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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에는 '동기'라는 거울을 비춰보고, 남의 일에는 '결과'라는 칼을 들이대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낙태를 위해 원조교제를 빌미로 돈을 훔쳐 달아난 열네살 여중생 시마자키 유키. 어머니, 내연남과 그의 두 아이를 죽인 간질환자 가지키 히데마루. 자기네 헛간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정신박약 쇼하치. 자위대에 들어갔다 퇴역한 뒤 은둔형 외톨이가 된 쇼하치의 조카 게이고. 환청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아버지의 목을 조른 쓰카모토 주야. 이들이 저지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인간쓰레기'가 따로 없다. 가령 최근 이슈가 된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도 이런 결과론에만 메달린 경우다. 그러나 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전후 맥락과 내적인 동기를 고려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들 모두가 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순진한 사람들이다. 시마자키는 의붓아버지의 계속된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 것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외려 차가운 무관심으로 방관할 뿐이었다. 히데마루는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전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히데마루의 아버지가 정신병 기질이 있었으니 히데마루의 간질도 결국 가족력의 혐의가 있지만 말이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는 쇼하치는 재주 많은 매형의 등장으로 온가족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자 홧김에 헛간에 불을 지른 것이 그만 옆집까지 태우게 된다. 다행히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병원에 들어온지 일년 밖에 안 된 게이고는 쇼하치의 조카인데 말을 잃고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주 씨는 전력회사를 다니다 정신병이 발발한 경우로, 강박적으로 신문에 나오는 운세 내용이 자신이 신문사에 투서한 내용을 도용한 것이라 믿는다. 종합하면, 가족의 냉대 그리고 전쟁과 성폭력이 이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정상인은 환자들에게 병명의 꼬리표를 붙인다. 정신분열증, 정신박약, 간질 등의 꼬리표는 다양한 개성과 역사를 지닌 인간을 정신병자로 균일화하고 사물화한다. 그러나 주씨의 말대로 정신분열증 환자라도 각각의 특이성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환자'라는 무미건조한 주홍글씨 말고도 환자 이상의 인간적인 인격과 품위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은 인간을 백인, 흑인이라 부르는 것과 별 차이 없지 않을까. 백인 중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듯 정신분열증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이래로 주 씨는 자신의 병명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황인종이라는 호칭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그렇다면 주치의도 역시 황인종일 텐데 싶어 약간이나마 불쌍해졌다."(107쪽)
"환자는 이미 어떤 인간도 될 수 없었다. 히데마루 씨는 요리사, 쇼하치는 머슴, 게이고 씨는 자위대원, 도 씨는 목수, 기모 누님은 게이샤, 스토 씨는 회사원, 박사는 의사, 데시바 씨는 다다미 장인 하는 식으로 전에는 다들 무엇이었다. 후데도 일한 적은 없지만 내과의원 집 딸이었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166-7쪽)
정신병자는 마음이 여리고 외부세계보다는 내면에 집착하기에 '식물'을 닮았다. 이외수의 표현을 빌면 '꿈꾸는 식물'을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병동 이름도 하나같이 난초, 국화, 모란, 벚꽃, 싸리, 동백, 복사꽃 등 식물 일색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정신병동이란 꿈꾸는 식물들을 돌보는 온실이 아닐까. 그리고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들은 화분의 흙이 다 마르기 전에 충분한 물을 주는 도우미들이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주야가 있는 곳은 벚꽃 병동이다. 여기서 그는 다른 환자들이 필요로하는 물건을 대주는 거간꾼 노릇을 한다. 이들은 서로 보듬어 주고 격려하며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히데마루는 서예와 도예를 통해서, 쇼하치는 사진을 통해서, 주씨는 하이쿠와 단카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 나간다. 결국 다섯 모두 정신과 병동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단지 꿈만 꾸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몸소 실천해 나간 경우를 증명해 보인 셈이다. 히데마루의 말대로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잠시 쉬어가는 숲일 뿐이다.
한국인이 '3'이란 숫자를, 중국인이 '8'이란 숫자를 좋아한다면, 일본인은 '5'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주 씨를 비롯하여 이들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 첫 계기는 덴만 궁의 매화구경이다.
