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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박권일, 김학준, 허윤, 위근우, 이준일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어인 "혐오"를 테마로 쓴 글을 엮은 것이다. 사실 혐오라는 단어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인터넷 댓글 등에서만 보았을 뿐, 책에서 본 건 처음이다. 그래서 혐오를 단순히 지나가는 유행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심층적인 글을 써서 책으로 발간한 것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디자인 자체도 파격적이다. 보통의 책들에 없는 구멍이 있어서 끈을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은 반드시 책꽂이에 있어야한다는 선입견이 이 책을 통해 깨진 것 같다.
그렇다면 차례부터 살펴보겠다. 박권일의 "혐오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김학준의 "순수함에의 의지와 정치혐오", 허윤의 "지금 가장 정치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 위근우의 "대중문화에서 여성혐오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준일의 "혐오표현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려있다. 제목만 보아도 무언가 마치 잘 다듬어진 논문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글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느꼈다. 복잡한 각주나 어려운 용어만 없을 뿐 하나같이 논리적으로 잘 쓴 글이라 읽는 동안 저자들의 논리에 푹 빠져들어갔다.
먼저 박권일은 <88만원 세대>, <소수의견>,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의 저자이자 사회비평가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특히 박권일 저자에게 가장 먼저 눈이 갔다. 박권일은 이 글에서 헬조선론이라는 혐오 담론이 당연시하는 어떤 견제를 문제 삼는다. 그것을 이데올로기, 망탈리테, 마인드셋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명명은 아무래도 좋다고 한다. 어쨌든 그게 무엇인지 짚어낼 수 있다면 오늘날 공동체의 결함에 대한 구성원의 대응이 왜 주로 혐오일 수밖에 없는지, 또 헬조선 담론의 혐오가 다른 여러 혐오 담론과 어떤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서는 혐오가 만연하는 현상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써 놓았다. 헬조선,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와 같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글이다.
아르스프락시아 미디어분석 팀장인 김학준은 이 글에서 최근에 이르러 확산된 새로운 형태의 정치혐오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21세기적 정치혐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한 사건을 든다. 그것은 2008년 촛불집회인데 김학준은 이 2008년 촛불집회는 1987년 이후 가장 성공적인 대중동원을 이뤄낸 시위인 동시에, 외부 세력이라는 유령이 시민들에 의해 제기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최근의 사회운동의 난점을 표상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8년 이래 현재까지 한국 시민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정치혐오의 근원을 '촛불화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이화여대 국문과 초빙교수인 허윤은 한국의 인구 재생산 담론에서 여성은 언제나 수단이자 도구일 뿐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썼다. 그러니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이기적인 여자들'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빈곤 도시 여성은 비가시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결혼하지 못하는 남성을 걱정하는 것 역시 남성 중심의 재생산이 인구 확장의 유일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사회 국가는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여성혐오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민주주의의 위기로 설명되지 않고 재생산의 위기로 연결된다고 한다. 허윤은 지금 가장 정치적인 것은 여기에 있다고 하며 이것이 혐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웹매거진 <아이즈> 기자인 위근우는 버라이어티, 코미디, 웹툰, 인디 신 등 여성혐오로 문제가 됐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최근 불거진 언론의 젠더 의식 부족 역시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라고 썼다.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문제 삼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헤럴드경제>는 수면내시경 환자에 대한 의사 성추행 기사에 '대장내시경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가 비판에 결국 사과했다고 한다. 기사 가이드라인을 비롯한 기자의 직업윤리는 선의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와 모래의 비율을 맞추는 것과 같은 전문직으로서의 테크닉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준일은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그것을 굳이 그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해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인종, 피부색, 국적, 성별, 성적 지향 등 특정한 소속을 가진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선동하여 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의 동등한 인격과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겨 사회 전체의 질서와 안전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고 썼다.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해악은 법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제거될 수도 있지만 법의 개입 없이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해소될 수도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노오오오력, #흙수저, #극혐, #메갈리아, #헬조선, #촛불집회, #위마드, #열정노동 등과 같은 것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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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들려온 김치녀, 된장녀가 시발이었나 보다. 이제는 '~충'이 붙는 신조어가 계속 늘고 있다. 모두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표현인데 듣기에 안 좋을 뿐 아니라 의문이 든다. 상대방을 그렇게 부를 정도로 혐오할 필요가 있을까. '말은 곧 그 사람'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을 혐오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서평단에 신청하며 알고 싶었던 점이다.
