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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한창 전세계가 전쟁의 불구덩이속으로 몰입했던 1943년에 발표한 동화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를 통해서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가치관 훼손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깊은 의미를 던져 주었다. 어린왕자의 순수한 감성을 통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류의 마음의 상처를 씻고져 하였던 것이다.
<어린왕자의 귀환>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지금의 시대에 다시 돌아 왔을때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1940년대의 어린왕자는 전쟁과 더불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인간성을 회복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시대에는 그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까 라는 발상자체가 재미있다. 산업혁명과 세계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스페인의 무적의 함대처럼 앞으로만 질주했다. 비록 중간에 세계 대공항이라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암초를 만나 자본주의라는 배는 침몰하는 듯 보였으나 갑자기 나타난 존 메너이드 케이스라는 조타수에 의해 극적인 침몰의 위기를 벗어나고 다시 순탄한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어린왕자가 원작의 내용처럼 군주(정부)의 별, 기업가(자본기업)의 별, 근로자의 별을 여행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실상에 대해서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다. 별들의 여행하면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진실을 소상하면서 쉽게 설명해 준다.결국 어린왕자는 신자유주의속에서는 노동자나 기업가나 다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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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나 내용보다는 출판사가 돌베개 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돌베개라고 하면 인문 교양서 전문이고 소설이나 만화 종류의 책은 거의 출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장르가 만화인제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만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시사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십자군 이야기"로 많이 알려진 저자와 "88만원 세대"의 우석훈님의 해제가 들어간 책이라서 먼저 내용이 짐작이 갔다.
이 만화는 그림체가 화려하거나 흥미로운 재미를 주는 만화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쓸쓸한 현실이자 잘 몰랐던 청년실업, 양극화, 무역협정, 신자유주의 등 한국 사회, 더 나아가서 급변하는 세계의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대처해야 하며 겉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이면이나 속내는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를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책의 부제로 보면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으로 되어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정말 공감이 가는 부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평평하고 공평하다지만 그 내면의 진실은 여전히 양극화가 존재하고 힘의 강함과 약함이 존재한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쏟아져나오는 경제관련 책들이나 미래전망 책들 그리고 정치관련 책 몇권을 읽는 것보다는 이 책 한권을 읽는 것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왕자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시사와 풍자의 진지함과 생각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괜찮은 시사교양만화다.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할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게 혹은 생각해봐야 할 일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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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자유시장의 효용성에 대한 맹신으로 특징지워지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만화책. 작가는 이 이야기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모티브를 사용해, 주인공 격인 남수와 주영이 각각 하나의 경제정책이 완전히 점령해버린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그 폐해를 목격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그 장에서 설명했던 주제에 관한 우석훈의 해제가 덧붙여 있다. 시장실패(특별한 문제없이도 갈수록 소수의 특정한 경제주체만 이익을 보는 상황),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노동여건 악화(이 경우 그 피해는 온전히 노동자들만 뒤집어쓴다), 민영화(라고 부르는 국가재산의 개인기업으로의 헐값 이전) 문제,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는 빈부격차 문제 등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2. 감상평 。。。。。。。 온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헬조선이니, N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회자된 지 오래고, 그 어느 때보다 이민이나 해외이주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권한을 쥔 사람들이 제대로 된 대책도, 의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도 없다는 것. (최근 몇 년간 이 나라의 재정과 경제를 담당하던 장관들의 면면을 보라.. 한심할 정도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대개 선출직, 혹은 임명직 공무원이라는 것. 즉 사람들이 뽑아줘서(혹은 뽑아 준 사람들이 직접 임명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면, 최근의 사태는 투표한 국민들이 초래한 파국이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유시민의 지적은 그래서 대체로 옳다. 결국 국민의 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나라는 계속 이 모양으로 갈 공산이 크다. 다음 선거에도, 또 그 다음 선거에도. 그러기 위해선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고, 지적하고,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은 국민들이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대단한 분들일지도...)
이 책은 가볍게 현재의 경제정책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시각을 제공한다. 여기서 가볍다는 말은 만화로 되어 있고, 내용을 가능한 단순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측면이고, 내용은 별로 가볍지 않다. 아니, 가볍기는커녕 답답함이 가슴을 가득 메운다.
