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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은 실화에 긴 시간에 걸친 사람들의 소문과 상상이 합쳐져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매료시켜왔고 아직까지 끊임없이 재해석, 재탄생되어 온 우리나라 고전이다. 실화는 효종 1651년 평안도 철산에서 일어난 두 자매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정동흘이라는 철산 부사의 6대손과 8대손이 각각 선조 할아버지의 활약을 기록한 것에 다시 또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19세기 후반 장화홍련전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꾸준하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여 이야기가 된 장화 홍련전은 아직도 판소리, 창극, 영화, 드라마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장화홍련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장화홍련>의 컨텐츠는 미국 영화 안나와 알렉스라는 영화로도 재탄생되었다고 한다. 장화홍련전은 이야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진부해 보이는 요소, 모든 문화권에서 갖는 구전 이야기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구박하는 계모의 등장, 권선징악적인 구조, 마녀, 귀신, 정령 등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등장, 이런 것들은 세계적으로도 수없이 많이 읽히는 그림 동화에서도, 천일야화에서도 수없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이야기거리들이다. 계모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을 구박했을까.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았고, 그래서 한쪽 부모를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미 아이들과 핏줄로서 결속된 한 집안의 전처의 빈자리에 양육의 수단으로 끼어들게 된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이 겉도는 존재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결국 콩쥐팥쥐의 팥쥐 엄마나 장화홍련전의 허씨처럼 아이들을 대놓고 구박할 수 없는 고립된 존재였을 거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도 계속해서 재생산되어온 계모 = 마녀의 공식은 아마도 당시 출산으로 인한 친모의 사망율이 높았을 경우 친모의 부재에 대한 결핍과 상실감들이 상상력으로 이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이러한 진부하고 뻔하고 따분한 요소들은 이야기가 오늘날처럼 쏟아져 나오지 않았던 시대에는 대다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손가락에 셀만한 선택된 이야기들만이 살아 남아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진다. 그것이 장화홍련전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켜온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장화홍련전은 예쁜 자매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공포적 환타지적인 요소가 있다. 또한 허씨가 아이들을 모함할 때 쥐를 죽여 털을 벗기고 피를 묻혀 낙태의 증거를 만들어낸 방법도 기발하기만 하다. 한편 실화에서는 이미 죽어 고인이 된 아이들에 대해서까지, 소설에서는 해피앤딩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눈여겨볼만 하다. 악마처럼 못된 계모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랬다고는 하나, 엄연히 가부장인 자신의 의사로 아이들을 청부살인한 아버지가 죄를 면하고, 3번째 부인까지 얻어서 쌍둥이로 환생한 장화홍련과 함께 잘먹고 잘살았다의 스토리에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면죄부의 씁쓸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나 장화 홍련전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에 있지 않을까 한다. 죽기 전에는 예쁘고 착했던 순진한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 원혼이 되자, 이번엔 반대로 뜻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한을 풀고자, 나타나면 안될 인간들의 공간에 나타나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고, 부임한 부사들을 차례로 죽게 만드는 그것이다. 비록 전동흘이 사건을 해결했다고는 하나, 소설 속에서는 이들 자매의 원혼이 귀신이 되어 부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히게 되고 말았을 사건이다. 이러한 고전의 원판은 여러 버전이 전해내려온다. 이 책에서 참조한 원본은 연대미상의 필사본과 연활자본을 대본으로 삼고 이 분야 연구자들이 정리한 장화홍련전 교열본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의 장화홍련전 부분은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14세 때 다시 읽는 장화홍련전으로 청소년들의 어휘에 맞게 우리말로 잘 풀어서 쓰여져 있다. 서문에 작품설명을 충분히 하고 들어가고, 군데군데 챕터별로, 실제 사건과 비교하거나 유사한 사건의 사례를 들어 장화홍련전을 읽는 독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도록 신경썼다는 걸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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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 다시 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인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 너무나 잘 알려진 고전이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권선징악으로 고전을 보고 배웠던 것과는 달리 고전이 담고 있는 시대상과 사회규범, 문화적 배경을 통해 고전을 바라보는 이야기는 열네 살인 중학생은 물론이고 어른이 보아도 흥미롭다. 요즘이야 고전을 파헤치고 재해석되어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 좋아하는데 우리의 고전은 이런 면에서는 아직도 살짝 부족한 면이 있다는 느낌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그나마 열네 살에 다시시보는 고전 시리즈는 이런 나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많아 재밌게 읽게 된다. 