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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속에서 살다가 가끔 이렇게 나를 위한 소설을 읽으면 한동안 멍하다. 주로 비소설류만 읽다가 이러한 소설은 가끔 읽어서인지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타리에이 베소스는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자랑하는 작가란다. 생전에 노벨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다니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이 작품을 쓰면서 고립감과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느끼기 위해 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다하니 단순히 책상에 앉아 펜으로만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기 전에 겉표지 그림을 보면 전원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왜 자그마한 배가 호수에 덩그마니 떠 있는지 알겠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독자는, 그래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줄곧 마티스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나도 모르게 마티스와 동일시된다. 그러면서 가끔은 헤게가 조금만 더 동생에게 신경을 써 주었으면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지만 무조건 헤게만 탓할 수 있을까. 마흔이 될 때까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으니 누나로서 할 만큼 했다. 그래서인지 마티스의 결심보다 남아 있는 누나가 느껴야 할 슬픔에 더 가슴이 아프다. 분명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을 할 테니까. 어쩌면 그러한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그냥 마티스가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것에서 끝냈기 때문에 독자는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감수성이 풍부한 마티스는 멧도요새의 암시를 알아채지만 메마르고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는 그러한 마티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마티스는 왜 자꾸 멧도요새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긴 멧도요새뿐만 아니라 마티스와 헤게 나무에도 집착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강박증은 아닐런지. 아니면 지적 수준이 어린아이 정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감수성이 보통 사람 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걱정하던 마티스의 이야기가 하나의 복선은 아니었을까를 문득 깨닫는다. '마티스의 아름다운 방황을 담은 걸작'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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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북유럽의 거장이라는 엄청난 수사가 붙어있는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했다. 보통 책을 읽기전에 습관처럼 작가의 이력을 훓어보았는데 가급적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읽지않고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인 마티스는 서른 일곱의 나이로 몸은 성인이나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갖고있는 지적장애자이다. 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소한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마티스는 숲속의 작은 집에서 자신을 늘 보살펴주는 누나 헤게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누나의 바람대로 세상에 나가 세상에서 자신의 밥벌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늘 동네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예사이다. 이런 마티스에게 친구가 생겼는데 어느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멧도요새가 마티스의 집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마티스는 이 새로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며 정을 듬뻑 주었는데 애처롭게도 어느날 새사냥꾼에 의해 죽자 마티스는 절망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을때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메시지가 어느정도 들어왔다. 이 세상에는 이런 새사냥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주위에서도 희망없이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꿈마저 빼앗아가버리는 이런 '새사냥꾼'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종정 만날 수 있다.
마티스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좀 모자라는 사람이 틀림없다. 하지만 마티스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인간적인 가슴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새를 보고도 또 포플러 나무와 같은 작고 초라한 자연에게도 섬세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며 그냥지나치지 못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이런 마티스를 바보로 대하는 동네사람들이나 마티스에게 가혹하리만큼 커다란 상채기를 내는 새사냥꾼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고립의 섬에 살고 있는 약자들의 삶을 그리려한것 같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사회에서 안타깝게도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듯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주위로부터 고립된 느낌과 자연의 거대한 힘을 몸소 겪고자 숲에서 오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상과의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작가소개의 내용 중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작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가는 따듯한 감성을 지닌 작가임에는 틀림없을것 같다. 오늘도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또 약자들의 방황과 어떤 원치는 않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에의해 돌아가는 이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내면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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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타리에이 베소스 출판사 : 살림 Friends
몇 달 전, 자폐아 아들은 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 다니엘 」 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내 주변에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를 키우는 이가 있어 더욱 가슴 아프게 읽었던 책이었다. 남편도 자신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포기하지 못하는 아들을 키웠고, 여전히 키우고 있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소재로 몸은 성인이나 지적 장애를 앓고 있어 생각은 열 살쯤 되는 마티스가 주인공인 소설 「 마티스 」. 마티스의 이야기는 2명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에서 시작된다. 나이만 서른 일곱살인 마티스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오로지 동생인 마티스만을 위해 살고 있는 마흔 살의 누나 헤게가 그 주인공이다.