[혐오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라고 분석하는 박권일은 현실 비판으로 인식돼온 헬조선 담론을 지배하는 감정이 강렬한 자국 혐오라고 말한다. 혐오는 문명과 미개로 이분화하는 식민주의적 감정이다. 우열의 논리가 급진적 형태로 내재된 과잉능력주의에서 무능력자와 저능력자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혐오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혐오는 능력자와 비능력자라는 자의적 구분을 결정적이고 극복 불가능한 차이로 보이게 함으로써 체제의 부정의를 은폐하는 데 기여한다. 평등을 지향하는 노력보다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사회적 산물이기도 하다. 혐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열의 논리, 과잉능력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민주주의의 갱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순수함에의 의지와 정치혐오]에서 김학준은, 2016년 이화여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 대학사업'반대 투쟁을 전개한 학생들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성주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은 외부세력의 개입이 운동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운동주체의 순수성을 강조했다고 평가한다. 두 경우 모두 '외부세력' 개입이라는 프레임에 대한 공포를 보여줌으로써 님비와 '학벌주의'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8년 이후 정치혐오를 잉태한 촛불화과정이 행위자의 합리성과 순수성, 정의감에 의지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통한 최적의 이익분배라는 정치의 본질을 부정하며 대의정치의 원칙을 상실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정치혐오의 두 얼굴] 중에서 시민운동에 대한 일베의 반감은 '평범한 국민'과 대치되는 상징으로서의 '촛불 시민'에게 냉소를 보인다. 그들에게 시위는 반칙이고 노력의 가치를 무산시키기에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주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일베가 촛불을 계승하는 방식이다. 또 진보적 시민의 촛불화는 정치 주체인 시민의 정의로움과 순수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로 인해 지리멸렬을 유발할 수 있다. 정치적 소비주의와 운동권 혐오로 구체화된 정치적 개인주의는 순수함에 기댄 촛불화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인 '갈등, 경쟁, 리더십, 조직'의 한계와 좌절이라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지금 가장 정치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에서 허윤은, 여성혐오의 기저에 있는 빈곤 청년의 사회적 불안이 구조적 원인이라면, '남성혐오'로 일컬어지는 '메갈리안 미러링'의 구조적 원인은 빈곤 여성청년이라고 분석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는 역사적, 정치적 구조에 대한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 가부장적 남성성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남성 청년의 약한 남성성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기회이자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혐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한 가지 방법이다.
[언론의 보수성은 어떻게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나]에서는 언론의 젠더의식 부족을 비판한다. 의사에게 성추행 당한 수면내시경 환자의 기사를 [헤럴드경제]는 '대장내시경女'라는 타이틀을 달아 여론의 화살을 받았다. 만화 [뷰티풀 군바리]는 여성을 대상으로 가학적 욕망이나 쾌감을 군대라는 공간을 이용해 시각화하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다. 그 외에도 여성 납치 범죄을 연상시키는 표지를 내보낸 <맥심>이나 중식이밴드를 비롯한 인디 음악계의 젠더 감수성 부족은 동시대의 윤리의식에 뒤처진다는 비판과 함께 보수적이고 무능한 언론 전체의 개선을 요구한다.
