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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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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지금 이 순간 생을 마감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언제 부턴가 지금 죽어도 그리 아쉬움 남을 것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살아온 삶이 여한 없이 잘 살아와서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젊은 시절 큰 사고로 인해 죽을 뻔 했던 경험이라 생각된다. 그 후 내 삶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해서 살아가는 것 이였다. 살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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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
지금 이 순간 생을 마감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언제 부턴가 지금 죽어도 그리 아쉬움 남을 것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살아온 삶이 여한 없이 잘 살아와서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젊은 시절 큰 사고로 인해 죽을 뻔 했던 경험이라 생각된다. 그 후 내 삶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해서 살아가는 것 이였다. 살아가며 이 사실을 잊고 영원히 살 것 같이 살아가지만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음과 직면하는 때가 온다. 그 때 걸릴 것 없이 삶을 마감 할 수 있으려면 어떤 마음으로 현실을 살아야 할까?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인연 고리를 끊고 진정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선사들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시대 선사들의 열반 후 장례절차인 다비식 모습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는 책이 있다.

바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2003년 이후 2008년 까지 열반에 들었던 불교계 큰 스님 열일곱 분의 다비식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우선 이 독특한 장례절차인 다비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 임윤수라는 사람이 궁금하다.

저자 임윤수는 의외로 대학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전공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무시(無時)로 꿈꾸는 출가와 그렇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마음을 보기 위해 전진하는 사람이다. 이미 다른 책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도 출간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불교의 장례절차인 다비식에 관심을 가졌구나 싶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의 책에는 서암, 청화, 정대, 월하, 서옹, 지안, 정일, 석주, 숭산, 혜산, 법장, 만봉, 명안, 정천, 현광, 정공, 원담 등 이렇게 열일곱 분의 불교계에서 큰 족적을 남겼던 큰스님들의 다비식을 직접보고 지면을 통해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으며 평소 그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도 있고 큰 뜻을 전하며 걸림없이 살다간 스님들의 장례절차가 왜 그렇게 화려하고 복잡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큰 뜻이 있을 것이라고 잠작 하지만 속인의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다.

열일곱 분 모두 불교라는 테두리에 속하지만 출가하고 정진했던 사찰과 본사의 인연에 따라 다비식의 모습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땅속 깊숙이 묻은 항아리에서 사리를 수습했던 도무지 알 수 없는 서웅 큰 스님의 다비식, 불꽃도 연화대도 없지만 가는 길 모두를 보시한 법장스님도 있고 속인보다 더 화려한 모습도 있지만 빈손으로 왔듯 빈손으로 가는 길에서까지 지극히 낮은 보살의 모습도 있다.

[예(禮)가 엷어지니 곡(哭)은 사라지고,‘의미’가 왜소해지니,‘가치’가 망가져간다. ‘죽은 자에 대한 예’와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야금야금 퇴색돼 가고, 의식이라고 하는 절차와 살아있는 자들의 체면치레만 점점 성성해 지는 게 요즘의 상장례 풍경이다. 세속인들의 장례의식만 그런 게 아니라 송구하게도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의 영결식과 다비에서도 그런 일면이 언뜻 보인다.](저자 후기 중)

보내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엄숙하게 행해지는 다비식장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하여 오는 것 같다. 지극정성으로 연화장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불꽃이 사그라져 꺼질 때 까지 염불하던 모습도 변하고 후배 스님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빌어 연화장까지 가던 운구행렬도 변하고 찾아오는 추모객 마음도 변하는가 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던 것이 이런 것을 두고 말하지는 않았을 듯싶어 허전한 기분까지 드는 것은 어쩌지 못하겠다.

