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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후반의 작가가 이십년전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여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십년전의 어느 외국어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작가 자신도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일 뿐, 그 당시의 여느 고등학교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는 '그들만의 일상'이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잘 묘사된다. 회화 등을 포함한 외국어 수업과 당시엔 흔하지 않던 외국인 교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할 뿐, 대학입시를 위한 치열한 경쟁과 삭막하고 열악한 교육환경이라는 보다 큰 틀이 그 당시의 모든 고등학교를 넉넉하게 품에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소한 차이는 학창시절의 추억에도, 성장기의 정서 함양에도 별다른 영향을 달리 주지 않는다. 그 넉넉한 품은 세월이 흐르며 더 넉넉해졌고, 이제 고등학교를 넘어 중학교와 대학교까지 품으려 하고 있다. 시간만 정처없이 흘렀을 뿐, 교과서만 질 좋은 종이에 컬러판으로 바뀌었고, 교실마다 TV나 에어콘이 설치되는 등의 역시 추억을 만들거나 정서를 함양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한 것들' 만이 약간 변했을 뿐, 무엇하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요즘 눈만뜨면 밀려드는 생소한 지식과 선택받은 자로 다시 태어나기위한 경쟁의 압박에 시달리는, 그래서 틈만나는 잠자는 것으로 현실도피를 추구하는 중학생 아이를 보면서.. 이십여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마 아주 예전 내가 고등학교에서 우리아이와 같이 무기력하게 '열악한 사회시스템과 교육환경의 희생양'으로 휘둘릴 때, 우리 부모님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가슴 아파하셨으리라.
이 책은 두가지 서로다른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우연히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세대를 초월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이들(기성세대건, 젊은세대건, 학생이건)이 비슷한 학창시절의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의 전달'이다. 비록 현저히 다른 시대, 서로 조금씩 다른 장소라 하더라도 '같은(적어도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서로간의 벽을 허무는데 작지 않은 계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흔히 이미 오래전 학창시절을 보내 그 시절의 느낌이 이미 몸안에서 빠져나가버린 부모나 교육자는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과거의 느낌들을 떠올림으로서 젊은 세대, 현재 공부하는 아이들을 좀 더 깊고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 역시 고리타분한 소리나 해대는 어른들이 사실은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통해 좀 더 그들의 목소리에 거부감없이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는 어떤 환경에서도 누구에게나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지는 '추억의 전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 '김은효'는 별반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탁월하게 잘해 학교에서 특별대우를 받지도 못했고. 부자집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도 않았으며, 얼굴이 예뻐 그저 웃기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주변의 자신보다 경쟁력있는 아이들, 결승점에 자신보다 한참 앞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기죽어가면서도 자신만의, 자신에게만 어울리는 삶의 모습을 찾아가며 나름대로의 추억을 쌓아간다. 특별한 반전이나 격정적인 이벤트가 하나도 없이 그저 물흐르 듯 조용하게 일상을 써내려간 이 소설이 상당히 높은 몰입력과 공감대를 갖는 이유는 바로 그런 '그저그런 삶'이 우리의 추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김은효'라는 이름 대신에 '나'를 대입해버리면, 또는 그저 성별을 바꾸어 '그'라 써버리면, 소설이 아닌 일상에 밟혀 마음 한 구석에 기척도 없이 내몰려있는 자신의 청소년기의 추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고, 자신은 누구나 자신에 맞는 삶의 모습을 찾아가게 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메세지가 그저 뻔-하기만 한 말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누구를 닮아야하고, 누구보다 나아야하고, 누구를 이겨먹어야 한다는 헛되고 지나친 욕심에 눈앞이 많이 흐려져, 정작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그저 '바보상자' 안에서만 찾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싶다. 아이에게 부모가 아닌 같은 경험을 공유한 단지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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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의 "사과의 맛"의 상큼함이 참 좋아서 여러차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던 바, 새로이 풀어놓은 입담에 기대를 잔뜩.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한 소녀의 성장기이다.
모두가 겪고, 모두가 각자 마음 속에 꿍~ 하고 무언가를 묻어두는게 마치 주어진 책임인냥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고운 가루가 될 커다란 돌덩이들을 굳이 굳이 짊어지는 그 시절의 이야기다.
술술 읽어나가다보면 피식...하며 매서운(?) 눈빛과 원인모를 피해의식으로 날향해 어떠한 공격도 않는 세상을 향해 어깨를 움츠리고 칼날을 세우고 있는 어린 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주변인, 질풍노도의 시기 그 시절의 우리는 허상의 거인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같지 않았을까....
