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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기서로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에 이어 홍루몽을 꼽는다는 것을 알고야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너무 자주 접했던 앞에 세 책들에 반해, 홍루몽은 도통 얻어들은게 없었습니다. 사실 서유기도 원본으로 보다보면 너무 긴 노래와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아 썩 보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서유기 기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또 잘 없을꺼에요. 그렇지만 홍루몽은? 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주변에서 보이지도 않고, 자주 이야기가 들리지 않으니 궁금하지도 않아서 찾아보게도 안 되더군요. 그러다가 회사 도서관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한권을 집어들어봤는데, 아직 1권을 읽고 있지만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일단 그렇게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없던 이유는 확실하네요. 내내 주인공 연애 이야기에 연애 대상도 풋풋한 첫사랑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시 될만한 관계도 속출하고 묘사가 금병매처럼 세밀한 수준은 아니겠으되 1권에서만도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색,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4대기서가 되는게 그러한 묘사가 많아서는 아닐꺼에요. 이 책의 드높은 가치는 앞의 세 책과 반대되는 면모에 있습니다. 즉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는 영웅의 이야기 입니다. 삼국지는 나라를 만드는 영웅의 이야기이고 수호지는 안티 히어로에 가깝죠. 서유기는 전설적인 영웅들이니 신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홍루몽의 주인공은 영웅도 아니고 반영웅도 아니고, 단지 좋은 집에서 태어난 일개인일 뿐입니다. 나름 높은 신분이긴 하지만 왕족도 아니고 그저 귀족의 아들일 뿐, 또한 본인이 학문에 뜻이 없고 그저 놀기 좋아하는 풍류남일 뿐입니다. 홍루몽 120부의 대부분에서, 주인공 가보옥은 그저 연애를 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게 왜 가치가 높냐 하면, 우리 대부분의 범인들은 영웅도 반영웅도 아니고 그저 살아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의 운명을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지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런 사람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후대에 어떤 소설에 영향을 끼쳤나 생각해보면, 삼국지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략적인 역사소설 입니다. 수호지는 무협지의 원형이지요. 서유기는 전설이나 설화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홍루몽은? 홍루몽의 내용은 '연애를 하자'는 아닙니다. 몰락하는 한 집안의 자제의 인생이, 집안 전체의 운명에 연동되어 어떻게 움직여 왔는가, 즉 역사가 일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의 대부분의, 특히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는 오히려 홍루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껍니다. 태맥산맥이나 토지나, 역사의 움직임이 한집안, 혹은 몇명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내용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홍루몽은, 거대한 역사의 움직임 없이도,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더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일제시대나 6.25를 거쳐온 인간들의 일생이 얼마나 크게 뒤틀리고 곡절 있을지는 생각해내기가 쉬운 편이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 서서히 쇠락해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그보다도 한 단계 어렵다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관점의 차이이지요. 홍루몽의 경우는 몰락의 일반화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태백산맥, 토지의 경우는 역사적 의의가 있었던 사건들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은 다릅니다. 그리고 각자 목적에 충실한 것이구요. 그렇지만 홍루몽의 큰 가치, 즉 사소한 인간들의 사생활을 주제로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장점만은 명확합니다. 서양사 책에서 찾아보면 조르주 뒤비의 '사생활의 역사'나 로버트 단컨의 '고양이 대학살' 같은 책들이 일반 민중의 삶들을, 혹은 지배계층의 공식화 되지 않았던 삶들을 다시 조망합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서양사에서 역시 영웅 아닌 일개인을 그린 역사의 역사는 그닥 길지 않았다는 겁니다. 영웅 위주의 역사는 역사가 길죠.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의 '사기'에서 벌써 기전체가 시작되었고,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플루타크 영웅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일반인의 삶은 다만 일반화되어 기록될 뿐이었습니다. 그저 '동쪽에는 이라는 오랑캐가 있어 젖국지를 담가 먹었다' 뭐 이런 식이지요. 그게 아니면 그저 한 나무꾼이 있었다는 식의 일화성 전래동화 수준이었죠. 그게 아니면 입신양명, 과부의 수절, 나라에 충성하거나 아비에게 효도를 다한 일화들, 이런 당대의 가치를 강화하는 내용들이거나요. 아무렇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은 일개인, 별볼일 없는 성공과 뻔하디 뻔한 실패들, 따지고 보면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사람에 불과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스케일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각자의 인생에 삼라만상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고 인간사의 수많은 희노애락이 숨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홍루몽의 가치는 그것입니다. 무지렁이들의 인생에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이런 류의 몰락형 대하 소설이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홍루몽은 그냥 특이한 전환점이라서가 아니라 잘썼기 때문에 또 살아남은 겁니다. 이를테면 여기서의 인간 묘사는 이런 식입니다. 누구의 아들은 총명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 향락에 힘썼다. 이렇게 전개 됩니다. 총명해서 출세하고 뭐 이런 거 없습니다. 총명한대로 본인의 욕망에 충실한 거에요. '총명하여 출세에 힘썼으나 좌절하고' 이런 부분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유능한 관리라고 소개하고 바로 다음 문장에 돈 받고 위세 떨다가 실각하는 묘사가 나오는등,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인생을 보기도 정말 쉽지 않을꺼에요.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잖아요? 총명한 사람들이 다 관리가 되려고 하나요? 재능 있는 관리들이 다 '나쁜 친구의 꾐에 빠져' 바르게 살려고 하다가 망쳐지는 건가요? 인생에 그런 목적은 사실 그닥 있지도 않다, 이 책은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에 비교하면 현대소설들도 교훈적이라고 할 수 있을 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