마지막 장례를 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을 안다고 했던가. 살아생전 열일곱 분 모두 내노라하는 선지식이고 큰 스님들이지만 그 분들의 온전한 뜻을 다 살리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수발을 했던 제자나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의 모습, 다비식 장을 찾은 추모객의 모습에서 얼추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태어나 살아온 모습도 마지막 가는 길 다비식 모습도 다 달랐던 스님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 무지 몽매한 우리 속인들에게 보이고자 했던 큰 뜻은 무엇이였을까? 열반에 든 스님은 말이 없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가르침을 주실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수화풍으로 돌아간 스님들의 모습에서 내 마지막 모습을 미리 생각해 본다.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에서 이미 정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언제 올지 모르는 마지막을 위해 오늘은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냥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라고 했던 서암 스님의 말이 내내 마음에 머문다.

 

 



m*****8 2009.08.04.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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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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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집안에 초상이 생겨 다녀왔던 적이 있다. 건장한 모습으로 언제 힘있게 살 것 같았던 분이 어느날 갑자가 쓰러져 병원 신세를 5년동안 지고 가셨으니 가는이나 보내는 이나 그닥 아쉬움이 없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인간의 마음이 어찌 그리 단순할 수 있을까. 보내는 아쉬움에 울고, 다시는 볼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울고, 정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설움에 울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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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집안에 초상이 생겨 다녀왔던 적이 있다. 건장한 모습으로 언제 힘있게 
살 것 같았던 분이 어느날 갑자가 쓰러져 병원 신세를 5년동안 지고 가셨으니 
가는이나 보내는 이나 그닥 아쉬움이 없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인간의 마음이 어찌 그리 단순할 수 있을까. 보내는 아쉬움에 울고, 다시는 
볼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울고, 정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설움에 울고 그렇게 
가는길을 전송했던 기억이 난다. 

기독교가 모태신앙이다 보니 절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는 문외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다비식 광경에 대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삶의 형태에 따라, 스님의 살아 생전의 뜻에 따라 다비식의 형태도 다르고
찾아드는 신도들의 모양새도 다르고 다비장의 모양새도 달랐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은 누구나 같은 일일게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의 삶을 꾸리며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 하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빈손으로 넘을 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깨닳음과 가르침을 주고 가는 스님들의 다비식을 읽으며 나또한 이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것인가를 생각했다.

미타사의 비구니 명안 큰스님의 다비장을 읽으며 눈시울 뜨거워졌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백구의 모습과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슬픔을 보면서 명안 큰스님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성륜사의 청화 큰스님처럼 떠날때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놓으신 분이 있는가 하면 화려하게 마지막을 떠나는 분도 계셨다. 그것이 남아
있는 분들의 일이라 하지만 그래도 스님의 뜻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 어느 정도
가늠이 되는 경우였다. 어느 죽음이든 경건하고 슬프겠지만 우리 삶의 길잡이가
되는 이의 죽음은 더 슬프다.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님의 죽음도 그랬다. 그가 돌아가는 길은 빈손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남기고 간것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이다. '스님, 불들어
갑니다'에 기록된 열일곱명의 스님들의 가르치침 또한 사람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하고 있다. '스님,불들어 갑니다'는 기행문형식으로 쓰여지고 별스런 재미가 없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큰 깨닳음을 주는 책이다.
p****9 2009.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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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들어갑니다를 읽고
"스님, 불들어갑니다를 읽고" 내용보기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읽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종교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종교는 아마 불교와 크리스트교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떨쳤던 종교는 불교이고,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는 대부분이 불교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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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읽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종교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종교는 아마 불교와 크리스트교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떨쳤던 종교는 불교이고,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는 대부분이 불교 관련 유적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국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주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바람에 많은 사찰들이 결국 풍수 좋은 산중으로 들어가 약간 위축된 상황을 맞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꾸준한 옛 전통이 유지가 되면서 오늘날은 전국의 유명 사찰은 물론이고, 이제는 도심 등에도 많은 사찰 불교 관련 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불교를 믿는 신도는 물론이고 비 신도들도 시간이 나게 되면 훌륭한 자연환경과 함께 빛나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들을 찾아서 참배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절에 가게 되면 많은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일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스님들인 열일곱 분 선사들이 돌아가시면서 행하는 다비식만을 직접 가서 참배하고, 사진을 찍고, 그 장면들을 자세하게 모아놓은 것이 이 책인 것이다. 우리 흔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기에 아주 귀한 책이기도 하다. 물론 불교신도들이 이런 다비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낯이 익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이 한 번도 직접 가서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내용이어서 아주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가 있었다. 읽으면서 역시 이 열일곱 분 선사들의 공통점은 불교계의 어른이라는 점이다. 그 만큼 불교계의 발전을 위해서 온 몸을 바쳐서 헌신을 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일부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숭앙을 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 처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사회를 보게 되면 주변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행동을 하는 일부 지도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큰 교훈이 되리라 생각을 해보았다. ‘가화’라는 말이 들리고, 솜방망이의 불들이 선사들의 시체가 들어있는 연화대로 옮아붙으니 연화대 주변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이 통곡이라도 하듯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치니 불길이 옮겨 붙은 연화대는 거침없이 타오르게 된다. 죽었다. 다 죽은 것이다. 구도자로 한 평생을 청정하게 살아온 선승들도 한 줌의 재가 되어 지수화풍으로 환원되는 다비장의 풍경들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아울러 사람이 산다는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유익한 독서시간이 되어서 행복하였다.