마티스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고 생각이 어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농장에서 간간히 얻을 수 있는 일자리마저 하루를 채우지 못한다. 이러한 동생을 먹이고 돌보기 위해 누나인 헤게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스웨터를 짠다. 동생을 돌보느라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지도 못하는데 동생은 항상 스웨터만 짜고 있는 누나가 불만이다. 처음에는 동생의 투정을 다 받아주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헤게가 야속하기만 했다. 잠깐 산책을 하자고 하면 짬을 내어 같이 산책하고, 멧도요새를 보러 가자고 하면 함께 가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몇 십년동안 흘러 가는 자신의 인생은 생각치 않고, 오로지 동생만을 지키고 신경 써온 누나의 심정이 오죽하랴... 나라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무리일 것 같다.
헤게는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 항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마티스에게 호수에서 사람들을 태우는 뱃사공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마티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노젓기를 할 수 있어 기뻐하고 첫 손님으로 예르겐을 태우게 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예르겐은 마티스네 오두막의 다락방에서 함께 살며 근처 숲에서 벌목꾼으로 일하게 된다. 항상 스웨터와 마티스만을 생각하고 오두막을 벗어나지 못했던 헤게는 자연스레 예르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자신에게 전부였던 누나를 예르겐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마티스는 질투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사실 난 마티스가 가엽기도 했지만 헤게가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삶이나 행복은 생각치 않고 당연하다는듯이 마티스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헤게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 마음이 아팠다.
마티스의 결말이 내가 예상했던 슬프고 무서운 것이 아닌 마티스의 예상처럼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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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스타니아 반도에서 나온 20세기 최고의 작가 타리에이 베소스의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노르웨이의 소설을 한번도 접해본적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이 일본 소설이 아니면 미국 소설을 많이 접한 것 같다. 노르웨이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떠곳에 있는지 또 무엇이 유명한지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책이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의 글이라고 하니깐 문득 작가의 나라인 노르웨이가 궁금해졌다.
작가는 이미 노르웨이에서 알려진 국민작가이며 세계적으로는 노벨 문학상의 후보에 세번이나 올라간적이 있는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이번 "마티스"를 통해서 그의 글을 처음 읽어보지만 아마 이책을 다읽고 날때쯤에는 노르웨이라는 나라보다는 작가의 다른 소설책이 더 궁금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는 다른 정서의 책이겠지? 어떤 책일까? 어떤 내용일까?
주인공인 "마티스"는 몸은 성인이지만 지적장애로 생각하는 어른아이이다. 마티스는 숲속의 작은 집에서 자신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항상 뜨게질을 하는 누나 헤게와 함께 살고 있다. 누나는 항상 자신이 돈을 벌어서 먹여살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어서 마티스에게 농장이라도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그런 누나의 등살이 마지 못해 나간 마티스는 잠시 농장일을 도와준다. 하지만 항상 일을 하면 동네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어서 바보사이먼이라고 불린다. 어떻게 보면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인데 너무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티스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멧도요새가 마티스의 집으로 날아왔다. 마티스는 처음 보는 멧도요새가 밤마다 자신의 집으로 날라오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항상 잠도 자지 않고 지켜보았다. 마티스는 아직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순수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누가 그런 새를 보고 항상 그시간에 지켜보고 자신도 모르게 새에게 정을 주기는 쉽지는 않은 것 같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어느날 새사냥꾼에 의해서 죽자 마티스는 힘들어 한다. 그리고 마티스는 누가가 뱃사공일을 해보라고 해서 그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활력소를 갖지고 예르겐이란 남자 손님을 태워주고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누나 헤게와 사랑에 빠지자 자신이 버려질것이라고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나도 정말 마티스와 같은 상황이라서 나혼자 속앓이로 걱정하고 또 걱정했을 것 같았다. 문득 마티스에게 내가 손을 내밀뻔 했다.
이소설을 어떻게 보면 마티스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과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밝은 소설과 명랑 유쾌한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책은 읽는 내내 마티스가 불쌍했고 나도 모르게 살짝 우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이 마티스에게 아주 사소하고 작은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마티스가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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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나와 다른 것을 보고 나와 다른 것을 생각하며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간다면?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무거운 돌이 들어앉은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내 사랑하는 가족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가끔씩 미어지는 슬픔은 어떻게 할까.
이 책의 주인공은 책 제목과 같은 마티스다. 그는 몸은 성인이지만 5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난 그의 누나인 헤게에게 더 많이 공감하게 됐는데 그건 내가 마티스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웃들과 같이.
