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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 느림보의 마음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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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에 많이 읽었던 여러 시집들이 있었다. 물론 제일 많이 읽었던 시절은 아마도 학교 국어시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좋은 시들을 이쁜 그림과 함께 코팅해 책받침으로 사용하며 시들을 외우고 또 가슴속에 담기도 했었다. 그때 그 몇년동안 읽었던 시를 한참이나 읽지 않았다. 최근에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시집을 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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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에 많이 읽었던 여러 시집들이 있었다. 물론 제일 많이 읽었던 시절은 아마도 학교 국어시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좋은 시들을 이쁜 그림과 함께 코팅해 책받침으로 사용하며 시들을 외우고 또 가슴속에 담기도 했었다. 그때 그 몇년동안 읽었던 시를 한참이나 읽지 않았다. 최근에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시집을 읽고 싶어 시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는데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이 보이는 거다. 나도 모르게 집어 와 가슴이 품었다.

시를 읽는다는 것.
가만히 있었다면 시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떠한 책으로 인해 그 저자가 소설책 보다는 시집을 주로 읽는다는 글에 나도 시집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집을 눈여겨 보고 시집을 찾기 시작하고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집 보다는 산문집으로 처음 만난 문태준 시인은 역시나,,,, 산문도 시처럼 맑았다. 그를 가리켜 '느림보 시인'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 별명처럼 닮은 글들이 묶여져 있다.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캔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여러가지 악한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도끼의 말로써 스스로 몸을 해치고 말 것입니다. 말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침묵은 우레와 같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  21페이지 '자라와 고니' 중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오지 않은 일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내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걱정까지 안고 사다면 우리의 마음은 거대한 풍선처럼 되어버려 어느 순간 펑, 터지고 말 것입니다. 
                     ~~~~~  74페이지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중에서


이렇게 맑은 마음을 품고 있는 시인의 글을 읽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정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고향집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과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농부셨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까지도 가슴에 와닿았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함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계절 탓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문태준 시인의 글은 정감이 있고 따뜻했고 또한 맑았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사람이 쓴 글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글들이었다. 마치 몇 편의 시를 읽는 것처럼.

그가 느리디 느린 거북이를 기르며 느낀 감정들을 쓴 글에서는 느림보 시인답게 느림의 미학을 나타냈다. '빨리빨리'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에서 그의 느림은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게 한다.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말며 침묵을 즐기는 삶을 살라고 속삭이듯이 말해준다. 그런 그의 느림의 삶을 또는 그런 마음들을 갖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산문집이 이런데 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0.11.24.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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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의 첫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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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마음이 한갓지지 못할 때 문태준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위안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다 신문에서 선생님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바로 서점에 달려가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역시 선생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산속 고요한 시냇물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느껴지던 그 편안함이 그의 글에 있었습니다.     삶에 치여, 사람에 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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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마음이 한갓지지 못할 때 문태준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위안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다 신문에서 선생님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바로 서점에 달려가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역시 선생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산속 고요한 시냇물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느껴지던 그 편안함이 그의 글에 있었습니다.  

 

삶에 치여, 사람에 치여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  

 

차가워진 마음에 스스로 놀라 움찔거릴 때,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편안함을 찾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b*****n 2009.07.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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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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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더위에 지쳐 책읽기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위가 가져간 내 속의 의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하염없이 잠으로만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고는 책 속의 내용에 일치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는 문태준님은 이토록 뜨거운 햇살마저도 감사하고 사랑해야할 대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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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더위에 지쳐 책읽기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위가 가져간 내 속의 의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하염없이 잠으로만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고는 책 속의 내용에 일치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는 문태준님은 이토록 뜨거운 햇살마저도 감사하고 사랑해야할 대상임을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여름날 한가로이 낮잠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는 이에게 다그치거나 타박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이 책은 그렇게 조용하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책이었다.


삶을 행복하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되도록 빠르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도 웰빙이란 것이 또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느림에 대한 철학이 단연 돋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말로만 생각으로만 하는 생활방식일 것인데. 문태준님의 글을 읽으며 그 속에서 보여 지는 저자는 진정 웰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도 삶의 크기가 거대해 보이지도 않는 저자의 일상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길 가의 작은 꽃 하나, 작은 새 하나에게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글은 시보다는 길긴 하지만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크다. 때로는 글을 통해 연상되는 옛 기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도 곧 당시 기억에서 맡은 수 있는 추억의 내음으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에서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 전달되기도 했다.