계모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언니와 언니를 따라 죽은 동생이 유령이 되어 새로 부임하는 원임들에게 나타나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결국 원한을 갚는다는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게 재산을 몰아주기 위해 전처의 딸들을 구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에 항상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긴 인물은 그나마 법의 적용을 받지만 요즘 같으면 공모하고 사주한 장화홍련의 아버지는 훈방조치되어 다시 결혼하여 장화홍련과 같은 예쁜 딸들을 다시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결론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계모가 하는 말에 홀랑 넘어가 자신의 딸의 입에서 진실을 들어 볼 생각도 없이 바로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큰아들에게 배다른 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아버지는 옳은 것인가?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고 아버지를 이어받아 가문을 이끌어 갈 큰아들로서 부모님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큰아들의 어리석음에 한숨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얼마 전에도 새엄마가 전처의 자식에게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범죄를 벌인 사건이 한동안 가장 큰 이슈로 자리 잡았다. 장화홍련전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인 것을 생각하면 섬뜩함이 요즘에 일어나는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배경은 세종 때지만 후손 기록은 효종 때라는 차이점이 있다. 장화홍련전은 지역적인 영향으로 조선의 다른 곳보다 서민들은 더 참혹한 생활을 하던 곳으로 이런 이유로 민심은 늘 흉흉했던 것이 이 책의 분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로망스를 가진 사람들의 바람이 더해져 나쁜 계모란 인물이 필요했다. 실제로는 전처의 자식에게 끔찍하게 정성을 기울이고 잘해주어도 계모란 것에 반감을 가진 자식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나씨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사회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고전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과 무지, 가장인 남성에 의해 가부장제가 가진 사회적 모순, 사회생활상 등이 흥미롭게 담겨져 있어 단순히 고전을 읽고 끝나는 것을 넘어 시대가 모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좀 더 넓은 생각을 이끌어내기에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책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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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소설로 영화로 예술작품으로 수 없이 리메이크되는 고전 <장화홍련>.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유명하고 늘 상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의외로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드물고 그래서 제대로 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고전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북멘토에서 기획한 ‘열네 살에 다시 보는 우리고전’ 시리즈 2번째 작품으로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그러면 1편은 무엇일까? 역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고전인 <심청전> 이 책에는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릎 쓰고’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어렸을 때 그림책으로 보았던 작품들을 14살, 즉 자의식이 형성되는 청소년에 다시 읽는 다는 것과 부제에서 바로 이 책들의 출간의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전은 어렸을 때 보통 그림책으로 접하게 되는 데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보니 원작을 보여주기 보다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각색이 되기에 작품을 읽긴 했지만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는 채 지나오고 마는 것이다. 외국의 동화들도 그래서 원작 그대로를 보여주는 책들이 기획되는 것일 터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소설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전래된 과정을 보여 주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는 바로 [여는 글]에서 조선 효종, 평안도 철산에서 발생한 자매의 사망사건이 있었음을 이를 해결한 이가 ‘정동흘’이란 철산 부사임을, 후에 그의 6대 손과 8대손에 의해 기록되고, 이 철산 사건은 사실과 허구가 영향을 받다가 19세기 후반이 되어 소설《장화홍련전》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됨을 알려준다. 그리고 왜 이 책의 부제가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인지 설명이 되는데 이런 사건이 가능했던 그 시대 강력했던 가부장의 권위와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해준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란 사람이 장씨라는 여인과 결혼해 장화와 홍련이라는 효성 지극한 딸을 낳게 되는데 그만 병으로 일찍 죽게 된다. 그 시대 어느 남자가 그렇듯 당연하게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후처는 아들을 낳고 전실 소생인 장화와 홍련이를 괴롭히다 계략을 꾸며 장화를 죽이고 만다. 이를 안 홍련이는 언니를 따라 자살하게 되고 고을 부사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풀어주길 호소하지만 귀신을 본 부사는 공포심에 죽어나간다. 새로 부임한 부사 ‘정동우’만이 기지를 발휘하여 자매의 한을 풀어주고, 이 일을 꾸몄던 계모와 그의 아들을 죽이는데 배무룡만은 살려주어 3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자매는 다시 아버지의 쌍둥이로 태어나 행복하게 산다. 