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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연극같은 이야기! 49세기의 어느 미래이야기~
이야기는 주인공인 카르멜로를 사건들도 시작된다. 영웅이 순식간에 악당이 되어버리는 과정은 우연적이며 당위성보다는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모든것을 결정하는 데....그 모든 과정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그곳이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음악을 없애고 종교를 금지한 나라기 때문이다. 책은 이러한 예상불가능한 시대배경과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일방적인 정보의 습득과 권력의 속성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49라는 숫자의 의미다. 49(7x7) 다음의 수인 50이 모든것이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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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돌의 도시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 자유를 억압하는 듯 하는 수많은 정책은 우리의 목을 점점 조여 오는 듯하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이제는 도무지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국민의 안녕과 평안을 지키고 수호해야할 국가 정부는 가지각색 부정부패와 비리로 점철되어 이제는 그러한 일들이 일상이 되어져 가는 것 같다. 속 시원한 뉴스도 없고, 온통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거침없는 한 마디를 하고 싶다.
49세기 우주통합 은하세계. 생각과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없는 세상. 버추얼 비전이라는 오늘 날 매스컴과 같은 것에 지배를 당한 세계. 소수 권력가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음악과 미술, 종교 등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은 금지되어져 버린 49세기라는 머나먼 미래의 설정. 과연 21세기를 지나 49세기가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스페인을 발칵 뒤 집어 놓은 작가 마누엘 F 라모스가 처음으로 펴낸 둥근 돌의 도시. 둥근 돌의 도시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현 우리의 사회를 재조명하는 그의 기술은 실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사람은 수 없이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 속을 뒤집어 놓을 그의 마술 같은 화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한 이 영화의 섬뜩함은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감정의 마음이 사라진 시대. 인간이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 시키는 감정을 억제한 미래에서 주인공인 찾게 되는 진정한 감정의 자유가 생각이 난 것은 왜 일까? 모든 것을 제어하고 억압하는 둥근 돌의 도시가 주는 메시지가 이퀼리브리엄과 오버랩이 되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 누구도 억제와 통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성간 업무부 장관의 아들이자 선행과 사회보건부 공무원인 카르멜로. 평범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달리기.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에서 오로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뿐이다. 특히 내리막길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가 우연하게 일어난 사고로 국민적 영웅이 된다. 하지만 탐욕 자들의 음모와 술수에 휘말리게 되는 주인공 카르멜로. 국가적 영웅에서 최악의 살인범으로 명명되는 그에게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한판 이야기이다.
둥근 돌의 도시는 쉽지 않다. 무엇이 쉽지 않느냐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부서와 장관들 이름. 그리고 사람들이 이름도 낯설다. 49세기를 풍자한 이야기이기에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색한 이름들이 나중에는 중독성처럼 다가온다. 뭐가 무엇인지 끝까지 읽어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둥근 돌의 도시. 수많은 권력자들이 벌이는 음모와 술수는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어이없는 그 코미디 같은 권력자들에게 향한 작가의 시원스러운 풍자는 이 책의 꼭 읽어 보아야 할 이유 중 하나이다.
마지막 키워드가 될 대통령이 가진 둥근 돌. 그것이 주는 의미는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그 가치관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볼 때 유치할 수도 어이없을 수도 있다. 49세기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둥근 돌의 의미.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의 가치관일수도 있다는 저자의 심오한 메시지가 오늘을 살아가며 헛된 가치관을 쫓는 우리게에 남기는 단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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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아니, 사실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혼란스럽다. 많은 인물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등장하고, 소설 속의 인물과 작가가 직접 논쟁을 벌이며, 본 내용과 별로 관계없는 요상한 주석들로 가득하다. 마치, B급영화를 보는듯하다는 생각이 드는데다, 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머릿속의 나사가 하나씩 빠진 듯이 행동한다.
『둥근 돌의 도시』는 독자들에게 매우 혼란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49세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소위 SF장르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단순히 풍자를 의도하고 있지도 않다. 온전히 풍자나 유머를 유발하려는 의도가 아닌, 소설이란 장르의 내용적인 전개에 대한 전복을 꿈꾸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실질적인 면에서 『둥근 돌의 도시』는 줄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표면적인 내용은 우연히 여자 대통령의 핸드백을 훔쳐 도주하던 도둑을 잡은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영웅으로 떠오르지만, 권력자들의 암투 속에서 살인범의 누명을 쓰게 된다. 소설은 실제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단순히 그런 식상한 전개를 중심에 두고 있지는 않다.
