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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2009년 06월 30일, 320쪽
작년은 안중근 장군의 의거 100주년이었다. 고종이 안중근 장군의 석방을 지원했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접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날 뿐이다. 사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 외에 안중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는데도 마치 아는양 스스로 믿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서 '독립운동가'라고 뭉뚱그려진 폴더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역사의식의 상실, 그리고 역사의 지식화 혹은 교과서화를 보여주는 단면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제목 '안중근 불멸의 기억'은 나에게 '잊혀진 기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잊혀진 기억'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의 삶을 그리 쉽고 가볍게 뭉뚱그려서는 안 된 다는 것을...... 그 분들 각각의 삶과 생명은 나의 삶과 생명이 그런 것처럼 한 번 뿐이고, 하나 뿐인 귀한 것이었음을...... 그 분들의 생명은 역사 교과서의 한 줄 검은 잉크로 남아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빛을 바래는 그런 게 아님을......
왜 안중근을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았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란 사상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다.
아래 '책소개'에서 처럼 이 책은 안중근 장군의 생애와 사상을 '잘!' 구성해 놓았다. '역사+소설+기행문' 형식의 이수광 특유의 맛깔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구입한 이 책이 초판 1쇄인 것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법정 스님의 입적 후의 '법정 열풍'과 눈에 띄게 대조되기 때문이리라.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현상은 '역사의식의 상실'과 서구문화에서 유입된 '개인주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
아직까지 발굴하지 못 한, 안중근 장군의 유해... 하루 빨리, 그토록 원하셨던 주권국, 대한민국에서 영면하시기를 기원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예스24, 책소개>역사 다큐멘터리와 팩션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안중근의 전 생애와 내면세계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책이다.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수광 작가는 2007년부터 러시아와 중국, 일본의 안중근 유적지를 답사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를 거쳐 3년여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와 기행과 팩션을 아우르는 책을 저술하여 인간 안중근의 면모를 그려내었다.
함께 읽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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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중근, 그의 생애를 역추적해보자. 하얼빈에서 울린 세발의 총성. 그 총성은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국민을 깨우기 충분했다. 대한군 육군참모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도마 안중근. 그의 이름과 업적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가 지낸 발자취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안중근에 관련된 도서란 도서는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 기획했던 안중근에 관한 서평기. 어느새 세번 째 서평이 된다. 이번책은 안중근 100주년 기념 도서인 만큼 내실도 튼튼히다. 100주년을 기념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이수광 저자는 성스러운 부담감으로 더 노력했다. 그리고그 노력의 결실은 만족스럽다. #2. 살아있는 안중근, 그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의 다큐멘터리 한편을 살펴보자 다큐멘터리와 팩션의 조합. 상당히 좋은 시도이다. 살아숨쉬던 대한민국의 영웅 안중근의 실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안중근이 겪어 생각해봅직한 이야기들을 곰곰히 생각해 글로 담았다. 충분히 어느정도 가능한 것이, 안중근이 평소 주고 받았던 편지며, 자서전이며, 동양평화이론이며 분석한 전문가라면 그의 행동과 생각의 범위가 예측이 가능했다. 실제으 사전과 도표 구성그리고 세세한 지도의 삽입이 한편의 잘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연상케한다. 더불어 나레이션을 도입해, 독자들의 생각을 돕고있다. 안중근 스스로 홀로 싸웠던 전쟁터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한 셈이다. #3. 정학한 사료로로 역사적 지식업 저자는 오랜 시간동안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안중근이 활동한 반경을 직접 답사하고 치밀한 자료를 조사해 이책을 출판햇다. 특히 저격 직전의 고민과 과정들을 잘그려내어 안중근의 고뇌를 팩션의 형식으로 깊은 감성을 끌어올렸다. 단순히 역사적 지식의 나열만으로 본다면 읽기 힘들법하지만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역사와 무관하게 교양도서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풀어내는 문장역시 힘있는 필력으로 안중근의 굳은 의지와 정신과도 어울렸다. #4 안중근은 살아있다. 안중근은 지금도 대한민국에 살아 숨쉬고 있다. 다양한 장르에서 새롭게 등장한 안중근이 우리주변에 늘 존재한다. 때론 영화로, 때론 소설로, 때론 뮤지컬로, 때론 연극으로 하지만 무엇이든 애국심과 애국애 그리고 자신보단 정의를 위해 노력한 모습은 다 하나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러한 안중근을 갈망하는 정서가 반영된것 아닐까 싶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듯, 다시 흩어진 대한민국의 정서를 모을 안중근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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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사 공부를 하다가 3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냈다. 당시 읽으면서 느꼈던 그 기분을 지금 공부하면서 다시 느끼고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안중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만을 생각한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안중근'을 검색하면 '의거,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 등 그 암살과 관련된 키워드가 대부분이다. '안중근 업적'으로 검색하면 그 사건 외에 다른 업적은 잘 검색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식IN의 답변 중에는 '총 3발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업적이구요, 나머진 거의 뭐 ..하신일은 없다고 봅니다.' 라는 황당한답변도 올라와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 학생들은 '안중근=이토 히로부미 암살'로 굳어져 그 사건의 중요성과 의의를 잘 못 느끼거나 오히려 의 삶이 과소평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동양사 최고의 사건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뿐만 아니라 짧지만 영원히 기려질 위대한 생의 한 인간을 보았다.