마티스는 누나 헤게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바보 사이먼이라 불리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담장 너머에 시든 나무 두 그루도 ‘마티스와 헤게’ 나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0년 세월 동안 마티스만을 돌본 헤게와 마티스의 관계를 서로 껴안고 있는 모양을 한 시든 나무 두 그루에 비유한 것이다. 모두 쉬쉬하며 말했지만 마티스는 알고 있었다. 사실 마티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일을 하려고 결심을 해도 다른 사람과 일의 속도가 달라 낙담하는 마티스와 그를 격려하는 헤게,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지만 멧도요새와 친절한 소녀들 - 안나와 잉게르 -와의 만남은 마티스의 삶에 조금씩 변화를 준다. 하지만 그런 마티스의 삶에 큰 이변이 찾아오게 되는데 헤게가 벌목꾼 예르겐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고 헤게와 함께 살아갈 거라 의심치 않았던 마티스에게 둘의 사랑은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결국 마티스는 헤게를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할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예르겐과 사랑에 빠지면서 마티스와 조금 멀어진 헤게지만 누가 헤게를 비난 할 수 있을까. 헤게는 자신을 내던지면서까지 마티스를 돌봤고 그 시든 인생에서 예르겐이라는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 것뿐이다. 바로 아직 자신이 ‘여자’일 수 있다는 희망. 그로 인해 마티스의 세상에 균열이 왔지만 헤게는 여전히 마티스를 사랑하는 누나였다.
책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진 않는다. 오로지 마티스의 일상을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마티스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일로 기뻐하는지, 또 그의 주위에 것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작가 타리에이 베소스의 가장 뛰어난 점이었는데 마티스의 일거수일투족과 그의 행동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마티스를 더 잘 알게 한 것이다. 그것은 때론 마티스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던가 때로는 그에게 연민을 보내게 하기도 한다.
책은 마티스의 안타깝지만 단호한 실행으로 갑작스럽게 끝을 맺는다. 헤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마티스의 선택은 극단적이지만 그 선택을 위해 그는 열심히 노력했다. 들키지 않도록, 또 그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마티스는 어떻게 됐을까. 헤게는 마티스의 선택을 어떻게 아 들였을까. 궁금한 게 많았건만 내게 남은 건 마티스가 사랑한 멧도요새의 잔상뿐이다.
조금 더 마티스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후기나 번역자의 후기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인지 아무 것도 없어서 좀 아쉬웠다. 후에 꼭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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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연하게도 같은 듯 다른 책 두 권을 읽게 되었다. 정신지체인 성인(?)이 등장하는 노르웨이의 소설인 <마티스>와 얼마전(2007년)에 타계하신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거목이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용구 삼촌>.
<마티스>의 주인공 마티스는 서른 일곱이라는 명확한 나이가 내용속에 나와있지만 <용구 삼촌>은 화자인 '나'를 통해 적지 않은 나이임을 짐작해 본다. <마티스>는 3인칭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로 주로 주인공 마티스의 내면을 들려준다.
요즘 말로 정신지체인 마티스는 하나 밖에 없는 누나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주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듯하지만 마티스의 내면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을 돌보느라 어느틈에 누나 헤게의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것도 눈치채고 동네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나름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단조롭기만 한 일상에서 조금더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픈 간절함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온다.
잠시도 생각이 멈추지 않은 마티스에 비해 누나인 헤게는 벌써 사십 년을 부모를 대신해 마티스를 동생이자 자식처럼 키우고 있음에 익숙해서인지 지쳐서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별기대조차 없어서인지 마티스에 대한 반응은 항상 그자리이다. 어느 날 밤 뱃사공이 된 마티스에 의해 낯선 벌목꾼을 데리고 오기전까지 말이다.
벌목꾼이 마티스와 헤게의 일상에 등장하기 전에 이미 멧도요새의 난데없는 출현에 본능이었을까.... 마티스는 심상치 않은 미래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내내 멧도요새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멧도요새의 모습조차 제대로 그려보지 못하는 내게는 멧도요새가 그들만의 경로를 이탈하는 것이 아주 예외적인 일이라는 것조차 낯설기만 하다. 하긴, 문제는 멧도요새 자체가 아니라 멧도요새가 상징하는 것일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자리를 찾아 날선 도끼 하나를 들고 마티스와 헤게의 일상에 갑작스레 등장한 벌목꾼으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로인해 자신에게 일어날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마티스..
