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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문국진은 그림에 관한 깊은 조예로 명화속의 질병과 고통을 발굴하는 데 일가견을 보인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린 주인공, 화가들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술가는 개인의 경험과 오감을 통해 인류에게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의 길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그 예술가가 질병과 병마로 고통받았다면, 그들의 작품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질병이 명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찾아나간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각 10명의 화가, 총 40명의 화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1부 화가의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 2부 시대를 앞서간 세기의 명화 3부 그림 속 상상력의 정신의학적 탐색 4부 그림으로 표출된 화가의 병적(病跡) 분석
대표적으로 뭉크와 고흐는 정신 착란에 시달렸다.〈절규〉는 인간의 고뇌와 공포의 상징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뭉크가 고통 받았던 불안정했던 자신의 정신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미쳐 있었다. 그때 광인이 무시무시하게 뒤틀린 얼굴을 내밀었다. 당시 나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었으며 내 피 속까지 자연의 절규가 스며들어 나는 터질 것만 같았다", 뭉크의 고백이다.
뭉크는 그 후에도 끊임없는 정신분열증의 발작과 불안에 시달려 코펜하겐의 야콥슨 박사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 남짓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에〈야콥슨 박사의 초상〉이 있다.
이렇듯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를 그린 화가 중에 고야와 고흐도 있다. 고야는 그가 46세 되던 가을의 어느 날, 안타르 지방에 나들이를 갔다가 심한 고열을 앓고 청각 장애가 온다. 이후 고야는 들리지 않는다는 고통과 작품을 만들겠다는 성취욕 사이에서 번민한다. 이 때 그가 그린 그림은 어두운 '검은 그림' 일색이었다.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탓에 과로로 인해 위독한 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쇠약해 가던 그를 살려낸 이는 의사 아리에타였다. 고야는 회복되고 난 후 감사의 표시로〈고야와 의사 아리에타〉를 그려 헌정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 빈사 상태에 있던 고야가 의사의 정성 어린 치료에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고야,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1820
고흐 역시〈의사 레이의 초상〉과〈가셰 박사의 초상〉을 남겼다. 레이는 고흐가 아를시립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했을 때 치료해 준 의사였다. 그는 고흐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환자가 원하는 것이 퇴원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병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2주 만에 그를 퇴원시켰다.〈의사 레이의 초상〉를 보면 고흐는 화려하면서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자신이 느낀 고마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고흐가 오베르에서 요양할 무렵 의사 가셰를 만났다. 가셰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으며 미술에도 상당한 지견이 있었던 아마추어 화가였다. 또한 식물에서 류머티즘에 쓰이는 약을 추출했으며, 상처 치료제도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두고 '가셰의 묘약'이라고 불렀다 한다.
〈가셰 박사의 초상>를 보면 가셰 곁에 '디기탈리스'라는 식물을 그려져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지금은 디기탈리스에서 축출된 약제가 심장 치료제로 널리 쓰인다.
인상파 모네는 백내장과 시력 저하에 시달렸다. 백내장으로 수술을 두 차례 받았던 모네는 수술받은 한쪽 눈이 받아들이는 색채는 푸른 청색이었고, 온전한 한쪽 눈은 혼탁된 다갈색이었다.
 ▲모네,〈장미정원에서 바라본 집〉수술한 눈으로 그림, 1923

▲모네,〈장미정원에서 바라본 집〉온전한 눈으로 그림, 1923
모네가 그린〈장미정원에서 바라본 집〉은 수술받은 눈과 온전한 눈을 각각 사용하여 같은 이름으로 두 편을 그렸다. 만일 내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두 그림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뻔했다.
저자는 말미에서 다음과 평한다.
이 저술에 나오는 화가들은 한결같이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을 지닌 화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재능에 의한 표현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 내면세계의 다양성을 예술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불사르며 몰두했다. - 책 후기
이렇듯 화가가 고통 받았던 질병을 이해하게 되면 그가 그린 예술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결국 화가도 인간이었기에 그가 가진 천재적 재능과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감성이 융합되어 더욱 극적인 명화로 탄생될 수 있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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