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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인들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추천해 주는 입장에서 참 고르기가 난감하다. 애써 골라 주었는데 재미가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민망하지 않은가. 나는 장르소설 전반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장르나 추천해 준다면 기대했던 반응은 잘 돌아오지 않기 마련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는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꾼 시리즈> 이지만 이런 것을 취향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함부로 추천하기는 꺼려지고, 판타지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이영도의 소설을 추천하기도 뭔가 머뭇거려지며,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이유 하나로 오타쿠라고 놀려대는(반 장난이지만) 사람에게 라이트노벨을 추천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래선혈>의 전작인 <얼음나무 숲>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추천 소설 중 하나였다. 배경은 분명 환상 소설의 그것이지만 그 세계 내부에서 판타지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소설의 중반부가 지나서이고, 그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세계의 틀 안에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만이 이어진다. 그리고 독자의 취향이 어떻던, 그 중반까지의 내용 안에서 이미 독자는 소설의 세계 안에 갇혀 버린다. 출구는 오직 하나, 책의 마지막 장 뿐. 나는 둔감한 편이라 소설의 묘사라는 것이 그리 잘 와 닿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얼음나무 숲>은 아무 문제없이 나를 숲 속으로 끌어들였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만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을 운이 나쁘게도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얼음나무 숲>과 경쟁할 만한 소설을 하나 받을 수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같은 작가의 신작이었다.
단 하나의 청중. 그리고 단 하나의 독자.
전혀 다른 내용의 두 책이지만 그 코드는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배경의 흡입력은 얼음나무 숲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여주인공 비오티의 직업이 작가였기 때문이리라. 그 속에 극히 일부라도, 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제목인 ‘모래선혈’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레아킨과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비오티의 최고의 합작품일 것이다. 메마른 감정 속에 피어난, 비오티가 선사해 준 감정. 색 없는 모래 위에 흘러내린 한 줄기 선혈. 내가 하지은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 압도적인 흡입력 외에도 최고의 결말(물론 내 취향의 시각에서)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얼음나무 숲>이 그랬고, 이번 <모래선혈>의 결말 역시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최고의 결말이었다. 소설의 제목은 그 책을 집어 들게 만들고, 소설의 첫 장은 그 책의 흥미를 최고로 높여주며, 소설의 내용은 생각을 날려버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은 덮은 뒤에도 여운을 남겨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설의 조건이다. 그리고 <모래선혈>은 충분히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느낀 긴 여운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 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소설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 참 기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레아킨은 과연 색을 보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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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고 싶은데 어쩐지 감성이 메말라버렸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추천.
언제나 먼저 던져지는 것은 '절망의 주사위'.
그러나 두번째 주사위가 던져질때까지는 절망하지 마세요.
모래선혈에 나오는 사람들도 하나하나 따지고보면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배신당하고 다른 어떤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수밖에 없는, 불행하다고 말할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레아킨을 만나게 되면서 달라지지요.
두번째 주사위의 눈이 그러하듯이, 불행은 때로는 갑절로 때로는 고통없이 때로는 반전으로 다가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얼음선혈은
사람은 혼자일땐 절망의 주사위밖에 던지지 못하지만 둘이면서부터는 절망뿐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레아킨의 무채색의 세계 속에 비오티가 희망을 던져줬듯이, 비오티의 실연을 레아킨이 치유했듯이.
처음에 추천해드린, 감동하고 싶지만 자신의 감성이 메말라버렸다고 느끼는 분들께 그리고 제 자신에게 말하고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직 늦지않았다고.
두번째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 모두가 반전을 꿈꾸듯이,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아직 행복을 찾을수 있다고.
갑절도 반전도 모두 1/6의 확률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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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고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을, 그리워하고 원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당신은 이미 그러고 있는걸." (p.121~122)
열대야 현상에 잠못이루던 밤이 얼마던가! 뭐~ 덕분에 밤마다 야행성이 되어 독서삼매경에 빠져들었으니 그다지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두렵게까지 느껴지던 무더위는 어느새 한풀꺽였고 밤이면 찬기운을 품은 서늘한 바람이 침실을 슬며시 스며들고 한다. 한낮이면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제 텃밭에도 김장배추 등 가을 작물들을 재배할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자 대전사는 여동생의 남편인 제부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다. 밤마다 책을 읽고 아침이면 서평을 쓰는 반복되는 이 생활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다만 잠이 많이 부족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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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이 3글자로 끝을 맺을 수도 있는 책이지만, 결국 잔혹한 정치물의 가능성을 버리고 연애소설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소재다. 소설가와 소설을 소재로 하는 글은 작가의 역량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분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써냈다. 처음 보는 작가지만 이 전작인 얼음나무숲에 대한 호평을 많이 들은지라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은 그 기대를 만족시켰다.
