는,,, 인터뷰 주제로 삼는다. 노는 돈을, 루는 발표 대상을, 서로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발표 후, 노를 한 동안 만나지 못한 루는 노를 찾아 나선다. 노를 다시 찾는다. 루는 노에게 따뜻함이 필요함을 느낀다. 따뜻한 이불과 침대와 노가 머물 다뜻한 집을,,,그렇게 노는 루의 일부분이 되어 간다. 노가 사람의 삶이란걸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루도 노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길들여져 간다. 하지만, '루네 가족모임'이라는 일은 둘이 같을 수 없음을, 동일한 동갑내기 사람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너도 가야 하는거야? 너는 안 가면 안돼?" 오스테를리츠역에서 만날 때의 노라면, 과연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너와 난 다르잖아, 루,,,' 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트렁크를 끌며, 노가 한때,,, 그나마 몇 푼이라도 있어야 했던 때에, 돈을 줘야 머물 수 던 곳에 머문다. 맥도날드를 먹으며, 지린내 나고, 깨끗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는 그곳에서 하루밤을 보낸다. 루가 벽지 문양을 세는 동안 노는 서로의 '다름'을 생각했던 걸까? 우리는 함께인 거지, 루, 너는 나를 믿지, 나를 믿어주는 거지, 우리는 함께인 거지, 루,,, 노는 떠나버렸다.
작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져가는 세상을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하지만 종국엔,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대면할 일이 절대 없을 그 어떤 사람들 조차,,, 뜻모를 기회를 통해 닮아가고 필요로 해가는, 얼핏보면 따뜻한 세상을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아니면, '개는 거두어도 노숙자는 자기 집에 들이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고 싶었던것 같다. 루의 생각대로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도와주고 함께해준다면 아마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거다.' 하지만, 더도 덜도 말고 노숙자는 노,숙,자이기에 사람이 아니라 노숙자이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현실을 벌하고 싶었을 거다. "언제나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나보다 누구랑 더 친하네, 나를 미워하네, 좋아하네 따위로 울고 웃던 학창시절이 참 많이 생각났다. 나도 노처럼 그 누군가에게 길들여졌고 그러길 원했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차이'로 인해 장벽을 두고 멀어졌는지도,,, 소박하게 숨쉬듯 고르게 작가가 적어놓은 이야기들은 성장소설이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예전의 장밋빛 추억을 되새김질 하기엔 참 좋다. 그리고 마음을 콕콕 집어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은 독자를 절절하게 만든다. 아련한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여린 동심으로 돌아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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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두 여자 아이들이 계단위로 뛰어 올라가고 있다. 무엇으로부터의 탈출일까? 잠시 뒤돌아보는 얼굴에 핀 미소가 너도 따라오라며
유혹하는 듯하다. 나도 따라가 볼까?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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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에서 어느덧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성장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왠지 그런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무엇인가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지치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는 시각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것 말이다.
길 위의 소녀 역시 내가 오랜만에 읽은, 그리고 읽은 후 많은 생각을 하며 덮은 책 중 한 권이다. '노'와 '루' 서로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특징도 너무나 틀린 이 두 소녀(?)의 이야기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노는 노숙자이고 루는 어린 천재 소녀, 어찌보면 서로 너무나 다른 이 둘은 서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새롭게 배운다. 노숙자인 노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루, 그녀는 노를 집에 데려와 묵게 하고, 노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려한다.
