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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식뿐 아니라 편독도 심하다. 태생적으로 극단적인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다. 굳이 장단을 따지자면 애정하는 것에는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퍼붓지만 반대의 것에는 거의 유아 수준의 지식 정도만 가지고 있다는 것. 존재라도 알면 다행일 정도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구구절절하게 느낀다. 사회생활의 연차가 켜켜이 쌓이면서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인생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으니 바로 '독서' 이다. 비관과 염세의 아이콘인 내가 지금까지 별탈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팔할의 버팀목은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행하지 않은 자에게 독서란 옵션일 수 있겠지만, 나처럼 불우한 사람에게 책은 필수적 동반자인 것이다. 게다가 남다른 호기심은 또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책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이런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편독만큼은 없애보고 싶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오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억지로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최초의 일이었다. 어떤 글도 가치없는 것은 없으니까. 내가 어떤 책을 통해 위로받은 것처럼 내가 관심없던 어떤 글또한 누군가를 구제했을 것이다. 아무리 비판받는 글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작가 본인만큼은 살려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직접 체험하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은 없으니까. <창작과 비평> 계간지는 이런 나의 물음에 아주 좋은 답안지가 되어주었다. 굳이 여러 권의 책을 살 필요도 없다.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개성넘치는 글들을 뷔페처럼 한 곳에 모아 내미는 친절한 책이다. 이미 유명한 혹은 이제 막 발을뗀 새내기 작가들의 시, 소설, 에세이 등 신작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논평, 토론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소파 위에서 편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이래도 되나 미안할 지경이다. 삶이 힘든 자여, 아직 자신의 독서취향을 모르겠는 자여, 창비로 오라! #창작과비평 #창비계간지 #창작과비평계간지 #창비2020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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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든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예술작품에서 과거사를 다루어야만 하는 이유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나처럼 학문적으로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경우,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일부러 전원을 꺼버리고 싶은 상황들도 제법 있다) 반드시 알려져야만 하는 사건들이 그냥 묻힐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좌나 우로 쏠리지 않고 정확히 팩트만을 드러내야 하는 뉴스나 신문기사 조차도 사실 명확한 중간 위치를 고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해당 매체 자체가 정치적 색깔을 지닐뿐만 아니라 기사를 쓴 저널리스트의 생각 또한 아예 배제할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떤 단어에 특히 힘을 주고 있는지 어떤 요소는 어물쩡 거리며 설렁설렁 넘어가고 있는지. 그야말로 전문적인 선수인 그들은 교묘히 은폐하거나 부풀리는 등의 작전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의 여론몰이에 몹시 능하다. (뭐 여기서 언론비판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하물며 문학작품이야 어떨까! 혹자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사실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경우가 있지만 르포문학이 아니고서야 그것은 픽션이다. 아니, 르포문학조차도 허구적인 내용은 필수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창작이 가미되어야 비로소 문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극장에서 히틀러를 죽여버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이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운좋게 목숨을 건지게 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와 같은 영화들은 애초에 개봉이 불가능했어야 한다. 대놓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말이다. 애초부터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학에 더욱 관심을 쏟을터이고 나처럼 전혀 흥미가 없던 독자들은 이를 계기로 해당 사건에 파고드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요 꿩먹고 알도 먹으며 누이좋고 매부도 함께 즐거운일 아니겠는가. 이 시대 어떤 작품이든 그것을 순도100% 진짜라고 믿을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되려 너~~무 의심해서 탈이다) 그것을 수면밖으로 끌어내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게끔 만드는 것만으로도 문학의 소임은 다했다고 본다.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 을 읽으니 얼마전 집중해서 보았던 방송 <꼬꼬무 시즌2>가 생각났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YH 사건도 이번에 TV를 통해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 이나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작품을 통해 구로공단 공순이들의 이야기만 알았었지, 부마민중항쟁의 전신과도 같은 저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방송이나 매체의 본분이다. 