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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두려움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말, 참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나 또한 두려움에서 자유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한편 많이 슬프기도 했다.
종교란 무엇일까? 신앙이란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볼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종교에 대한 고민을 이 한권의 책을 통해 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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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구라다>라는 제목이 처음엔 탐탁지 않았다. 이런 식의 제목을 뽑는 의도가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책 몇 권 더 팔아보려는 수작이거나, 아니면 신통치 않은 글쟁이가 책 몇 권 읽고 도통한 듯이 시답지 않은 구라를 풀어대는 흔해빠진 종교 무용론이거니 했다. 그래도 이 땅의 기존 종교들의 행태에 신물이 나던 터여서 한편으로 뭔 내용인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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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하는 종교는 구라다…참회하고, 겸허해라한겨레 | 입력 2009.07.17 21:20
[한겨레] 인간 내면의 성찰기능 긍정하지만…
'성전'은 권력처럼 '밥줄 싸움'이다 진리의 선교 목적은 눈속임일 뿐 〈모든 종교는 구라다〉 송상호 지음/자리·1만2000원 어떤 거인이 한 우리 안에다가 미국인, 러시아인, 일본인, 독일인을 넣었다. 잠시 후 그들을 꺼내보니 얼굴, 팔, 다리 등 신체가 성한 곳이 없었다. 그 거인은 이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다음엔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 불교인 등 종교인들을 역시 같은 우리에다 넣었다.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문을 열어보았더니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은이는 송상호 '목사'다. 2001년부터 경기도 안성시 일죽에서 청소년쉼터를 운영하다가 2004년부터 안성 금광면의 시골 흙집에 살며 < 오마이뉴스 > 와 < 뉴스앤조이 > < 당당뉴스 > 등에 글을 쓰고 있는 논객이기도 하다. 같은 기독교 목회자로서 서구 기독교의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조찬선 목사의 < 기독교죄악사 > 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처절한 자성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어려서부터 가난으로 배를 곯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등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지은이는 신발공장, 의자공장, 식당을 전전하다 군대에 갔는데 그 시절 집이 붕괴돼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은 인생살이만큼이나 치열한 '진리 실험'을 담아냈다. 일면식도 없는 그의 원고를 받아든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작은교회 목사와 '탁발순례'의 도법 스님이 '추천의 글'을 쓸 마음을 냈다. 기독교와 불교의 명사들이 그의 글을 단지 구라로만 여기진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 목사가 말한 대로 "종교에 종사하는 분들, 그중에서도 기독교 지도자들과 '복음주의적 정통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에게는 각별한 인내심이 요청"된다. 자신의 종교를 가장 성스럽고 숭고하게 여기며 이를 위한 선·포교를 지상 최고의 선행으로 여기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을 가장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런 성전(聖戰)들이 모두 '밥줄 싸움'이라는 분석일 성싶다. 지은이는 "서양의 식민지 정복 역사의 선두에는 항상 기독교가 있었는데, 영국도 프랑스도 스페인도 독일도 한결같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침략과 살생의 전진이 무엇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들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가 절대적 진리이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기에 목숨을 걸고 거짓의 다른 종교를 물리치고 하느님의 땅을 확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것은 바로 세력 확보의 문제였고, 영역 확대의 문제였으며 밥줄의 문제였고 생존경쟁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종교와 권력은 쌍둥이"라고 본다. 속세에서 '성공'한 종교가 '훌륭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고, 권력의 속성을 아주 기가 막히게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데도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대상이나 문제에 대해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 대상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나 정보나 감각이 없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면서도 여전히 왕성한 선교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코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으며, 만일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지은이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던 마르크스와 종교를 '집단적 망상'이라고 말했던 도킨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종교무용론'엔 특히 그렇다. '모든 종교는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다'는 '구라적 요소'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종교로 전락하는 '종교적 역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처럼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근본적 해답과 안전을 제시해왔던 것도 종교라는 게 지은이의 견해다. 지은이는 카를 융의 말대로 종교가 인간의 분열된 자아와 균열된 의식과 무의식을 재통합하고 치유하여 온전한 자리로 개성화해 나가는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천 명에겐 천 명의 종교가, 만 명에겐 만 명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종교는 존재의 깊이, 거룩의 높이를 제시해 주는 매개체인 것이지 종교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다'라는 폴 틸리히의 말처럼 겸허한 자리에 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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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구라다