이토록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문태준님의 삶의 방식은 어떠한 걸까. 바로 마음에서 비롯된 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기도 하다. 글 모퉁이 마다 적은 글귀들에서 우리의 마음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런 보자기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덥다고 삶을 내동댕이쳐 버린 내 자신을 다시 싱그럽게 만들 수 있는 이도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알고 있는 것도 때로는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 것도 좋을 일이다. 마음을 열면 이런 깨달음도 조용히 다가온다.

k*********0 2009.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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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 편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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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가을이. 옆집 후배 영수는 어디선가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주어와 ‘가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가을에 와서 가을이라고 했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 아주 오래전 정릉 산꼭대기 단칸방에 자취하며 살 때 쓰던 일기의 첫 구절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왜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뼘 담장 높이로 고개를 떨구던 해바라기,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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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가을이. 옆집 후배 영수는 어디선가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주어와 ‘가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가을에 와서 가을이라고 했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




아주 오래전 정릉 산꼭대기 단칸방에 자취하며 살 때 쓰던 일기의 첫 구절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왜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뼘 담장 높이로 고개를 떨구던 해바라기, 낮은 담벼락 골목, 키 작은 보안등 아래 까맣게 눈망울을 맺은 나팔꽃 씨앗, 뚝 울음을 멈추던 매미소리, 불현, 높아진 하늘, 길모퉁이 작은 텃밭에 중공군보초처럼 황토색 후줄근한 차림으로 서있던 옥수숫대, 어느 집 마당에선가 쌀 일구는 소리가 쓰르레기 소리처럼 쓸쓸하게 파고들던 저녁...

그때 나는 그 단칸방에서 여름 내내 열심히 시를 썼습니다. 생각하면 그 계절의 갈피에서 그렇게 치열했고 아름답고 외로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그 장면들이 생각나고 떠오르는가봅니다. 그리운가봅니다.

그 여름. 옆집 후배 영수는 양철지붕으로 덮인 방안이 너무 더워 산 입구로 들어가는 나무그늘 벤치에 나와 늘 책을 읽고 소설을 썼습니다. 그 높은 산동네로 땀을 흘리며 대학교 1학년 문태준 시인이 내 방과, 김영수(지금은 김연수) 방으로 놀러오곤 했습니다. 무더웠던 여름, 밤이 되면 열이 달구어져 뜨겁기만 했던 그 방에서 우리는 웃통을 벗고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얼마만큼의 여름이 우리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을까요. 

2009년 여름. 나는 그때의 그 여름처럼 문태준 시인 <느림보 마음>이라는 책을 만들며 여름 내를 보냈습니다. 버스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아스팔트 뜨거운 눈부신 태양 아래서 문태준의 느린 문장과 그의 아름다운 마음 씀과, 초록자리, 가끔은 아프고 쓸쓸해서 속내를 조금 드러내는 그의 꿈틀거리는 언어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그 문체의 길을 흉내 내어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의 책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한참 밥을 많이 먹는 나이인 동생의 밥그릇에 밥 두어 숟가락 더 얹어주고 싶은 것처럼, 늘 마음이 그랬습니다. 뭐 좀 더 해주고 싶은 것 없을까? 돌아서면 연민이 생기고, 그의 느린 미소가 떠올라 짠해지곤 했습니다. 휴가 가는 것도 잊고 그렇게 두 달 내내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 책을 만들며 살다가 불현, 가을이 왔습니다. 

어제가 처서(處暑)였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데뷔작 <처서>는 이 무렵 한 번씩 읽어보는 시입니다. 언제나 읽어도 참 좋은 시입니다.

  

얻어온 개가 울타리 아래 땅그늘을 파댔다

짐승이 집에 맞지 않는다 싶어 낮에 다른 집에 주었다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떠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체 별처럼 시끄럽다




<느림보 마음> 북콘서트도 하고 가을에는 <느림보 마음> 캠페인도 벌일 예정입니다. <느림보 마음> 독후감, 좋은 구절, 느림보송,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느림보 카피, 공모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문태준 시인의 마음이자 마음의숲 출판사 편집부들이 지향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이 너무 신속합니다. 성난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저마다 의 힘겹고 무거운 역기를 들고 사는 것 같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밥벌이를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너무 정신이 없습니다. 부수고 짓고 때려 부수고 또 새로 짓고.... 그렇게 이 사회가 너무 빨리 변화합니다. 같이 가는 것들과 조금 늦게 뒤따라온 것들을 살려냈으면 합니다. 피맛골, 몽당연필, 구멍가게. 골목길, 별, 파란하늘, 배려, 나눔, 기다려줌, 미소... 그렇게 쉴 겨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것을 다른 데로 돌릴 줄 알았으면 합니다. 자연의 보폭에 맞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사람다운 세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느림보 마음>입니다.