물론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묘사했다, 현실은 훨씬 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현실은 아마 이 책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비판자들, 또는 현재의 경제정책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그 복잡하고 고려할 게 많은 모든 요소들을 다 수집하고 분석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만 그림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각 장마다 한 번에 그린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게다가 순서대로 그린 것도 아닌지라 그림체가 다르고, 왔다갔다하는 경향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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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이 만들고, 우석훈이 보충한 경제학 만화책 "어린왕자의 귀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다소 아쉽다. 아마도 기대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나는 이 책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200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나의 일상에서 일종의 '비루함'을 느낀다. 통장에는 과거보다 잔고가 늘었고, 따라서 구매력도 늘었지만 과거보다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한다. 안전망이 치워진 외줄에 구차하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뭔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 정보를 수집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확실하지 않을 때면 더더욱 그렇다.
난 나를 속박하고, 나를 비루하게 만들고,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공포경제학자라는 별명을 지닌 우석훈의 대안경제 시리즈 네권 (88만원세대,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과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직선들의 대한민국>, 불온서적을 지어낸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개혁의 덫>, 칼 폴라니를 소개하는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김규항, 박노자의 책들과 블로그들, 녹색평론사와 에코리브르에서 나온 책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 인터넷 논객들의 <공황전야>,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경제독해>, 임종인의 <법률사무소 김앤장>,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 강주성의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서>,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드림>, 마이클 루이스의 <라이어스 포커>, 프랭크 파트노이의 <전염성 탐욕>,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나카타니 이와오의 <왜 자본주의는 무너졌는가>, 이정전의 <우리는 행복한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등 앞으로 읽을 책들도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많다.
이 책들을 읽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시각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 "무슨무슨 주의"라는 것이 생활인의 일상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로 인해 바빠진 사람들에게는 위에 나열한 책들을 읽을 시간과 노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 독서를 통한 새로운 앎의 문턱이 너무나 높은 것이다.
난 이러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의 모습이 아닌 소설이나 만화와 같은 접근하기 쉬운 형식의 읽을 거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김영하의 <퀴즈쇼>나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같은 책들이 눈에 띄면 재빨리 사서 읽어보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만화로 된 이 책 <<어린왕자의 귀환>>의 출간 소식을 알았다. 게다가 우석훈이 책에 동참했고... 부제인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완벽했기에... 나의 기대는 높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화라는 형식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접근성과 속도감이다. 빽빽한 글은 오직 상징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실체를 그대로 묘사한 그림과는 그 접근성에서 차이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김태권의 그림은 아주 매력적이지 않고, 글도 아주 논리적이지는 않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기대어 친숙도를 높이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상적인 사례에서 오는 공감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맑시즘의 용어들을 설명하는 것에 신경을 더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출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가 나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군림하려드는지에 대한 것을 시각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생각의 깊이가 더해져서 좀더 목적에 가까운 차기 작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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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랫동안 궁금했었던 '이 나라가, 이 세계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에 대해 너무도 명확하게 이해시켜준 책이다. 너무나 날카로와서 베인 듯 아프다. 차라리 모를 걸 그랬다......
왜 아무도 평온할 수 없는 세계를 우리는 만들었을까? 이미 세상은 지옥이다.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으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불행해져야 하니까. 서로 뺏고 뺏길 수 밖에 없는 이 곳에서 누군들 행복할 수 있을까?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에 '경제대통령'을 뽑은 이 나라.. 과연 부유해졌는가? 부자가 된 건 '형님' 뿐이시다... 당연한 결과. 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나의 부귀영화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순리대로 움직이시는 분을 어찌 막겠는가?
