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됐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아들에게 보낸 축하편지中)
조두진 작가의 <능소화>를 읽고 울었던 기억이 나서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운수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는 요즘 소설같지 않은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 분위기가 더 감성을 자극하는듯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스토리가 전개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아들이 아버지와 진심으로 소통하게 되는 지점까지 오랜만에 가슴을 아프게도 하고 아리게도 했던 소설이였습니다. 마지막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펑펑~ 마구마구 흐르더군요. ㅠ.ㅠ
가족을 위해 고생한 어머니만을 항상 가엽게 여겼었는데 그 뒤에서 항상 날 위해 산처럼 서 계셨던 아-버-지가 있었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은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이 한마디에 아버지의 심장은 뜨거워질 것이고 아마도 세상에 다시 나가 싸울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많이 정말 자주 하지 못하는 말, 오늘 바로 실천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정말 정말 사~랑~해~요"
* 책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
“처자식을 먹이고 입힐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 주의사항 *
혹 지하철에서 마지막을 읽으시려면 손수건(티슈) 준비요망, 혼자 울수 있는 공간에서 읽으시는 것을 강추합니다. |
|
난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이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남좋은 일일뿐. 사람 좋고 선량하다는 건 그만큼 가족들은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항상 돈에 쪼들리며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그래서 더욱 책속의 아버지를 보며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욕하건, 아무리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성인군자입네 혼자 잘났소 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아버지다웠다. 그는...
지하철에서 읽다가 울컥했다. 가슴으로 운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처자식을 먹이고 입힐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가리지 않을 겁니다"
|
|
답답하다. 그냥 무작정 답답하다. TV나 신문을 볼 때…혹은 드라마의 소재를 볼 때…나쁜 아버지들도 있고 좋은 아버지들도 있고 또 무책임 아버지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냥 "아버지" 그 자체였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처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던 그저 처와 자식에게 고생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픈 큰 아들을 치료하고 또 똑똑한 작은 아들을 공부 시키고 싶어 자신을 돌보지 않고 그 책임만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 엄시헌…그것이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음이 분명한데도 내색하지 않았기에 아들 엄종세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칭찬이나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p.166 – 주인공 엄종세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 엄시헌이 보낸 편지의 한 문장 저 말만 봐도 아버지가 얼마나 처와 자식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를 알 수 있겠건만…엄종세는 너무나도 늦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엄종세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지난 삶을 추적해 나가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 할 수 있듯이 결말은 뻔하다. 그의 아버지는 처와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았고 언제나 마음만은 그들의 곁에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는…읽는 나의 가슴을 무너지게 하고 속이 상해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결말… 나는 슬픈 내용이 정말 싫다. 특히나 이런 누구나와 연관성이 깊을 듯한 내용에서의 슬픈 내용은 참을 수 없이 가슴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필요 할 것이다. 이런 책이…나도 문득 정말 내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시간을 가졌기에 이 책은 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엔 무섭고 커 보이기만 했던 아버지…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작아 보이는 그 모습에 가끔은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짊어지셨던 그 짐…이해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씀 드리는 것조차 너무 당연해 하지 못했던 그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하지만 내 남편에게는 그런 짐 혼자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내 마음이다. 같이 짊어지면 그 짐이 조금은 수월해 지려는지…오늘은 남편이 늦는다고 해도 감기는 눈 억지로 떠서 기다려 “많이 힘들었지?”라며 웃음 건네보려 한다. |
|
난 남자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나도 정말 책속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다. 아니, 확실히 그렇게 살고 있는듯 하다.