제주도의 훌륭하신 사진가 고남수 선생의 사진을 넣어서 <느림보 마음>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느림보 노트>를 끼운 기존의 책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사진을 넣은 <느림보 마음>의 책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이 많이 나갔으면, 아니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읽힌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과, 일과, 만남과, 사랑에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릉에서 보냈던 시절처럼 나도 다시 그들과 공도 차고, 운동장도 달리고, 지치고 더운 마음의 땀을 식혔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여름 <느림보 마음>을 만들며 정말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2009 그해 팔월이 끝나갈 무렵 - DREAM 초록그늘  


* 마음의 숲 카페(http://cafe.naver.com/lmindbookl)에서 퍼온 글입니다 ^^

s****3 2009.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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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더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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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결코 과장하진않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시를 쓰던 문태준 시인   그의 산문은 훨씬 느리고 천천히 간다 그래서 더 천천히 읽어내려갔는지도 모른다 빨리를 외치는 일상에 조금 쉬라고 하는 그의 산문은 또 다른 이름의 시집이다 산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극히 시적인 문장으로 느릿느릿 촘촘하게 채워진 느림보 마음   느리게 살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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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결코 과장하진않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시를 쓰던 문태준 시인

 

그의 산문은 훨씬 느리고 천천히 간다

그래서 더 천천히 읽어내려갔는지도 모른다

빨리를 외치는 일상에 조금 쉬라고 하는

그의 산문은 또 다른 이름의 시집이다

산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극히 시적인 문장으로

느릿느릿 촘촘하게 채워진 느림보 마음

 

느리게 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냥 지나쳐가는 수많은 가치와 풍경을

얻을 수 있다. 느리게 가는 것, 느리게 생각하는 것이

게으른 것이 아니며 결코 둔하거나 무지한 것이 아니다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고 천천히 사람을 관찰하고

인생을 곱씹고 성찰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한다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느리지만 깊이있는 문태준의 산문

제목처럼 느림보마음으로 읽어내기에 제격인 글이다

추천사를 쓴 김훈의 말대로

느림을 말할 때 더 아름답고 강력한 문장,

치열하고 평화로운 문체가 나오는 것 같다

 

<인상적인 글귀>

덜어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에도 소식小食이 필요합니다

덜어내는 것이 가장 번창하는 일입니다

말을 덜어내면 허물이 적어집니다

덜어내는 일이 보태는 일보다 어렵지만

덜어내는 일이 나중을 위하는 일입니다

 

마중은 챙겨주는 마음이요,

당신의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사람을 마중 나가는 일은

사랑을 알게 된 마음만이 시킬 줄 압니다

 

사랑이나 삶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는 말을

이제야 나는 알 것도 같습니다

너무 손을 대면, 손 타면 안된다는 그 말의 귀함을

알 듯도 합니다. 애써 성공하려 하지 말고

애써 실패를 초래하지도 말라는 그말을 알 것도 같습니다

삶이나 사랑은 강과 같아서 다만 유유히 흐를 뿐입니다

 

 

 

 

 

 