[혐오표현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에서 이준일은, 혐오표현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저하시키는 발언이므로 혐오표현을 한 사람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식민지 아래서 일본군의 성 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을 '원정녀'라 부르고, 광주민주화항쟁 중에 저항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부르는 언행은 역사를 부정함으로써 특정집단을 혐오하는 발언으로, 19대 국회에서 표현의 자유에서 배제하면서 처벌하는 벌률이 발의돼 있다. 혐오표현에 대해 처벌 가능한 국가들로는 독일, 뉴질랜드, 남아프키가공화국의 사례가 있고, 혐오표현을 처벌하기 위해 불법적인 차별행위로 규정하는 국가들은 벨기에, 유럽연합, 스웨던, 불가리아 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에 증가하는 혐오표현이 단지 비뚤어진 개인의 감정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위기와 허울뿐인 가부장제의 남성성에 기대 살아온 구조적 원인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혐오의 극복은 불평등을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상대화한 약자를 인류애적 차원에서 공감하고 연대를 통해 주체화를 모색할 때 가능하다니 갈 길이 멀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혐오' 현상을 바로 알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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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방송을 듣다 보면 알지 못하는 말들을 접할 때가 많다. 방송에 나올 정도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어지면서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관심이 적어서 그렇다고 한다든지, 아님 구세대라서 그런다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다. 언젠가는 '밀당'의 뜻을 몰라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썸'이 뭐냐고 물어봤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한 말들이 대충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긴 하지만, 별도로 새로운 말들을 배워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씁쓰레하기만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왜 이렇게 별도의 의미를 담은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을까?
우리가 어렸을 때도 은어나 속어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꼰대'나 '짭새'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담론과 별개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을 향하여 대놓고 반감을 표출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그런 혐오를 담은 말들을 들으면 그 사람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은
너무나도 많은 혐오단어들이 난무한다. 어쩌면 사회에 만연된 불평등과 불의에 대한 절망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꼭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혐오에 대한 실체를 분석하여 파악하고자 했다는 이 책에 대해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 [#혐오_주의]는
우리사회에 횡행하는 혐오의 감정을 사회, 정치, 여성, 대중문화 그리고 법이라는 범주에서 각기 살펴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사회비평가인 박권일이 말하는 '혐오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는 먼저 혐오와 분노를 구분한다. 분노는 비난을 하든, 보복을 하든 주체로 하여금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인데 반하여, 혐오는 그것이 나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함과 두려움 때문에 주체를 대상과
가능한 멀리 떨어뜨리려 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사회에 넘실대는 혐오는 바로 우열의 논리이며, 그것은 과잉능력주의라는 토양에서 배양되어 확산되어온 감정이라고 말한다. 과잉능력주의란
평등을 어떻게 달성할지 보다 불평등을 어떻게 정당화할지에 몰두해온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라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혐오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헬조선'이나 '수저론'과 같은 담론이 사회모순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오면서도 왜 분노가 아닌 혐오의 감정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혐오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혐오는 증상이다. 증상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혐오를 사회악으로 지목할 게 아니라 혐오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찾아내야 한다." (10쪽)
우리사회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여성혐오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우리사회 가부장제 문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허윤 이화여대 교수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남자는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오래된 관념 속에서
자라왔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을 패배자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발이 여성혐오로
나타나는 것 일 게다. 또한 가부장적 문화는 여성을 단지 성적 대상으로만 치환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봐야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여성비하 논란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허윤 교수는 "한국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바탕으로 한 남성연대로 구성된 사회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성은 군사적인 지식을 많이 알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여자를 잘 아는 것을 통해 구성된다." (104쪽)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라오면서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러한 연대를 토대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기에 군가산점과 같은 논란에서 보듯 자신들의 연대를 침범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것이지 싶다.