"불그스름한 꽃그늘 아래 숨이 멎었다 늘어진 매화 지금이 한창 때"(86쪽)
"수줍어하는 소녀의 빰에 나란히 핀 백매 아스라이 흔들려"(165쪽)
후쿠오카 태생답게 저자는 다자이후 덴만 궁(天滿宮)으로 매화구경을 가는 모습을 세부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다. 여기서 히데마루는 전시회 도록을 사고, 쇼하치는 학업성취를 기원하는 빨간 부적을 사서 시마자키에게 선물한다. 요 부적이 꽤 영험한가 보다. 훗날 시마자키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병동에서 세 가지 큰 사건이 벌어진다. 발표회에서 주 씨가 연출한 연극을 무대에 올린 일이 첫번째 사건이다. 천국에서 죽은 어머니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들을 구명해준다는 내용인데 이 연극에 영향을 받은 구로가 그만 실종되고 만다. 구로는 제 어머니를 죽이고 병원에 수감된 환자다. 두번째 사건은 야쿠자 출신의 각성제 중독자 시게무네가 시마자키 양을 강간한 일이다. 세번째 사건은 히데마루가 시게무네를 죽여 재판을 받게 된 일이다. 돈으로 조카뻘 여중생을 성적 노리개로 삼으려 한 중년 남자나 시마자키 양을 강간한 조폭남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히데마루 재판 과정에서 주 씨는 그가 시게무네을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였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얼마만인가, 일본소설을 읽고 울어 본 것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이름마저 생소한 하하키기 호세이의 소설이 내 심금을 울렸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저자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우리네 정서와 궁합이 맞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쇼하치의 고기잡이 대회 이야기와 젊은 시절 주 씨와 유부녀 다에의 밀회 대목은 마치 김유정의 향토색 짙은 서정적 단편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핵심인물인 주 씨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고 일본에 오자 마늘 냄새가 난다거나 조선 사투리를 쓴다고 놀림을 받곤 했다는 얘기도 인상적이다. 이야기 초반에 시마자키-히데마루-쇼하치로 이어지는 옴니버스적 구성이 일단 병원이라는 서사적 무대로 바뀌고 나자 좀더 드라마틱한 인간 군상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저자는 소설적 긴장감을 끝까지 늦추지 않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정서적 공명의 울림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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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다.소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결심하게 되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부터 길가는 남자와의 잠자리까지... 여러가지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는 이제 중학생... . . 일단 우리와는 정서가 많이 다르다는 것과 함께 참.. 무서운 세상이다라는 생각을 짤막하게 해본다. 그녀의 사건 내용이 궁금했지만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한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던 책은 어느덧 정신병원 폐쇄병동으로 옮겨져있다. 폐쇄병동... 사실 책에 등장하는 정신 병원은 개방병동이다. 오래전 폐쇄병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감시할 필요가 없기에(?) 개방병동으로 운영된다. 환자인 주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외출을 하고 정기적으로 집으로가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같은 병원 환자인 사마자키양과 히데마루,쇼하치,게이고와 함께 가깝게 지내면서 소풍도가고~ 그들만의 추억들과 일상들로 바쁘게 보낸다.
정신병원.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일진데, 개방병동이라니? 그럼... 그 사람들이 왜 궂이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누군가 돈만 병원에 주고 신고만하면 사람을 폐쇄병동으로 데리고 간다는,,, 언젠가 들었던 나쁜 이야기들도 생각난다. 그래... 내가 보는 주인공들은 한치의 하자가 없다.
물론 순간의 실수로 어머니와 재혼남,자녀를 죽인사람.. 그리고 알 수 없는 환청에 시달려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 그리고 가족의 버림을 받고 불을 지르고 가출한사람,, 그리고... 원치않는 임신으로 탁태를 한 소녀... 입원 당시의 상황들은 ... 정신병자라고 판단 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자이지... 왜 정신병자라고 판단했을까? 그리고 그들을 왜 몇 수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병원 생활을 하게 했는가? 결론은 그들은 돌아갈 가정이 없었고, 반겨주는 가족도 찾는 가족도 거의 없었다.