책속의 주인공 '엄종세'는 뺑소니사고로 돌아가신 몇년동안 소원했던 아버지 '엄시헌'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버지의 시골동네로 오게 된다. 그러면서 늘 먹고 사는 일에만 바빠 자신을 비롯한 가족을 신경쓰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던 아버지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알게되면서 기어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이 땅에 사는 아버지라면 누구나 그럴것이다. 책속의 아버지 '엄시헌'이 같은 막노동꾼들에게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참을 수 없는 것은 처자식이 굶는것이라고 했던것. 다 그렇지 않을까.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못할것이 없고 그 어떤 욕먹을 짓이라고 할 각오가 되어있던것..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패배감에 충만해 있던 '엄종세'에게 아버지와 같은 막노동꾼 '장기풍'이 말해주는 아버지 '엄시헌'은 정말 강한 남자이자 아버지였다. 몸과 정신이 자유롭지 않은 '엄종세'의 형 '엄종석'을 빼놓지 않고 돌봐주면서 혹시라도 동생이 그 짐을 떠맡을까 걱정했을 아버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끝까지 돌보아야할 아들을 두고 떠나야했을 아버지.. 아들은 뜨거운 눈물만 흘린다.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지금 어디에서도 피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아버지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건 역시 사랑이다.. |
|
내게 아버지가 없다면 어떨까?
만날 술에 취해서 혀 꼬인 큰 소리로 엄마와 시비하는 소란이 잠자리에 든 우리를 깨웠을 때, 동생과 나는 둘 다 깨어있음에도 눈을 꼭 감고 자는 척 하고 했다. 휴일이나 퇴근 후에 집안일과 우리들의 문제로 싸움이라도 있는 때엔 동네가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아들이 있으나 없으나 신경 쓰지 않고 소리소리 지르는 모습이 진저리쳐지기도 했다.
잠에서 깨기 전에 출근, 잠자리에 들고 나서 퇴근하시는 아버지. ‘돈 벌어 오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린 시절 가끔 휴일 틈을 내서 숙제를 도와준다고 하시다가 부족한 아들의 학습능력과 태도를 군대식 얼차려로 무지막지하게 야단을 치고 흥분하시는 모습에 온가족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도 연중행사였다. 나 뿐 아니라 동생도 마찬가지였는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잘 대응하는 동생과 달리 나는 두려움에 아는 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엄한 아버지얼굴과 꼭 쥔 커다란 주먹 앞에서 백지장같이 하얗게 변하는 머릿속과 눈앞은 먹물처럼 까매지는 덕택에 더 길고도 지루한 얼차려를 받고는 했던 것이다. 어찌나 심하게 했는지 지금도 아버지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왜 그렇게 아들을 잡으셨어요?” 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생의 경우엔 초등학교 삼사학년 때인가로 기억하는데 집 앞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아버지께 걸렸다. 문제는 추궁과 다짐 속에서 태운 성냥의 개수를 물었는데 야단맞기가 싫어서 동생이 개수를 줄였다가 금방 추적에 의해 걸린 일이었다. 이 일로 동생은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싹싹 빌고 다시는 거짓말 안하겠다는 다짐을 수십 번이나 받은 뒤에나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는데 이때 나는 그 참상을 옆에서 숨죽이며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아, 거짓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되겠구나.’라기 보다는 걸리면 죽겠구나. 라는 교훈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걸리지 않게 하고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가 아버지를 대하는 우리 형제의 자세였다. 그러다 사춘기를 지날 즈음에 ‘아빠가 없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고 곧 돈 없이 우리 가족은 불행해질 것이다, 라는 맹랑한 상상으로 가로막히기도 했다.
더욱 문제는 고등학교 즈음에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 스스로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흘릴 눈물에 앞서 앞으로 나도 동생도 대학을 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병원에 가서(충격을 걱정해서 인지 경황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우리를 거의 열흘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의 면회를 하게 했다) 비쩍 마르고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칭칭 동여맨 얼굴과 몸을 보면서 겨우 아버지의 주사가 꼽힌 손을 잡고 말은 못했지만 꼭 일어나세요 라고 마음으로 소극적인 전달을 시도했던 것은 나나 동생이 같았을 것이다.(동생도 아무 말 없었다.)