매우 즐겁게 읽었다. 읽는 도중에 개가 계속 위에 있어서 무지하게 더웠지만, 그런 것 정도는 극복할 정도로 재밌다. 꽤 많은 분량이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 책은 길을 잃지 않고 말해야 할 것만을 말하는 절제를 보여준다.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열사의 사막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 사랑을 해보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평생을 살면서 어떠한 감정도, 색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아릿하게 저린 마음을 품게 하는 글은 대체 어떤 작가가 써야 할까. 정말로 슬픈 사람이 써야 할까.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써야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써야 할까. 감정이 없는 자에게 감정을 주는 글. 볼 수 없는 자에게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오만이라 쓰면 사람은 한 없이 타락할 것이고, 그가 타락이라 쓰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결국 오만은 스스로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위대한 선지자는 죽는다. 그리고 다시 어떤 위대한 누군가를 우리는 끊없이 기다린다.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이 시대에 이렇게 따스한 감정을 느끼게 해줄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이 시대의 모든 작가들은 지금도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감각한 세계를 살아간다. 모노톤의 이 세계에 누가 마지막 색을 칠할 것이며, 노랗기만 한 이 사막에 누가 피를 흘려 붉은 꽃을 피울까. 그 꽃은 작지만 붉고, 붉기에 희망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이 될 수 있는 글, 그런 글을 작가는 열망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 책은 읽을 때는 빨리 읽고싶은 마음 뿐이지만 다 읽을 때 즈음이면 난 다른 감정이 생긴다.
"빨리, 글을 쓰고 싶다. 정말로 위대한. 정말로 좋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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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장면으로 문을 연다. 쿠세인들의 주사위에 숫자 눈 대신에 사람 눈이 박혀 있을 것이란 소문이 있다. 물론 낭설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황제의 주사위다. 이 주사위는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재미난 것은 절망을 던진 후 희망을 던지는 것인데 반전이란 단어가 나오면 황제가 오히려 절망에 적힌 처벌을 받게 된다. 한 여자가 묶여 있고, 한 남자가 떨면서 주사위를 굴린다. 그 결과는 절망 그 자체다. 그리고 한 소년이 달려와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 애원한다. 당연히 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끝으로 가면서 하나의 고리로 이어진다.
쿠세는 사막의 나라다. 이 곳 황제는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주변국을 속국으로 삼고 있다. 그러던 중 이 나라 황제의 동생인 레아킨이 가출을 한다. 그가 떠난 것은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소설 때문이다. 비오티란 작가가 쓴 것인데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눈에 색을 빼앗긴 그를 감동시킨 것이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사막을 건너 도착한 곳이 바로 쿠세의 식민지인 라노프의 수도 옐린이다. 이곳에서 그는 죽은 탑이란 곳의 심판관으로 재직한다. 이 탑은 쿠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악랄하고 잔혹한 곳이다. 그가 처음 와서 사람들을 너무 쉽게 처형하는 것을 보면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감정이 메말라도 너무 메말랐다는 느낌이다.
그가 왕궁을 떠난 것은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이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 중심에 비오티란 작가가 있다. 작가에 대한 환상이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환상은 물론 깨어진다. 그가 품고 있던 이상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의 만남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순정만화의 한 장면들 같다. 외형적 실망은 그녀가 지닌 문장의 힘으로 가려지고, 막말과 무례한 행동은 다른 매력으로 덮어진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넓은 강이 존재한다. 쿠세 황제의 동생인 레아킨과 라노프 독립운동의 희망인 라흐의 애인이었던 것과 신분의 차이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레아킨의 가슴 속에 감정을 집어넣는다. 비아티란 존재가 그의 돌 같은 감정에 균열을 불러온 것이다.