우주가 이런 비정함으로 물들었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어린 왕자를 보며, 어떤 대답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슬플 뿐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시장을 하나의 사회적 장치로 사용하고자 하는 경제 시스템이지만, 이 장치의 가장 큰 문제는 통합과 공동체, 사회적 연대보다는 오히려 증오를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모든 경제적 주체들이 파편화되고 다른 쪽에 대해 증오의 에너지를 키우고 있을 때, 자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를 통제하기 쉬워진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사회를 통제하고 통치하기에 가장 유리한 장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그 사회는 후생과 복지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개개인의 '삶의 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악해진다. 이 안에서 평온한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p.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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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로 유명한 김태권 작가의 본격 시사 교양 만화라는 야심찬 카피를 걸고 혜성처럼 등장한 책 어린왕자의 귀환.... 인문 사회 도서로 유명한 돌베게 출판사의 책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왠지 신 자가 붙고 자유라는 단어가 붙으니 자유롭고 새로운 사상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당시는 대학 때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참 이녀석 잘 사는 놈만 잘 사는 그런 사상이라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을지 대한민국이 얼마나 개판이 될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은지 10여년. 개방이라는 미명하에 대한민국은 공기업을 팔아치우고 은행을 팔아치우고 모든 것을 잘 사는 대기업. 외국으로 돈 되는 것은 모두 다 팔려고 하고 있다. 정말 이 책에 나오는 가난뱅이 왕만 남은 별처럼.....
아무튼 요즘같이 좋은 일 하나 없는 사회에서 인터넷이라는 개인공간도 점점 사라지는 이 대한민국에서 어린왕자의 귀환이라는 책은 10년 묵은 체증을 뚫어내듯 시원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시원하게 이야기 해서 금서가 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불안하다. 세상에 언론이란 뉴스와 J J D 신문만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까지 정부의 말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정말로... 나는 어려운 책 따위는 읽고 싶지 않아!!! 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 책 작가의 사설까지 읽지 않아도 만화만 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중학교 아이들 수준만 되어도 읽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쓸데 없이 빨갱이 운운하며 댓글다는 사람들... 이 책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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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다. 왜 이데올로기 일까?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당신의 딴지는? 사회의 모순은 창과 방패처럼 아이러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로 이중적 잣대로 받아들인다. 흑백으로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쿨한진보와 따뜻하고 온화한 보수의 결합은 덜 진보된 자본주의가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시장개입을 최대한 억제한다.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받아들인다.여기서 케인스와 수정자본주의는 호되게 얻어맞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나 그 사회의 현실적 경제활도에서는, 머리를 더 꼬이게 한다.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에 딴지는 호흡하고 싶어한다. 책을 읽으면서 딴지는 받아들인다. 독자들도 받아들인다. 비판한다. 무조건적으로 비판한다. 문제아가 문제를 낳는다고 할까? 살아가는 세상을 미학으로 풀어내기에는 상당부분 상당성을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러분의 딴지는 어떻습니까? 어린왕자는 이리치고 저리치이고 갈피를 못잡는다. 여기서 어린왕자는 역시 노동자들의 편이다. 잉여부분을 노동자편으로 좀더 되돌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쩌나 부리는 자는 되졸려 주고싶지만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편견과 오만의 카오스를 넘나든다. 부리고 부리당하는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인문학은 시대를 초월하며 노사간의 갈들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 가슴이 시리지만 할말을 하는게 딴지 아니던가? 턴어라운드 외래어는 싫어하지만 맨날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마음이 작용한다면 끔직한 일이다. 그 누구도 당신의 생각과 생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에 딴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과감하게 노크하고싶다. 가난한 어린왕자를 부리는 부유한 어린왕자는 늘 행복하다.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적어도 그들을 완벽하게 지배하니까? 가뭄에 콩나듯이 간혹 가난한 어린왕자가 부유한 어른왕자로 성장하여 그들과 합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날 세계에서는 개천에서 용나기가 힘들 정도로 믿기지 않는 기적의 서프라지즈로 받아들이는게 자연스럽다. 그 누구도 당신의 삶을 대신할 수 없지만 시시각각으로 당신에게 다가가거나 다가와서 당신의 삶에 딴지를 겁니다. 좋은 말은 꿀처럼 딴지는 역겹게 들려오는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자 이성이 이겠지만 내인생을 한 단계 높여 주는 자세와 연구와 공부 배움의 자세와 실행의 자세는 한참 뒤쳐저 있습니다. 내가 그 만큼 노력했는데, 내가 창출한 잉여생산을 대부분 부유한 어린왕자인 사측이 가져간다고 생각하고 딴지만 건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겠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모순적 자본주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당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딴지작가님의 메아리가 들려오네요. 어중간하게 알게되면 수레가 굴러가다가 허방에 빠지듯이 책속의 어린왕자가 생각하는 딴지는 적어도 비판적대안 즉 부유한 어린왕자와 가난한 어린왕자 그리고 그 중간에서 노심초사하는 어린왕자의 마음을 아우러는 그런 왕자가 아닐까요? 