w******o 2009.07.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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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보, 보 자로 끝나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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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가끔씩 생각나는 때가 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제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였습니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노랫말에는 개나리, 미나리도 있고 소쿠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신할 수는 없고 다만 마지막이 유리 항아리로 끝난다는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이 노래를 보, 보, 보 자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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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가끔씩 생각나는 때가 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제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였습니다. , ,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노랫말에는 개나리, 미나리도 있고 소쿠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신할 수는 없고 다만 마지막이 유리 항아리로 끝난다는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이 노래를 보, , 보 자로 끝나는 말은? 이라고 노랫말을 바꿔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이어지는 노랫말에 올 수 있는 단어들은 바보나 울보나 뚱보, 그리고 먹보 정도가 얼른 생각납니다. 노랫말에 들어가기에는 좀 심하지만 갈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하나같이 어감이 좋지 않은 말들뿐이어서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빠지고 점점 소심해지려고 하는 이 노래를 단숨에 변화시킬 수 있는 역전의 홈런타가 있었습니다. 양보와 산보와 느림보.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단어들이지만,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느림보 마음을 읽고 난 뒤론, 보 자로 끝나는 말,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말들이 되었습니다. 점점 기어들어가던 내 목소리는 이 아름다운 세 단어 덕택에 다시 힘을 얻어 기운찬 목소리로 노래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느림보 마음에서 문태준 시인이 우리에게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는 것은 이렇게 세 단어로 끝나는 노래랍니다. 양보와 산보와 느림보.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들이지만 이들은 언제나 함께 가는 동행입니다. 양보는 느림보가 늘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며 산보는 느림보가 가장 즐기는 몸의 움직임이니까요. 느림보에게 있어 산보는 나란히 가는 옆을 거두려는 몸의 일이며 양보는 늦게 뒤따라온 뒤를 살려내려고 애쓰는 마음의 일이니까요.

 

이 세상이 너무 신속합니다. 나란히 가는 옆과, 늦게 뒤따라온 뒤를 살려냈으면 합니다. 나의 것을 다른 데로 돌릴 줄 알았으면 합니다. 차마 다하지 못하는 말은 남겨두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세상의 마음이 궁벽한 곳에 살지 않도록. (6, 시작하는 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문태준 시인은 오히려 세상의 마음이 한없이 궁핍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빨리 가는 이 가속도의 세계와 나란히 가지 못하는 숨찬 옆의 모습과 풍요롭다 못해 휘황찬란한 이 세계의 뒷전으로 물러서 있는 더 짙어진 뒤의 그늘이, 그의 눈에는 너무나 똑똑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그가 택한 포즈가 느림보이고, 그러니까 그가 쓴느림보 마음은 말하자면 느림보의 전략서인 셈이지요.

 

하지만느림보 마음에는 전략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한 것들을 두세 쪽이 넘지 않는 짤막한 글들에 담아 찬찬히 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여백이 많은 단색의 수묵화처럼 그의 문장들은 헐겁고 그의 이야기들은 적적해서 어떤 글은 몹시나 심심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빠르게 전개되는 자극적인 이야기와 경쾌한 문장에 깊이 길들여진 사람이 느림보 마음을 읽는다면 거의 죽을 맛일 겁니다.

 

 잠깐, 죽지 마세요. 당신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빠르게 눈으로만 읽어나가느라 당신이 지나쳐 버린 행간에는 아무나 길어 올리지 못하는 깊은 사유의 우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수레와 배와 물고기는 움직이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일로 인해 당신에게 피로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도 당신도 움직이고 흘러갈 뿐입니다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부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돌은 돌의 일을, 바람은 바람의 일을, 구름은 구름의 일을, 꽃은 꽃의 일만을 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결국 나의 일이 당신의 일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당신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큰 바퀴가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58-59, 움직이고 흘러가는 수레와 배와 물고기)

 

잠깐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이지만, 이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에는 우리 영혼을 충격하는 묵직한 힘이 있습니다. 한사코 앞으로 달려나가려고만 했던 우리의 두 눈은 잠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 이제 보이시죠? 당신과 나 사이에, 이 세계 속에 느릿느릿 굴러가는 커다란 바퀴가. 그 바퀴가 언제나 바쁜 당신의 눈에도 보이게 된 것은 지금 당신이 멈춰 섰기 때문입니다.

 

느림보 마음은 이처럼 우리의 두 눈을, 우리의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 느리게 흘러가는 수레와 배와 물고기와 구름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다만 보여줍니다. 요란하게 설명하거나 난해한 주석을 달지 않습니다. 헤아리고 짐작하는 일은 독자의 몫이라는 것을 문태준 시인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는 일찍이 시란 바깥에서 얻어온 것들이기에 다시 되돌려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지요.

