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마을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사람들이나, 세상을 나름대로 주름잡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이는 가까운 곳에 살지만 죽을 때까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어딜 가나 잘 사는 사람들과 못 사는 사람들은 나뉘게 되어 있고, 세상이 고르지 못하고 우둘투둘한 것을 탓해 보았자 달라지는 게 거의 없다.
그렇다고 못 사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 세상을 뒤엎지도 못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때우는 것도 버거운 판에 세상을 어떻게 바꾸랴.
잘 사는 이들한테 세금을 많이 거두어 못 사는 이들을 돌봐주도록 하는 좋은 정치인을 만나면 좋겠지만, 나라나 벼슬아치들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 그냥 세상을 나무라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이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1951년에 만든 <밀라노의 기적 Miracolo a Milano / Miracle in Milan>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정붙이고 살아갈 길을 마련해주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렸다.
"우리가 바라는 건 잠잘 수 있는 작은 집과 양말과 신발 한 켤레, 빵이지..." 이제 와서 보면 바랄 것도 아닌 걸 바라면서 노래 부르는 이탈리아 밀라노 사람들의 이야기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웃기면서도 가슴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독의 솜씨가 돋보이는 영화다.
2. 토토(프란체스카 골리사노)는 어버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배추밭에 버려진 토토를 주워 키운 롤로타 부인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머물지도 못했을 사람이다.
어버이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롤로타 부인의 사랑은 듬뿍 받았다. 그래서 마음씨가 좋다. 롤로타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 홀로 남았지만, 없이 사는 이들을 깔보지 않는다.
빈 땅에다 판잣집을 짓고 집없는 이들을 불러 살게 한다. 마을이 생긴 셈. 그런데 좋은 일도 사람에 따라 다른가 보다. 없이 살아도 오손도손 살던 곳이었는데, 이 땅에서 기름이 나왔다.
별 볼일이 없던 땅일 때는 "여러분은 나와 같이 다섯 손가락을 가진 사람들이죠. 여기서 살아요" 하던 땅 임자인 모비가 이젠 돈을 벌어다 줄 기름에 눈독을 들인다. 마음이 바뀌었다. 마름을 보내서 사람들에게 알린다. "모두 내 땅에서 나가요...이 땅을 비워요..."
판잣집이라도 쫓아내지 않는 마을이라 마음 놓고 살던 사람들은 이젠 어째야 하나... "우린 죽어도 못 나가..." 펼침막을 걸고 망루를 세워 땅임자와 싸워야 할까?
3. 잘 사는 이와 못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면서도 감독은 생각보다 느긋하다. 뒤로 호박씨를 까지만 모비는 겉으로는 못 사는 사람들을 타박하지 않는다.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대한다. '잘 나고 돈 있는 내가 못난 여러분을 어쩌지는 않는다'는 듯이.
그래서 가진 사람들이 더 무섭고 더럽지만... (말로는 마누라 빼고는 다 바꾸어야 일터가 살아남고 우리나라가 살아갈 수 있다면서도, 뒤로는 재산이 몇 조원이나 되는 회장이 그 돈이 모자라 비자금을 만들어 쓰듯이)
게다가 사람들의 바람은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서 똑같다고 감독은 말한다. 갖고 있으면서 바람을 말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는 비둘기가 토토한테 생기자, 사람들이 바라는 바는 거의 같다. 돈 아니면 값비싼 옷이나 물건들... 보기가 씁쓸한 대목이다. 토토를 사랑하는 에비지와 토토만은 사랑을 바라지만.
즐거운 대목이 많다. 키가 작거나 입이 비뚤어진 사람들을 만날 때의 토토가 하는 짓이나, 비둘기 도움을 받지만 검둥이 사내와 흰둥이 아낙네의 바람이 거꾸로 되어 어쩌지 못할 때나, 한 사람을 뽑아 닭고기를 주려는데 뽑힌 늙은이가 먹을 때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판잣집 마을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경찰들이 토토가 가진 비둘기 때문에 엉뚱하게 되는 모습들은 사뭇 심각하지만 보는 이들을 실실 웃게 만든다.
4. 토토가 만들어 내는 기적은 이 땅에서는 좀처럼 생기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토토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생각이 올바른 정치인을 뽑고, 그들이 어려운 사람들도 살 작은 집이나마 마련해주고 끼니를 굶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 베풀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오래된 흑백 영화라서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는 그저 그렇다. 예고편도 없으니 다른 보너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좋은 영화를 이렇게나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디브이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