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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앞두고... 도서관의 반납된 미정리 책더미 속에서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끄집어내었다. '나오키 문학상'이란 단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 스틸 컷으로 보이는 표지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책을 들고 그 자리에서 몇 장을 넘겨봤을 땐 그냥 초등학생용 책인가 싶었다. 그런데 두어 장 읽어가니 출발이 심상찮다. 죽음! 그것도 역에서 그냥 굶어죽은 노숙 어린이의 애니 스틸 컷과 함께 "1945년 9월 22일 세이타는 죽었다."라는 첫 글이 뭔가 마음에 충격파를 가한다...
두 번 읽었다. 책 부피에 비해 삽화를 빼고 나면 아주 짧은 단편에 가깝다. 읽는데 별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아니다. 아 참! 책제는 <반딧불이의 무덤 火垂るの墓>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위험하다! 내용이 별로라는 건 아니다. 명색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의 양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나오키상 수상작(제58회,1967년 하반기)이다. 그 명성만큼, 정말 모차르트 레퀴엠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렬한 페이소스가 온 몸을 전율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문제가 많다는 걸 바로 느꼈다. "비극적 운명을 살다간 오누이를 통해 돌아보는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건 맞지만, 뭔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폭격으로 어머니와 집을 잃어 고아가 된 오누이 세이타와 세츠코는 먼 친척집에 얹혀살게 된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의 냉대로 인해 그 집을 나와 방공호 굴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중학생 오빠인 세이타는 영양실조에 걸린 여동생 세츠코를 보살피기 위해 때로는 도둑질까지 하지만, 이미 운명은 이 아이들을 굶주림과 죽음이라는 냉혹한 벼랑 끝으로 내모는데.....
왜? 왜 나는 이 소설이 별로인가? 공감을 못해서? 아니다. 공감은 충분히 한다. 내 어릴 적만 해도 거리의 부랑자도 많았고 제대로 먹는 집 거의 없었다. 전쟁의 비참함이야 충분히 아픔으로 다가 오지만, 이 책은 일본인들의 반성 없는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느껴졌다. 괜한 반감이 일었다. 아니지, 괜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분명 가해자다. 그들의 침략적 야욕으로 인해 이웃 나라들이 겪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참상에 대해서 그들은 왜 애써 외면할까? 가해자인 그들이, 이런 소설로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전쟁으로 죽어 간 모든 아이들의 영혼에 바치는 레퀴엠"?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찬탄인가. 그래서 지금의 일본이 이웃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기라도 했나? 약간의 분노가 짜증으로 변한다.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책의 분류를 보니 국내도서 > 어린이 > 어린이 문학 > 그림/동화책 > 창작동화 국내도서 > 어린이 > 5-6학년 > 5-6학년 그림/동화책 > 5-6학년 창작동화 이렇게 되어 있던데, 나는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이 책 보는 것을 말리고 싶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모양인데... 자칫 잘못하면 무의식적으로 일본인이 미군에 의해 이.유.없.이. 처참한 피해를 당한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 책이 정말 약소국가의 억울한 전쟁 희생 이야기였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같이 아파했겠지만, 가해자인 일본인의 자기반성 없는(자기들 아픈 것만 생각하는) 이런 소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이 소설을 통해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현재의 일본을 보면 정말 아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하면서 지금의 한일 관계는 많이 비틀어졌다. 그가 전범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그에겐 인간의 존엄성이나 가해자의 반성 이런 건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오직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은 극우의 마스코드로 그들의 제반 난관을 타개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니 웬만한 과거사는 부정한다. 한마디로 역사의 퇴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본인들이 모두 아베 총리 같지는 않겠지만, 그로 인해 이런 가슴 아픈 소설을 같이 공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구심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반전(反戰)소설이라 칭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설은 소설로 받아들여야 한다.’기엔 개운치 않은 감정들이 뒤섞인다. 아이들에겐 비추천!!!