안중근은 단지 의사(義士)만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으로 불렀다. 그는 의병 부대의 대장을 역임한 당당한 군인이었다. 그가 의병활동을 하면서 겪은 온갖 고생과 시련, 불타는 의지, 용맹성과 희생정신을 생생하게 느꼈다. 난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안중근이 대장으로 의군을 이끌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0대였다. 20대 청년 한 명이 수 백명의 병사를 전두지휘하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면 그가 얼마나 비범한 위인인지 확 와닿는다.
대한독립군의 홍범도 장군과 연합하기 위하여 백두산의 밀림을 샅샅이 헤맨다. 문득 그 당시 깊은 산 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의병들의 상황이 상상된다. 어디하나 편한 곳이 없고 식량공급도 힘들고 짐승은 얼마나 많을까. 살을 잘라버릴 듯한 추위와 싸워야 하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견뎌야 한다. 전화도 연락도 당연히 없기 때문에 다른 부대나 누구와 잠시라도 대화하기 위해선 불확실한 정보를 의지하여 수 백키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안중근 장군도 홍범도 장군을 찾으러 먼 거리를 이동했지만 실패한다. 간도의 독립운동가 이범윤을 만나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과 연합하여 무장군대를 조직한다. 그리하여 안중근 장군은 크고 작은 게릴라 전에서 승리도 많이 했지만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하고 모든 대원을 잃어 항일무장투쟁에 실패하고 만다. 그 실패의 죄책감과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자신의 손가락을 스스로 자르는 결의를 다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성공으로 이끈 셈이다. 이 모든 일이 20대 청년이 행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그의 의병활동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 교과서에 적혀 있지가 않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서만 짧게 설명될 뿐이다. 1910년대, 1920년대 국내외 의병 항일무장투쟁의 역사가 큰 비중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안중근은 1900년대에 의병활동을 한 군인이다. 그 시기의 무장투쟁활동은 왜 소홀히 기재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안중근 장군을 비롯하여 수많은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은 교과서에서 그저 외워야 할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190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수많은 무장단체가 등장하지만 단체 이름과 조직원이 비슷비슷하여 더욱 햇갈리고 귀찮아 할 수도 있다. 교과서의 잘못일까, 교육의 잘못일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이러한 거룩하고 숭고한 독립운동가들이 책에 몇글자로만 실리고 학생들에게 암기대상으로만 여겨지게 된다면 교과서는 필요없다. 누가 언제 어떤 활동을 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당시를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리고 불멸의 영웅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였는지를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 국사 교육의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의 인물들의 삶으로 느낀 감정을 품고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지를 평생동안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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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없는데 어찌 백성이 있으랴?’ p74 안중근이 살아 돌아왔다. 추수밭에서 출간되고 이수광이 지은 <안중근 불멸의 기억>을 통해 안중근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가 타국에서 세상을 뜬지 100년이 다가오지만 이제야 그를 돌아보았다는데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쓰라린 이유는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군이 우리 땅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아직도 혼란과 갈등이 난무하면서 어지러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 놓았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라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 책은 2007년 7월 12일 오후 7시, 저자가 러시아로 떠나는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길이다.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의 빛바랜 쓸쓸한 모습이 그동안 안중근을 잊고 살았던 100년의 시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안중근뿐만 아니라 고려인이 러시아에서 받았을 온갖 고난과 희생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가슴이 미어졌다. 저자의 기록과 더불어 이 책은 안중근의 목소리를 담았다. 서른 두 살의 젊은 청년 안중근은 저자의 문체를 빌어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자신의 삶을 풀어낸다.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깊은 마음을 통해 평범한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고 싶었던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안중근이 안쓰러웠다. 소탈하고 겸손한 그가 영웅이란 호칭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시작하면서 목숨을 건 위태로운 전쟁을 계속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결심을 하는 안중근을 지켜보면서 ‘반드시 당신이 아니어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말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죽을 길임을 알고 가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안중근과 그의 가족들의 고독과 슬픔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느끼지만, 내가 느끼는 고독과 슬픔이 그들의 것과 같은 크기일지는 자신할 수 없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순감옥서의 침관’을 보았다. 죽은 사람을 묻을 때 관 대신 사용한다는 좁고 낮은 침관은 이 책을 읽으면서 꾹꾹 참아왔던 분노와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독도나 위안부 등과 관련해서 일본의 망언이 불거질 때 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일본에 대한 감정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어서 빨리 안중근의 유해를 찾아 고국에 안장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에서는 안중근이 살아 돌아와 우리가 잊고 있는 100년 전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의 증언을 허투루 들어 넘기지 말고 우리의 정신과 자세를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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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불멸의 기억 - 이수광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이 더욱 가슴아프다. 어있던 사람들의 노고는 기억하지 않았을 거다. 너무나 많은 사건과 너무나 많은 연도들이 외우기 어려워 아마도 한번쯤은 투덜대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장하여 이러한 역사서들을 만나면 우리는 왜 이토록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후 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다만 한순간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작가는 안중근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한 국가의 영웅이 말이다. 그의 신분은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 이려니 생각하며 끊임없이 가슴아파하는 모습을 독자의 한사람으로 같이 느끼며 책을 본다.
