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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삶의 모습을 거칠게 스냅샷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 코넬료는 책의 첫머리에 적힌 인상적으로 짧은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친 모습으로, 스냅샷처럼 찍힌 오늘날의 삶의 모습. 짧은 기간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 다양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라는 것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해간다. 성공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 이미 성공을 거머쥔 소수의 사람들.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막힌 시공간을 찾아서 그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코넬류 풍의 이야기를) 그 전의 어법과는 다르게 거칠게 구겨넣은 작품이다. 그래서 그는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 이 책은 스릴러가 아니다 " 라고. 젊었던 시절 꿈을 꿈꾸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젊었던 시절 성공을 추구하여 전력투구하여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사람은 다들 그렇게들 삶을 살아간다. 성공을 꿈꾸고,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지만, 그 곳을 향하는 험난한 여정의 어딘가에서 환경이라는 이름의 세상과 타협하고 아슬아슬한 거래를 매일같이 벌이면서 고독과 연민과 기쁨 사이를 살아간다. 그것이 사람들의 삶이다. 그 욕망의 긴장이 너무 팽팽한 사람들이 있다. 무슨 댓가를 치루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을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라고 부르지 말라. 그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트라우마라고 부르든, 과도한 본성이라고 부르든, 지나친 성공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르던, 권력과 명예와 부에 대한 과욕이라고 부르든... 그 어떤 이름으로 그들을 욕하든지 말이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세상에는 승리하는 사람이 있고, 승리하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승리자의 편에 들어가고 싶지만, 능력의 부재를 인정하고 타협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든, 자신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신포도'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이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삶의 방식을 합리화할 이유가 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결말이 반드시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의 결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코넬료는 말했다. 단지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을 뿐이라고. 이 두권의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게 생긴 책속에는 세상의 험악한 모습이 숨이 차게 빠른 속도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져 있다. 스릴러 풍의 이야기를 이렇게 사변적으로, 이렇게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그 축약된 이야기 구조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금지된 욕망들의 꽃이 칸이라는 무대위에서 만개하고 짧은 인생을 뽐내고, 기회를 꿈꾸고 시들고 사라지고 또는 다음세대를 위한 씨앗을 뿌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을 거칠게 표현한 것일까. 우아한 언어로, 몽환적인 언어의 연금술로 우화같은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잘 팔리는 일상적인 언어(폭력과 욕망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우리들 삶의 본 모습의 스냅샷일까. 이런 것들이 정말 우리들의 삶의 감추어진 진실이란 말일까. 아니면 코넬료가 우리들의 삶을 너무나 극단적으로 생가한 것인가? 정답은 없다. 이 책을 읽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아마도 답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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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배운 게 하나 있지.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서, 내가 믿지도 않은 이상을 위해 총을 들고 싸우면서 말이야. 비참함 따윈 언제든 완전히 끝내버릴 수 있다는 거야.” 이고르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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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재미가 없었다.
거의 유사한 주제를 색다른 소재로 맛깔나게 풀어냈던 전작들과는 달리(혹은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부터...),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인상이 많이 거슬린다.
그의 풀어내는 말 솜씨는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만, 허영심과 욕망에 대한 어떤 성찰은... 이미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작가의 혹은 코엘료의 다른 작품에서 비슷하게 진행되어 왔었다.
아무래도, 이고르, 하마드 그리고 에바의 관점 위주로 책이 읽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 했을 때에도 전작들과 달리 어떤 임팩트 있는 순간이 없는 것도 흠이다.
나는 코엘료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다. 하지만,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그가 제시하는 지향점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그래서 스토리에 억지로 주제를 연결 시켜 놓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ps.1권은 무슨 도시락통 같은 철제통에 넣어져서 왔다. 그건 좋았다. 하지만, 1,2권 모두 시뻘건 디자인은...조금 부담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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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700여 페이지를 덮고 나면 마침내 머무르는 것은 하나의 장면이다. 죽음의 순간에서 삶의 중요했던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때, 그 찰나의 포착 같은 것. 또는 찰나 그 자체.
24시간동안, 칸이라는 지방에서, 다섯 명의 주인공이, 살아남거나 죽는다.
리뷰의 문장들마저 짧아지고 엄격해진다. 그것이 삶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거칠고 냉정하다.
높이 올라가려고 했던 내게, 코엘료가 보내주는 하나의 오마주는 비현실적인 세상에 속해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긴장할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그것이 나의 염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자유를 얻었다. 그 슬픈 권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온 몸을 휩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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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그리고 1권이 끝났을때 바로 12시간이 지나고 12시간이 남았다.
각 챕터별로 맨 앞에 시간이 표시되어 칸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극적효과를 높인다.
