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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부터 내려온, 탐탁지 않은 유물의 발굴
"왕조시대부터 내려온, 탐탁지 않은 유물의 발굴" 내용보기
학부에서 무엇을 전공했느냐가 - 특히나 인문학에 있어서는 - 그 사람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요즈음이지만, 어쨌건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이지 나는 가끔씩 역사관련서를 훑어보는 편이다. 주로 '흥미'를 가지고 살펴보는 책들은 고중세사(편의상 고대사로 통일)에 관한 소프트한 책들인데, 이것들은 사실 나의 오랜 '기호'이다. 근현대사 관련서들을 '의무적으로' 읽어오던
"왕조시대부터 내려온, 탐탁지 않은 유물의 발굴" 내용보기

학부에서 무엇을 전공했느냐가 - 특히나 인문학에 있어서는 - 그 사람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요즈음이지만, 어쨌건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이지 나는 가끔씩 역사관련서를 훑어보는 편이다. 주로 '흥미'를 가지고 살펴보는 책들은 고중세사(편의상 고대사로 통일)에 관한 소프트한 책들인데, 이것들은 사실 나의 오랜 '기호'이다. 근현대사 관련서들을 '의무적으로' 읽어오던 대학시절 동안 억압당했던 나의 고대사 사랑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

 

하지만 막연히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대사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대학 시절 근현대사를 의무적으로 읽었다는 것은, "모든 역사란 오늘의 역사다"하는 명제에 내가 강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하니까. 즉, 그런 시절을 통과한 내게(혹은 그런 강박을 지닌 내게) 단지 '재미'만으로는 "너 고대사도 한 번 읽어봐"하고 나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넘치는 강박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고대사에서 '재미' 이상의 것을 찾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우리의 강토가 한반도 이내로 좁아졌다거나,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로 우리는 오늘날 우리글을 가질 수 있게되었다는 사실은 과거의 사실이 오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현대의 구체적인 문제를 고민하는데 큰 참고점이 되지는 않는다. 조선의 토지제도가 전분6등법에서 연분9등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물론 한 시대, 한 주제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전문가들이라면 몰라도 나의 경우에는 고대사에서 괜찮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리고 사실 내가 만나본 고대사 전공자들은 근현대사 전공자들과 달리 오늘의 문제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조금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조선시대'를 자신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는 얘기가 특히 나를 끌었다.

 

나는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고,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사는 사람이다. 조선시대는 나의 학문적 관심대상이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는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시공간이다. 나에게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고, 또 삶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pp.4~5)

 

이같은 관점에서 이 책은 조선시대의 일화를 오늘에 견주어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부분들을 드러낸다. 조선시대에서 오늘. 이쯤되면 '영원불변'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보편적 운영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1

영조 40년 박만춘과 김현중이 가짜 홍패를 만들어 팔아먹은 사건이 있었다. 홍패는 과거의 급제자에게 주는 합격증서이니, 즉 위조 합격증을 만든 사건이다. 이 죄는 본인은 참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를 삼는 극형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가짜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위조 홍패로 거짓으로 합격자 행세를 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는냐는 도덕주의자의 근엄한 충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꿈깨라"

 

18세기 후반이면, 과거를 관장하는 예조의 서리는 시험 전날 노론 몇 명, 소론 몇 명이 합격하는지 다 알았다고 한다. 그 정해진 명단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헛방인데, 그 명단에 들어가는 것은 노론과 소론의 열대여섯집안에 지나지 않았다. 즉, 홍패의 위조는 도덕이 붕괴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사회적 가치를 부당하게 독점하는 불평등한 사회를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신정아 사건에 빗댄다. 졸업장 따위의 종잇조각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좋은 자리에는 낄 틈 없는 사회. 이미 좋은 자리는 누군가 다 차지하는 게임에서 노력을 말하는 것은 너무 공허하다고 말한다. 위조와 가짜를 벌하는 것도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같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위조와 가짜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같다는 것 아닐까.

 

#2

열 다섯에 시집을 간 이씨. 남편은 병자였다. 종기가 하도 심해 고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씨는 병세를 알고자 남편의 설사를 맛보고 고름을 빨았다. 급기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태워 남편의 환부에 바르고,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서 남편에게 먹였다. 그렇게 7년.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죽고 만다. 이씨의 나이 스물 둘. 이씨의 결혼생활에는 어떤 행복이 있었을까?