 

새와 아내와 한 척의 배와 내 눈앞의 꽃과 낙엽과 작은 길과 앓는 사람과 상여와 사랑과 맑은 샘과 비릿한 저녁과 나무 의자와 아이와 계절과 목탁과 낮은 집은 내가 바깥서 가까스로 얻어온 것들이다. 빌려온 것이다. 해서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다. (문태준 시집가재미뒷표지글에서)

 

느림보 마음을 읽어보니, 그의 산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힘겹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과 사람들이 자꾸 떠나가지만 그래도 아직 인정이 넉넉한 고향 마을, 그리고 바라보는 것이 이따금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밥상 둘레에 함께 앉은 모습이 한없이 정겨운 가족들에게 바쳐진 많은 글들은 한결같이 꾸밈이 없고 담백합니다. 다시 돌려주더라도 그의 이웃과 고향과 가족들에게 꼭 맞춤으로 들어맞을 글들입니다.

 

하지만 순연한 그의 마음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순간은, 그가 자연을 찬찬히 바라보고, 귀 기울여 듣고, 토닥이며 만지고 있을 때, 즉 자연 속에 있을 때입니다. 그 때 그의 글은 산문이 아니라 시로 읽힙니다.

 

여름 우레가 구름들을 끌고가고 그리하여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햇살의 궁전인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27, 여름의 근면)

 

하늘의 주민인 새가 나보다 높은 곳에서 이 눈 속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목덜미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67, 오늘 종일 하늘이 하는 이 무일푼의 일)

 

송편을 잘 빚는 어머니처럼 가을밤은 달을 잘 빚고, 달은 이 세상의 슬프고 가난한 자연들에게 잘 얹힙니다. 하나의 자연인 나에게도 달은 잘 얹혀서 나를 풍성하게 하고 나의 둘레를 넓히고 밝게 비췄습니다. (155, 강보처럼 감싸던 달빛)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을 두고, 우리는 단지 그가 타고난 시인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가 타고난 시인이자 동시에 느림보 시인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또한 느림보이되, 양보하는 마음과 산보하는 몸도 함께 지녔기에 가능한 것이었고요.

 

그래요. 그가 이 세상에서 온갖 것을 다 빌려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처럼 느릿느릿 산보하면서 이 세상을 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빌려온 것을 다시 시와 산문이라는 형식으로 이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었던 비결은 그에게 언제나 양보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자신만 혼자 누리지 않고 남들과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아니 오히려 남들에게 다 주어버리고 자신은 그저 그 뒷모습만 살려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양보의 마음 말입니다.

 

그건, 누리되 내 것으로 삼지 않고 덜어내는 마음입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그가 빌려온 자연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마음입니다. 그건, 그가 극빈이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에서 말한 것처럼, 파다하게 피어난 흰 열무꽃들을 나비에게 잃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을 말하자면, 그 나비에게 발 딛고 잠시 쉬라고, 선잠 들라고 무릎을 내주는 아름다운 행위였던 게지요. 그런 시인의 마음도 모른 채, 사람들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서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쳤다고, 채소밭에 웬 꽃밭을 가꾸었느냐고 타박합니다. 느림보 시인이 지니고 있는 양보의 마음을 도무지 읽을 줄 모릅니다.

 

이런 양보의 마음을 우리 이웃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전하는 느림보들이 조금씩 조금씩 많아질 때, 세상의 마음은 비로소 궁핍으로부터 벗어나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때 우리의 마음에도 푸른 잎이 돋아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몸은 마음을 운반하는 나룻배입니다. 우리는 몸을 사용하지만 나의 몸을 받는 사람은 나의 마음을 받습니다. 닿음의 감각을 자주 사용할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버들잎이 돋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릴 것입니다. 나는 나의 손과 혀와 볼로써 이 세계를 만집니다. 하나의 꽃봉오리처럼 세계가 아름답습니다. (143-144, 물새의 깃털보다 부드러운 촉감)

 