구라의 사전적 의미 - [명사]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 먼저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송상호의 모든 종교는 구라다. 어느 신문 지면에서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광고를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모든 종교는 거짓이라고 저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어떠한 시선에서 어떠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는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을까? 또한 순진한 목사가 말하는 너무나 솔직한 종교 이야기라고 하는데 과연 목사가 맞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던 이 책을 손에 잡고 읽게 된 것은 그 어떠한 운명의 끈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대단한 생각이다. 자칫 잘 못하면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를 옹호 할 생각도 비하할 생각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경계 없는 독서는 그의 정신세계를 한 차원 성숙시켰다는 말이 슬프게 들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 그가 살아온 고단한 여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악취를 풍기는 종교계에 진저리가 난 그의 이야기에 동조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약간은 위험하다. 잘 못하면 발을 헛디딜 수 있다. 이 책을 과연 어떠한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가의 문제이다. 인간 본연의 두려움에 대한 문제가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하는 저자. 하지만 이 세상에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그들을 도매꾼으로 몰아넣고 거짓을 섬기는 위선자로 매도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설령 종교 자체가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피상적 존재일지라도 그것 자체만으로 인간의 역사와 삶의 그 자체이고 일부분이다. 지구상의 인구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저자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기에 종교의 거짓에 대해 연구 했듯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그들만의 소신을 가지고 종교에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믿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신의 그릇이 크기 차이일 뿐이다. 현대인의 종교관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분명 지금의 종교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 대형화되어지고, 그것을 이용하여 철저한 영업성을 보이고 있으며, 권력과의 토착관계도 문제이다. 종교 간의 이해하지 못하는 싸움과 전쟁은 많은 이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덮어두어 더욱 곪게 만드는 것이 요즘의 종교 태세이다.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종교성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송상호의 모든 종교는 구라다는 현존하는 세계의 종교를 여러 각도에서 분해 조합해 놓았다.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천도교등의 경전과 서적들을 많이 탐구한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서로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조합하는 단계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분명 모든 종교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수십 세기 동안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를 조합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종교는 구라다는 종교의 구라다이기 보단 인간사회에 대한 불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인간 사회는 좀 더 복잡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호평하거나 비평하기 전에 우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심의 본질을 생각해보고,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더욱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숨겨 두고 묻어 두고 쉬쉬하는 신의 이야기가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처럼 결국 종교도 자유라는 선택을 가진 사람의 결정의 몫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려움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나의 끝을 모르기에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는 믿음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거짓 혹 구라가 될지 그가 말하는 모든 종교가 거짓 혹은 구라일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신이라는 바통을 들고 결승선 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그가 순진한 목사라는 책의 문구가 마음에 걸린다. 다윈주의 종교를 표방한다면 목사라는 말도 내려놓아야 되지 않을까 한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 하지만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들 매도하는 것 또한 잘 못 된 일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책을 팔기 위한 상술이 아니라면 이렇게 자극적인 부제가 필요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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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면, 또 사람이 태어나서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 영원, 영혼, 진리, 가치를 생각하는 한. - 저자 송상호-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못해 약간 싸구려 느낌도 난다. 순수히 제목이 재미있어서 구입한 책이다. 책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이유도 더러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몇줄 읽는 것 만으로 저자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이 제목이 경박을 넘어서 저자 나름의 배려로 이해되었다. 저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교를 향해 제기되어왔던 물음들로 부터 최근 격렬하게 비판받고 있는 논쟁까지 우리가 '종교'라고 했을때 대두되는 핵심 화두들을 두루두루 다룬다. 모든 종교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신은 과연 존재할까. 사후세계는 과연 있을까.