몇 개월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그리고 퇴원으로 이어진 기적 같은 일에 우리식구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경이로워 했다. 함몰된 뼈와 근육으로 몹시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했지만 아버지는 걷기도, 먹기도, 말도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몹시 다행이다 하면서 행여나 내가 과거에 했던 몹쓸 생각들이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 이렇게 낙천적이며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 자평이라 객관성은 떨어지겠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이를 들면서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내가 받았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이해’의 수준에 들기 시작했다. ‘동의’하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얼핏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버지는 ‘좋지 않은 것’들로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고 기껏 좋은 점이란 한손가락에 꼽을 정도, 어린 시절의 여행 추억뿐이었다.
나는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할까.
조두진의 소설은 섬세하면서도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말랑말랑한 묘사에 눈이 닿으면 빠져서 묻히듯 잘 읽힌다. <도모 유키>때도 그랬지만 <아버지와 오토바이>는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자신의 삶이나 인생은 없이 ‘희생’만으로 평생을 보내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식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가장으로서 최소한 ‘처자식 밥 굶기지 않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몸이 불편한 큰 아들을 위해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삶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를 조사하는 형사의 부름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아버지와 가장 오랜 세월을 ‘노가다판’에서 ‘지기’로 지냈던 진기풍이라는 사내의 입을 통해서 아버지의 진면목이 대부분 그려진다. 실상 아들이라고 하는 엄종세는 아버지와 만나지도 통화하지도 않은 채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왜 그렇게 만나기 힘들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이런 점이 오히려 아버지 살해사건을 놓고 아들인 엄종세를 의심하는 형사의 추정에 힘을 실어준다.
결국 단순 뺑소니가 살인범이었음이 밝혀지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아들은 스스로의 삶 또한 슬며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부도덕한 일을 통해서 돈을 모으고 오로지 그 돈을 처와 자식에게만 썼던 한 인간. 그를 통해서 과연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란 어떤 존재이며 가족과 그 안의 아버지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학년때 엄종세가 보낸 편지에 답장하는 아버지의 편지는 아버지가 가진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직하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바보’같은 인생관을 가진 한 인간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러기 아빠’와 비교하면 비교가 될까?
|
|
아무나 '아버지'가 될 순 없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읽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가족이든 상사든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에 맞는 '호칭'도 자신의 이름마냥 불려지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 선생님...'
이러한 호칭들은 아무나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오토바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한창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엄마를 부탁해>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되새겼다면, <아버지의 오토바이>에서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계신다. 20년이 넘어가도록 나의 '아버지'였다. 그저 '아버지'라 불리는 존재였다.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그토록 큰 짐과 그 짐을 떠맡아야만 하는 책임감이 주어진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 불린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자신의 핏줄인 자식들이 무럭무럭 커가기까지, 그 가족들이 굶지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그 책임을 떠맡아야만 하는 자리가 바로 '아버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내라는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우리는 '아버지'의 책임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인다. 그들도 힘듦을 알고, 감정을 아는 한 사람인데, 우리는 그들이 슈퍼맨으로만 느껴진다. 말그대로 남자답게!! 눈물도, 힘듦도 없이 무슨 일이든지 척척 해내고 씩씩하게 사는 사람이 정녕 '아버지'라는 존재인걸까?