푸릇푸릇 나의 십대를 돌이켜 보고싶다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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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성격이 까다로워서 좋아하는 작가가 몇 되지 않습니다. 취향이 독특한 성격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 오현종 작가입니다. 《사과의 맛》이라는 단편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됐고 장편소설 《거룩한 속물들》을 통해 좋아하게 된 작가입니다. 이 소설은 《거룩한 속물들》보다는 먼저 발표했고 청소년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거든요. 읽는 동안은 몰랐는데, 다 읽고 나니 자전적 소설이더군요. 아마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왠지 본인 얘기 같더라니... 그만큼 작가님의 취향이나 성격이 분명하게 보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만 그랬을까요. 저도 외국어 고등학교는 외국어를 배우는 학교이고 과학고는 과학을 배우는 학교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던 거죠.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아이들과 같이 경쟁하는 구조 속에서 어쩌면 정상으로 산다는 게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은 누구보다 독특했고 의미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땐 공부좀 했는데 꼴등 성적표를 받아든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이 됩니다. 저도 서울 상위권 고등학교에 가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반에서 상위 20%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 비슷한 애들만 모여 있어도 그 안에 1등과 꼴등이 있더군요. 공부 조금만 더 하면 1등하고, 공부 조금만 안 하면 꼴등하는 어처구니 없는 구조. 정말 그 고등학교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1등과 꼴등의 평균 점수가 10점도 나지 않더군요. 평균 92점을 해도 꼴등을 하는 분위기에서 아마도 많은 아이들이 쉽게 공부를 포기한 듯 합니다. 무한경쟁이라는 서열화가 우리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1등을 정하고 꼴등을 정해야만 하는 걸까요. 수많은 재능 중에 왜 유독 외우는 재능만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야 하는 걸까요. 이런 나라에서 과연 창조적인 인재가 나오기는 하는 걸까요? 어쩌면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겪어야 하는 숙명일지도요. 이 책은, '나의 학창시절은 이랬는데 너는 어땠어?'라고 묻는 긴 질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응. 나도 참 많이도 힘들었어.'라는 대답은 저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의 대답일 것입니다. 저는, '나도 다 했어.'라는 조언보다는 '너희들은 그렇게 살지 말아라.'라고 조언해주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책임있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빠.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해준, 그래서 더 마음 잔잔한 오현종의 자전적 소설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 '어른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읽힐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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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잠시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이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1990년대초 고등학교를 다닌 내 또래들에게 더욱 끌릴거라 생각된다. 추억을 생각하게 하고, 그 시절에 가졌던 고민을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그 시절 한창 인기를 끌었던 "뉴키즈 온더 블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최불암 시리즈’의 허무개그, 생쥐를 먹고 얼굴을 쭉~ 뜯어내던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브이’ 등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고, 이런저런 별명으로 불리우던 선생님들도 (솔직히 다시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선생님도 있었으나, 다시금 생각나는 것은 그것 또한 하나의 추억이기 때문이겠지?) 생각나고, 학교앞 분식점의 쫄면과 떡볶이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채 시간에 쫓기어 달리던 그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주인공 ’김은효’가 미국 버지니아의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서 친구 연희를 떠올리고, H를 생각하고 그리고 다시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떠올리듯이, 나는 책을 쫓아, 아닌 주인공 은효를 쫓아서 그렇게 지난 옛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은효는 어쩌면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능력없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나는 능력없는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은효는 청렴결백한 부모님을 원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뭐하나 잘 하는 것 없는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니 말이다. 은효는 중학교 시절 공부를 아주 잘 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혼자임에 익숙하다. 하지만, 등하교길을 같이 손잡고 걸어가며 수다를 떠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사춘기 소녀이다. 그런 은효는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같은 재단이 같은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외국어고등학교를 지원했지만,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그들과 익숙해지기에는 또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그 시절의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시절의 교육현실이 지금과 사뭇 다르지는 않다. 