모든 종교는 조작되었다. 모든 종교는 권력현상이다. 종교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종교는 문화적 산물이며, 세뇌의 결과이다. 제목이 매우 직설적이라고 해서 내용이 얼토당토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종교는 구라이다'라는 제목에서 느낄수 있듯이 저자는 어려운 신학 논문이나, 종교 비판서, 학술지에 기고할 원고를 쓴 것이 아니다. 그가 여는 말로 했던 '진리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난장판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에서 처럼 대중들이 난장판으로 갈 수 있는 '다리'를 제시하고자 했던것을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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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그어떤 종교라도 좋으니, 내종교가 최고다, 나머지는 이단이다를 외치는 사람은 볼필요가 없다, 어차피 눈을 가리고 책을 볼꺼면, 보지 않는 것이났다. 종교는 구라다는 위경고문에서 벗어난 사람이면 상당히 흥미롤게 읽을수 있다. 기존 종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상적인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예를 들어 ,교조가 실상은 종교를 만들지 않았고, 종교는 오희려 제자들이 만들었다는것, 모하메드, 모세, 공자, 예수등 모두를 포함해서, 그리고 경전에 해석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관점 보다는 치우친(득이되는) 방향으로 해석을 많이 한다는것, 등등, 수많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상적인, 자기종교이외의 사람들을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꼭 추천한다, 그리고 자기종교가 최고라는 자만에 빠지지않기위해도 추천한다, 종교는 열려있어야 한다, 믿든 믿지 않던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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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구라다.... 참 선정적인 제목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보니 이책의 저자는,,, 헉 목사님이다. 그것도 꽤 유명해서 검색을 하면 자주 신문기사에 나오는 목사였다. 그런데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이야기 한다 모든 종교는 구라라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목사라는 것만을 제외하고 이 책을 읽어보면 종교에 대해 오리가 가지고 있었던 비판적인 말을 정말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종교란 사람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교회가 올라갈 수록 종말이 가까워 온다.. 라는 말은 특히나. (내가 지금 살고 있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멸망한 다는 것은 불쾌한 수준을 넘어서서 우울한 이야기 이지만 교회가 장삿 속을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세상 말세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
또한 이 책의 저자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남편은 그저 그런 종교 비판서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런 책을 내기 위해 저자가 겪었을 눈총과 시련은 보지 않아도 알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 남편은 계속해서 이 책 저책을 뒤져 본다. 이 책에서 나온 예수는 신화다.. 나 예수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같은 책 말이다. 하핫 이런 책 제목만 봐도 기독교에 맹신하는 자들은 사탄의 글이라고 생각 될 지도 모르겠지만 유일신 사상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 된 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 한다. ) 기독교 중심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종교적 지식을 가지고도 제법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예수는 구라다. 정말 제목만큼 인상적인 책 이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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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종교는 위대한 사기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뭐 구라라는 말은 황구라, 무슨 구라 하면서 말 잘하는 사람을 부르는 별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위대한 사기는 일반 사기와 다르다. 인류 전체를 위한 위대한 사기는 어느 시대나 영원히 필요하다고 본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당대에는 욕을 먹더라도 그 후세에 아 하고 알아주는 그런 무엇 말이다. 아마도 니체가 그런 뜻에서 이야기를 했지 않을까 한다.
일본말 같은 느낌이 있는 단어로 보인다. 사전에 보면 구라의 뜻은 명사로서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일본말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일본말로 구라이(くらい 暗い)는 어둡다는 뜻을 가지며 그 명사형은 암흑을 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음흉하고 속이기 좋아하고 뒤로 뒤통수치는 사람한테 ‘속이 검다’라는 말을 해왔다. 일본말 구라이를 한국에서 구라'라는 은어로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젠 모든 종교가 둘이 아니라는 생각, 이 세상이 둘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앞으로도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나는 모른다. 다만 지금의 깨달음이 그렇다(13쪽).
나는 왜 종교인들이 서로 싸우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고 그 가르침을 베푸는 위대한 분들이 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등이라고 하면 간단한 것이 아닐까. 내가 아니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한다는 말은 깨달을 사람이면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이 경전에 있는 것은 제도가 만든 말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다른 경전은 읽지 않고 자신만 옳다고 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것이 정말 무식한 것이다.
늘 나는 종교의 탄생이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에서 네루가 그런 말을 하고 있어서 위안을 받았다. “다시 말해 최초의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할 수 있지.” 이처럼 네루는 ‘두려움과 공포’가 바로 모든 종교의 기원이라는 것을 탁월하게 진단하고 있다(20쪽).