결국 마티스는 나름대로 치밀하고도 은밀한 계획을 혼자만의 비밀처럼 진행한다. 어느새 벌목꾼에게 마음을 빼앗긴 헤게는 그런 마티스의 마음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아.......마티스의 부질없는, 장난같은 아니 어쩌면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한바탕의 소동으로 끝날 것을 확신하였을지도 모를 그만의 계획은 그러나 얼마나 냉혹한 현실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마티스.
모든 만약의 경우를 이리 재고 저리 재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강풍이 그의 계획이 얼마나 순진하기만 한 것인지, 마티스가 제 아무리 보통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한들 결국엔 헛되고 헛된 몸부림이란 걸 깨우쳐 주는 것만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찔리듯 아파왔다.
아... 마티스. 그렇게 마티스는 세상으로부터, 평생을 그의 곁에서 돌보아 줄 것만 같았던 누나 헤게로부터도 구조받지 못하고 새소리 같은 외침만을 남긴채 수면 아래로 사라져 가버렸다.
문득, 어디에서도 용구 삼촌의 생각이나 목소리는 없고 다만 용구 삼촌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어린 '나'의 이야기에 더 익숙한 내게 내내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들려주는 마티스의 목소리가 더욱 슬프게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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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남동생 마티스와 그 때문에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해와야 했던 누나 헤게의 이야기. 혹은 마티스와 멧 도요새의 이야기. 백수로 지내던 마티스는 떠밀리다시피 나간 뱃사공 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님을 태워 집으로 데려온다. 멧 도요새처럼 찾아온 이 벌목꾼 덕분에 누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지만 마티스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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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정상이라는 것은 누가 정의한 말일까. 온전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있다면 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보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정상'이라고 말하고 '비정상'이라고 말하게 되는가. 세상은 언젠가 부터 다수의 눈으로 소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소수는 소수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다수의 횡포가 잠제하고 있는 사회에서 내면 깊이 마음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왜 세상은 이런 식일까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노르웨이 소설 <마티스>를 보면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소설 속의 정신 지체를 가지고 있는 어른 마티스는 누나 헤게와 살고 있다. 헤게는 마흔이고 마티스는 서른 일곱이나 된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동생을 키우다보니까 이렇다할 특별한 것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다. 누나는 이제 슬슬 지쳐가고 있는듯 마티스에 대한 반응도 무반응이다. 그러던 어느날 마티스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철새인 멧도요새가 그들의 집으로 날아든 것이다. 멧도요새를 본 마티스는 상당히 순수한 마음으로 멧도요새를 자신의 창조물이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 새와 함께라면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이 힘이 발동했다. 헤게도 그것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피곤할 뿐이다. 헤게은 마티스의 변화에 대해 "그래. 우리는 함께 있잖아, 언제나처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티스의 헤게는 언제나 마티스 것이 아니다. 40이 넘은 누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그녀를 지켜줄 수 있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더 튼실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디 헤게만의 문제이겠는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갖는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면 헤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뱃사공이 되보겠다고 나선 마티스가 만난 벌목공인 예르겐은 우연한 계기로 헤게와의 사랑이 싹튼다. 마티스에게는 엄청난 혼돈이 생기게 된다. 마치 7살 짜리 남자 아이의 엄마에게서 새 아빠가 생겨버린 것 같은 마음이다. 두려움과 슬픔, 불안감이 마티스의 온몸을 감싸면서 혼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혼란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그를 변하게 만든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한 행동들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더 한 안타까움으로 물든다.
처음으로 읽은 노르웨이 소설. 노르웨이를 가본적은 없지만 분명 신비롭고 고요한 나라일 것 같은 느낌이어서인지, 이 소설의 분위기도 차분하면서도 친환경적이다. 멧도요새나, 이들 남매가 사는 집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들이 그러하다. 자연의 힘과 동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참으로 멋지게 담아 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방황은 책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간결하고 편안한 문장 덕분에 이들 남매의 이이갸기 더 아늑하게 다가온다. 이것은 아마도 친절한 작가의 솜씨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때로는 생소한 나라의 소설을 읽어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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