힘겹고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 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들은 병동에서 나름대로 즐겁고 계획에 찬 생활들을 한다. 주씨,히데마루,쇼하치,게이고,, 그리고 사마자키양... 이 다섯은 오랜세월을 토대로 서로에게 우정이 쌓이고 가족보다 더 소중한 인물들이 되었다.
어느날... 쇼하치가 주씨에게 울먹거리면 충격적인 상황을 설명한다. 병동의 문제아로 소문난 '시게무네'가 '사마자키양'을 강간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말을 못하는 쇼하치는 늘 소지하고 다니는 카메라로 그 장면을 촬영해 두었다. 주씨.. 누구보다 사마자키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씨는...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주씨는 평소에 의지하던 히데마루씨에게 시게무네를 죽이겠다고 고백한다.. 그들이 정신병자라 한사람을 죽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 시게무네는 진정한 범죄자였고 정신병을 가장해 병동에 입원하여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고, 급기야는 강간까지 저지른 .... 병동 사람들이 모두 공포에 떠는 대상이었다. 히데마루씨는 주씨에게 먼저 자기가 시게무네를 만나보겠다고 한다. 휠체어 신세를 지는 히데마루씨를 데려다주니 주씨에게 얼른 가라고 한다. 자리를 피해달라고,, 몰래 숨어서 보던주씨.. 히데마루씨가 시게무네를 칼로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아.......... 그렇게 시게무네는 죽었고 주씨가 하려던 일을 히데마루씨가 해버린 것이다. . . 여기서 병동 환자들이 얼마나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사회나 가정에서 버림받은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하고 나인양 아끼는 모습을 보며 가슴뭉클함을 느낀다. 사마자키양은 책의 서두에 나왔던 낙태소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수차례 당하고 폭행도 당하고 그 결과로 낙태를 한 것이다. 그녀의 병명은 '등교거부' 정신치료를 요하는 것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병동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그녀또한 입원 환자들과 가깝게 지냈던 처지였다. 히데마루씨가 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엔 왜 그가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게 되었는지.. 너무자세히 써있다. 사실 히데마루씨는 과거에 사형집행을 당했고 무슨이유인지 살아서 이미 호적상에는 사망신고가 되어있는 목숨이 아깝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씨의 도움으로 휠체어 신세지만 병원생활을 오래도록 불편없이 해냈고, 사마자키양의 과거를 아는 것 또한 히데마루씨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픈 과거를 안고 치료를 받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마자키양... 그녀를 다시한번 절망의구렁텅이로 넣은 시게무네를 그는 정말 용서 할 수 없었던 거다...
병원 환자인 구로의죽음을 시작으로 주씨의 곁을 떠나는 동료들.. 쇼하치와 게이고는 삼십년만에 퇴원을 하고 히데마루씨는 교도소에,, 사마자키양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버린다. 주씨는 경제력도 있고 퇴원을 해도 되는 상황에 동생 부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결심을 한다.
그들을 받아주지 않던 가족들이 그들을 인정함으로써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십년의 세월이 이미 흘러갔지만....말이다.