비아티로 향한 감정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레아킨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 속엔 특권층이 가졌던 오만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와 비아티의 관계가 하나의 축으로 중심을 잡았다면 쿠세와 라노크의 정세와 죽은 탑과 귀스트로 이어지는 상황은 그 둘 사이의 틈을 더욱 벌리는 동시에 레아킨의 열정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힘을 잃어간다. 애증이 뒤섞이고, 출생에서 비롯한 오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너무 빤한 반군의 활동은 뒤에 나오는 경계를 넘어선 존재와 더불어 비약처럼 느껴지고, 너무나도 쉽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고귀한 가치와 대의는 하수구로 빠져버린다. 그것이 비록 욕망이란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너무 쉽게 변하는 모습에선 바로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작가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비아티와 주변 작가 친구들의 대화 속에 현재의 삶을 살짝 드러내고, 자신의 바람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레아킨의 순정에선 고민도 주저함도 없다. 국가의 적을 살려달라는 요청에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군사를 죽여버린다. 이 부분에선 작가의 잔인함에 놀란다. 그의 메마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정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뒤에 시체에 남겨진 흔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장군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런 무자비하고 주저 없는 행동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조금씩 깨어지지만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첫 장면에 나온 상황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임을 알게 된다.
쿠세와 라노프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삶은 피상적으로 다가온다. 역사를 중간에 집어넣어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한다. 단지 독립을 위해, 사랑을 위해란 감정의 흐름은 뒤에 나오는 출생의 비밀처럼 생뚱맞게 느껴진다. 중반까지 흥미롭고 재미있다가 뒤로 가면서 점점 매력을 잃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비약과 충실하지 않은 설명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다행히 잘 읽히는 재미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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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세 황제의 동생 레아킨에게는 부족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감정으로 레아킨은 분노와 기쁨, 사랑과 슬픔등의 감정을 그는 잘 느끼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색. 그는 대다수의 사람이 당연하게 느끼는 색채 가득한 세상이 아닌 오로지 짙고 옅은 명암으로만 구분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는 쿠세의 속국인 라노프의 작가 비오티가 쓴 <호반 위 황금새>라는 글을 읽게 된다.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란 것을 그의 글에서 느낀 레아킨은 비오티라면 자신에게 '색'을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라노프로 향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라노프에서 (당연히) 사람들은 지배국인 쿠세인에게 쌀쌀맞기만 하고, 비오티를 찾아왔단 말을 겉으로 꺼내지도 못한 레아킨은 남몰래 그를 찾느라 고생하는데.. 과연 레아킨이 감정과 색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도 중간까지는 꽤 본래 줄거리와 비슷했으나 마지막이 좀 OTL) - 라는 이야기.비록 (마지막에 쬐끔만은) 판타지이기는 하나 레아킨이 진짜로 마법등의 힘으로 그의 눈을 치료해 색맹을 면해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느낀대로 설명하는 덕에 들으면 들을수록 알 수 없는 '색'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움직인 비오티라면 알려주지 않을까 - 하는 기대로 레아킨은 쿠세를 떠났다. 아니 그것도 핑계고 그저 비오티를 만나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그리 길지도 않은 이 한 권의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독자가 작가를 찾아가는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 작가와 작가간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이 갖는 배경과 쿠세와 라노프의 대치적인 상황이 더해지면서 글(혹은 작가라는 개인)과 사회라는 관계로, 또 사회와 사회라는 관계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관념적인 개념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무거울 법도 한데, 실제로 책장은 무척 빠르게 넘어갔다. 독립을 꿈꾸며 시위가 끊이지 않는 라노프의 거리에는 힘이 넘쳐흐르고, 비오티를 비롯한 역동적인 인물덕에 사건의 진행도 무척 빠르다. 오히려 너무 빠르게 넘어가다보니 끝까지 읽은 뒤 과연 들어야 할 이야기를 모두 들었는지, 내가 맞게 듣고 있는지 알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환상소설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소재나 배경이 등장하는 소설' 이라는 자의적(?)인 정의를 기준으로 하면, 이 글이 '환상소설'로 들어가는 그 시점. 비오티와 레아킨이 지하실에서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척 좋았다. 그러나 시작은 분명 개인적인 동기였을지라도 글이 진행되면서 점점 넓어지던 세계가 그를 만난 뒤로 지나치게 좁아지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나역시 평소에는 사회적 가치보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편이지만,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듯 이야기를 키워놓고 너무 급하게 개인으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 든다. 좀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진행했더라면, 아니면 차라리 레아킨의 어깨 위에 있는 무거운 신분을 빼앗고 완전히 개인으로 돌아갔더라면... 더 좋았을까? + 그럼에도 마지막 페이지는 좋았다 :) + 레아킨이 비오티에게 보낸 선물은 그 말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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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요즘은 정말 읽을 책이 많아서 행복하네요.