작가인 마누엘 F. 라모스는 기본적인 내용의 전개는 최소한의 소설구조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할 뿐이다. 뒤로 갈수록 내용은 산으로 올라가며, 아무 의미도 없는 인물들마저 뜬금없이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줄거리의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내리막길만 보이면 미친 듯이 달리는 일뿐이다. 조연들도 영양가 없는 행동을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수시로 소설의 내용 속에 개입하는데다, 결말마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진실은 저 너머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에필로그는 후편으로 이어지며, 후편의 속편까지 등장한다.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소설이 바로 『둥근 돌의 도시』이다.
작가는 세상의 아이러니를 우화적으로 표출하려는 의도를 지닌 걸로 보인다. 삶은 사람들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고, 선인과 악인의 구별도 명확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작가의 역량은 색다른 놀라움을 준다. 혼란스러운 소설의 전개 속에 인생의 본질적인 진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은 남다른 면이 있다.
『둥근 돌의 도시』는 한편의 재미있는 소설로서도 흥미롭다. 일종의 코미디극으로만 생각하고 읽어도 좋다.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도 그렇고, 읽고 나서도 깨끗한 느낌을 준다. 독자들이 이 한편의 풍자소설을 읽으며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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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고 많은 취미 중에서 독서나 음악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으로 독서나 음악감상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그 분야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재적인 방법으로 금지한다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아주 먼 미래를 향한 이야기와 함께 이런 세상이 정말 미래에 펼쳐진다면 정말 끔찍함을 일깨우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둥근 돌의 도시」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사회를 풍자한 느낌이 든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49세기라는 점이다. 지금이 21세기이기에 아주 먼 미래가 되는 셈이다. 현실에처럼 이 책에서도 평범한 일상과 함께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행성간 업무부 장관’의 아들이자 ‘선행과 사회보건부’의 공무원인 ‘카르멜로’는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날도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가 나고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고를 당한다. 함께 차에 치인 사람은 바로 도둑이었다. ‘세계 대통령’의 핸드백을 훔친 도둑을 잡고 ‘카르멜로’는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부터 음모에 휘말리게 되고 그 결과 범죄자로 낙인 찍히고 만다. 권력의 상징을 나타내는 ‘둥근 돌’을 훔치기 위한 음모에 빠지게 된 셈이다. 그리고 ‘둥근 돌로 말미암아 ‘둥근 돌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49’라는 숫자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 책의 배경은 49세기이지만 사랑도 음악도 책도 없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카르멜로’는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 중 하나인 내리막길을 달리고 그로 말미암아 사건이 생긴다. 아주 평범한 생활을 하던 가운데 평범함은 더는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특별함으로 변해버린다. 대부분 사람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관심 분야에 애정과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그것조차 평범하게 누리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카르멜로’처럼 달리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얻지만, 그 사소한 행복조차 이 책에서는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함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의미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전혀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기에 ‘블랙 코미디’라는 점에서 황당하면서도 유머 있고 사회적인 풍자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평범함에 대한 일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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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49세기를 생각해본다.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까? 어떤 소설에서는 순간이동을,과학이 너무 앞서가서 과학을 따라가지 못하는 계급이 존재한다.또 다른 소설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이 지배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대부분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49세기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은 스페인의 작가 마누엘F.라모스는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다.
주인공 카르멜로 프라사스는 내리막길만 보면 미친듯이 달리는 취미라고 하기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그것'만 빼면 지극히 평범한 약 서른나이로 '선행과 사회복지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그는 '행성간 업무부'장관의 아들이다.어느날 내리막 길을 달리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다.그때 카르멜로와 함께 차에 치인 사람이 있었는데,대통령의 핸드백을 훔치고 도망가던 도둑이었다.그는 도둑을 잡았다는 이유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둔갑한다.
의사는 인간에게는 사용해보지 않은 실험을 카르멜로에게 시험한다.의사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두 장관을 협박하고 공공치안 대표에게 독을 투여하고, '선행과 사회보건부의 고위 관료들에게 커미션을 지불하고 허가를 얻어냈다.그는 실험의 부작용으로 뼈가 훨씬 강해져서 뼈가 잘 부러지지 않게 된다.