끝으로 이준일 교수는 이런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처벌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혐오표현의 처벌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예로 들어가며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우리도 그러한 법적 규제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동감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혐오가 공공연히 판을 치는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바꿔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혐오감정 밑바닥에는
좌절과 실망과 사회모순에 대한 반발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시태그'란 문화현상으로 진화한 SNS 검색용 메타데이터라고 한다. 소셜 키워드를 통해서 사회현상을 읽고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미래를 탐구한다는 해시태그 시리즈, 그 첫 번째 키워드인 '혐오'를 읽고서 두 번째 키워드는 무엇이 될지 궁금해진다. 다음 편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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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했다.~충이라 규정되어 불리어지는 표현들에 대해서.단순히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않은 불편함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그리고<혐오_주의>를 읽으면서 궁금함을 풀게 되게되었다.'혐오는 원이 아니라 증상이다' 라는 박권일님의 글을 통해서말이다.저자는 근본적인 매커니즘을 이해할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헬조선'을 예로 설명해주었다.'헬조선'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된 이유와 함께 헬조선이란 말이 혐오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그러니까 혐오는 혐오로 머물러야 할 것이 아니라 분노의 대상으로 가게 될때 진정한 변화가 생길수 있으며 사회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지옥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자"고 말하면 "부질없다"는 냉소,"씹선비질'이란 조롱이 날아든다.헬조선론은 현실을 비난하면서도 현실을 바꾸려는 집단행동과 선전선동을 거부한다.이 담론은 시스템의 민낯을 폭로하고 붕괴를 예언하는 통렬한 묵시록처럼 보이지만 실은 체제의 결함과 오류를 어쩔 수 없는 재난의 스펙터클로 만들어 위악적으로 소비하는 유희일 따름이다.사회 모순은 자연재해처럼 묘사되고 나와 무관하게 발생한 사태로 타자화된다.헬조선 담론이 혐오 담론에 머무는 한 그건단지 '체제를 유지하는 파국론'일 수밖에 없다> /27 혐오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노와 혐오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을 읽으면서 촛불집회를 생각하게 되었다.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똑같다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이는 경우다.참여의 여부는 물론 자유다.그러나 저자의 말대로라면 후자의 경우가 헬조선이란 말을 자조적으로 더 많이 사용하는 이들일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혐오의 시선에 머물지 않으려면 분노해야 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건 저자의 말처럼 혐오는 사회의 현상을 반영하는 증상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원인이 있었고,그 원인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혐오_주의>에 대한 원인을 읽고 나니 다음 주자로 등장한 저자 세 분은 각각 '정치혐오' 와 '여성혐오' 그리고 대중문화에 서 드러난 혐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정치혐오 부분에서는 그 시작을 2008년 촛불집회부터 시작되면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하게 된 이유 그리고 그 영향이 최근 이대생들의 집회현장에 대한 설명을 이야기 한다.그것이 가져온 긍정과 부정적인 시선"순수성 앞에 민주주의 핵심인 시민이 증발하는 것이다.때문에 외부 세력을 철저히 차단하려 노력한 위의 두 케이스 역시 님비와 학벌주의 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42 2008년 촛불집회와 2016년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작된 농성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로썬 이대에서의 농성 시작이 결국 최순실농단의 기폭제가 되었음을 알고 있기에 학벌주의 라는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지 잘모르겠다.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 당시를 다시금 생각해보니,나 역시 뭔가 허탈감은 있었던 것 같다.저자는 그 박탈감이 사대강문제와 최근 세월호문제까지 정치에 대한 혐오가 분노할 대상에게까지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라고 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최근 다시 일어난 촛불의 힘으로 탄핵소추가 가결된 것을 보며 시민들 스스로 앞으로는 조금더 달라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그런데 혐오데 대한 원인과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결론은 도대체 뭔가? 라는 생각이 들때쯤 가장 평범한 아니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존중'과 '공감' 불의에 대한 혐오라면 함께 분노로 표현하면 되는 거였다.남성혐오라든가,여성혐오와 같은 현상들은 서로가 적이 아닌 인간대 인간의 수평적 시선으로 존중과 공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혐오'라는 말을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거.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일정부분 법의 도움도 필요할지 모르겠다.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표현의 자유등을 내세우는 것 같으나,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락되어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제목이 주는 무게때문이었는지 상당히 두꺼운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자그마한 책이라서 우선 놀랐다.그러나 가벼운 책의 부피와 달리 다루는 주제는 깊었고,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정치혐오에 대해,여성혐오에 대해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혐오에대한 시선은 책의 저자와 다른 시선을 가질수 있다.그러나 적어도 책의 첫장과 마지막장에서 언급된 글 만큼은 혐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생각할 부분을 짚어준 것 같아서 재미나게 읽었다.