소설은 짧지만 총 9장으로 나뉘어있고, 각 장이 끝나면 <이야기 너머>란 짧은 챕터를 실어 각 장의 역사적 배경이나 관련 인물, 역사, 관련자료 등을 첨부해서 설명하고 있다. 소설만 읽으면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어쩌면 호러 작품처럼 끔찍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와주고 있다. 또 중요한 부분은 ‘이윤엽’ 작가의 그림이다. 평소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목판에 새기고 알려왔다는 그의 강렬한 그림이 이 소설의 강렬함과 잘 어우러지고 있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이 지면으로 자세한 것을 다 쓸 수는 없지만 장화홍련의 이야기는 그냥 동화로 흘려버리기엔 참 많은 것을 담은 시대적 작품이며, 현재의 정서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다. 장화홍련의 비극은 전처의 자식을 미워한 계모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가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그 누구도 침범 할 수도 심지어 임금조차도 건들 수 없었던 시기에 가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 구성원은 결국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지. 이런 부조리가 무서운 계모를 만들고 부모와 가문을 위해 죽음을 강요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소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어 졌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고전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초반에 말했던 너무나 유명하여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결국 《장화홍련전》은 가족과 가족의 형태가 만들어 지게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며, 과연 우리의 가족은 안녕한지 돌아보게 하는 뜨끔한 소설이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없이 좋을 소설이고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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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우리 고전이라면 꼭 다시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야기야 이미 알고 있지만 원문을 보거나 재 해석해서 풀어쓴 내용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 얼마나 바른가도 궁금하다.
옛 이야기 중 [장화 홍련전]은 내가 참 싫어하는 내용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계모라 하지만 전처 소생의 자식들을 모함해서 살해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했다. 그리고 배다른 동생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친 동생인데 누나를 죽인다는 것도 싫었다. 어려서 읽었을때의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영화에서 패러디해서 공포스릴러로 만들어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난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영화로 만들어진 [장화홍련]은 보지 않았다. 그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공포영화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이미 전작의 내용이 싫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번에 읽게된 장화홍련전은 여러 면에서 고무적이었다. [ 가재사실록]나 다른 여러 문헌에서 실화를 비교하며 어떻게 [장화홍련전]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부터 사건을 해결하는 정동우, 즉 정동흘이라는 인물에 이르기 까지 잘 알려주고 있다. 특히 정약용이 흠흠심서에서 잘못된 판결의 예로 백필애,백필랑사건이 장화홍련과 많이 유사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이 사건에서는 [장화 홍련]과 는 다르게 백씨자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나쁜 계모가 아니라 친 오빠들이었고, 계모는 무고하게 희생된 것이었다. 그래서 [흠흠심서]도 읽어보고싶다는 야무진 욕심까지 생겼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그냥 장화홍련전의 재해석이 아니라 [아버지의 세께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장화와 홍련은 가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시대의 희생양이었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나는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두 딸을 지켜주지 않다. 이 이야기를 읽고 계속 답답했던 것은 장화 홍련의 억울함이 다 해소 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 또한 그녀들 못지않게 억울하기 때문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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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다보면 많은 구전 설화부터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재미나게 공부할수도 아니면 그 지역에 대한 생생하 생활사를 배우게 되는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고전이라고 할수있다,
열네살에 다시 보는 우리고전이란 이름으로 본다면 청소년 시기에 다시 보게 된다는 시점인데 이책에서는 고전을 고전답게 풀어간다
역사적 시점으로 부터 시작을 풀어가는데 1651년,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던 평안도 철산에서 자매 살인 사건이 벌어진 사실을 가지고 무인 ‘전동흘’이 철산 부사로 부임해서 미궁속에 빠진 진실을 밝혀내게 됩니다 그래서 후손이 가재사실록에 기록하게 되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장화홍련전이란 것으로 접하게 됩니다.
중고등 국어 시간에 배우는 권선징악의 표본이 기본이다보니 새어머니 허씨는 남들이 봐도 정말이지 악행의 본실을 볼수 있다.
아무리 그 이야기가 피어난 장소가 평안도 철산이라고 해도 힘든 지역이었으나 그들의 행실은 지역적인 대변을 하기엔 너무나 잔혹했습니다.