병동에서 조차, 그리고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상황에서 조차 꿈을 잃지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박한 꿈,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소박한 꿈,,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디선가 현대인들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나는 자신할 수 있을까??....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을 느끼며 사마자키,히데마루,쇼하치,게이고,주씨의 행복한 삶을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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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랬다. '아, 폐쇄된 병동에서 벌어지는 엽기 살인 사건이겠구나.' 작가도 일본 사람인지라 정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그런 내용이겠거니 하고 앗싸를 외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어온 나의 내공(?)에 의한 짐작을 보기 좋게 뭉개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병동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긴 한다. 하지만 엽기 살인과는 거리가 먼, 아니 오히려 누군가를 지키려는 한 노인의 애정이 절절히 드러나는 비장하고도 엄숙한 살인이다. 아, 헛다리를 짚어도 너무 짚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정신 병원에 수용된 정신질환자들이다. 완전 폐쇄되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환자들도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하거나 준개방된 병동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왜 제목을 《폐쇄병동》이라 지었을까. 추리소설광인 나같은 사람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면서까지 말이다. 초반에는 제목이 주는 인상과 책 내용의 괴리감으로 '이것이 추리 소설인지 아닌지' 매우 헷갈려하며 읽었으나 후반부에 가서는 '폐쇄'의 의미가 어렴풋이 짐작되면서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책에서의 '폐쇄'란 공간적인 의미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 개인과 사회 사이의 단절을 뜻한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확실히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알 수 있다. 간질 발작으로 어머니와 의붓 아버지, 동생 등 4명을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병동에서 생활하게 된 히데마루씨나 끊임없이 들려오는 환청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까지 위협이 되어 입원한 주씨, 가족들에게 냉대를 받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병동에 수용된 쇼하치, 갑작스러운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쇼하치의 조카인 게이고, 그리고 의붓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다 낙태까지 경험한 뒤 등교거부증이 생긴 시마자키양. 이 중 쇼하치나 게이고, 시마자키양은 약간 예외긴 하지만 그 밖에도 정신 질환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하고 피해를 입힌 사례가 수없이 등장한다. 이쯤되면 사회에서 격리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이 병원인 것이다. 하지만 끔찍한 이들의 범죄와는 달리 소설속에서 묘사되는 병동의 생활은 정이 넘친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름 배려하면서 마치 추운 겨울,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붙어 온기를 나누듯이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밖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솔직히 주씨가 퇴원하는 과정에서 동생 부부가 보여준 모습에 나는 분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만약 나와 가까운 가족이 주씨와 같은 행동을 보이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느 날, '이제 좋아져서 퇴원하겠다' 라는 통보를 받으면 불안하고 당황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 아닐까. 주씨의 사정이 안타까우면서도 나름 동생 부부가 이해되기도 하는 양가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문득 나도 이런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고, 내가 피해를 입는 상황은 견디지 못하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괴로웠다. 히데마루와 주씨의 사연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마자키양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 히데마루씨나 그런 히데마루씨를 변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주씨와 시마자키양의 모습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니고,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다고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정신이 한때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처지에서 이들이 나눈 우정은 보석과도 같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내가 돈과 빽이 있을 때가 아닌,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인생의 바닥으로 추락한 이들이 배경과는 상관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보듬는 사연으로 내 마음을 움직였다. 유혈이 낭자한 엽기 추리극을 상상했다 완전 다른 길로 빠져 당황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묵직한감동과 울림을 주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주변 사람들이 두르고 있는 배경을 모두 걷어낸 뒤에도 그들을 지금과 똑같이 대할 수있는 그런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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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범시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책 <폐쇄병동>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이나 표지에서 풍기는 괴기스러움은 이 책에 없다. 병동이라고 해서 의학이나 병원에 관한 이야기도 거의 없다. 오히려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녹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신병동이라고 해서 정신에 이상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각박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정신적 상해를 입은 사람들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서로 보듬어 주고 격려한다. 그 중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낙태수술을 하고 입원한 여학생도 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환자 중에 조폭이 그녀를 다시 짓밟고 만다. 이를 알게 된 한 동료 환자(히데마루)가 그 조폭을 살해하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 책의 뒷부분은 그에 대한 재판 과정이 그려져 있다. 증인으로 다선 다른 동료 환자는 히데마루씨가 그 조폭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또 그 조폭이 살해되어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고 했다. 죽어야 할 자가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이 안정을 찾았다는 내용의 증언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이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판결은 없다. 그래도 저자 하하키기 호세이가 주려는 의미는 의연히 배어 있다.
최근 부산 여중생 살인사건 용의자가 잡혔다. 그 여학생 부모는 억장이 무너져 용의자를 살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이들이 그런 울분을 삼킬 것이 분명하다. 함무라비 법전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판결에 따라 흉악범이 가벼운 처벌만 받고 다시 길거리를 활보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악법도 법이지만 많은 사람이 잘못된 법이라고 여기면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가 바로 선다. 이 책은 이 같은 의미를 복선에 깔고 있다.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가 매번 성공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과는 다르지만 정의가 승리하는 짜릿한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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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본 책!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단편으로 이어져있는데 그것들이 주씨의 시선으로 다시 하나로 모여드는 구성이다.
감동적이라고 하기도 뭐할정도로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알게모르게 다른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던.