비록 루는 어린 소녀이지만 그녀의 성숙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들이 평소에는 눈여겨보지도 않고 지나쳐왔던 노숙자 문제를 그녀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누구나, 어느 한 가정이나 노숙자를 도울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인해 많은 노숙자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음을 그녀는 인식한다. 순수한 한 소녀의 머리속에서 그려내는 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번도 제대로 인식해본 적 없는 문제를 이 책을 통해 나는 조금씩이나마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만을 위한 책이 결코 아니다. 어른들이 읽더라도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깊은 문제점에 공감하며, 그리고 자신의 무관심을 부끄러워하며 책을 덮을 것이다. 인생이 살기 너무 힘들다, 경기가 어려워져서 사회적으로 집을 떠나 떠도는 노숙자들이 늘어난다 등 거의 매일을 뉴스에서, 아니면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막상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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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윗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상내역만 봐도 루는 아이큐 160의 지적 조숙아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역을 찾아 노가 루의 아파트 6층에서 황홀한 야경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코끝이 찡해왔다. 루와 같은 반 친구 뤼카를 불러내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려보라고 한후 더없이 풍요로워진 세상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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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을 둔 덕분일까? 요즘 나는 성장 소설을 유독 많이 읽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남편이 말한다. "나 큰거 아니야? 아직도 성장을 하고 싶은거야? 항상 성장 소설을 읽네~" 그 순간 나는 내 딸을 위해서 읽는다는 성장 소설을 통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나의 됨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랑스 4개 문학상을 석권하였다는 <길 위의 소녀>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소녀의 우정뿐만 아니라 두 아이가 속하지 못하는 어른의 세계를 비판하기도 하며, 어른으로서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루’는 참 매력적인 아이다. 독특한 아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천재소녀라 불리는 루는 자신보다 2단계를 월반한 지적 수준이 높은 아이기도 하지만,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이런 루에게 가족은 또다른 외로움이다. 동생 타이스의 죽음으로 가져온 엄마의 우울증은 자신을 남의 딸 대하듯 하는 엄마의 부재가 늘 가슴한켠 아픔으로 존재해있다. 그런 루에게 뤼카는 새로운 돌파구 같은 존재이다. 노숙자를 대상으로 발표를 해야하는 루에게 또다른 상처를 안고 다가온 홈리스 노는 루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친구가 된다. 세상속에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슬픔과 외로움을 겪으며 살아왔던 노는 루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가 된다.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루에게는 노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고, 자신의 집에서 노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애쓴다. 노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엄마의 우울증은 조금씩 치유되는 듯 보였지만, 노는 항상 불안한 듯 보인다. ’루, 우리는 함께인 거지?’ 라는 노의 물음은 그동안의 외로움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다시는 외롭지 않고 싶다는 애절함이 담겨져 있다. 노와 루는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며 지냈고, 뤼카 역시 루에게 힘을 주는 사람으로 늘 뒤에서 존재해주고 있다. 상처가 아물어가고 조금씩 세상밖으로 나가는 노는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또다른 상처를 받으며, 결국 루의 아버지의 결정으로 혼자 살던 뤼카의 집으로 가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 결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두 사람의 우정은 사회의 부조리속에서 빛나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싶다. 타이스의 죽음 이후로 엄마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루는 노와 뤼카를 통해서 사랑을 느끼지만, 엄마의 부재가 늘 그립고 아프다. 자신을 두 팔 벌려 안아주기를 바라는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공허한 눈빛으로 서 있다. 루는 노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것은 노가 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고, 사랑이였고 우정이였다. 그리고 루는 자신이 갇혀있던 우물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며 한걸음 성장하게 된다. 나는 지구 상의 모든 죽은 눈빛들을, 번득임도 없고 광채도 없는 수백만의 눈빛을 생각했다. 방황하는 그 눈빛들은 다름 아닌 세상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복잡함, 소리와 이미지로 포화되어 있으면서도 그렇게나 헐벗은 세상을 반영할 뿐이다. 205p 노는 만나기 전에 나는 폭력이 고함, 구타, 싸움, 피와 함께 자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폭력이 침묵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폭력은 상처를 은폐하는 이 시간, 불가피하게 이어지는 나나들, 결코 시간을 되도릴 수 없다는 이 불가능성이다. 폭력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폭력은 입을 다물고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폭력은 설명을 찾을 수 없는 것, 영원히 불투명하게 남는 바로 그것이다. 258p 폭력은 자신을 공허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눈빛속에서도 자행되며, 자신이 낳을 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노의 엄마에게서도 자행되었으며, 홈리스라는 이유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도 자행되고 있었다. 루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었으나, 노를 통해서 세상에 한걸음 나오게 되었고, 노는 루를 통해서 세상의 부조리 속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두 소녀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결국 서로 다른 환경으로 돌아갔지만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우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루와 노를 통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노숙자, 빈곤, 사회복지 문제, 미혼모 등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대면하게 된다. 두 소녀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속에서 어둡고 고통스럽다. 허나 그 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루와 노 그리고 뤼카가 보여주는 우정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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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어떤 책이기에 많은 상을 받았을 까? 