 

남편을 향한 이씨의 행동. 우리는 '열녀'라 불리곤 하는 이들의 행동을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을 위계적으로 구분한 사회제도와 가부장적 윤리가 여성들의 삶을 그렇게 제약했다고 말한다. 즉, 조선은 이씨(여성)의 머리에 가부장제를 '윤리'라는 이름으로 집어넣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북한에서도 가져온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북한을 가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네팔의 산둑박사가 북한남성의 백내장을 고쳐주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 남성의 눈이 완치된 순간, 그와 그의 딸이 감사를 표한 대상은 산둑박사가 아니라 수령님이었다. 그들은 강압에 못 이겨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끊임없는 교육의 결과물임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 아내와 둘이 벌어 월 200을 채 못번다는 한 택시기사는 고등학생인 아들 교육비를 제하고 나면 세 식구가 근근이 먹고 살 뿐이라고 저자에게 하소연 한다. 그런 그는 김연아와 박태환이 자랑스럽지 않냐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열을 올린다. 자신의 실제 생활과는 무관하게 남편과 수령님을 받들었던 이씨와 북한남성은 이 택시기사와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어느 사회든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을 다른 무언가에 대한 충성 혹은 사랑으로 은폐하고자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조선시대와 오늘은 완전히 다르다. 천양지차다. 하지만 이같은 사례를 듣고 있노라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변했으나, 사회의 운영원리는 고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한 사회와 한 사회를 심층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한 책이 아니라 단편적인 사례들을 통해 풀어낸 에세이 형식이기 때문에 "조선과 대한민국의 운영원리는 유사하다"라고 정식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 일화를 오늘에 대입해 보는 이 책은 우리의 과제를 조금 더 신선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자부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왕조시대의 병폐와 닮은 구석을 환기한다는 것은 분명 거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슬려야 신경을 조금이라도 쓰는게 인간이라는 동물인지라, 나는 이 책이 조금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글의 각 편마다 참신함이나 퀄리티는 편차가 좀 있어 보이지만 몇 가지 단상을 얻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아, 그리고 고대사를 읽는 것이 무용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접했다는 것도 소득.

c*****9 2009.08.27. 신고 공감 1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옛글을 통한 속 시원한 현실 풍자
"옛글을 통한 속 시원한 현실 풍자" 내용보기
옛글을 통한 속 시원한 현실 풍자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유적이나 선조들의 정서가 담긴 옛글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그 속으로 이끌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삶을 먼저 살아온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는데 가장 유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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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통한 속 시원한 현실 풍자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유적이나 선조들의 정서가 담긴 옛글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그 속으로 이끌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삶을 먼저 살아온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는데 가장 유익한 수단 중 하나가 옛 사람들의 정서와 기상이 오롯하게 담긴 글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이 직면하는 여러 가지 현안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스승이나 선배들을 찾아 그들의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에서 해결의 방법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선조들이 남긴 옛글을 통해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법을 배우고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한계레출판에서 발간한 강명관의 [시비를 던지다]는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대정신을 반영한 해법을 찾아가는 묘미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고,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이다. 조선시대는 나의 학문적 관심대상이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는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시공간이다. 나에게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삶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이 끌어대는 조선시대의 글 역시 그 방편의 하나다.](저자 서문에서)

 

이 글에서 알 수 있듯 [시비를 던지다]에는 옛글에서 찾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는 저자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이 담겨 있다. 첫 이야기부터 가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짜를 만들어 내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옹고집전의 헛옹가의 이야기를 통해 가짜를 양산하는 현 시대의 풍조에 대한 저자의 속내를 시원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뿐 아니다 호학군주며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정조의 부부싸움 끝에 부인을 발로 차 죽인 박춘복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때의 백성과 지금의 국민이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인지도 비교 분석한다. 또한 조선의 과학은 왜 낙후하게 되었는가에서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근간을 이뤄왔던 학문의 흐름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탐관오리 불멸론, 소인배 승승장구론, 소인배 등급론 등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당장 직면하는 교육현안, 노동자, 권력의 부정부패, 암울한 사회현상 등의 문제를 과거 속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고 있다. 옛글에서 찾은 선조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상황을 분통한 마음으로 때론 안타까움을 담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만을 본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는 세상에서 저자는 다산 정약용의 글을 통해 희망 찾기를 보여주고 있다.

 

글은 그들이 살던 시대정신의 반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뿐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이 있고 현실을 딛고 미래를 밝혀줄 지혜를 담고 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찾고 탐독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해 과거와 오늘을 비교하며 시비(是非)를 따지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라 생각된다. 답답함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의 속 시원한 풍자가 그저 속풀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길 바래본다.



m*****8 2009.1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