m***3 2009.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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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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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에는 윤회사상이 있다. 인간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어린나이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 편안하게 가셨다니 부디 하늘에서는 행복하시기를 빌었다. 죽음이란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 없는 우리 의 인생의 한편인가 보다. 스님들의 다비식을 읽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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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에는 윤회사상이 있다. 인간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어린나이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 편안하게 가셨다니

부디 하늘에서는 행복하시기를 빌었다. 죽음이란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 없는 우리

의 인생의 한편인가 보다. 스님들의 다비식을 읽어갈수록 그분들의 임종게를 볼때

마다 숙연해진다.

 

열일곱분 선사들의 수행에 따라 달라지는 다비식의 풍경을 볼수있다.

연화대를 쌓는 방법과 다비식의 순서 그리고 습골을 하는 과정이 절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내가 가본곳 미타사. 중하교 시절 소풍으로 한번 가본곳이다.

한친구가 그곳에 살기도 했던것을 기억한다.

충북음성에 있는 미타사에서 40여년째 수행생활을 하고 계시던 비구니 명안스님이

연화대에 올랐다. 아직은 텅비어 있는 연화대에 백구 한마리가 엎드려 있다. 미물인

개가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기위해 먼길을 왔다는 저자의 말에 인간보다 나은 효가

보였다. 갈고랑이 손을 한 그분이 신도대표로 조사를 한다. 한염없 눈물로 조사를

하신다. 연화대가 눈물을 흘리듯 검은 연기를 토해내는곳에 노보살님이 엉엉 울고

계셨다. 한장의 사진에 노보살님의 모습이 실려있다. 마치 자신의 부모를 잃은것

처럼 서글퍼보인다. 누군가를 위해서 눈물 흘려본적 있는가. 나를 위해 울어줄

친구가 있는가.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수북하게 쌓여있던 연화대가 불꽃에 휩쌓이고 차츰 내려앉는 모습에 스님은

극락왕생을 하셨나하는 걱정과 그곳에서는 자신을 위해 수행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안히 가시기를 바란다.

 

"후드득후드득 불타 들어가고 있는 연화대는 아무런 말도없다. 꾸역꾸역 연기를

쏟아내던 조금 전의 모습도 이미 지난 일이다." p61

"여느 다비자에 보았던 연화대가 호탕하고 호들갑스럽다고 해야 할만큼 휘휘

불꽃을 뿜어냈다면 짚불다비라고 부르고 있는 내소사 연화대는 조용한 사람의

배시시한 웃음이나 어때 들썩거리는 흐느낌처럼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어 불꽃이

보이질 않았다" p143

다비식에서 본 저자의 연화대의 모습이다. 연화대는 생전의 스님의 모습을 그대로

베낀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를 무섭게 혼내시던 아버지, 한없이 껴안아 주시던

어머니와 같이 말이다.