카르멜로는 대통령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에 휘말려 어디론가 납치당한다.그는 살인자로 지목받는다.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비인간화'라는 식물인간이 되는 종신형을 받게 된다.하지만 범인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로 밝혀진다.
나쁜 환경부 장관,종교통제와 성 억제부장관 ,대외공격부장관, 행성간 업무부 ,도시파괴와 행성회복부,사회 정보문화와 불필요한 조직부 ,세계 정치부등 조직의 명칭은 현 시대를 반영한다.49세기에는 오래전부터 종교가 금지되었다.대통령을 비롯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평생 책을 본 적도 없다.텔레비젼은 버추얼 비전이라고 불린다.감시카메라와 같아 보인다.
대통령의 비서가 대통령의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CD로 양자론 슈퍼컴퓨터에서 소이탄을 열어 둥근돌을 꺼낸다.둥근돌 속에는 비밀의 책세 권이 보관되어 있다.읽는 내내 비밀의 책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정작 그 비밀의 책이 뭔지 알게 되면 웃음이 나온다.배경이 49세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현재 정치인들과 경찰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비꼬아 49세기에 그대로 적용했다.'자네에게 정치를 하는 기술을 설명해 주지.집안 싸움에 몰두하는 장관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다네..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게 마련이야.문제가 생기면 장관 하나를 해고하면 그만이고,이게 바로 혼돈의 정치라는 거야.(P36) '항상 혐의자가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한다.하나는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는 사람이고 둘째는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세 번째는 첫 번째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을 때 죄를 전가하기 위해서다.(P56)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해 "사회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말을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이 소설에서 나는 사회를 비웃고 우리의 조직,가치의 부재,일부 인물들과 그들이 하는 짓을 비웃는다"고 말한다.그는 이 작품< 생각이 금지된 구역>을 통해서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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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를 알고 싶은 궁금증이 반영된 작품들은 이미 많이 접해보았다. 무리한 개발로 빠르게 발전하는 인간의 미래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고 각박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본래의 인간성을 찾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따뜻한 분위기로 끝맺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작품에서의 이런 결말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에서 희망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미래를 다룬 작품들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가능하기에 이 책 <둥근 돌의 도시>를 보았을 때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약간 망설였었다. 하지만 책도 음악도 사라진 도시, 그리고 사랑도 범죄도 모두 사라져 행복할 일도 분노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49세기의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궁금했다. 사랑과 범죄는 제쳐두고서라도 책과 음악은 지루한 일상에 활력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도구라고 여기고 있기에 책과 음악이 사라진다는 도시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과연 행복할 수가 있냐고요.” 형사는 그 질문을 잠시 생각한 뒤 팔꿈치를 책상에 기대고 “아니, 아니.”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적어도 완전하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지요. 고통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나아요.” “고통?” “이 세상의 고통 말이에요.” p108 놀랄 일도 많고, 흥분할 일도 많은 현재가 계속된다면 미래 어느 시점에는 소설 <둥근 돌의 도시>처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행복을 희생시키는 상황을 맞게 되지 않을까. 소설 <둥근 돌의 도시>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음악도 독서도 신도 없는 세상을 창조했다. 도시의 지배자들은 이를 통해 도시는 평화로워질 것이고, 사람들은 편안해지리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49세기의 도시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도시의 권력자들은 권력을 지키거나 빼앗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기억을 없애버리는 범죄를 일으킨다. 소설 속 49세기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전혀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정치권, 소시민을 희생시키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지금과 같기 때문이다. 소설 <둥근 돌의 도시>는 2008년 스페인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이 소설이 스페인에서 인기리에 읽힌 이유가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스페인이나 우리나라나 권력투쟁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행위는 똑같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언제쯤 이런 소설을 읽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있을까. 심심할 때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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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대통령의 가방을 훔친 도둑을 우연히 잡게 된 카르멜로는 한순간 영웅이 된다. 