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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브라운의 숲에서 만난 발자국은 장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주는 좋은 교훈을 안겨준듯하다.
물론 어릴때의 환경과 교육이 인생의 기본이 되어야 하겠지만....
이책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장인의 길은 자기가 자라난 환경과 하고자 하는 의욕과 더불어 지도하는 스승의 힘이 가장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교육에 있어 스스의 가르치는 태도와 호기심의 발동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 하지만 근본은 학생과 스스의 관계가 장인으로 발전하는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획일적인 우리나라의 자녀 교육상황과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이상적인 현실로 비추어 질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교육도 이런식으로 발전시키다 보면 훌륭한 장인이 얼마든지 나올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학만 졸업하면 된다는 부모들의 생각이 더욱 학교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이책은 우리의 자녀교육,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는것 같다.
자녀 스스로가 생각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몸소 느끼고 실천할수 있는 분위기를 사회에서 조성하여 준다면 현재와 같은 입시 경쟁이나 내신성적으로 비관하는 학생들의 수는 줄어들수 있지 않을까?
인생에 있어 배움의 길이란 인간으로서의 자아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아를 완성하기 위해선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이책을 읽으면서 느껴본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 속에서 사는 삶, 곧 너무나 오래전에 생활이라는 늪 속에 빠져 이미 화석화 되어버린 사람들에 의해 영위되는 삶만큼 깊고 위험한 늪은 다시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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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만난 발자국 /저자 톰 브라운/출판 황금가지/발매 2003.03.10.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에 발을 담가야 한다.
P33 새들은 숲의 파수꾼들이다. 새들은 자신들이 사는 구역에 경보를 발한다. 우리는 비상경보처럼 허공을 가르는 그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숲속으로 침입한 인간은 숲속 풍경을 교란하는 거소가 아울러 많은 소음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그 소음을 들으려면 그저 조용히 침묵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할아버지의 침묵은 오랜 훈련과 체험에서 나온 기술과 재간의 상징이다. 그분은 자신의 부족을 위해 추적자이자 사냥꾼이면서 동시에 주술사로 일했던 분의 손자였다. 릭과 나에게 그분은 숲의 신령이었다.
지속 가능한 자연 생태 농업의 활로를 찾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숲에 그 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저 사고방식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자연 생태 농업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개념으로 확고히 갈아타는 작업에 매진할 때이기도 하다.
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오십이 된 지금, 도심 아파트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장인의 삶을 평생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람들 속에서 사는 삶, 곧 너무나 오래전에 생활이라는 늪 속에 빠져 이미 화석화되어버린 사람들에 의해 영위되는 삶만큼 깊고 위험한 늪은 다시없었다. 아직도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숲으로 틀어야 한다. 숲으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귀산촌을 위한 강력한 모티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접근해야만 하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간다. 선택을 하고 선택에 의한 책임을 져야 할 때이다.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려 노력하는 자는 인간의 삶에 있어 '자연스러운 지구여행'을 순항할 것이다. 한번 다녀가는 인생 여행길이다. 두려움에 떨면서 살다 갈 필요가 없다. 깊은 산속 바위틈 속에서 우주 속의 소박한 자기 역할에 만족하며 사는 이름 없는 작은 풀꽃을 살아가자. 모든 욕망의 업보를 뒤로하고 명예욕까지 내려놓게 되는 수행의 과정이다. 지리산이 눈에 밟힌다. 그러면 지리산으로 가서 살면 된다. 지리산 속에서 숲과 만나는 것이다.
P11 눈이 조금 내린 어느 겨울날, '나'는 우유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가 검은 방울새라고 하는 조그만 회색 새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나는 검은 방울새의 실루엣을 좋아한다. 그 새의 머리는 뒤로 돌아갈 때 동작이 너무 유연해서 마치 크롬으로 도금된 것처럼 희게 번뜩이곤 한다. 새들은 늘 신비스럽다. 새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대기 속에 그 자치를 남기는 데, 내 코로는 추적할 수 없다. 하지만 새들이 지상에 남긴 자취들을 보면 나는 그만 거기에 혹 해 버리고 만다.
《숲에서 만난 발자국(톰 브라운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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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브라운이 쓴 ''숲에서 만난 발자국''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무슨 별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야릇한 장면이 나오지도 않지만 읽는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즐거운 책입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인디언 할아버지를 알게 되어 그분으로부터 발자국을 읽는 능력을 훈련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훈련을 하게 되지요. 발자국만 보고도 어느 짐승의 발자국인지 그 짐승의 크기와 색깔과 상태가 어떤지를 읽어내는 기술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으면 저 자신도 문득 그 숲속에 작가와 함께 앉아 발자국을 더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읽은지가 무척 오래 된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내 아들녀석과 함께 본 토끼 발자국을 보니 문득 이 책이 생각이 납니다. 작가는 나중에 사람의 발자국만으로 범죄자를 잡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발자국에 그렇게 많은 정보가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겨놓은 숱한 발자국들이 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 하루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결코 무심할 수는 없다는 겸허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
| 어떤 책이건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질문이, 과연 이 책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것이다. 꼭 뭘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편하게, 작가의 삶을 대리체험 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자고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책 속에서 ‘깨달음’을 기대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니까. 인간문명이 더 발전하였다고 해서 인간은 얼마나 더 행복해 졌는가? 지난 1백 년 동안이 산업의 발달에 따른 불가피한 환경파괴는 지난 수천 년, 수만 년의 환경변화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현재 지구 곳곳에 돌출하는 홍수나 지진, 오존층 파괴, 질병 등의 재해는 많은 부분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로부터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은 늘 인간에게 많은 가르침과 경고를 계속해 왔으나, 인간은 늘 현실적, 경쟁적 욕망 앞에 자연은 후순위였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시골마을. 어릴 적 산 속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나는 꿩, 토끼, 노루와의 눈맞춤. 각종 새들을 따라다니고 짐승들의 발자국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한참을 고민하는 재미가 많았다. 서울에서 십년을 넘게 살면서도 늘 자연에 목이 말랐었다. 가족과 같이 자연을 찾는다. 야생화, 버섯, 민물고기 등등을 찾아 사진을 찍고 책을 통해 공부하며, 자연 속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식물이 개체수가 줄어듬을 느낄 수 있고, 오염지역에서 많아지는 식물들이 눈에 뛸 때는 가슴이 저민다. 발자국을 통해 수많은 사실을 통찰하고, 나아가 자연 그 자체, 더 나아가 우주를 통찰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이 감동적이다.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려 노력하는 자는, 인간의 삶에 있어 ‘자연스런 지구여행’을 순항할 것이라 기대된다. ‘因果應報’의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더 예쁘고 화려하고, 더 높고 더 빠르게 살려고만 할 때에도, 깊은 산속 바위 틈 속에서 우주속의 소박한 자기역할에 만족하며 사는 작은 풀꽃들에 감동을 하게 된다. 작가의 글 자체에는 실망이 있다. 글의 줄거리나 구성이 산만하고, 특히 자연을 통한 진한 자기 성찰이 아쉬웠다. 물론 전문작가나 명상가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또한 작가의 미숙한 표현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점도 있겠지만, 왠지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이 내내 들기도 했다. 아울러 지도나 그림을 통해 공간적 상상력을 구체화해줄 수 있는 시도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