(그런데) 책 위에 구멍을 자그맣게 뚫어놓은 이유는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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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혐, 흙수저, 헬조선, 김치녀, 한남충 등 인터넷상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혐오표현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던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저 유행하기에 재미로 쓰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혐오를 느껴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혐오표현들을 접하면 기분 나쁘다,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닌가, 하며 넘겼을 뿐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혐오문제 대해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치, 사회면기사를 보면 '미개한 헬조선을 탈출해야 한다.'라는 댓글을 종종 발견한다. 물질만능주의와 과잉능력주의로 인해 젊은 사람들은 금수저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노력을 해도 자신의 처지는 앞으로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위와 같은 말로 한탄을 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기성 세대의 반응은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남 탓만 한다' 등 그들의 고민과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런 헬조선론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열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과잉능력주의와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야 한다고 한다.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공평한 처사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과도해지면 혐오를 유발한다는 점이 의외였다. 2016년 5월 17일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한 남성이 20살의 젊은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인터넷상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됐으며 논란이 과열되어 남, 여 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여성혐오의 원인으로서 가부장적 남성성의 위기를 꼽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 기사, 웹툰, TV프로그램, 잡지 등의 대중매체에서 아무런 자각없이 벌어지는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여성인 나조차도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여성혐오적인 표현이자 성차별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여기거나, 반드시 결혼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해야하는 존재, 여성은 반드시 ~해야한다와 같은 남자들이 언어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쳐나가야 한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혐오표현은 직,간접적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 꼭 필요하다. 혐오표현은 직접적인 법조항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서 처벌한다고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혐오표현 마저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또한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의 경우 특정 한 사람을 지칭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 분산된다는 이유로 처벌이 어렵다. 그렇기에 혐오표현으로 인한 피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적 규제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P.108 사회는 혐오를 통해 실제로 견뎌내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보다 잘 회피할 수 있게 된다. P.109 여성혐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직업과 노동권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투쟁이며, 질서와 불화를 일으키는 정치의 장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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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 출판사의 #해시태그 시리즈는 특정한 키워드를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책이다. 첫 번째 해시태그는 ‘#혐오_주의’라고 한다. 작년 12월에 나온 책인데, 좋아하는 교수님이 강의 교재로 쓰신다기에 친구에게 빌려 읽어보게 되었다.
'혐오'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총 다섯 분의 짧은 글들을 묶어낸 아주 얇고 가벼운 책. 책 사이즈 자체도 별로 크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담아내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 여성혐오 등을 문화적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러한 혐오표현의 법적 처벌 문제에 대해서까지 다룬다.
나는 <순수함에의 의지와 정치혐오>와 <대중문화에서 여성혐오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히 위근우 기자님의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글투가 맘에 쏙 들었다. 아마 정치혐오는 시의성 있는 문제고, 여성혐오는 저에게 있어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문제라 재밌게 읽혔나보다.
'딸바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은연중의 권위와 혐오에 대해 읽었을 때에는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자고 만들어 놓은 예능프로그램들을 보며 나만 웃지 못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이 불편함의 원인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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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글을 쓰는 분들의 글이다. 혐오에 대한 의미와 사회학적 고찰부터 기안84의 다양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획기적인 책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말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것과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이다. 5명의 저자의 시각만큼 다채로운 글이 있지만 어느 한 주제로 도식화 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각 전문가들의 시각을 존중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 현상을 고찰하면 좋을 듯 하다.
헬조선에 대한 고찰과 어원의 시작부터 한동안 핫이슈였던 맥심의 여성에 대한 시각도 실려 있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의 규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편타당한 상식에 접근한다. 촛불시위, 소수의 목소리, 노동자의 삶,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예능프로에서의 예쁜 여성을 다루는 방식과 성차별, 그러한 장치들에 대한 고찰도 좋았다. 무엇보다 기억할 만한 내용은 병역 문제를 다루면서 제기한 폭력에 대한 고찰 부분이었다.