영웅이 되어 버린 카르멜로로 인해 대외공격부 장관은 해고 되고 그의 아버지 행성간 업무부 장관은 그 역할이 커진다. 그런 카르멜로는 누명을 쓰게 되는데 대통령의 책을 훔치고 장관을 죽였다고 경찰에게 조사를 받는다. 하지만 카르멜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금지된 노래들만 흥얼거릴 뿐이였다. 책 읽어주는 기계로 인해 책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목소리, 손발, 종이를 인식하고 인터넷까지 되는 멀티머디어 펜,화면과 확성기, 보고서, 사진들이 들어있는 비추얼 상호통신기등이 있는 미래사회에서도 범죄는 일어나고 있었다. 죽는 것조차 힘든 그 세계에서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권력때문이였다. 전 우주가 하나로 통합한 그 때에도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고..노래도 통제되고 종교도 통제되는 그곳에서도 역시 권력은 생겨났고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결국 미움과 암투는 생겨났다. 아무리 시대가 발달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의 모습과 그 내면은 완전하게 다르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아주 머나먼 49세기의 일이 어째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국민들이 윈하는 그 무엇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과 국민들의 영웅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길려는 모습이 현실과 비슷한 느낌이라 씁슬함을 느꼈다. 미래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우리의 미래가 이 책과 같다면 너무나도 암울하다. 지금과 달라 질 것이 없는 우리의 미래. 생각해보면 자동차나 컴퓨터가 없던 아주 먼 시절로 돌아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씌여진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뀔지 몰라도 결국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은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노론과 소론등 당파싸움이 있었다면 지금에도 역시 당끼리의 싸움이 있으니까. 49세기 역시 그럴것이다. 스페인 책의 거의 처음 읽어보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 책의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일들은 나에게 웃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유머와 웃음을 주고자 하는 것은 알겠고 느껴지지만 나에게는 전혀 웃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스페인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대다 그들의 웃음 코드와 나의 웃음코드는 맞지 않는 듯 싶다. 거기다 개고기와 월드컵 비하가 초반부에 나오는 바람에 마음이 상해서 즐겁기 보다는 씁쓸함만이 계속 남았다. (작가의 의도는 유머였을까. 비하였을까.) 생각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든 것이 기계로 되어지는 이 진부한 곳에서도 권력이 생가나고 서로간의 싸움은 생겨난다. 아마도 이런 진부함에서 벗어나고자 오늘도 우리의 영웅은 달리는 것이 아닐까. 21세기건 36세기건 49세기건 우리의 사고는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오늘도 즐거워서 달리고 있는 사고뭉치 카르멜로가 있지 않을까. "자네에게 정치를 하는 기술을 설명해 주지.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장관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다네. 알겠나?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게 마련이야. 문제가 생기면 장관 하나를 해고하면 그만이고. 이게 바로 혼돈의 정치라는 거야. 이건 기업이론이고 21세기 초에 완성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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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기.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까마득한 시대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너무나 먼 미래라서 어떤 방향으로 세상이 발전될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이 책의 작가에 의하면 49세기에는 음악도 책도 일반인들에게는 금지된다. 장관의 아들인 우리의 주인공 카르멜로 프리사스는 그저 달리는 것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선행과 사회보건부' 공무원이다. 그저 여느 날처럼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다가 우연히 핸드백을 가지고 달리는 어떤 사람과 부딪혀 그 사람을 넘어지게 했을 뿐인데, 그는 바로 그날 국가적 영웅이 된다. 발칙하게도 대통령의 핸드백을 훔친 범인을 그가 잡아버린 것이다. 49세기. 사람들은 더욱 편리한 각종 기계를 사용하고, 각종 기계에 의해 통제 당하고, 너무나 편리해서 아무런 불편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지배계층 속에서의 권력의 암투는 똑같다. 그들은 자신의 직종의 연금이 깍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진실보다는 오직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더 흥미로워할 것인가,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한 스토리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실을 날조하기에 바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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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살면서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공기가 물이, 태양 등의 자연이 그렇고, 인류가 만든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들이 그렇다.
책도 음악도 사라지고 범죄와 사랑마져 사라져버린 세상이 온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생소한 스페인권의 소설이기에 조금은 더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둥근 돌의 도시>는 책도 음악도 범죄도 사랑도 사라진 49세기의 세상을 그린다.