당신의 지금 현위치는 어떤 왕자입니까? 이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지혜를 던져줍니다. 비판적 딴지에 머물지 말고 다지나가기전에 당신의 주도적인 삶을 허비하지말고 진정한 당신 삶의 딴지가 되기위해 당신 자신의 조직개선과 삶의 회생을 위해 상대의 약점이나 거대 공용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비꼬기 전에 제대로 된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모순들을 이해하는 자세로 턴어라운드하는 어린왕자가 되라고? 딴지는 벼가 고개숙여 익는 모습에서 배우는 자세보다 더 깊은 내공이 있을 때 진정한 딴지는 그 모순을 대안적 딴지로 대체 가능하오지 아니하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시스템(은근히 간을 뒤짚어놓는 정책개입)VS 보이지 않는 당신의 딴지가 역방향으로 흐른다면 ? 당신의 딴지의 지식과 경험을 턴어라운드 하세요라고 어린왕자는 귀환하면서 마무리 짓네요. 세상을 움직이는 60억 사람들 중에 가장 비중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안에 숨쉬고 있는 어린왕자는 턴어란운드하기를 간절하게 희망합니다. 나머지 몫을 실행하는 것은 당신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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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물을 먹지 않아도 목이 안 마른 알약을 개발해서 이제 20대 초반이지만 내게도 88만원세대, 이태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요즘은 아는것도 많고,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인재들이 생산적인 현장에 쓰이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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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내용이리라고 짐작도 못했다.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내용 소개를 보니 그게 아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닌가.
비록 경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이 부분은 그다지 잘 알진 못한다.), 앞으로의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통쾌하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석훈 저자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줘서 더욱 좋다.
요즘 외국에서는 시장경제가 만능이라는 환상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규제를 풀어준다. 그때의 논리는 간단하다. 현재 경제가 어려우니 규제를 완화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글쎄, 그런 것이 정말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고 투명하게 진행된다면 그나마 기대해 볼만하겠지만 현재 우리의 상태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공공재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이 공감이 갔다. 이 또한 민영화를 부르짓는 현 시점이 답답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국가는 기업논리(즉 시장논리)로 운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빈층을 보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실은 나도 전에는 그랬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를 되짚어본다. 지금까지 그렇게 들어왔기 때문 아닐런지. 그러나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꼭 성공하거나 부유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것은 사회적 구조도 어느 정도, 아니 어쩌면 상당부분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기에 복지가 필요한 것이고.
남수와 이야기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가로등을 끄고 켜는 일만 하는 어느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노동자가 계속 가로등을 계속 켰다가 끄는데 처음에는 중간 정도가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온갖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말이다.
또 레저에 대한 이야기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여가생활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기에 그만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이유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세상에는 이처럼 숨겨진 의도가 꽤 많다니까. 여하튼 추상적인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만화로 보고 설명도 읽다 보니 이해가 잘 된다.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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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읽을 때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김태권씨의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사실 어린왕자는 유산계급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현실은 변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는 노마드였으나 21세기의 어린왕자는 정주할 곳 없는 비정규직 인턴이다. 현대의 어린왕자가 떠돌며 만나는 인물들은 각자의 현재적 방식으로 망가져있다. 고전<어린왕자>를 주축으로 해서 박노해의 시집, SF소설, 은하철도999까지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한 이 책은 취향의 올드함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현재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현재적 언어들은 저자의 위트덕분이기도 하지만...생각해보면 이 말들은 10년 전에도 현재적이었다. 쌍용차 파업에서 발견되었던 노노갈등은 십년전에도 그대로였고, 비정규직의 현실은(현재 더 강화되었으나) 당시에도 생생한 현재였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들은 거대언론의 현실변형의 언어를 들으며 우리 자신을 욕한다.
만화책으로서의 이 책의 포지션은 애매하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박장대소한다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이 많다. 사회비판서로서의 포지션도 애매하다. 만화인 탓에 절대적인 정보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좋은 풍자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려운데를 잘 긁어주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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