 

스님들의 다비식이란 특이한 장르의 책을 접하고 보니 새삼 죽음에 대해서 생각

하게 되었다. 먼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런생각에 내 자신이 스스로

숙연해진다. 그분들의 생전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가는 인생. 부디 인생을 살면서 사리사욕에 눈멀지 않고

남에게 해끼치지 않은 인생이 극락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한다.

 

b*****8 2009.07.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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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들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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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인간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언젠가는 영혼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큰스님들의 마지막 다비식광경의 풍경을 읽다보면 웬지 모를 깊은 여운이 남는듯하다. 또한 그동안은 몰랐던 큰스님들의 발자취를 다시한번 새겨볼 기회도 된다. 집에서 가까운 화계사의 숭산큰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같이 있던 어느 분에게 많이 들었으나 이번의 책을 통하여 그분의 가르침과 외국의 포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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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인간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언젠가는 영혼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큰스님들의 마지막 다비식광경의 풍경을 읽다보면 웬지 모를 깊은 여운이 남는듯하다.

또한 그동안은 몰랐던 큰스님들의 발자취를 다시한번 새겨볼 기회도 된다.

집에서 가까운 화계사의 숭산큰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같이 있던 어느 분에게 많이 들었으나 이번의 책을 통하여 그분의 가르침과 외국의 포교에 대한 정열과 행동을 알수가 있었다.

또한 작년에도 내소사를 두번이나 다녔왔으나 그곳 큰 스님의 이야기도 간접적으로 알수가 있어서

다시한번 내소사를 찾는다면 이책의 제목처럼 스님 불들어갑니다라는 문구를 만날수가 있기도 하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의 위안과 나아갈길을 위대한 스님들은 마지막가시는 다비식에서도 알수가 있다.

무겁고 때로운 장엄하기까지 한 다비식의 풍경은 또하나의 가르침과 우리들에게 이땅을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우고 마음속에 잠든 위대한 영혼을 불때우는 여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

우리는 이것을 비장하게 가슴에 새겨야하기 때문이다.

 

미타사라는 음성에 있는 절의 다비식광경은 나에게 또다른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탑을 걸어서 올라가는 유일한 절로써 나에게 지난 세월 부모님과 함께 거닐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에서 백팔배를 하고 천배를 하고 만배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현재의 마음을 잠재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의 본질인 또다른 나의 주인공을 만나게 하는 과정으로 나는 이해를 한다.

나를 움직이는 나와 내면의 내가 만난다면 어떠한일이 일어날까

지고지순의 행복과 우리의 발전을 위하여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하나하나는 무수한 우주의 법망에 기록된다.

그래서 현재의 나를 보면 과거를 알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생활속에서 천국과 지옥은 있다.

죽어서 지옥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를 재탄생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발맞추어 우리는 환영을 만들어 지옥을 경험할수도 있고

아니면 영혼계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재탄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윤회의 과정을 전부 던진 마음 그리고 생각의 평정이 우리의 영혼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뿐아니라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것이다.

살면서도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다. 잠을 자는 것은 간접적으로 맞이하는 죽음아닌 죽음이다.