다 재미있는 것들이라 ㅎㅎㅎㅎ
이번에 쓸 책은 모래선혈인데요,
정말~제 맘에 꼭드는 책이였습니다.
이런 책은 정말 오랜만인듯.
얼음나무숲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얼음나무숲보다 훨 재밌는 것 같아요.ㅎㅎㅎ
레아닌과 바오티의 행동하나하나가 재미있게 느껴지고
기대가 되는 그런 책이였습니다.
물론 처음엔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읽어갈수록 재미있더군요.
하지만 마지막에 레아닌이 죽는다는게 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요.
귀스트와 바오티 레아닌, 황제가 관련 되어있는 '죽음의 주사위'와
'구원의 주사의'일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빠져들어갔습니다.
앞으로 하지은 작가님 작품이 기다려지고 점점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책이 나올까? 모래선혈이나 얼음나무 숲처럼 재미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하지은 작가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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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숲과 언제나 밤인세계를 읽고 홀딱 빠져버린 하지은 작가님의 작품. 가장 최신작을 읽고, 오래전 책들부터 읽는 중인데, 매번 새로운 세계관으로 나를 이리 끌고 가시는지. 레아킨은 황제인 형의 끝없는 애정을 피해 수도를 떠나 라노프로 도망쳤다. 몰래. 황제의 형제는 황제와 함께 머물수 없으나, 형은 자신만은 놓아주지 않았다. 레아칸은 궁금했다. 어떤 감정도, 어떤 색도 보지 못하는 그가 읽었던 한권의 책. 그 책의 작가라면 자신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해줄 것 같았다. 오로지 책 한권의 작가를 찾기위해 속국 라노프로 형을 피해 가출(?)을 한 것. 레아킨은 라노프의 “죽음의 탑 심판관”으로 신분을 숨긴채 업무를 시작한다. 보좌간인 귀스트의 도움으로. 레아킨은 본국인 쿠세인 사람이고, 귀스트는 라노프 인이다. 죽음의 탑은 혁명재판소이자 종교재판소로써 재판을 하는 곳이고, 레아킨은 그곳에서 유일한 심판관인셈. 귀스트는 그런 죽음의 탑에서 레아킨의 보좌관이자 저작물의 검열을 맡고 있는 사람이였다. 혁명군을 찬양하거나, 혁명을 조장하는 어떤 창작물도 유통될 수 없게 하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색도 보지 못하는 그는 작가 비오티를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열었던 출판인 모임에서 난동을 피우던 여자. 그래서 어쩌다 레아킨이 빚을 지게 만든 여자. 그녀가 그가 찾던 사람임을 알게된 순간, 자신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면서도, 소위 “나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너뿐이야”라는 클리셰에 당한 그.ㅋㅋ 그렇게 계속 얽히는 인연속에서 비오티는 그에게 새로운 각인으로 다가온다. 매일밤 탑의 가장 어두운 곳을 가는 귀스트. “R에게 바치는” 책을 신간으로 내놓은 비오티. “R”이라는 인물은 대체 누구일지. 그리고 레아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힘. 여러사람의 운명이 얽히고 얽혀있던 중에 등장하는 신화라고 믿었던 아기모스의 유산들. 어쩌면 인간 심연의 어둠을 만들어가는 ‘것‘과, 그 정점에서 인간의 가장 바닥을 만들어 내는 ‘것‘ 의 등장은 어떤 의미 였을까. ‘아기모스는 진정으로 위대했으며,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하는 것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의 책은 정년 대단해서 단어들이 생명을 얻고 걸어 나갔다고 하지. 그것을 세계가 용납하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단어들을 불러들여 책을 봉인했지만 단 하나의 단어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p.374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인간의 심연을 어두움을 말하는 그 단어가 먼저였을까. 아니면 행위가 먼저였을까. 그 단어들을 봉인했다면 우리는 그 어둠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궁금하다.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언어일까. 우리의 행위일까. 재밌는 책.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