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김선태라는 시인을 알지 못한다. 출판사와 시집제목이 나를 끌어당겼을 뿐. 그의 흑백사진을 본다. 눈 덮인 어느 숲 속, 소나무에 기대어 그는 어디론가 떠나는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시선이 애잔하다. 여덟줄로 요약된 그의 이력을 본다. 특별할 것도 없고, 흔히 말하듯 '잘나가는'것도 없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 수많은 '몽돌'중의 한 몽돌같은 이력이다. 이원재 시인은 해설에서 "김선태 시의 엔진은 원(둥근 것)이다"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낮게 가라앉은 짙은 색상의 감정이다. '달빛','햇빛','동백꽃','백련','어린 선인장 꽃','함박눈','은어떼','은빛 감성돔' 등 환한 사물과 빛깔들이 도처에 앉아 있지만 그것들도 왠지 아련하게,어쩌면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온다. 방방 뜨는 환함이 아닌 차분한 빛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의 시는 결코 절망적이거나 냉정하거나 냉소적이지 않다. 따뜻한 기운이 '은근하게' 퍼져옴을 느낄 수 있다.
* 구멍이 뚫린 물주전자처럼 반쯤 울음을 길바닥에 질질 흘리고 온 세월이 문턱에 당도하자마자 직각 으로 걸려 넘어지는 불혹. 한번도 세상의 칼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로 유배를 떠나는데, 그렇게 생의 어디까지를 떠돌고자 마음이 오늘은 또 한 번 눈송이처럼 잘게 부서져 진도 임회 바닷가 산산 엎으러지고 있다. 항시 어깨에 잔뜩 추위를 지고 다니는 가난도, 뻥 냉가슴을 포탄구멍처럼 가지고 가 버린 사랑도 여기 함께 엎드려 겨울 한 철을 보내고 있다.- <마음의 유배="" 중="" 일부=""> * 며칠째 갈치를 낚지 못했다 / 단 한 번만이라도 짜릿한 손맛을 보고 싶은데/ 그래야 낚싯대를 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오기만 발동할 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 (...) 결국 밤새 헛물만 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날도 여전히 갈치는 물지 않았다. / 늘어진 낚시줄처럼 시간이 갔다. / 갯바위에 누워 보는 풍광만 죄 없이 아름다웠다.- <갈치낚시 통신="" 중="" 일부="">
이런 시편들에서는 차라리 눈물이 난다. <탐진나루에서>는 '아프고 환한' 추억의 강둑에서 '노을처럼 진하고 따스하'게 삶을 느끼는 그의 감성, 그의 성찰이 아름다워 나도 그렇게 눈물이 나곤 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름다울 때' ' 나 그냥 눈물 난다'(눈물에 대하여)는 시인... 그는 아마도 낚시와 볼링과 여행이 삶의 취미인듯 하다. 그 행복속에서 '초연한 기다림'도 배울줄 알고 '둥글어서 잘 구르는 힘'도 깨우치며, '강둑에 서서 깊어진 강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는 뱃사공'도 되어 보는 것이다. 김선태 시인은 그가 나고 자란 남도에서 역사적, 사회적인 거대 담론을 논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는 그대로가 <자연산>이다. 아프고 굴곡지게 살아온 추억을 거름삼아 자잘한 일상에 애정으로 시선 던지며 끊임없이 '둥근 것에 대한 성찰'을 해 나가는 시인이 김선태, 바로 그다. 그 성찰이 있어 그의 시는 일상적이면서도 아주 깊다. <나무늘보>라는 동물의 속성은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인기나 평가에 연연해 하지 않고 참 진솔하게 쓰여진 그의 시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홍시같은 시'가 되어 '차고 어둔 마음 구석마다 따스한 불 밝히'는 시가 되기를 기대하고, 믿는다. 나도 그 백련사 동백숲에 들어 오솔길을 걷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이제 사공은 짐을 내려놓고 가벼이 강을 건너가고 싶네 강의 경계를 훌훌 벗어나 고요히 노를 저어가고 싶네 저 쪽 언덕에 집을 짓고 이 쪽을 보면서 날마다 깨끗한 말씀 실어 나르고 싶네 이제 저 강에 비로소 나지막한 노랫소리 흐를 것이네"나무늘보>자연산>탐진나루에서>갈치낚시>마음의> |
|
김선태 님의 두번째 시집을 받아본다. 첫 시집 "간이역"에서 느껴지던 반가움과 그리움이 따스한 훈풍처럼 가슴에 조용히 밀려옴을 느낀다. 그동안 바쁜 일정때문에 시집을 읽고도 얼른 글을 쓰지 못했는데, 오늘만큼은 따사로운 시의 동백숲을 거닐어도 좋을 듯 싶다. 이번 시집은 남도 기행에서 얻은 시편들이 많다. 시인의 고향 강진을 비롯하여 완도, 진도, 도갑사 멀리 지리산 자락에 이르기까지 남녁을 두루 섭렵한 시인의 삶이 배어있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배우는 재미도 자못 크다 할 수 있지만 뭐라고 해도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호젓한 시간이 여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선지 "동백숲에 길을 묻다"에도 자연을 노래하면서 그것이 온전히 대상에 함몰하지 않고 시의 화자에게 성찰로서 반향되어 다가오는 시들이 많다. 