"기안84가 본인의 의경 복무 경험을 살려 그린 <노병가>로 증명했듯, 군 내 폭력 고발과 비판은 현실 그대로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여성이 군대를 가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면서까지 실제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다면, 그 우회의 이유가 작품 안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뷰티풀 군바리>는 실제 의경들이 겪었던 폭력을 그대로 행사하거나 당하는 여성들을 보여줄 뿐, 여성들이 만드는 군대문화는 남성과 어떻게 다를지, 그들의 폭력은 어떻게 발현될지에 대해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다." 129쪽
이 담론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모든 여성을 다루는 내용들이나 글들은 일정 수준의 이상을 담보하지 않는다. 대안도 없고 단순히 재미와 말장난식의 나열로 예능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가쉽거리로 혐오주의를 다룰 것이 아니라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때 이 책은 유용하다. 아쉬운 책은 평소 알마의 책들을 좋아하는데 이번 판형은 너무 작고 편집이 엉성했다는 점이다. 내용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만, 대안까지 고찰하진 못 하고 제기 수준이어서 4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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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단어가 이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있다. 아니 이미 예전부터 혐오라는 단어는 공공연하게 인터넷에서 서서히 퍼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천천히 대중적으로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려 혐오라는것에 대한 특별한 반감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혐오라는 단어를 발견하게되고, 쓰는 자신을 볼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혐오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혐오라는 단어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며 어떻게 처우해야하는지 배우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죽어있던 내 머릿속을 깨우는데 일침을 가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차례를 보면 #혐오는_원인이_아니라_증상이다. #순수함에의_의지와_정치혐ㅁ오 #지금_가장_정치적인_것은_여성적인_것이다 #대중문화에서_여성혐오는_어떻게_작동하는가 #혐오표현을_법으로_처벌할_수_있을까?
그동안의 책들과는 비교불가! 정말 꼭 여성뿐만 아니라, 강력히 남자들도 읽을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차례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무슨 주제를 다뤘는지, 어떤 소통을 원하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며, 혐오라는 단어와 말에 귀기울여야하는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책이자 고마운 책이다.
친구들하고의 문자, sns에서 등장하는 '헬조선' 헬조선이란 헬과 조센의 합성어다. 지옥조선 즉, 지옥한국이라는 말이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헬조선이란 단어를 웬만해선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 왜냐하면 조선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뭣도 모르고 그동안 웃으면서 썼다니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의미가 확장되고 나중에 언론 등을 통해 순화되어 정착했다고는 하나, 처음 원래 이말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또한 헬조선뿐만 아니라, 노력 그냥 노력도 아닌, 노오오오력 도 생겨나고 흙수저, 금수저 등 새로운 신조어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쓰고있는 상황이다. 좋은 뜻은 없고 점점 사회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생겨나니 웃픈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재도 이뤄지고 있지만, 이제 작년이 되어버린 2016년 집회의 장면들이 하나의 이슈이자, 결코 무시해서도 넘어가서도 안되는 집회의 장면들이 뉴스와 티비 신문 등을 통해 속속히 매일같이 보도 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사진 속 문장들은 바로 그 유명한 이화여대 집회현장이 적혀져있다. 정말 뜨거웠던 여름 그 폭염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일어난 이화여대생들의 본관 점거과 총장'감금'사태 정말 뜨거운 이슈이자 나중에는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잊어서도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이뤄지기 힘든 여름 단비와도 같은 첫번째 승리! 그 승리로 인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촛불집회인 2016년 대통령 퇴진운동의 첫걸음이 되었다. 또한 정치혐오라는 생각과 말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본문 中 혐오는'증상'이다. 증상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어선 곤란하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감기라는 증상이 나타나고 우린 그 증상을 처음에 가만히 지켜보며 관찰한다. 왜냐하면 단순한 감기일수도 있고, 심각한 감기라서 병원에 가야 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것처럼 혐오 또한 증상이니, 너무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국이 뒤숭숭하고 좋지 못하고있고,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혐오라는 태그가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붙여져 쓰이고 있는데, 더이상 그렇게 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혐오를 나쁜것이라고 생각하고 볼게 아니라, 왜 그 혐오가 만들어지는지를 찾아내는데 초점을 둬야하지 않을까 싶다.