이 소설은 칸 영화제가 벌어지는 주변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이 영화제를 위해 다양한 꿈과 희망 (힘있는 영화 제작자에게 눈에 띄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인 이고르처럼 헤어진 옛 부인을 다시 갖기 위해! 등등)이 섞여 있는 혼잡하고 정신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영화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해변의 도시인 칸(깐느)에서 여유롭고 평화로운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려하고 자신이 마치 영화속 주인공인양 찬양해주는이 곳에서 헤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카메라 셔터 속에서 셀러브리티가 되고 싶은 갖은 욕망을 갖은 사람들이 빚어내는 또하나의 황폐한 도시 칸... 그리고 그 무대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심지어 살인마저!) 이용하려는 소설 속 주인공들로 인해 점점 사건은 흥미롭게 그리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2시간이다. 과연 이들의 꿈과 희망이 과연 헛된 욕망 속 재로 끝나버릴지 아니면 자신의 꿈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종착역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책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스릴러적 묘소를 가미해 개인적으로는 책속에 빠져들어 주변에 추천하고 있을 정도다.
참고로 이 책 속 주인공중 한명인 이고르는 한창 무르익은 액션 스타 제이슨 스태덤을 상상하며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스태덤을 생각하며 읽으니 정말 극에 빠져들게 된다.
2권을 기대하며..
'승자는 혼자다' 2권 리뷰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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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말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돈으로 살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물론 돈으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마법은 얼마 가지 않아 풀린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진 증조할아버지의 유산 덕분으로 팔십 평생을 편안하게 사셨다. 하지만 늘 남을 막대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해 인심을 잃었다. 전에는 그나마 돈이 좀 있어 사람도 꼬이고 자식들도 고개를 숙였지만 빈털터리가 된 지금은 모두에게 외면 받으며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다. 만약 돈이 좀 있을 때 많이 베풀고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외면 받는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슈퍼클래스의 삶은 그리 동경할 만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슈퍼클래스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슈퍼클래스의 화려한 겉모습에 사로잡혀 그들처럼 살고자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릴 것을 간접적으로 조언한다. 한편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심도 있게 전해주고 있다. 어떻게 그와 같은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지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을 만큼 궁금하다. 이 책은 총 1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이고르가 죽인 여자가 영화제로 유명한 칸 한 복판에서 죽어 누워있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이고르는 자신의 부인이었던 에바에게 다른 세계를 파괴할 만큼 에바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에 일면식도 없었고 아무런 원한도 없는 올리비아라는 여자를 죽인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여자가 이렇게 죽어 길바닥에 누워있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중에 그녀의 부모가 와서 올리비아가 죽은 것을 알고 통곡할 때까지는 누워있던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리비아가 죽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자 그때서야 벌떼처럼 모여들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난 이게 서양인들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있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과연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것일지는 의문이 든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시내 중심 길 한 복판에서 여자가 누워있었다면 흔들어 깨우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그게 자고 있어서 그랬든 죽어 있어서 그랬든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에바가 공동명의로 된 통장을 쓰면서 남편인 이고르에게 쓴 돈을 갚으려고 애쓴 점’을 말한 부분이다. 이고르와 에바는 어려울 때부터 부자가 될 때까지 산전수전을 같이 겪어가며 살아온 부부였다. 그런데 이혼하기 전부터 에바는 공동명의로 된 통장을 쓰면서 자기가 쓴 부분을 남편인 이고르에게 갚으려고 했다고 한다. 이고르는 부인이 돈을 어떻게 쓰든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도 에바는 꼭 남의 돈을 빌린 사람처럼 이고르가 벌어온 돈을 갚으려고 한 것이다. 난 에바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남편이 밖에 돈을 벌어온 공과 에바가 집안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나간 공은 부부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둘 다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즉 비록 에바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고르가 벌어온 돈을 같이 쓸 수 있는 권리는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에바가 돈을 갚으려 한 점은 과연 이들이 부부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나중에 에바 스스로가 돈을 좀 벌게 되니까 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을 걸고 넘어져가며 이혼을 요구한다. 고생을 함께 해 온 부부라면 남편이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감싸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아내의 도리가 아닌가? 결국 이 일로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왜 가난할 땐 방치하다가 잘 살게 된 후로는 이혼사유로 삼은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대중들의 진면목을 언급’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하미드의 시선을 통해서 슈퍼클래스들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 변화를 꼬집어 이야기한다. 하미드는 ‘오늘은 그들은 숭배하지만, 내일은 아무런 가책 없이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대중’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우상시 했던 가수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언제 좋아했느냐는 듯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비난하는 것이 대중이기 때문이다. 80~90년대에 최고의 여배우였던 줄리아 로버츠를 한물간 여배우 1위로 선정한 걸 보면 대중들이 열광한다는 이유로 슈퍼클래스를 꿈꾸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슈퍼클래스가 되면 부와 명예가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그 인기는 언젠간 식게 되고 슈퍼클래스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퇴물취급을 받게 된다. 열심히 노력해 상위계급으로 올라가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그 자리에 오른다면 떨어질 때 날개 없이 추락한다는 사실을 우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슈퍼클래스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어떤 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자문해볼 시간이 필요하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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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성공의 볼모로 붙잡혀 있지만 늘 행복한 척하고, 이미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을 소유했지만 더 불리려고 계속 씨름해야 한다. 허영에 사로잡혀 누가 최고 중의 최고인지 판가름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람들이다."