결국에는 새로 부임안 무인 ‘전동흘’이 철산 부사에 의해서 죽은 혼을 달랠수 있었던 기회가 오게된다. 장화에게 누명을 씌운 계모 허씨와 큰아들 장쇠는 사형당하고, 장화에게 죽음을 명했던 최고결정권자 - 아버지 배무룡은 사면되는 걸 보면서 얼마나 화가 나던지....
지금의 법이었다면 그들은 다 사형감이란 생각이지만 고전인지라 가부장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그 후 자매는 세 번째 부인을 얻은 아버지의 딸로 다시금 환생합니다.
일어나는 이야기가 비록 귀신의 말을 빌려서 혼을 달래기 위함이지만 좋은 새어머니도 있건만 이러한 이야기로 많은 새어머니들이 피해를 보고 겹에 쌓인 오해로 인해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말하고 픈 이야기도 있지만
고전을 고전답게 읽을 수 있는 배경도 주고 그시대적 특징을 잘 집어가면서 설명을 하다보니 재미나게 읽고 역사 공부도 덤으로 해나갈수 있는 고전 학습에 좋은 책이라고 할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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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들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미 구닥다리로 인식되어지거나, 또는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암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 책이 있다. 바로 고영 작가의 『장화홍련전』이다. “열네살에 다시 보는 우리 고전”이란 타이틀로 출간되는 두 번째 책이다.
여기 ‘다시 본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이 다시 본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옛 언어로 써진 고전을 오늘 우리의 현대어로 ‘다시’ 읽는다는 의미겠다. 소설이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져야 하며, 읽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현대어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작가의 작업이 고맙다.
둘째, 옛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러한 시각으로만 소설의 내용을 접근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해석해 본다는 의미가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소설의 원 내용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원 내용에 더하여 오늘 우리가 새롭게 ‘다시’ 해석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을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저자가 이 책 『장화홍련전』에서 새롭게 다시 해석해야 할 내용들은 무엇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접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부제로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장화홍련전』을 접할 때, 대부분 계모만을 욕하지만, 실상은 가정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었던 가부장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가는 이야기한다.
또한 국가 공권력의 무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장화, 홍련이 애매한 죽음을 당한 후, 홍련은 원귀가 되어 그 지방에 부임하는 부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부사는 애매한 죽음에 대해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귀신을 본 두려움에 죽어나간다. 이것을 작가는 ‘국가 공권력의 무능’이라 해석한다. 여기에 더하여 끝내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는 장면을 통해서는 끝내 공권력이 가부장의 권위를 흔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으로 해석한다. 어쩌면, ‘가제는 게 편’이라고 가부장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끝내 자신들의 공권력 역시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작가는 『장화홍련전』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오늘 한국 사회 역시 이 사회를 움직이는 권위 있고, 힘 있는 자들이 힘이 없기에 애매한 상황에 처해 고통당하는 자들, 절박한 상황에서 하소연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다시 보는’ 시도는 대단히 바람직하다. 단지 노파심에 한 마디 한다면, ‘다시 보는’ 이러한 시도들이 자칫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tv 모 예능 프로그램에 초등학생들이 나와 이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들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잠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든 생각은 아이들은 ‘다시 보는’ 훈련을 통해 열린 시각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이미 또 하나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편협한 시각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보는’ 훈련들을 시켰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선한 시도임에 분명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다시’ 해석되어진 것을 이 아이들은 정답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해석 이외의 것에는 또다시 귀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은 결코 ‘열린’ 접근이 될 수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는 편협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아울러 저가의 접근은 대단히 개연성이 있는 접근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에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보는’ 시도가 자칫 당시 시대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며 품었던 작품의 의도, 그 메시지를 우리가 무시해버린다면 이것 역시 우리가 커다란 것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보는’ 접근과 함께 작품의 1차적 의도, 역시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 말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참 좋다. 계속하여 출간되어질 다음 작품들 역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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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였고, 책소개글에 적힌 내용은 더 흥미로웠던 책이여서 읽게 되었는데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상당히 재미있다. 내용은 잔혹하기 그지 없는데 가독성은 분명 있고, 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어서 그 점이 상당히 좋았던 책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은 북멘토에서 출간된 <열네 살에 다시 보는 우리고전>이라는 시리즈의 두번째 책인데, 사실 첫 번째 이야기인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 심청전』을 읽어 보질 못해서 그 책은 어느 정도로 풀어쓰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과연 열네 살에 이 책을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솔직하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사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는 느낌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는 다소 잔혹했다는 것을 크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계모의 괴롭힘으로 죽은 장화와 홍련이라는 두 자매의 원혼을 고을 원님이 해결해 준다는 식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지극히 아이들을 위한 순화된, 그래서 계모가 결국 벌을 받게 되는 것으로 끝이나기에 나쁜짓을 하면 안된다는 권선징악적 결말을 보여주고 교훈을 전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치밀한 고증과 충실한 풀어쓰기를 주장하는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장화와 홍련 자매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여러 차례 가뭄으로 백성들의 삶이 비참한 지경이였고)과 함께 이들이 살았던 북쪽의 평안도 철산이라는 곳은 강동 6주에서 철주였고 이곳은 기후가 나빠 주민들이 자주 굶주림에 시달렸던 곳이라는 것을 이 책을 말하고 있다.