그래서 자기전 좋은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좋은경험을 분명히 할것으로 확신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새로운탄생이자 우리를 발전시킬기회도 될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책이다

k********8 2009.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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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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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제목이 특이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불교와 큰 인연이 없어서 자주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용맹정진한 수행으로 선을 쌓은 큰 스님의 입적을 미디어 매체를 통하여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스님들의 장례절차인 다비식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다비식이 가지는 의미, 삶과 죽음, 생의 의미, 천지는 꿈꾸는 집이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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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제목이 특이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불교와 큰 인연이 없어서 자주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용맹정진한 수행으로 선을 쌓은 큰 스님의 입적을 미디어 매체를 통하여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스님들의 장례절차인 다비식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다비식이 가지는 의미, 삶과 죽음, 생의 의미, 천지는 꿈꾸는 집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이라는 말, 갈 곳 없는 곳을 가야하는 게 인생이라는 말, 허망하고도 매정한 게 인생이라는 말, 생자필멸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비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 햇쑥을 뜯어 버무린 쑥버무리를 씹으면 씹을수록 느낄 수 있는 깊은 맛과 향 같은 출가수행자로 평생을 온 구도자에게 하는 마지막 예우가 아닐런지... 또한 공수래 공수거인 나그네의 삶을 마무리하고 회향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스스로 쌓은 공덕이나 수행을 다른 사람들이나 살아있는 생명에게 되돌리는 일’을 ‘회향(回向)’이라고 한다.

 

 

이 책은 5년여에 걸쳐 연화법단에 오른 열일곱 분 선사가 지수화풍으로 되돌아가는 광경을 사진으로 정리하고 글로 그려 본 책이다.

 

 

푸르른 솔가지 빛만 돌던 산길에 알록달록한 만장자락이 펄럭거리고, 은은한 소나무 향만 풍겨 나오던 산길은 어느덧 열반의 법향이 풍겨 나오는 다비장 가는 길이 된다.

 

다비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다비란 이런 거구나’하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여타의 다비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님들에게도 출가에 따른 문중이 있으니 문중마다 다비 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자필멸, 태어난 이라면 너나 할 것없이 다 받아 들여야 하는 게 죽음이니 죽음이라는 게 우여곡절 많은 개개인의 인생살이만큼 불공평하거나 혼자만이 서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는다는 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응애~~~”하는 울음소리로 시작된 생은 “깔딱!”하고 숨 거둔다는 표현으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으로 구분된다.

 

평생을 선승으로 살아온 선승이라 할지라도 인생팔고(人生八苦)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만은 피할 수 없으니 스님이 입적을 하면 다비가 준비되고 연화대가 마련된다.

 

사회자의 ‘거화’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을 붙인다. 다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 하나같은 목소리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소리를 지른다.

 

연화대를 마련하는 목적이야 다비를 위한거지만 주변 여건과 문중으로 전해지는 전통이나 풍습에 따라 방법도 재료도 달라진다. 어떤 절에서는 참나무로 연화대를 만들고, 어떤 절에서는 숯으로 연화대를 마련할 뿐아니라 어떤 절에서는 지푸라기나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을 쌓아 만들기도 한다.

 

연화대를 만드는 재료가 무엇이던 간에 그 목적은 몸뚱이라고 하는 육신을 지수화풍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육신의 지수화풍은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와 땀은 물로 돌아가고, 가슴을 뜨겁게 하던 체온은 열이 되고, 코끝을 들락거리던 들숨 날숨은 바람이 되어 돌아갔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남을 작은 흔적이다.

 

모양과 꾸밈, 절차와 사용하는 재료들은 조금씩 달라도 다비가 남겨주는 불변의 교훈 하나는 모든 인간은 결국 한 줌의 재로 남는 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 다비식이며 연화대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사리는 형이상학적인 대상이기에 법력이나 뭐니 하며 혹세무민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수행의 결정체니 뭐니 하며 세속인들의 입방앗거리가 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수덕사의 다비에서는 습골과정은 거치지만 대부분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다고 하니 꾸밈도 남김도 없는 원초적 환원과정이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법구(시신)가 살아생전의 유지대로 후학들에게 기증된 대한불교조게종 제31대 총무원장 법장 큰스님은 구도자로서, 수행자로, 종교지도자로 정말 참모습이었다.