안중근의 상념 장면에서는 자신의 행적을 회상하는 부분 못지 않게 부인에 대한 회상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여순감옥서와 멀지 않은 곳까지 세아이를 데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한 부인의 면회를 거절함은 더욱더 큰 아픔으로 남는다. 이 책이 대단하다 느낀걸 안중근이 얼마나 많은 수의 싸움에서 이겼는지를 나열하고 그와 함께 했던 열사들이 누가 있으며 하는 등등의 역사적인 행적 일색인 역사서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안중근이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안중근의 행적을 뒤쫓아가며 아주 조금뿐일지라도 진짜 안중근을 만나고자 했다. 그 노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어찌 나라를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라해도 끊임없이 나라만 생각했겠는가. 수만가지 상념들로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다 열강들의 다툼에 희생양 이 되어버린 순한 민족이 우리 민족이니,,
우리 민족을 지키기위해 누가 대신 나서 싸워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 민족 한명한명의 끊없는 싸움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 으니 끊임없이 감사해야 한다. 걸었을 것이다. 어찌 무섭지 않았겠나.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구자들이 이 땅을 지나갔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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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현재를 내려다보면 발 빠른 정보와 클릭 한번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편리함으로 살아가는 지금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식민지였고 아픈 과거와 기억들을 가득 품은 나라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혹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나간다. 비통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은 것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번에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라고 한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일본을 맞서 싸웠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게 했고 내가 기억하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짧고 부족함이 있는 기억이다. 그런 기억 가운데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단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인 ‘이수광’ 씨가 직접 발로 찾아나선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기록하고 있기에 단지 아는 부분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역사 이야기 그리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로 묶은 기록이 아닌 저자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때론 일인칭 시점으로 ‘나’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했기에 더욱 생생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과거 너무나 아픔을 가지고 있던 기억과 함께 내가 기억하는 ‘안중근 의사’의 또 다른 면과 마음속 깊이 아픔이 전해져옴을 느꼈다. ‘100주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흘러 ‘안중근 의사’에 대한 깊고 아픈 이야기와 함께 그의 불타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의 내용처럼 깊이 알지는 못했다. 역사에 관심이 남달랐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역사와 현재에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알았기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있었던 여순감옥에서 사형되기 전날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어가는 그의 과거와 함께 옛날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쓰는 것처럼 그의 이야기가 마음속으로 전해져 슬픔과 아픔이 깊이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 단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 혹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모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절로 느껴졌다. 단지 역사 속에 기록된 인물이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고 항상 기억 속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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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란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것은 검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 한장과 왼쪽 네번째 손마디 하나가 없는 손 , 그리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라고 말한 안중근의 명언, 그리고 안중근과 함게 기억될 인물 이토 히로부미가 생각난다. 다시 말해서 안중근 하면 그저 단편적인 단어들과 이미지만 떠오를뿐 그의 인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안중근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쓴 역사 다큐멘터리와 안중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를 팩션으로 결합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읽은데 있어서 이어짐이 끊여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점이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나름대로 다큐를 먼저 읽고 팩션을 몰아서 읽는 방법도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사실 나는 두번째 읽을 때 그렇게 읽었다.)