나처럼 무지한 독자나 관중들을 일깨워주는 것. 이 시대의 또다른 계몽활동이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일이지만, 들추면 쓰라린 일이라 모두들 회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어떻게 봉합되었는지 잘 아물고 있는 것인지 주기적으로 확인해 보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일이다. #문학의위안과문학의소임 #꺼지지않는공장의불빛 #황규관 #안미선 #문학의위안 #빼앗긴일터그후 #정지창 #장남수 #한티재2020 #나의시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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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3, 2024 봄호 이번 호는 책머리부터 우리가 살고 있고, 미래 세대가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한 암울한 인상이 제시된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글을 좋아해서, 특집에 서동진의 <지구화 이후의 세계 그리고 서사>에 관심이 갔다. ㅡ기후위기를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좋았다. 근대 소설이 개인의 경험과 자본주의를 연결 시켰다면, '개인이 겪는 날씨에 심리적으로 호소하는 접근은 기후위기를 온전히 '경험'하는 길을 막아선다'는 분석은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술은 이 상황을 돌파할 것인가? 기후 인문학을 강력히 주장하는 롭 닉슨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재현과 관련이 있다. 즉 영향력이 더디게 나타나는, 막연하기는 하되 손에는 잘 잡히지 않는 폭력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인 솔깃한 이야기, 이미지, 상징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문제다.'라고. 무한히 다양한 물질적 실재들로 이뤄진 세계의 일부로서 인간 ㅡ 자연이라는 종을 자리매김하며 인간중심주의나 인간종 예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는 썩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기후위기를 둘러싼 상상을 촉성하기는 커녕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상상을 제한하는 힘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그러면 ....해답은 우리의 새로운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최근에 읽은 책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들끓는 꿈의 바다> 등은 좋은 삶과 기후위기, 자연과의 화해를 연결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논단, 백민정의 <왜 귀신의 공공성인가?> '다산이 믿었던 상제와 천지의 명신들, 수많은 조상의 혼령들은 무성한 귀신의 숲을 이룬다. 합리적 정신과 실용주의, 개혁사상으로 잘 알려진 정약용, 그는 왜 귀신과 제사, 조상의 혼을 그토록 중시한 것일까?' ...'다산이 말한 귀신에는 가장 높고 존귀한 상제와 상제가 하늘과 땅에서 부리는 수많은 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 귀신이다. ..곧 조상의 혼령! ...다산은 ....가족의 공적 효제자가 지역의 노인과 아이를 돌보는 상호돌봄과 공존의 가치로 확산되는 길을 모색한 인물이다.'라고 우리 사상의 깊이를 세삼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다. 촌평에 최정화가 최근에 읽은 리처드 플래너건의 <들끓는 꿈의 바다>에 대해서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반가왔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글을 읽으니 새롭다. 앞에서 기후 위기의 서사에 대해서 고민하는 글이 있었는데, 플래너건의 책은 하나의 갈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후위기와 어머니의 치매적 생존,돌봄,사회을 연결한게 인상적이었다. 문학평론의 황정아의 <이토록 문제적인 '인간'>은 '우리, 인간은 되지 말자?'며 들어가기를 해서 켄 리우의 포스트휴먼 소설을 분석한다. 특히 서론 부분의 글들은 현대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첫 문장에서 부터 '인간'이라는 것이 이토록 문제적이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우리 시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 '되지 않기'에 골몰하는 듯하다고 한다. 이어 그는 외부적 충격, 곧 기후위기가 대표하듯이 지금까지의 인간문명이 지속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위기와 재난, 그리고 그런 위기와 재난이 조만간 '세상의 종말'급으로 닥치리라는 예감에서 촉발된 반응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이는 특집에서 얘기한 <세계서사, 어떻게 쓸 것인가>와 연관해 현대소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앞으로 어떤 식의 서사가 나올 것인가도 예측하게 해준다. 물론 세부는 창작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포스트휴먼--되기와 포스트휴먼--만들기, SF와 판타지에 대한 비평은 현대와 현대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두고두고 곱씹으려고 한다.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작 김수려의 <질주>가 좋았다. 심사평에서 <질주>는 전염병에 걸려 살처분된 돼지들을 통해 문명과 환경 파괴를 묵시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했는데, 젊은 작가의 시선과 생각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작품이었다. 평론 부문에선 이원기의 <시간의 틈을 넘는 목소리들>에서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 대해 언급했는데 첫 문단부터 이딸로 깔비노의 얘기로 시작하며, 문학에 대해 얘기한다. 멋지다. 내가 창비를 읽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좋은 문학 소개와 좋은 평론을 보기 위해. 이번 호도 곁에 두고 공부 삼아 읽을거리가 많다. 문학을 시대를 이해하게 하는 <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