또한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말이 곧 법처럼 여겨지던 때에 계모로 들어와 전처의 자식과의 애틋한 마음 때문에 후처인 허씨를 등한시 한 것과 다름 없이 행동했고 자매의 아버지인 배씨는 허씨와는 제대로된 대화조차 하지 않았음을 이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철산에 부임해 온 부사 정동흘이라는 실존인물이 해결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동화는 동화에 지나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전처의 소생으로 끔찍이도 사랑했던 두 딸을 허씨에 계략에 빠져 단 한 번도 진실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딸을 죽이라고 큰아들에게 명령하고 이런 아버지의 명령에 아버지 다음으로 가부장의 권력을 이어받을 장쇠는 실행하고, 장화 역시도 아버지의 말에 원통해 하면서도 죽게되는 점이 그 당시 아버지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는지를 알게 한다.
또한 이후 정동흘이 사건을 파헤쳐 허씨와 장화를 죽인 큰아들 장쇠가 사형에 처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들어 온 허씨와 딸 사이에서 제대로된 조화를 이루지 못한 배씨는 방면되어 세번째 결혼까지 해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현대적인 잣대로 봤을 때 놀라울 정도이다.
아울러 두 자매가 아버지와 세 번째 부인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점이 살아서도 아버지의 권위 안에 있었고, 죽고 다시 태어나도 결국 아버지 배씨에서 소속된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듯 <장화홍련전>은 실제 사건과 허구가 만나 그 당시의 가부장적인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고,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을 잘 끄집어 내서 역사적인 자료와 함께 들려주며, 목판화로 담담히 표현하고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자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기에 앞으로 어떤 책들이 나올지 기대되고, 첫 번째 시리즈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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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화홍련전
장화홍련전의 스토리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풀 버전을 흔히 알지는 못한다. 나 역시 장화홍련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영화도 보고 했었는데, 원작은 아쉽게도 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보았다. 저자가 원전 장화홍련전의 치밀한 고증과 충실한 풀어쓰기로 해서 장화홍련전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먼저 놀랐던 것은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배무룡이라서 장화와 홍련 자매가 배씨라는 것에 놀랐다. 계모가 괴롭혀서 자살한 줄 알았는데, 장화의 낙태를 죽은 쥐로 조작해서 죽게했다는 것에서도 슬펐다. 그리고 사또로 등장하는 정동우가 실제로 존재하는 전동흘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것도 신기했다. 또 소설 중간중간에 <이야기 너머>라고 해서 장화홍련에 관한 이야기나, 그 외의 시대상, 다양한 사건들을 알려주는 것이 좋았다. 특히 보통 계모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이 책 속에서도 등장한다. 저자가 그런 편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고, 다른 예를 들어 자식들이 계모를 후처임에도 불구하고 후처로 인정안하고, 첩이라며 왕따를 시키는 사연도 보며 놀랐다. 단순히 계모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계모의 사연에 대해서도 알려줘서 계모에 대한 다른 다양한 시각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소설과 함께 다양한 정보들도 함께 배울 수 있어 굉장히 유익한 책이었다. 그리고 장화홍련의 원전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무척 좋았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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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세계에서 쫒겨난 자들 장화홍련전 -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 고전 2- 한참 학창시절.. 중고등학교때 읽었던 우리의 고전.. 장화와 홍련 이야기.. 그 전부터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했었던 장화와 홍련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너무나도 익숙한 장화, 홍련 이야기에 그냥 그렇게 알고 만 있었다.. 계모에 의해 흉악한 누명에 쌓야 죽은 장화 그리고 홍련.. 그리고 죽어가는 그 고장 사또.. 그리고 해결된 장화와 홍련의 죽음에 쌓인 비밀.. 이 책에서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쫒겨난 자들" 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그 시대의 아버지의 권위, 그리고 권련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이시대와 비교하며 서술해주고 있다. 먼저 [여는글]에서 어떻게 이 사건이 소설이 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해 준다. 효종이 조선을 다스리던 1651년, 평안도 철산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 자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범인은 끔찍하게 자매의 계모를 포함한 자매의 가족, 그리고 친아버지는 사건을 덮으려고 한 ... 당시 철산 부사 전동홀이 그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고 . 