수업내용은 "너네 이거 다 알지?" 라는 말과 함께 넘어가 버리고, 외국어를 배우겠다는 목적으로 들어간 학교에서는 외국어를 배우기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맛보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이미 외국어에 능통한 아이들, 외국에서 몇 년을 살아본 아이들이 모국어를 이야기하듯 술술술 대화하는 그들을 보면서 은효가 느끼는 좌절은 지금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낀 은효는 자꾸 움추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책 표지에 등장한 그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은효는 아직 딱히 원하는 것도,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리라. 어른들의 말이 맞다면, 꿈은 대학에 간 뒤 천천히 찾아보아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미술시간에 쓸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준비하는 일과 같은 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더라도 스케치북과 크레용이 있으면 조금 늦게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그릴 수 가 없다. (출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본문 106페이지) 은효는 그 시절에 내가 했던 고민을,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하는 고민을 보여준다. 성적, 친구, 꿈, 미래, 부모, 가족 등 우리가 한번쯤 해봤음직 했던 고민과 생각과 행동들. 목둘레가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것,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가정에 대한 불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 같은 자신에 대한 한없는 좌절, 꼴찌에서 10등한 성적에 대한 불만,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에 대한 애정 등 은효를 통해서 나는 나를 보았다. 은효는 결국 입시에서 탈락하는 고비를 마셨지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다. 이 이야기가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그 용기는 더 많은 희망을 보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낀 은효의 모습은 초등학교 5학년인 내 딸의 모습과 겹쳐진다. 몇년 후 내 딸도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끼고, 여드름이 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을 "찐따"라고 생각할까? 그때 이 책을 보여주어야 겠다. 결코 찐따가 아니라는 것을...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겠다. 신은 우리 인간에게 오직 ’현재’라는 시간만을 허락했으니,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야겠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있는 ’현재’가 바로 내게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 아닐까? 나는 이번 전기에 결과가 좋지 못해서 후기는 포기하고 재수를 시작했어. 힘들겠지만 그것이 내게 주어진 길인걸.....다시 시작해야지.. (출처: 본문 202~203페이지) 나는 지금 스케치북과 크레용이 준비되어 있는가? 어쩌면 이제 내게 미술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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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커다란 안경에 교정기를 낀 평범한 여고생의 외국어 고등학교 적응기! 외국어 고등학교는 외국어를 배우러 가는 곳인 줄 알았지 외국어를 배워서 가야 하는 곳인 줄 몰랐던 그녀는 갑자기 쏟아지는 불어와 영어 사이에서 길을 잃고 외국어로도 모국어로도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아무에게도 소통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3년간의 삶의 기록인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은 10년 전 뉴키즈 온 더 블록과 농구선수 문경은에게 열광하던 나, 격하게 성장통을 앓던 시간들이 떠올라 순간 더위도 잊고 오랜만에 아련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공 하고 싶은 분야를 찾지 못한 체 일단 대학만 가자는 목표로 엉덩이에 땀띠가 나노록 노력해 성적은 조금씩 오르고 외국어에도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면 빨리 시집을 갈 생각도, 체력이 약하니 야근이 잦은 대기업에 취업할 생각도, 다른 친구들처럼 외교관이 되고 싶다거나 교사나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이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엘 가서 뭘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방황하고 아프면서 커가는 시간을 여고생의 감성으로 담담하고 재미있게 써 낸 오현종, 또 하나의 멋진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쁩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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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 잡지 『풋,』에 연재될 때 제목 때문에 끌렸던 소설인데 연재 끝나자마자 금방 단행본으로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주인공은 TV 뉴스를 통해 '조승희 사건'을 본 뒤, 자신의 어린 시절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마침 사건 발생 지역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고, 아마도 옛 연인이었을 H가 생각났고, 이내 입 안 가득 A1 소스의 맛이 퍼지듯, 과거 그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주인공은 치아 교정기를 끼고 얼굴에 여드름이 올긋볼긋 난, 성적도 그저그런 '찐따'이다(본인이 자기를 '찐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우등생이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갑자기 열등생이 되어버린 '나'. 만약에 '나'가 계속 우등생이었다면, 그래서 잘난 외고 학생 이야기를 풀어놨더라면 나는 이 소설에 이렇게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거다. 자기를 못났다고 생각하고, 성적도 별로고, 소심하면서 적당히 뒤끝도 있고, 남학생과는 콜라 한 잔 마시지도 못하는 그런 모습들이 그 나이 때 나의 모습과 많이 겹쳐지면서 진한 공감대를 형성해 주었다.
