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우물』은 최근에 나온 시집이네요. 2003년이면 정말 최근이다.
하늘우물이라는 시의 제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지 모를 이끌림입니다. 하늘우물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 들어보았거든요.
물론 공중정원이라는 것이 공중에 떠 있느냐? 라고 물어보신다면 할 말은 없네요.
“너무 순진하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로 예의를 갖추어서 할 수 있는 말이네요.
“한때 나는 새의 무덤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다”
이 말을 듣고는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고 생각했지요.
새의 무덤은 하늘에
물고기들의 무덤은 바다나 강물에
박쥐의 무덤은 동굴
풀무치의 무덤은 풀숲에
인간이나 호랑이(내년이 白호랑이의 해라고 하던데)같은 육상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무덤은 육지-쉽게 이야기해서 땅-에 있고
식물들의 무덤은 뿌리가 있는 곳에
그렇게 있다는 것이 맞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적 날개 꺾인 새가 땅에서 숨을 거둔 모습들을 보거나 강물이 있는 곳에서 낚시꾼들의 주변을 살펴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새의 무덤은 하늘이 아니고 땅이고
물고기들의 무덤 또한 물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새를 흉내 낸 비행기들의 시체들도 결국 땅으로 떨어져서 대지 위에 무덤을 만들지 않습니까.
새와 비행기의 공통점은 생활은 대개 하늘에서 하지만 죽을 때는 결국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스름 우물에 두레박을 왜 던지는 것일까요. 그 우물에 희망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원래는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갇힌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와 함께 이 하늘 우물에 빠진 것이죠. 그래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이 이 우물을 향해 두레박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고루 나누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시의 화자(한때 나는 이라고 했던 바로 ‘나’)는 희망을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 선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늘 우물〉
〈퓨즈가 탄 별〉에서 퓨즈가 타면 그 별은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퓨즈가 타면 아마 어두컴컴한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겠지요. 그리고 악마가 들끓을거에요. 그렇게 되면 아노미 세상-법규가 무너진 세상-이 도래해서 아마 이 세상은 나쁜 사람이 판을 칠겁니다. 정말 어지러운 세상이지요. 그래서 퓨즈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입니다. 물건일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는 퓨즈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110v 와 220v를 잘 구별해서 꽂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터져서 맨홀 속에 말들의 시체와 같이 섞여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언젠가 영화 속에서 어떤 북한 소녀의 어깨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일이 있었어요. 정말 눈뜨고는 못 볼…
말까지 더듬거릴 뻔 했다.
〈파리 떼〉를 읽으면서 그 영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네. 저는 못 담급니다. 징그럽거든요. 어떻게든 구더기를 삭제시키고 장을 담그면 담갔지 구더기를 어떻게…
생각만 해도 징그럽네요.
시에서는 흰 구더기라고 하는데 이 흰 구더기가 더 징그럽네요. 생각만 해도 토할거 같아요.
이 시는 더 설명을 피해야겠어요. 토할 것 같아서요.
상징적인 시어와 환상적인 묘사들을 정신적으로 소화하기에는 저의 배움의 가방끈이 너무 짧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며 이 책은 나중에 또 읽어야겠어요.
나중에 상상력을 조금 더 충전해서 와야 이 시의 본맛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