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쿠지노 지음 /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출판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고를까 하다가 집어든 책이다. 순례라고 해서 책을 펴 봤는데, 역시 80일간의 세계일주보다는 약간 딱딱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는 않을까? 다른 책을 빌릴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다가 매일 여행기 책만 읽는 것도 편식은 듯해서 눈 딱 감고 빌려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도 많은 여행가, 시인, 가수 등 많은 인물들이 세계 곳곳을 순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국토순례라는 이름을 붙여 방학 때마다 참여를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과연 순례라는 말을 함부로(?) 붙여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에 일침을 놓는 역할을 한 책이 되었다.
솔직히 여행과 순례의 큰 차이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심히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마음가짐의 준비가 아닐까? 여행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감화되고 벅차오르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순례라는 것인가? 여행의 장소가 주로 유적지와 문화재 같은 곳을 가는 것이라면, 성지는 개개인마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장소를 간다는 것 정도? 따라서 순례의 목적지는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 될 수도 있으며, 목적지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 자체도 될 수 있다.
과연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제쳐두고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여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아직 허영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은 아닌가? 나에게 의미 있는 순례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허영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나의 진정한 첫 순례여행길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 중간에 있던 말이 생각난다. 현대인들의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너무 편하고, 너무 완벽하게 둘러보고 다닌다면 그것은 똑같은 인간, 똑같은 문화만을 낳게 되고, 여행에 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보러 가서 고생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공동체 훈련은 될 수 있어도, 개인의 것으로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또 고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인 ‘자신과의 극기’ 자체가 필요 없어지게 된 상황이 아닐까? 패키지로 편안하게 여행하는 것은 결코 순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유념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