 

<<죽을 것이다.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태어날 생명이거나 할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하지도 말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마라. 없는 사람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못한 사람보다 조금 출세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다른 사람보다 가진게 없고, 출세한 사람보다 명예가 없다고 해도 서러워 마라. 영원한 것이 없듯 너도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겸손하게 살지어다, 이순간에도 적멸의 순간을 향한 삶의 궤적은 궤종시계의 초침처럼 똑딱거리고 있으니, 사람 사는 것 다 그렇고 그렇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을 구하려 고뇌해 보았는지 반성이 되었다.

 

 

인연이 아닌 것은 따르지 마라,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며 돌아감도 인연이라 했으니,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랴.

a***8 2009.07.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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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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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앞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남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나, 내 인생은 내가 꿈꿔왔던 그대로였나 등 많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갈 것만 같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는 열 일곱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을 통해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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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앞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남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나, 내 인생은 내가 꿈꿔왔던 그대로였나 등

많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갈 것만 같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는 열 일곱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을 통해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책이다.

비록 나는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수양에 정진하시는 훌륭한 선사들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이 책은 그분들의 다비식을 통해 그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비식 풍경도 각 선사들마다 매우 다양하며, 연화대를 쌓는 법, 다비식의 순서 등도 각 절마다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 속에는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각 선사들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 속을 많이 파고 들었고,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나는 세속에 너무 집착하여 아둥바둥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후회가 들기도 했다.

또한 맨 몸으로 태어나 맨 몸으로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물질적인 탐욕에만 집착해서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점점 시대가 변해가면서 다비식의 절차도 변해간다.

죽은 스님의 법신이 다 탈 때까지 나무아비타불을 외던 풍경도 점점 사라져가고 모든 절차가 간소화되어간다.

앞으로도 이 다비식의 절차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슬프게만 느껴졌다.

 

비록 한 번도 다비식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많은 다비식들을 직접 보고 느낀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예전과 같은 다비식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 모습은 계속해서 기억될 것이고, 선사님들의 그 기억에 남을 만한 한 마디 한 마디 역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도 죽을 것이다. 시간이 죽으면 모두 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하지도 말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마라. 없는 사람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못한 사람보다 조금 더 출세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게 없고, 출세한 사람보다 명예가 없다고 해도 서러워 마라. 영원한 배터리가 없듯 너도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겸손하게 살지어다."

h****8 2009.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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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스님, 불 들어갑니다.
"[서평]스님, 불 들어갑니다." 내용보기
이 책은 열일곱 분 스님들의 다비식을 임윤수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사진과 함께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독자로 하여금 책으로 그 곳에서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다비식”이란 불교에서 시체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의식으로써 선사들을 하늘로 보내드리는 장례식이다. 2003년부터 2008년도까지 스님들의 다비식을 경험하며, 목적은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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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열일곱 분 스님들의 다비식을 임윤수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사진과 함께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독자로 하여금 책으로 그 곳에서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다비식”이란 불교에서 시체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의식으로써 선사들을 하늘로 보내드리는 장례식이다.

2003년부터 2008년도까지 스님들의 다비식을 경험하며, 목적은 같지만 치러지는 방법이나 방식이 문중이나 절에 따라 다르기에 다비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리하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막상 불교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비식, 연화대의 단어조차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각 열일곱 분의 다비식 풍경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글을 읽어내려 갈수록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겸허해졌다.

“모양과 꾸밈, 절차와 사용하는 재료들은 조금식 달라도 다비가 불변으로 남겨주는 교훈 하나는 모든 인간은 결국 한 줌의 재로 남는다는 것이다.(p49)"

흔히 100년도 못 살면서 1000년을 걱정하는 중생들이란 말이 있다. 저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법륜 스님의 ‘행복한 출근길’의 말씀처럼 자기를 내려놓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봉은사 조실 석주 큰스님도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글을 사람들에게 자주 써 주셨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 한 끝에 얻어지는 결과에 감사한 마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자체게 행복이고 부자가 되는 것(p108)"이라고 하셨다.