주인공 카르멜로는 행선간 업무부 장관의 아들이자 선행과 사회보건부의 공무원으로 결혼할 애인도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달리기를 좋아는 그는 그 날에도 평소대로 달리기를 하다가 여 대통령의 핸드백을 훔친 도둑을 잡은 것으로 인해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통령의 자리를 노리던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어 특수치료의 부작용으로 쫒기게 되는 카르멜로와 그를 찾기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의 한바탕 소동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이 책은 많은 등장인물과 익숙치 않은 이름으로 정신없게도 보이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장관 이름을 보면 그들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명목으로 책과 음악과 함께 생각하는 사고마져 제한을 하고 자신들만 은밀히 즐기는 모습들, 문제가 생기면 떠넘기기식 처사가 낯설지만은 않다.
공익은 뒷전이고 자신의 이익들만 챙기기에 정신없는 장관들을 보면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가 권력의 희생량이 되는 과정을 정신없이 풀어 놨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권모술수와 부정부패, 떠넘기기식 49세기의 모습들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세계는 경제문제로 한국은 노사갈등과 함께 언론 미디어법의 날치기 통과로 인한 파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거대 기업이 언론을 장악하게 되면서 당장 겪게 되는 문제는 없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문제점들이 장기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은 당연지사다.
이 책의 주인공 카르멜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으로 영웅이 되면서 매스컴에 연인 보도되면서 일약 대중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하게 되지만, 사실이 아닌 오해로 인해 또 다시 살인사건의 범죄자로 불리게 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을 하고 생각을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도, 책도, 음악도, 사랑도 통제되는 둥근돌의 도시처럼 그런 미래가 온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어떤면에서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평범한 것이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 책속 주인공인 가르멜로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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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기를 상상해 본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십수년 뒤에 49세가 되는 내 모습도 예측이 안되는데 49세기라니...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지하게 생각이 많거나 아니면 멍때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 돌이켜보니 아주 어릴 때는 머나 먼 미래에 대해 가끔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ET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미래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로 빠져들어가 다시 현재로 온다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어느 순간 코앞의 일만 걱정하는데 급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ET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은 ET의 외모가 미래인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미래에는 기계화로 인해 인간들이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어지고, 근육같은 기관들이 퇴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키는 크지 않고, 팔과 다리는 마르고, 머리 크기는 그대로인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기형적인 모습이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오히려 49세기가 되면 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 우주가 하나로 통합되고 사회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범죄에서 사랑까지 고민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단조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는 단조로운 삶은 인간을 더욱 미치게 만들기 마련이다. 주인공 카르멜로 프리사스가 내리막길만 보면 내달리게 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날도 내리막길이 눈 앞에 펼쳐졌을 뿐이고, 평소처럼 냅다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 앞을 달리는 한 남자를 발견하는 순간 경쟁심리가 발동하게 되었고 격렬한 몸싸움 끝에 두 사람 다 자동차에 치이고 만다. 알고보니 상대는 대통령의 가방을 훔친 도둑이었고 카르멜로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다. 언론은 앞다투어 카르멜로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사람들도 영웅 카르멜로에게 열광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계의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에 휘말린 카르멜로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미스테리,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고 산만하다. 이야기하다가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수다쟁이와 함께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거기다 주인공만 보면 좋아라하는 여자들도 이해가 안되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자기를 납치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다는 식의 허무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주인공이 차에 치이고 붕대를 감고 깁스를 한다는 표현부터 49세기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던가. 그 때 쯤이면 순간이동 기계도 나와주어야 하고, 치료 캡슐정도는 언급해줘야 되는거 아닌가 말이다. 49세기라는 설정은 파격적이었는데 상상력을 좀더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니까 블랙코미디, 라고 말하면 할말없지만 애초에 사라마구의 도시 시리즈를 연상하게 만든 제목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이거 아시는지?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둥근 돌'에 불과하다는 것을. (p.226)"
둥글다는 것은 모호하다. 성격이 둥글다는 말은 두루 무난하다는 뜻이겠지만, 뭔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확실한 듯 하면서도 예측불가인 인간들처럼 이 세상은 그렇게 불확실함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둥글다는 것은 하나의 면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시 되풀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오늘날이나 49세기나 물질적인 것은 변화할지 몰라도 인간의 내면 탐욕, 거짓, 욕망, 사랑, 희망...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감정들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인간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