_ 교과서와 관련없는 딴생각은 고교생에게 금물인데 어쩌자고 내 머릿속은 재활용도 불가능한 잡다한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지 한탄스러웠다.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을 것은 우리집 마당이 아니라 쓸데없이 산만한 생각들로 가득한 내 머리통이었다.(140~141)
이런 문장을 그때의 내가 봤다면 당장 내 머리를 갈아엎을 포클레인을 구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지금도 내 머리는 포클레인이 필요하다.) 아, 그 시절에는 그냥 공부만 하면 됐을 것을 어쩌면 그렇게 '잡생각'이 많이도 들었는지, 수학 공식을 외우고 영어 문법을 외우는 시간보다 샛길로 빠지느라 더 바쁜 내 머리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렇게 그때의 내 모습을 자꾸 떠올리고 추억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밥을 먹은 후 늘 치아 교정기를 씻던 친구의 모습도 생각나고(친구도 그 치아 교정기가 부끄럽고 싫었을까?), 뭐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책상에 엎드려 눈물 뚝뚝 떨구었던 시간들도 생각나고, 하루에 몇 통씩 써대던 편지와 쪽지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쉽게 생각되는 점이라면 나는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남녀공학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로맨스'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것.(나는 소설 속에서 '류성혁'이 등장하기만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큰 비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큰 비중을 바랐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왔을 고교시절. 작가는 자신의 그 시절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나의 그 시절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나의 고교시절에 딱 어울릴 만한 키워드가 떠오르지 않음이 못내 아쉽다. 나는 이렇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무척 부럽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잊혀졌던 추억의 한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할 뿐, 나 홀로는 딱히 떠오르는 추억도 이야기거리도 별로 없는 탓이다. 기억력이 나쁜 건지, 정말 굴곡 없는, 그리하여 딱히 기억할 것도 없는 그런 나날을 보냈던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설의 장면 장면이 내 추억의 문을 노크해주는 것이,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맙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1989년 봄부터 시작했다.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아마 나보다 더 많은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뉴키즈 온더블럭이나 티비 외화 시리즈 '브이'(윽,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얼굴 껍질 벗기면 튀어나오던 초록색 파충류 피부가! 으윽!)에서는 나도 반가워했지만, 내가 모르는 문화 코드가 좀 더 많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갑자기 내 또래 작가들이 쓴 '성장소설'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또래 작가라면 대표적으로 김애란이 있다.) 그러면 더 많은 추억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말로도 전할 수 없었던, 하지만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열일곱 살 나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쩌면 열일곱 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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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 오현종 / 문학동네
왠지 제목이 매력적인 책.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라. 저자의 이력을 살펴볼 때 자전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버지니아에서 벌어졌던 총기난사사건의 조승희. 버지니에 살고 있다던 친구 연희를 떠올리게 되고, 또 뜬금없이 H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한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한 은효는 중학교 때 수석으로 입학해 칠공주파의 따돌림을 받았다. 그래서 같은 재단의 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은효의 아빠는 청렴결백하신 고등학교 교사. 외고의 친구들은 어디 재벌집 딸, 무슨 기업 사장 아들, 등등 빵빵한 집안에 외국어를 배우러 외고에 온 것이 아닌 외국어를 술술 잘해서 온 아이들로 가득찬 학교.
은효의 이야기가 고등학교 시절 내 모습과 공감가기도 공감가지 않기도 했으나 학창시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한번쯤 고개를 끄덕끄덕 해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모두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고 교실이란 틀 안에 갇혀서 공부해야하는 고등학생.
외고 아이들 속 은효 이야기는 아마도 작가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지 않았나 싶다. 은효와 주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이야기. 그 시절, 선생님과 부모님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그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을까? 좋은 대학을 나오면 사회생활이 잘 빠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탄탄대로였을까? 아무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그저 공부만 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세상은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추천해주면 좋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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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낚는 것일거라 예상했다. 외국어=영어에 관한 관심이 아닌 업보가 되어버린 대중에게 관심을 받기위한 제목일 뿐, 실제 엄청난 반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외고에 가는 학생 얘기라니...헉~
물론 외국어를 공부하는 어려움을 얘기하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찌들찌들하게 썩어가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외고에 진학한 은효의 이야기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학교와 우리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아마 은효가 맞닥뜨린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저당 잡힌 채 현실에 겨우겨우 쫓아가는 그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많이 자라고도 아직도 성장이 필요한 우리에게 아니 나를 설명하는 책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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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 불어과를 다녔던 자신의 성장소설이었다. 난 오현종 이름만 듣고선 남성 작가인줄 알았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나라 문학적 자질, 역량보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비교적 솔직하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죄다 거짓뿐이고 상상을 하며 읽는다는 즐거움을 조금은 앗아가지 않았나 생각은 들지만.. 나중에 자신이 소설가가 되면 꼭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소설 한편을 써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나보다. 미래도 있었고 그녀 가슴엔 희망도 남모르게 숨겨놓고 살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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