나는 왜 역사적으로 마남사냥이 없는지 의문을 가졌다. 지금도 창녀는 있어도 창남은 없다. 사실 자신의 이름을 팔아 출세하는 사람은 창남이라고 해도 좋겠다. 남녀차별은 지금도 많이 있다. 언어에 있어서의 남녀차별도 여성들이 연구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무릇 종교라 하면 ‘죽음이란 두려움을 상품으로 하여 경전을 만들고, 상상력으로 신화를 만들고, 사람들을 규합해서 권력을 형성하고, 교리를 조작하고, 때론 과학을 무시하고, 영업을 위해선 침략을 불사하기도 하고, 영업에 방해되는 이단은 과감히 처단하기도 하고, 끝까지 증명할 수도 없는 신이란 존재를 붙들고 구라를 치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해 왔다(155). 이 정도가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종교는 구라라는 개념이다.
그래도 종교가 중요한 것은 글자 그대로 으뜸 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있어야 가치나 근본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라라도 종교가 없으면 돈의 위력은 더 커질 것이다. 인간과 세상의 근본을 돌아보지 않고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종교는 필요하다. 다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난 정단이라는 말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이단이 권력을 획득하면 정단이 되었고, 이렇게 정단이 된 이단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이단으로 정죄를 했고 지금은 과거의 이단들이 정단보다 도덕성이 더 나쁘기도 한다. 종교에 있어서 경전의 일부에 밑줄을 친다든가, 돈을 바치라고 한다든가, 몸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이단의 표상이다. 그리고 신부들은 소득세를 내는데 왜 목사들은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교회당, 사찰, 성당, 모스크 등의 건물만큼 비효율적인 곳은 없다. 나는 평소에도 학교를 활용하여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렇게 되면 평일에 많이 이용하는 학교가 주말에 교회 등으로 이용되면 효율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 십일조의 근거도 미약하지만, 일단 십일조를 받으면 특별회계로 따로 회계를 하고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돕는데 썼으면 좋겠다. 십일조를 받아서 건물을 짓거나 목사가 월급으로 받는다면 횡령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교회도 이제 회계감사를 받아서 제대로 된 공시를 했으면 한다.
저자는 종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종교 아닌 종교의 시대를 생각하면서 간소한 우주적인 종교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간소하다는 것은 종교의 번영을 추구하지 않는 종교를 말한다고 한다. 어쩌면 ‘모든 종교는 구라다.’라는 이 책은 ‘역설적으로 종교를 살리기 위한 논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 자체를 가지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에게 올 종교는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종교, 특정한 교조가 없거나 교조가 있더라도 절대시되지 않는 종교, 일정한 날을 정해서 기계적으로 모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모이는 종교, 피라미드식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지향되는 종교, 타 종교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경계가 느슨한 종교, 경전이 없거나 있어도 절대화되지 않는 종교, 모임 장소는 언제나 유동적인 종교,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종교, 지구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나눔과 실천이 있는 종교, 일정한 형식과 조직이 없거나 느슨한 종교‘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미래는 ’종교 아닌 종교‘가 대세이며 ’종교 아닌 종교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271쪽).
본래 우주는 한 몸, 한 생명이다. 한 몸, 한 생명의 길이 본래 종교의 길이다. 이제 종교가 본연의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 종교가 본래의 제 길을 잘 가야 한다. 종교 스스로를 위해, 뭇 생명들을 위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위해(7쪽 추천사에서).
즉, 구라라는 것이 비록 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구라가 진실일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구라가 진실을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는 바로 ‘상상력’이다. 이는 앞서 ‘종교는 상상력’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중략) 종교의 역기능과 허구성을 고발한다는 점에서도 ‘구라’이며, 종교의 ‘상상력과 진실’을 내포한다는 점에서도 ‘구라’이다. ‘진실을 품은 구라, 구라를 품은 진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실체가 있다(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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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이보다 더 당돌하고 발칙한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저자의 어조는 겸손하고 공손하다. 풍부한 인용문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읽는 재미가 있다.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