30살에 의병부대를 조직한 안중근 의사.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안중근 의사처럼 의병할동을 다 한 것은 아니다. 안중근 또한 부유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생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편안한 생활과 가족을 뒤로 한채 오로지 국가의 독립을 위해 그 험난한 길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그의 결단력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용기로 이어진 것이다.
나의 30대 초반 아니 내가 여태 살아온 나의 삶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고 그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 없는 그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늘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다짐은 늘 하지만 실천은 하지 않고 늘 뒤로 미루며 하루 하루를 살았다. 만약 나의 삶을 안중근 의사가 봤다면 용기와 실천하는 결단력이 없다고 혼내시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서 난 안중근의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부호의 맏아들로 태어났고, 천주교의 독실한 신자이며,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한 남자이고 30살에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31살에 단지동맹을 결행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 왼손 무명지를 자른 일 또한 31살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32살 교수형을 당한 일.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 서거100주년이라는 사실.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에 대한 드라마나 뮤지컬등이 준비 중이라고 하니. 기회가 되면 찾아봐야 겠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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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이렇게 무엇인가를 적는다는 것이 이처럼 심하게 망설여지고, 염려되기는 첨이다. 책을 통해 만나고 느낌 '안중근 의사'의 삶이 되려 퇴색되지는 않을지, 그 느낌, 그 감동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을지~. 또한 나의 미려함 속, 무지와 무관심이 한없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의 삶을 좇다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뭉클해진다. 콧등이 짠~해지면서, 시큰하지만, 눈물 한 방울조차 죄송스러운 마음에 흘릴 수가 없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그렇다. 살짝 기억을 더듬고 보니, 의거날(1909년 10월 26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100년의 시간이 지났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100'이란 숫자의 의미가 부각되는 시간이 되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모호하게나마, '나라를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쳤다'식 교과서 속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단편적인 상식 뿐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것인 무엇인지, 숭고한 목숨의 숭고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역사 앞에 무릎꿇고 반성하며, 참회할 일만 가득하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안중근 의사'를 만나고, 뚜렷하게 그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 <안중근 불멸의 기억>의 여정은 2007년 7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딱 이만때쯤, 저자 이수광은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9박 10일간의 여정 속,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한 역사 탐방이라면, 이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어렴풋한 안중근을 만나러 떠난 여행 속, 서서히 영웅 안중근의 실체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의 흔적 속, 아픈 역사와의 만남은 비수처럼 차곡차곡 온마음에 찔렀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기행 사이사이 안중근 자신이 '나'의 일인칭 시점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팩션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여순감옥수에서 사형 집행일 전날 밤, 자신의 지난 생을 뒤돌아보며, 하나하나 써내려가며 자신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형식의 이야기는 마치 그가 살아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더욱 절절하게 그가 내게 다가와 심장에 박혔다.
서른두 살 내 젊음을 바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른두 살 인생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295)
역사의 물줄기를 구경만 하던 입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일에 나선 저자를 통해, 그가 밝고 내디딘 곳곳의 이야기가 생생한 역사로 되살아나 내게 온전히 전해졌다. 얼마전부터, 나는 '안중근'하면 '최재형'이란 '시베리아 독립 투쟁의 대부'가 연상되었다. '하얼빈 의거의 영웅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길에, 비록 짧지만 '최재형'을 만날 수 있었다. '안중근'을 좀더 깊이있게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펼쳐 본 책은 첫머리서부터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하였고, 책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율과 긴장에 떨어야 했다.