덧붙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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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애니메이션인 <반딧불의 묘="">를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일단 흥미가 생겨서 읽게 되었다. 책 중간중간 컬러 애니메이션 그림이 들어가면서 그 그림이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그림 역시 정감 넘치는 그림이다. 내용은 전쟁을 지내는 동안의 한 남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경은 1940년대. 오빠인 세이타와 아직 어린 여동생 세츠코. 한창 전쟁이 전세계를 집어먹고 있던 그 시절이다. 공습으로 인해 집을 잃어버린 두 남매는 병든 어머니를 다른 곳으로 피신 시킨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어린 두 남매에겐 너무도 큰 어려움과 슬픔이 닥친 것이었다. 두 남매는 친척집에 몸을 의탁했지만, 그나마도 이기적인 어른에게 속아 쫓겨나는 처지가 된다. 입을 것이나 잠잘 곳은 물론이거니와 먹을 것 마저 없던 시절... 두 남매는 서서히 죽음의 세계로 빠져든다. 암울한 그 시절을 세츠코의 눈으로 아름답게 상승시킨다. 세츠코의 눈에 비친 반딧불은 어두운 곳을 밝혀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츠코에게 위안을 받는 오빠 세이타. 결국 세츠코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뜬다. 하지만 이 세츠코의 죽음에는 세츠코의 상태를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냉정한 세상과 이기적인 어른이 한몫한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세이타 역시 얼마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의 기둥에 기대 앉아 숨을 거둔다. 책 내용이 너무나 슬펐다. 그 어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어른들의 이기심때문에. 그리고 같은 사연으로 아픔을 간직한 작가의 회고록, 혹은 사그러진 작가의 여동생에게 바치는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진주만>에서 보면 미국은 그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 처럼 말한다. 자신들은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전쟁은 정의가 없다. 일방적인 피해도 없다. 공격을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피해를 입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무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반딧불이의>진주만>반딧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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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무덤은 10여년전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반딧불의 묘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파일이 나돌았죠.
<반딧불의 묘>는 2차 세계 대전 후 전쟁 고아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인척을 한다, 극우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인들을 세뇌시키는 애니메이션이다 등등의 논란을 빚어온 작품이죠. 그러나 그런 걸 떠나 전쟁고아들의 절망과 슬픔,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 슬픈 애니메이션입니다. |
| 반딧불의 묘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만났는데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나라만 고통을 받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지 일본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해 본적이 없다. 특히 가장 고통받은사람은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패전후 살아남은 세이타와 동생의 이야기이다. 동굴안에서 힘들게 지내면서도 나름대로 그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려고 하는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결국 굶주림을 참지 못한 남매는 둘다 목숨을 잃게되면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난 이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세이타의 영혼의 죽은 자신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장면이다. 반딧불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고 많은 장면들이 실리진 않았지만 영화의 내용을 잘 표현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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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여행가기 전날 밤에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서 읽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가 있긴한데.. 석사 때 연구실에서 이걸 보다가 울었던 게 기억나는데, 너무 슬퍼서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었다.
역시 영상의 힘이란! 보통 책이 재미있으면 그 내용으로 만든 영화는 재미가 반감되는데, '반딧불의 묘'는 영화가 아니라 애니기 때문에 표현의 한계가 없어서인지 책보다는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슬펐던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이 별로란 뜻은 아니다.
어찌보면, 고이즈미가 전범들에게까지 참배를 하는 이 민감한 시기에 일본인들 입장에서 전쟁 중의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책이 '웃기고 있네!' 정도의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서 슬픈건 슬픈거다. 하긴.. 전쟁 중에 또라이 몇 명 때문에 희생당한 이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싶기도 하다.
다시는 국제 또라이들이 설쳐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예전에 써놓은 걸 이제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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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은 읽기 싫어서, 또 장편보다는 단편, 에세이같은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 발견한 책.. 원래 '반딧불묘'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내가 읽은 '반딧불이 무덤'은 애니메이션을 다시 소설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은 아주 간략했고..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삽화들이 나왔다..