혐오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또한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해악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느껴지고 있는 현실에서 구체적인 법적 규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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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주의 박권일 외 ![]() ![]() ![]() '노오력', '헬조선', '문명', '미개' 등등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신조어들이 있다. 이 신조어들은 젊은 이들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라서 그들의 입장을 반영한 단어들이 많다. 노오력은 노력을 초과한 상태이다. 그저 노력만 하면 잘 되지 않겠냐는 기성세대들에게 제일 말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노오력은 자기 착취의 임계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오력과 함께 흙수저, 금수저도 최근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는 신조어이다. 젊은이들의 힘을 빠지게 만드는 '노오력'과 함께 기성세대를 말하는 단어로는 '개저씨'가 있다. 아저씨와 개의 합성어로 기성세대의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혐오주의에서는 혐오, 진보 정치, 여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진보를 겉으로 보여주지만 사실 그 속으로는 여성혐오가 들어가있는 것이 많다. 2010년대 인기를 끈 육아예능에서는 딸을 성별화 하면서 보호한다. 어릴 때는 남녀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여자는 조신해야 해. 남자는 울면 안돼 라며 오히려 남녀 차별을 강요한다. 딸은 인간이기 이전에 '여자'로 정체화 되고 이는 성인인 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여자에 대한 차별은 언론 뿐만 아니라 인디밴드나 문화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나 드러나는 성차별적 발상이 인디밴드에서 보이는것 뿐이다. 회사생활에서도 이런 성차별은 여전하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남자들만 있을 뿐이다. 기성세대와 청년들, 아직도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헬조선에서 #혐오주의가 없어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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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된 것은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은 후부터지 않을까 싶다. 일반인들이 '혐오'라는 말을 입에 담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고 SNS를 즐겨하지도 않았기에 단어의 의미는 알되 나와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만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강남역 살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여성비하, 혐오라는 단어가 SNS에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이슈화된 페미니스트적인 생각과 연관되어 더욱 확대되어진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 '혐오'라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이 혐오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체로 하여금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인 분노와 달리 혐오는 주체를 대상과 가능한 멀리 떨어뜨리려 한다. 동물적인 것, 열등한 것이 나를 오염시킬까 꺼림칙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 이것이야말로 혐오라는 감정의 특성이다. 라고 사회비평가인 박권일씨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혐오란 단어와 함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국가적 테두리 형성이 전혀 안되고 있는듯한 느낌의 '헬조선'이란 단어가 전국을 강타했었다. 신문, 뉴스 기사는 물론 리더십 부재에 관한 서적에도 꼭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단어인데 그저 썩어빠진 나라에 대한 구원의 반어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또 다른 헬조선의 의미를 보며 꽤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전형적인 이분법적 식민주의 사고방식인 '미개한','문명'이라는 말이 헬조선 담론과 밀접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혐오는 다른 어떤 정서보다 식민주의적인 감정이다.라는 부분에서 몇번을 다시 되뇌어 읽어보게 되었었다. 뭔가 아득히 멀리 있는 사물을 애타게 찾는 듯한 느낌과 미세한 충격에 연달아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혐오'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이 있긴하지만 책의 얇은 두께감만 믿고 긴장을 풀었던게 문제였다. 첫 장부터 강하게 다가와 뒤흔들어놓는 통에 정신을 자꾸 놓게되는 혼미함마저 느끼게 됐던 <#혐오_주의>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임팩트가 가장 쎈 책임은 분명한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