안중근과 역사를 만나는 동안 입안이 쓴내로 가득 고였다. 그럴수록 더욱 숙연하고 진지하게 독립 투사 안중근, 인간 안중근, 영웅 안중근을 만나며 쓰라린 역사와 대면하였다. 가슴이 뻐근하니, 아렸다. 그래도 끊임없이 만나고 싶다. 서른 둘의 뜨거웠던 그의 삶은 내 안의 작은 불씨요, 등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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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그가 생을 마감한 나이, 그리고 나의 나이.
이 책은 이수광 작가가 그분의 업적을 따라 여행하는 내용과 그분의 사형 바로 전날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그의 흔적을 더듬어 블라디보스톡으로.. 하얼빈으로.. 그가 처형당한 곳으로.. 흔적을 쫓는다. 그 속에서 그분을 뵙고 그분의 혼을 느낀다.
그리고 그분은 사형 전날. 스스로의 생을 돌아보고. 아내를 그리워하고. 자존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 오히려 일본인들과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키며 생을 마감한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청년들이 있었다. 20대의 나이에도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고뇌했다. 그들의 고민은 언제나 나라를 위함이었고. 나라가 있어야 스스로가 있다고 믿었다. 나보다. 가족보다. 언제나 나라가 우선이었다.
임금이 수치를 당하면 신하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 나는 책에서 그렇게 배웠다. 망국을 당하면 장부는 마땅히 충분을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내가 읽은 책에서 선인들은 그렇게 가르쳤다. p73
나라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은 없었다. 오히려 밟고 때리고 신고하고.. 그들은 외롭게 싸워나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이끌어준걸까.
32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같은 숫자를 가진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힘들때마다. 나는 주저앉는다. 회피하기도 하고 모른척하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떼를 쓰며 고집을 부리고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안중근은 1909년 2월 얀치헤에서 동지 11명과 단지동맹을 맺었다. 그는 왜 무명지를 잘랐을까. 그것은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그치기 위함이고,. 의병활동을 하다 먼저 죽은 동지들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었다. 단지동맹은 이토 히로부미와 이왕용을 죽여 항일 투쟁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자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p127.128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선교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알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아버지였다. 그를 깨어나게 만든것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다. 그는 참을수 없는 모욕을 느꼈고. 살인을 금하는 교리에따라 투쟁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같은 신부님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떠났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었다. 왕도 나라를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살아가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일일수도 있었다. 그냥 애통해하고 분해하면서. 마음을 추스려 여전히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쟁했다.
우리는 흔히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바뀌겠어?" 라고 말한다. 나 역시..
안중근 의사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성공하고.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그는 월계관을 쓴 영웅이었고 이토히로부미는 독재자가 되었다. 세계는 그를 주목했고. 일본에서조차 그를 험하게 다루지 못했다. 일본의 검시관과 군인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가 동양의 평화를 외치는 거인임을 알고 있었다. 감옥에서조차 그는 당당하였고. 죽음앞에서조차 그는 위엄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배우고 있을까? 교과서에 그에 대한 내용이 몇줄이나 나올까? 그가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이유가 몇가지 나올까? 우리는 지금.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감옥에서 그를 감시했던 치바 도시치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매일 유묵과 위패를 모셔놓고 기도했다. 그리고 죽을때 유언으로 부인에게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위패를 불단에 바치고 아침저녁으로 봉공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죽고 난뒤 그들의 딸이 안중근 의사의 영혼을 모시고 있다. 한국인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안중근을 일본은 뼈속깊이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정말 멋진 분이 우리나라 분이라는 것. 그래서 너무 다행이고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
첫 번째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두 번째 대한재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 시킨 죄 세 번째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네 번째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할 죄 다섯 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여섯 번째 철도와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탈취한 죄 일곱 번째 제일은행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여덟 번째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 아홉 번째 대한제국의 교육을 방해한 죄 열 번째 조선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열한 번째 교과서를 압수하고 불태운 죄 열두 번째 조선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 싶어한다고 전 세계에 거짓 선언한 죄 열세 번째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조선이 태평무사하나도 천황에서 거짓말 한 죄 열네 번째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열다섯 번째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시해한 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