주 내용은 1940년대 일본에 살던 전쟁 고아가 된 남매의 삶과 죽음이다.. 보통 밝고 행복한 내용을 다루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전쟁 고아로서 결국 굶주림으로 죽게 되는 남매들의 생활을 다루었다.. 책이 내용은 시간을 거슬러 뒤에 죽는 오빠의 죽음부터 다루고.. 그 뒤에 앞으로 넘어가서 이 남매가 왜 죽게 되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원래 책을 읽을 때 기분부터 우울해서였을까.. 오빠 세이타의 죽음을 묘사하는 글을 읽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 했던 슬픔이 느껴졌다.. 책 속에서 누가 죽더라도..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 했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나올 것도 같고.. 안타까움과 함께 참 슬펐다.. 전쟁이 뭐길래, 배고픔이 뭐길래..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한 채, 죽어가도록 하는건지.. 오빠 세이타는 동생 세츠코처럼 영양 실조로 인한 전신 피로로 죽게 된다.. 죽기 전, 세이타는 한동안 영양 실조때문인지 설사에 시달리는데.. 자신이 생활하는 곳과 아주 가까운 화장실에도 걸어갈 힘이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설사를 한다.. 그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도 세이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당연히 도와주지 않으므로 온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 세이타는 그 자리에서 설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의식은 점점 멀어져가면서 세이타는 죽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세이타는 일을 할 수 없었나.. 일을 했다면 동생과 함께 굶어죽진 않지 않았을까..' '아무리 전쟁중이라지만 어른들은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역원은 세이타같이 의지할 곳없어 역으로 찾아드는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은지 쫓아낼려고만 하고.. 죽어가는 아이 옆에서 "이 아이도 곧 죽겠군"이란 말을 한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방공호 굴 속에서 단 둘이 사는 것을 알지만 근처 농가의 사람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당연히 걱정조차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자고 약속했던 먼 친척 아주머니는 남매에게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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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책이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약간의 호기심을 키워가던 차였다. 반딧불이의 무덤...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약간은 엔딩 부분이 슬플 거라는 생각만 했었다. 전쟁이 남긴 상처. 결국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전율을 느낄 만큼 그 이야기를 내 마음속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타카하타 이사오의 그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소 버거울 수도 있는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 손으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이 그림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한번씩 다시 꺼내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결론이 무얼까, 독자에게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겠지만 손으로 어루만지고 얼러주고 싶은 이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 반딧불이의 무덤이 의미하는 것이 있을까? 아마도 곧 다가올 어린 생명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그 작은 미물도 이렇게 챙겨 주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죽어가야만 했던 세츠코...부유하게 자라 힘든걸 모르다가 겪어야 했던 전쟁은 더 참혹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6.25전쟁이 있었지만 그때도 그렇게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을까?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께서 가끔 들려주시던 전쟁중에 살아왔던 이야기에서 나는 그저 포탄과 총탄의 울려퍼짐 정도만 생각했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그렇게 서서히 이루어지리란걸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저 죽는것은 한 순간일뿐이라고 생각했지. 전쟁속에서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이기심은 결국 어린 2생명을 처절히 죽어가게 만들었던거 같다. 고통속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질 않길 바랄뿐이다. |
| 이 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표지의 세츠코 때문이었다. 반딧불이 속에 양철 대야를 뒤집어 쓴 채 경례를 하고 있는 세츠코의 모습. 아니, 어쩌면 내가 예전에 보았던 슬픈 애니메이션의 제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퍼서 보기가 괴로웠던 <반딧불의 묘="">라는. 지금까지 봐왔던 재미 위주의 것과는 달랐던 애니메이션. 그 애니메이션이 책이 되어 내 앞에 있다. 그림이 참 예쁘지만, 그 속에 슬픔이 있는 책. 이 책을 읽는 순간 다시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고 그 장면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세이타와 세츠코의 슬픈 이야기. 전쟁으로 인해 엄마도 잃고 아빠도 행방불명되고, 친척한테도 외면당해서, 둘이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당시의 현실이 너무 가슴아팠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이타와 세츠코 같이 어린 수많은 아이들이 또 같은 일을 겪을 텐데... 도둑질을 하면서까지 동생을 살리려고 했던 세이타가, 하지만 결국 어떤 수도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생을 하늘로 보내야만 했던 그의 이야기가, 그리고도 자신도 어느 역에서 조용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너무 슬펐다. 세이타가 너무 불쌍했다. 반딧불이 속에선 행복했던 세츠코가 떠오른다. 죽기엔 너무 어렸던 그 두 아이의 이야기. 반딧불이 속에선 행복했던 그들이 눈앞에 선명히 떠오른다.반딧불의> |
| 대학시절 선배가 빌려준 애니메이션 시디를 보고 처음 이 작품을 접했었다. 처음엔 그냥 토토로 식의 천진난만한 남매의 우애를 그린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너무나 슬픈 이야기와 결말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것을 알고 책장을 넘겨보았는데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이 책장마다 실려있어 만화를 보는 듯 하다.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의 한 오누이의 비참한 결말을 담은 이 작품을 보고 항상 가해자로만 생각되던 일본도 그 안에는 똑같이 전쟁의 피해를 보고 있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본도 똑같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표면적으론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지만 그 구분을 떠나 결국은 아무 욕심없는 평범한 사람들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이라크 전쟁으로 세계가 떠들썩한 요즘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