비우고, 덜어내고, 나누고, 되돌려줌으로써 오히려 더 풍요로워지고 따스해지고 충만해지는 삶, 그것이 바로 느림보의 삶인 것입니다. <느림보 마음은 그런 삶의 방법을 조목조목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문태준 시인은 그저 그런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만히 보여줄 뿐입니다.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저물 무렵 들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소를 받아왔던 것처럼, 우리도 시인 문태준이 건네주는 소의 고삐를 다만 가만히 받아올 뿐입니다. 어느 땐가 문득 그 소는 깨어날 테죠. 깨어나서 우리 마음 속을 느릿느릿 걸어 다니겠지요. 그때 우리의느림보 마음읽기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 우보(牛步)의 보폭과 속도를 닮아 있음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보 자로 끝나는 말이 하나 더 늘었군요. , 다시 노래를 불러봅시다. , , 보 자로 끝나는 말은? 바보와 울보, 그리고 뚱보와 먹보? 아니면 산보와 양보, 그리고 우보와 느림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용기뿐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c*****t 2009.12.14. 신고 공감 0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작년 12월의 첫날에 완독했던...
"작년 12월의 첫날에 완독했던..." 내용보기
2011년 12월의 첫 날이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문태준의 첫 산문집『느림보 마음』을 꺼내 펼쳤다. 한달에 걸쳐 비교적 천천히, 느리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가급적 천천히 읽어야한다, 제목처럼. 굳이 빠르게 읽을 필요가 없다. 매일 밤 혹은 매일 아침 한 꼭지씩만 읽어도 충분하다. ‘시’는 생각의 농축액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문태준의 시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작년 12월의 첫날에 완독했던..." 내용보기

2011년 12월의 첫 날이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문태준의 첫 산문집『느림보 마음』을 꺼내 펼쳤다. 한달에 걸쳐 비교적 천천히, 느리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가급적 천천히 읽어야한다, 제목처럼. 굳이 빠르게 읽을 필요가 없다. 매일 밤 혹은 매일 아침 한 꼭지씩만 읽어도 충분하다.

‘시’는 생각의 농축액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문태준의 시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문태준의 산문은 그 농축액을 물에 살짝 탄 것과 같은 맛을 낸다. 원액처럼 진하진 않지만 묽어진 그것은 내 몸 구석구석을 돌고 돌아 머리와 가슴과 손을 따뜻하게 만든다.


여름에는 주로 바다로 그 외의 계절엔 산으로 자주 여행을 떠나는 편인데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내륙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처럼 강인하고(때론 무뚝뚝하고, 퍽퍽하고)해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바다처럼 감성적(좀 더 유들유들한)이라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그런 나만의 기준에 세워보면 내륙에서 자란 문태준은 어떤 사람일까?

그의 산문에서 느껴지는 강인하면서도 포용력 있는,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는 다정함과 한 겨울 벌거벗은 나무가 가득한 산의 뻣뻣함을 가진 사람일까? 어쨌든 그의 산문은 그의 ‘시’를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서로 같은 정서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태준의 시가 “우리 서정시를 위무의 성소聖所로 이끄는 언어의 축복”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는데, 시든 산문이든 그의 손에서 나온 글들은 조금 특별하다. 도시에서 자고 나란 내가 감히 추측 할 수도 없는 농촌의 가을 언저리를, 풀을 태우는 늦가을의 냄새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문태준 이전에도 ‘느림’을 말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 사람처럼 무의식적인 향수를 자극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가 쓰는 단어들은

얼마나 둥근지.. 소박하면서 성기지 않아 자연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느림보 마음』은 느린 마음, 느린 열애, 느린 닿음, 느린 걸음 등 네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각 장을 통해 그는 ‘느림’을 예찬한다. 그러나 열을 올린 선동은 아니다. 밥을 먹지 않겠다는 사람 앞에 먹으라고 강요하는 대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스스로 식탁 앞에 오게 만드는 것처럼 은근하게 권한다.

나는 이 책을 지금, 특히 연말에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새해 새날 아침에’라는 글 때문인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볼 새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내게 잊고 지낸 그 무언가를 기억해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잊고 지낸 것은 꿈, 계획, 설렘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시간은 저울추처럼 매양 중립적입니다. 시간을 치장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미래의 시간이 행복의 화원이 될지, 혹은 눈물의 폐허가 될 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의 앞에 새로운 한 해가 오고 있습니다.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게 밀려오는 새로운 한 해에도 꽃이 피고, 신록이 번지고, 과일이 익고, 눈이 내릴 것입니다.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해도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없고, 거문고의 줄이 너무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적당한 양의 들뜸과 적당한 양의 조바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날을 맞으면 됩니다. 나와 당신의 앞에는 시간의 미개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새해 새날 아침입니다.


시인은 하늘이 내리는 사람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 시인의 산문집이 잠언箴言서 같다.

들뜨기도 쉽고 느슨해지기 쉬운 연말, 『느림보 마음』을 읽으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마음 고삐를 맬 수 있길..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h******6 2012.0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