이 사건에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서 19세기 후반 "장화홍련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실 장화홍련전의 이야기는 익히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자세히는 잘 모르더라도 대강의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저 하나의 옛 고전으로 장화홍련전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 준다. "가부장의 권력에 물음표를 달지 마라" 자매의 죽음 앞에 아버지 배무룡은 "죽여주십시요"를 일관한다. 그러나 임금의 명에 따라 석방하게 된다. 소설은 '배무룡이 계모 허씨에게 속아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뿐'이라며 배무룡의 석방을 정당화 한다. 뒤집어 말하면 가부장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가장의 잘못을 들추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단지 간악한 계모에 속아 넘어간 불쌍한 아버지'라는 변호를 받는다. 또한 원혼이 되어 배무룡의 품을 떠난 두 딸이 다시 배무룡의 집안의 딸로 환생하는 결말이 된다. 그러나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나는 몰랐다'라는 식의 치사한 변명.. 그 책임을 잃은 권위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가? 허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가장으로써 무엇을 했나? 그리고 지금으로 본다면 가정폭력 아니 살해가 일어나기에 동조한 그 아버지.. 과연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사실이라면 과연 그 아버지의 권위, 책임을 어디까지 변호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장화와 홍련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가정에 대해 그리고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가정은 가족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고, 사회와 국가는 그 국민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 속에서 연약한 어린이, 청소년, 노인, 여성은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없고... 이 책의 결말은 그저 장화와 홍련이 배무룡이 맞은 세 번째 정실 사이의 자매로 환생해서 잘 살았다고 나온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잘 사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그리고 되돌아봐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 다시보는 우리 고전 '장화와 홍련'! 이 책을 읽으며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참 많은 의문과 상상력을 더해가며 읽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여러가지 문헌 자료와 지도, 그리고 상상력을 더하게 해 주는 그림체... 이를 통해 단순히 학창시절 교과를 위해 읽고 외웠던 장화와 홍련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를 이해하고, 또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야 말로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 이 책은 한우리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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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장화홍련전>
열네살에 만나는 우리 고전 시리즈 중 심청전을 먼저 아이와 만나보았습니다.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장화홍련전도 엄청 기대가 됐습니다. 장화홍련전은 유명한 우리 옛날 이야기라서 한 번쯤 만나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는 장화홍련전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개하면서도 작가의 생각이나 견해를 넣고 이야기와 관련된 풍부한 내용들을 소개하여서 책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우리의 옛 고전인 장화홍련전에 대해서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책을 해석하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이 쑥쑥 길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재미있게 이야기를 따라 읽어가다 보면 금방 책이 다 읽어지고요.
이 책에서는 우리 고전 장화홍련전을 실제 내용에 맞게 생생하게 옮기고 생동감있게 표현하여서 술술 읽혀집니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읽기에 참 좋은 것 같아요. 그저 국어공부를 하느라 억지로 읽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에 큰 재미를 느끼고 생각도 해보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글쓴이가 장화홍련전에 관련된 사건이나 더 많은 내용들을 책 속에 담아서 책을 읽다보면 참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옛 고전들을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고전의 이야기들을 우리말로 풀어내어서 학생들이 우리 옛 소설을 생동감있고 사실적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하여서 그 점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 고전의 인물들에 대한 비판과 여러 장단점들을 잘 표현해 내어서 지문 해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 시리즈 앞으로 춘향전이나 흥부전을 주제로 다룬 책들도 나온다고 하니 많은 기대가 되네요.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