병원은 그저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고 말하던 히데마루씨의 이야기에 퇴원을 결심하고 나가는 주씨의 이야기.
어느 하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인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잊혀지고 또 상처 받고.
머리에 병이 생긴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쩌면 그것으로 몰아가는건 비장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아. 어려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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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수술을 받은 시마자키. 이들은 폐쇄병동에서 산다. 폐쇄병동이라는 장소는 폐쇄적이고 음침하고 왠지 멀리 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가족에게 상처 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현대인들에게 정신병은 흔하다고 한다. 따뜻했고, 순수했고, 희망이라는 것을 따라가는 긍정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삶에 지치고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던 요즘 '폐쇄병동'은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이었고,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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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정신병원 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우정과 희망들을 보여주고 있다. 돌아갈 곳 없는 정신병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은 개방되어 있지만, 사실은 감옥처럼 사방이 가로막힌 폐쇄병동에 불과하다. 여러 사정으로 이곳으로 환자들 중에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와 내연남, 가족들의 따돌림에 분노해 집에 불을 지른 정신박약아 쇼하치. 말을 잃고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 게이고. 환청에 시달리다 아버지의 목을 조른 주야.
하지만 주씨가 어느날 쇼이치의 긴급한 표정을 읽고 쇼이치가 이끄는 방행을 따라간다. 놀라는 히데마루씨는 사마자키양의 안부를 묻고는 시게무네의 주선을 부탁한다. 어느날 게이고,쇼이치의 초대를 받고 집에 놀러 온 다음 날에 히데마루씨의 편지가 도착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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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이미 어떤 인간도 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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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제목이나 표지를 보니 작풍이 어렴풋이 연상됐는데 막상 다른 풍경이 펼쳐져서 얼떨떨했던 작품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작가의 노림수였는지 모르겠다. 표지는 둘째 치고 - 저게 원서의 표지이기도 하다는데 일본인들 책 표지 꾸미는 센스는 늘 느끼지만 정말 이상하다. - 폐쇄병동, 정신병동을 떠올리노라면 밝은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한 작품은 종종 접하지만 밝은 이미지만큼이나 어두운 이미지도 유감없이 그려서 인식 자체에는 그다지 변함이 없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현직 정신과 의사 작가의 작품이라니 흥미로워 보였지만 뭐 어차피 비슷비슷한 작품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신파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거나 통원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등장하는데 환자치곤 너무 멀쩡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너무 환자 같지 않아서 섣불리 몰입이 안 될 정도였는데 이게 우리의 편향된 인식을 꼬집기 위한 설정이었다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작중의 환자들은 환자 같지 않은 몰골을 하고 있다. 간질이나 당뇨와 마찬가지로 간헐적으로 터지는 증상이지만 그게 '정신적인' 증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면 색안경을 끼게 되는 세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또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들 간의 드라마로 하여금 일종의 반성마저 들게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뿐이라면 우리가 색안경을 껴도 정말 두껍게 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는 그렇게 몰입도가 높지 않았다고 본다. 일부분은 신파적이고 일부분은 또 상투적이지 않았나 싶다. 여러 캐릭터의 군상이 긴밀하게 연결됐다기 보단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할 때 적당히 나열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전개가 살짝 느닷없거나 빨라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더욱이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서 쓸 수 있는 작품이란 느낌도 그리 강하게 들지 않았다. 이른바 현장감이랄지, 전문적인 부분에서 해당 직업의 종사자이기에 묘사함에 있어 수월했던 부분이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유달리 통찰력이 발휘되거나 돋보이는 전개가 미미했던 게 살짝 아쉬웠다. 기대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소설이 겹쳐 보였는지 몰라도 약간 과대평가 받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따뜻한 시선이라든가 주제의식은 괜찮았지만 '읽다가 눈물로 적셔질' 만큼 감동적이었다는 평엔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뭉클한 나머지 여운에 젖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는 정도가 이 작품에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성의라 할 수 있겠다.
인상 깊은 구절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 167p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 33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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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사회와 단절되고 사회와 다른 눈을 보게 되는 공간이 있다. 이러한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이며 어떤 삶을 통해 온전하게 그들의 눈높이를 맞춰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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