다비식의 풍경은 많은 사람들속에서 상여와 연화대도 화려하게 치장되어 어느 장례식 못지 않은 화려함을 주는 곳이 있는 반면, 유난스럽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다비식도 있으며, 생사의 경계에서도 참선하시다 열반하신 백양사 서옹 큰스님의 법구는 흐트러짐 없이 그래도 모시기 위해 관의 형태가 아니고 입방형인 감(龕)에 모셨다.

국경을 넘나드는 포교로 서양인의 모습을 한 스님들이 유독 많았던 수유리 화계사 조실 숭산 큰스님은 한자가 주를 이루는 만장에서도 영어와 불어, 범어 와 한글로 색색의 만장이 물결쳤다고 한다.

간혹, 개들도 스님 가시는 길 배웅하며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도 전하고 있다.

 

퇴근길에 하늘에서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라디오에서는 조용필이 ‘허공’이 흘렀다. 마침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다 읽고 평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기에 날씨와 흐르는 음악이 지금에 내 마음과 딱 맞아 떨어졌다.

후학과 중생들에게 마지막 법구까지 기증한 조계종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 큰스님은 마음의 불꽃 다비식을 심어주셨다고 한다.

요즘은 돌아가신 스님의 사리를 놓고도 싸움이 일어나고, 스님의 재산을 놓고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어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태어날 생명이거나 할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하지도 말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마라.

다시 한 번 지금에 내 생활을 돌아보아야겠다.

나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지, 저 혼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자만하지 않는지, 한 줌에 재로 돌아간다는 것을 잊고 사는건 아닌지......

정도에 길을 간다는 것이 험하고 어려운 길이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다비식의 풍경을 한 번은 꼭 눈으로 직접 체험해봐야겠다.

아마도, 책에서 느끼지 못하는 더한 감동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YES마니아 : 로얄 y*****8 2009.08.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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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님, 불 들어갑니다
"[서평] 스님, 불 들어갑니다" 내용보기
육신이 멸한다는 것은 영혼에게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일 수 있다.   이제까지 익숙하게 보아왔던 한 존재의 증거품들을 하나 하나씩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과정들이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과정이다.   일반인들의 죽음은 짧은 통과의례를 거쳐서 각자 갈곳으로 다시 분배된다.   죽기전 병원에서의 마지막 운명의 순간과 장례식장에서의 익숙한 풍경들
"[서평] 스님, 불 들어갑니다" 내용보기

육신이 멸한다는 것은 영혼에게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일 수 있다.

 

이제까지 익숙하게 보아왔던 한 존재의 증거품들을 하나 하나씩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과정들이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과정이다.

 

일반인들의 죽음은 짧은 통과의례를 거쳐서 각자 갈곳으로 다시 분배된다.

 

죽기전 병원에서의 마지막 운명의 순간과 장례식장에서의 익숙한 풍경들

 

그리고  화장터에서의 짧은 화장(火葬)을 거치고 유족들의 손에 넘겨진다.

 

 

죽음을 맞이하고 해석하는 방식도 세속과 불가의 전통이 다르고 그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 또한 많이 다르리라. 그렇지만 왠지 책을 다 읽고나니까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건하게

 

진행되는 산속의 다비식 풍경은 분명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가르침과 생각을

 

하게 한다. 충북 음성 미타사의 비구니 명인 큰스님의 다비장은 사진이지만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전해준다. 연화대를 지키는 개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나의 마지막을 지켜줄 개가 있을까하는 생각과 의문이 든다.

 

 

 

아무도 알리지 않았는데 자신을 길러주었던 은혜를 알고 먼 길을 달려와서

 

연화대를 충직하고 경건하게 지키는 모습의 사진은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그 어떤 숭고한 가르침을 전해 받는다. 말을 하지 못해도 아니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실된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굳건하게

 

그 결심을 이어갈 수 있는 모습은 몇 권의 책으로도 얻을 수 없는 고결한

 

의식을 느끼게 한다. 말이 없어도 사람은 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다 표현하고 이룰 수 있다. 불가에서 수행시에 주로 행해지고 있는

 

'묵언'이라는 말은 그러한 의미에서 상당히 깊이있는 수행법이다.