정도리 바닷가 몽돌들은 저마다 색깔과 무늬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둥글다. 서로에게 둥글어서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아프지 않는 것들이 함께 모여 한세상을 이룬다. (…) 다시 정도리 바닷가에 굵은 사유의 눈발이 치고 있다. 이제 파도는 무지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몇번이고 타이른다. 오래 절망을 견딘 자만이 둥글고 단단한 희망 하나를 품을 수 있다고, ('둥근 것에 대한 성찰' 부분)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바로 자신에 대한 성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갈고 닦는 수행의 과정이 없다면 결코 참되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문득 도종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으나/어떤 하찮은 것도 쉬이 이루어지진 않으리니/나는 멈추지 않으리라"('겨울 금강') 김선태 시인의 진면목은 바로 이와 같은 '시인 자신에 대한 반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역사나 사회 담론보다 가장 원초적인 것이면서도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들이다. 이문재 시인이 말했듯이 "김선태의 시는 다산초당이나 지리산에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점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백련사 오솔길에 들다'에서도 "오솔길이 만덕산의 품속으로 나를 끌고 갑니다 (…) 생각해보면, 산길은 산의 마음을 따라가는데 나는 무엇을 좇아 어디를 아수라장 헤매었던 걸까요"('백련사 오솔길에 들다')라는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선태 시인의 시가 자연과 개인(시인)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미덕으로 삼고 있지만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의 시가 자칫 어떤 규범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훈적이면서 성찰적인 시들이 시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거나 작위적인 느낌을 줄 때가 종종 있다. 예를들면 '볼링장에서'나 '갈치낚시 통신'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시적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짐을 볼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이 말했듯이 시는 시인이 사는 한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김선태 시인의 시에는 남도에 사는 사람과 그곳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남도의 자연과 개인(시인)에 대한 성찰은 풍부하나 그것이 삶의 현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시와 삶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 현실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예를 들어 '<月>자 마을에 가서'를 읽노라면 "지금도, 달빛 그리워 <월>자 마을에 가면/산과 달과 마을이 하나라고 믿는 사람들이 산다/둥근 황동 거울 하나씩을 품에 안은 채/허리띠도 풀어버리고 그냥 산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오늘날 농촌 현실의 어려움까지 직시할 수 있는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상국 시인의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처럼 김선태 시인의 시에서 오늘날 남도 농촌의 삶에 대한 진경산수화를 기대해보고 싶다. 짧은 지면에 시인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에 글이 지닌 부족함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김선태 시인의 두번째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그의 시가 웅숭깊은 성찰에서 이제 남도 육자배기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삶의 현장, 삶의 오지에 깊이 뿌리내리길를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유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딱따구리 소리가 딱따그르르 숲의 고요를 맑게 깨우는 것은 고요가 소리에게 환하게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월>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