아내와 두 아들이 굶지는 않고 학교 잘 다니며 살아갈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억척으로 해내며 군말없이 힘겹게 살아가던 아버지 '엄시헌'의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실직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던 아들인 '엄종세'가 뺑소니의 용의자 중 한명으로 지목되면서, 그는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삶과 그 방식들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알게 된다. 자신의 학교 운동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던,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던 아버지가 그저 원망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그것이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아버지'라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나옴으로써, 이제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남모르게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발견하고 닦아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 책 속 밑줄긋기>
p.159 다 큰 어른들 사이에 '도와달라'는 말은, 담 너머로 넘어간 축구공을 던져달라고 담 저쪽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건네는 말처럼 간단한 말이 아니다.
p.206 자네 아버지는 처자식을 지키는 걸 자기 인생의 전부로 알았다. 자신이 살아야 처자식이 살 수 있는데, 무얼 걸 수 있었겠나?
p.260 아버지가 홀로 감당했던 그 추위와 나눌 수 없었던 절망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그 순간 세상에 누가 있어 내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을까.
|
|
현실이 냉혹하다는 것은 을씨년스런 노조들의 플래카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힘든 시절의 수준이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어제나 오늘, 그리고 미래 역시 힘겨워하는 우리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어려움을 맨몸으로 버텨낸 책임지는 가장들 덕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은 그나마 어려움과 고통을 수월하게 통과했다. 아마 그런 관계와 그 고마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버지의 오토바이’란 소설이 쓰였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배경은 차갑고 쓰디쓰다. 아버지의 사고를 담당하는 경찰의 시선은 자식까지도 혐의를 두는 그런 냉혹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의 친구인 장기풍의 모습은 부정적이기 그지 없다. 그들은 어느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1차 집단을 위해 2차 집단의 살벌한 경쟁에 뛰어든 자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세상에 대한 경쟁의식과 의심을 버리지 못 했거나 차라리 포기한 그들이었다.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엄씨 부자는 서로 다른 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멀리 있었다. 지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서로 연락하기엔 너무 먼 관계만을 지니고 있는 부자였다. 그래서인지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비극적인 만남을 갖게 된 이 슬픈 부자는 그러나 아비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기 힘든 아들만 남겨놓고 말았다. 그들은 그냥 호적 상의 가족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갑작스레 왔을 때 스스로의 경제적 상황의 위기로 심신이 지친 아들은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뒤처리 하려고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했고 또 자신의 생활을 꾸렸던 곳으로 찾아 왔다. 전화 상으로 짧은 대화만 했던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부자로만 남았다. 망자를 위한 형식적인 의식을 치르는 동안 듣게 되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은 엄시헌이란 아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했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그늘에 새삼 감격해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기에 너무나 컸던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아들을 살아 생전 알 수 없었기에 그들간의 이별은 너무 비극적이었다. 아마도 소설은 너무 담담한 어조로 썼기에 그 슬픔의 강도는 약했을지 모르지만 그 숭고함은 결코 우리 마음을 비켜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 생활을 냉혹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아버지도 냉혹으로 인해 벌어지는 스트레스를 처자에겐 보이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엄숙한 책임은 가족의 행복이다. 그 행복을 깰 짓들을 할 잔인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집 안과 집 밖에서의 아버지는 달라야 함은 남자의 숙명이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그 순간 아버지의 책임을 저버리고 그에 따른 가족의 고통을 만들어 낼 뿐이다.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 약해서는 안 된다. 약한 순간 자기만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치욕도 감수했고 사회 생활에선 남성성을 포기하고 노예근성이든 범죄자 모습이든 어떤 짓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남자들이 배운 남자답게 사는 법이고 아버지 되는 법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는 아버지가 되는 길일 뿐임을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이다. 소설은 너무 슬픈 서사를 갖고 있다. 당연하지만 외면했고 외면하다가 소설에 의해 일깨웠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 늙었다. 그 나이든 모습이 단순한 자연적 변화만은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래도 강해지려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장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
|