라는 의문으로 이 책을 찾게 되었다. 책 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한 번 손에 쥐면 졸음이 쏟아지기 전까지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두 소녀가 나온다. ‘노와 루’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소녀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특징부터 독자에게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책 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노’ 는 어른 노숙자 이고 ‘루’ 는 천재소녀이다. 이 것만으로도 서로는 너무나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소녀가 우정을 쌓고 사랑을 느끼며 사춘기를 겪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숙자, 그리고 천재소녀의 두 소녀의 삶을 통해 사회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을 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루가 노를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이큐가 높은 축에 속한다는 나는 여기 노와 마주한 채 가슴이 부서질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어떤 답도 줄 수 없다. 나는 여기에, 온몸이 마비되어 있다. 그 애의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련만’ 노를 도와주고 싶은 루의 절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책 문구 중 ‘ 우리의 삶은 멈춰 있건만 그래도 지구는 잘만 돈다’ 라는 말을 한다. 지금 나의 상황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해는 자꾸 바뀌는 데 난 하루하루가 똑 같은 것 같다라는 생각……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뭘 생각하고 살았었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의 기억들로 다시 되돌아갔다. 나도 이 두 소녀처럼 서로 우정을 쌓으며 “함께한다”는 것에 즐거움, 행복을 느끼며 친구들과 뭐든 함께 했었지… 가볍게 읽기 시작하다가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그런 의미 있는 책, 깊이 있는 책이었다. 고등학생부터 성인 까지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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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No!")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이다. 엄마가 열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엄마는 길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때 술집에서 나오는 네 명의 사내들이 엄마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끌고 갔고, 엄마는 곳간에서 강간을 당했다. 그렇게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열여덟 살인 지금, 고정 거주지가 없는 ’길 위의 소녀’이다. 쉽게 말해서 ’노숙자’이다. 원래 이름은 ’놀웬’이지만, 모두들 그냥 ’노’(No)라고 부른다. ’천재 소녀’로 불리며 두 번이나 월반을 한 지적 조숙아 ’루’는 발표 주제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숙자’라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버린 뒤, 발표를 위해 ’노’를 상대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루는 ’노’의 인생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인간은 6백 미터 높이의 마천루를 세우고, 해저호텔을 짓고, 종려나무 무양의 인공섬을 만들 수 있다. 유기적, 비유기적 대기오염물질들을 알아서 흡수하는 ’인공지능’ 건축 자재도 만들어낼 수 있고,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청소기나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저절로 켜지는 조명등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외곽순환도로 길가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199). 그리고 사회에 소리 없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노를 만나기 전에 나는 폭력이 고함, 구타, 싸움, 피와 함께 자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폭력이 침묵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258). 루는 친구 ’노’와 자신의 집을 나눠 쓰고 싶었다. 루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세운다. <도입부 : 나는 길거리와 쉼터를 오가며 사는 열여덟 살짜리 소녀를 만났다. 그 애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큰1번(테제) : 그 애가 힘을 얻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구체적인 논증과 실질적인 제안을 생각해둘 것.) 그 애가 우리 집 ’집무실’에서 지내면서 집안일을 거들면 된다. 큰2번(안티테제 : 스스로 반론을 제기해보고 그 반론들을 논박한다) : 물론 그런 아이들을 위한 특수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해서’ 우리는 그 애를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큰3번(종합) : 프랑스에는 20만 명 이상의 노숙자가 있는데 사회 복지로는 매일 밤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길에서 잠을 청하는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요즘은 날씨도 춥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죽어나간다. 결론 : 시도도 못 해볼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겁내고, 왜 더 싸워보지도 않는가?>(120-121). 월반으로 만난 같은 반 친구들의 육체적 성장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성장기 청소년 ’루’, 돌연사한 아기(루의 동생)를 잃은 충격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루의 엄마, 아버지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따로 살고 있어 혼자서 생활하는 루의 같은 반 친구 ’뤼카’, 그리고 루의 아버지까지, 이들은 모두 루의 부탁으로 아무 상관 없던 ’노’의 인생에 개입하게 된다. 나는 천재 소녀 ’루’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단숨에 읽으며 결말에 도달했다. 그러나 <길 위의 소녀>가 주는 감동적인 결말은 뜨거운 감동이 아니라, 온 가슴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감동이다. <길 위의 소녀>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을 빗겨나지 않는다.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추잡한 방구석조차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사회에서,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복지시설조차도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다녀야 하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서 취직도 할 수 없고, 부당한 착취를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는 노!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노는 끊임없이 "우린 함께인 거지?"라고 묻지만, "노도 우리의 가족이야"라고 외치는 건 루 하나뿐이고, 결국 노의 위태로운 희망은 "그건 네 인생이야"라는 차가운 외면에 갇히고 만다. 노의 인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건 네 인생이야’라고 외면한다면, 내가 환란을 당할 때에도 도와줄 자가 없고, 함께 울어줄 자가 없을 것이다. 항상 문제는 앎과 행동,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것지만, 우선 나부터도 내 삶의 자리 한 켠을 내줄 여유가 없으니 호기롭게 큰소리를 칠 입장이 못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