화려하고, 럭셔리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슈퍼클래스"와 아름다운 배우와 모델들이 모여드는 칸. <승자는 혼자다>는 각자의 운명에 이끌려 이곳에 온 이고르, 하미드, 에바, 가브리엘라, 재스민의 이야기다. 특히 자신을 떠난 아내에게 자신이 아직도 사랑하고 있으며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연쇄살인을 택한 이고르는 코엘료의 전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꿈을, 사랑을 위해 '살인'까지 갔다, 이고르는. 코엘료는 화려함의 세계 이면, 허영과 가식을 너무나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세계에서 꿈을 위해 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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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책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은 읽으면서.. 전과는 달리 뒷배경이 화려하다고 느낀건... 나만일까...
본인의 삶에 이유있게 충실했고 투쟁해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 중.. 사랑을 되찾기 위한 한 남자.. 그리고 이어지는 묻지마살인... 요새 사회 이슈로 묻지마 살인이 떠올라서인지.. 1권을 읽는 동안에... 이유없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룰데 없다. 과연.. 이것을 승자라고 말하고 싶은건지.. 하찮은 삶도 귀하게 보여주던 작가가.. 왜 이번에는 이유없이 그 사람들을 죽게 두었는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책에 빠져들고 있었다... 과연 2권까지 다 읽고 나면... 어떤 느낌이 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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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뒤통수를 한대 퍽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책은 이전의 코엘료의 책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 작가 스스로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전의 책들이 개인의 성찰과 자아의 추구를 다루었다면, '승자는 혼자다'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명성과 욕망의 헛됨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화려한 칸 영화제의 이야기와 이 시대에 유행하는 키워드인 연쇄살인사건을 가미하여 마치 추리소설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전히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되 그 가치를 조명해보는 무대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번의 시도가, 감히 이전에 비해 상당히 부족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2권의 초중반까지는 분명, 이 책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가 거칠게 찍어보고 싶었다던 세상에 대한 스냅샷은 분명 그가 의도한 바대로 독자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 다만 내가 느끼는 갈증은, (이전의 책들이 워낙 개인의 자아와 정신적 세계에 대해 최고의 성찰과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결말이 나로선 정말 갈증나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마지막의 결말은 반전도 아니고, 추가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더욱 남겨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거의 완전히 열린 결말로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뭔가 마지막에 작가 스스로가 잔뜩 벌려놓은 판을 오밀조밀 컨트롤하는 게 상당히 미숙했다는 느낌만이 든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열린 결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작가가 작품의 중반부까지만 해도 강한 주관성으로 독자를 이끌고가놓고선 마지막엔 사건의 사실적 흐름만을 길게 서술해놓았기 때문이다... 난 부모 손을 잡고가던 어린아이가 손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미아가 된 느낌이었다....) 이고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나로서는 그의 그러한 악행이 흠결없이 완전하게 종결되자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의 죄악이 그렇게 합리화되듯이 완전하게 종결되는 것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독자 스스로가 가지는 게 정상인거라 말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코엘료 스스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독자인 나를 이끌어나갔으므로, 마지막에 이고르에 대해서도 차라리 약간의 가치판단을 주었다면 난 좀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난 이고르와 에바 두 사람 모두의 속을 들으며 사건 전개를 보아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인간 모두가 이해되던 매우매우 객관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고르를 이해하며 보고 있던 나는 사이코패스인가?) 마지막 결말의 흐름은 코엘료의 개성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던 그야말로 무색무취의 흐름들이었다.... 난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코엘료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대해서는 프로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지만, 어쩌면 보다 넓은 범위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는 데에는 좀 미숙한 사람인 건 아닐까...?...' 개인이 내면적으로는 매우 성숙한 사람일지 몰라도 현실감이 다소 부족한 사람 말이다.. 추리소설같은 박진감을 갖게 하던 요소들, 흥미진진하게 살피고 있던 요소들 중에 마지막에 흐지부지 끝난 것들이 너무 많다. 또한 가브리엘라가 추구했던 명성에 대한 열망은 그냥 그렇게 우연적인 요소로 인해 잠시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그치면 되었는지, 그것도 매우 의문이다. 결말에서 끝나는 모습으로는 가브리엘라는 명성의 헛된 면을 깨닫거나 하는 것은 없이 또다른 기회를 꿈꾸며 살아갈 것 같은 느낌만 들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다 보고 나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책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그의 책들을 계속 기대해본다. 그는 내게 너무 큰 삶의 메세지를 주었던 이전의 수많은 작품들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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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욕망의 사회적 속성을 밝혀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