십 몇년 전에 읽었던 김정현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었다. 먼저 읽었던 <아버지>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여명이 2달 남았단 걸 아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겨우 2달 동안 평생의 삶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또 가족들도 알지 못하도록 가족에게 마음쓰며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본다. 자식이 정원 20명인 과에 들어갔으면 하는 기원을 담아 항상 처음 몇번째 안에 출근을 했었다. 그의 아버지되고 난 이후의 삶은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었다. 여기 <아버지>도 살아온 생이 많이 닮았다.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더 큰 도시로 이사를 하고, 아픈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리고 그 자식의 평생을 돌보기 위해 또 성한 자식에게 필요한 것들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일을 한다. 김정현이 쓴 아버지에서는 지방대를 나왔어도 판사라는 명함이 있는, 많이 배우고 가진것도 있는 그래서 아이들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아버지이고, 여기 조두진의 아버지는 배움이 길지도 않고 가진것도 없는, 그래서 병든 아들을 위해 아이들 곁에 있어줄 수도 없지만 책임감은 버릴 수 없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남자가 아닌 모양이다. 그냥 아버지일 뿐이다. 아이를 쓰다듬는 손으로 힘든일 쉬운일을 가리지 않고,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보다 내 가족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사람이 아버지를 욕할지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욕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것이 비극이다. 아버지는 처자식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처절한 인생을 살아내지만 자식은 아버지의 아버지되려고 힘든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 존재의 자리를 새겨보게 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며 아버지의 인생을 짚어보고 통화되지 않은채 끊은 발신내역으로 자신의 언제 끊날지 모를 인생을 정리했다는걸... 이것들을 아버지가 떠난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것이 아버지로 사는 자의 고통이고 자식된 자의 애닳음이다. 이 책의 아버지 엄종석은 자식에게 털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면서 처자식을 평생의 상장으로 살아가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책장을 넘겨가면서 내 아버지의 모습과 내 아이들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가 될 내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사는게 수월해지고 형편이 넉넉해져서 원할 때마다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지라도 아버지된 자의 마음은 항상 가족에게 기둥이 되기위해 긴장하고 있지 않을까.. 아버지란 말도 엄마 못지않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말이다... |
|
책 제목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와 오토바이에 관한 기억이 있다. 나도 표지의 그림처럼 초등학교 저학년때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탄 기억이 있다.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아버지를 뒤에서 안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아버지의 등이 넓기만 했었는데 내가 결혼하기 하루 전날 뒤에서 아버지를 안았을때는 너무나도 작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와 아빠의 추억을 기억하게 만든 책이다.
<아버지와 오토바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엄종세는 어릴적부터 뇌성마비에 정신지체, 자폐, 간질을 앓은 형이 있다. 그래서 엄종세 가족은 형의 치료를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 아버지는 철공소, 난전 좌판, 신발공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공사판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아빠는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가 거의 집에 들르지 않게 된다. 그 후로 아버지와 아들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어른이 된 후에는 일년에 한두번 정도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되고 아들 엄종세는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의 친구분이라는 장기풍에게서 그간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된다.
엄종석은 아버지 사고 후 영정사진을 찾다가 어릴적 자신의 아버지와 현재의 두 아이의 아버지된 자신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어린 자식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거기 자신의 모습이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 역시 아버지와 함께 사진 찍어본 적이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나도 그랬다. 나 역시 내 소풍사진이나 운동회 그리고 졸업사진에는 아빠와 찍은 사진은 한장도 없다. 그 당시 아빠는 회사전체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아빠 혼자서 지방에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년간 우리 식구는 아빠 없이 생활해야 했다. 나도 엄종석처럼 편지로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릴적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진 엄종석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엄종석의 모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 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더구나 하나밖에 없는 형의 소식은 아예 모른다는 부분에서는 화가 났다. 아무리 사는데 힘들어도 어릴적 아빠가 필요할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를 그렇게 무관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하나밖에 없는 형이 아프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형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끝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가족조차 외면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이 현실이 참 많이 씁쓸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죽은 후에야 알게된 엄종석이 불쌍해서. 매주 목요일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게 될 엄종석의 형이 불쌍해서. 그리고 아픈 형을 뒤로 하고 먼저 죽은 아버지가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을까봐 그 생각을 하니 불쌍해서 이 책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긴 한숨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