 

 

결국 진실은 삼라만상에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그에 따른 보답을

 

받는 것이 이치가 아닐까? 짧게는 다비식에서 그 결과에 대한 증거들을

 

자연과 사람과 세상의 현상들에서 가늠하고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열일곱 분의 선사들의 다비식이 행해지는 과정을

 

가만히 책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어서 다른 세계의 한 단면을 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집필하고 사진을 찍은 임윤수씨가 말하듯이 제대로

 

된 다비식을 온전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하게 준비하고 대비하여

 

선사들에 대한 예의와 경건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

 

한다. 작가의 뼈있는 지적들이 무척 마음 깊이 다가오는 책이었다.

 

 



s*******t 2009.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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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분 선사들의 마지막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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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가 불교신자여서 어렸을 때부터 사찰에 가서 절을 하거나 스님 뵙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다 차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바로 성철스님의 열반이었다. 성철스님 생전에 친견하거나 법문을 듣지도 못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본 다비식, 성철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인 불자들과 수많은 만장, 불이 붙은 연화
"열일곱 분 선사들의 마지막 법문" 내용보기
 

친정엄마가 불교신자여서 어렸을 때부터 사찰에 가서 절을 하거나 스님 뵙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다 차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바로 성철스님의 열반이었다. 성철스님 생전에 친견하거나 법문을 듣지도 못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본 다비식, 성철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인 불자들과 수많은 만장, 불이 붙은 연화대에서 나온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어우러진 장엄한 풍경은 큰 감동을  불러왔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스님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됐다. 경봉스님 다비식 때 연화대에 불을 붙이고 얼마후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연화대 주변만은 비가 쏟아지지 않았다고...참으로 기이한 일이지만 왠지 당시의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듯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땐 상좌스님을 모신 이의 시봉이야기를 묶은 책인가 했다. 그러다 책을 받아 표지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제 8대 종정이셨던 봉암사의 서암 큰스님을 비롯해 백양사의 서옹 큰스님, 통도사 월하 큰스님 등 최근 5년간 한국 불교계에 큰 획을 그은 스님들의 다비식을 다녀온 저자의 취재기다. 스님 한 분 한 분마다의 다비식이 어떻게 이뤄졌고 추모하는 이들의 모습이나 풍경이 어떠했는지를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묶은 것이다.


연화대에 오른 열일곱 분의 선사들. 그 분들의 다비식 풍경은 저마다 달랐다. 열반하신 스님들을 모시는 연화대의 재료에서부터 생김새가 달랐고 상여도 아무런 꾸밈이 없는 알관 상여가 있는가하면 생화로 화려하게 장식한 꽃상여도 있었다. 또 다비를 하게 될 연화대를 꾸미는 방식이나 연화대에 불을 붙이는 원료까지 모두 달.랐.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열일곱 분의 스님들 모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돌아가셨다는 것뿐....


책에 담겨있는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은 모두 감동적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습골한 유골조차 으깬 보리밥에 비벼서 물에 뿌리라는 가르침을 남기신 혜산 큰스님의 다비식에 개 한 마리가 나타나 꼼짝않고 연화대를 지키고 있었고 명안 큰스님의 다비식에서 백발의 노보살님이 굽은 허리로 바닥에 엎드려 우는 모습에선 왠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거화(炬火)”.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일깨우신 열일곱 분의 스님들. 그 분들은 열반하시어 연화대에 오르시는 순간에도 말씀을 멈추지 않으셨다. 불이 붙은 연화대가 연기로 변해 조금씩 사그러드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법문이 아니었을까.


‘올 때도 한 물건은 온 일이 없고, 갈 때도 이 한 물건은 갈 일이 없다.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르름이다’ -242쪽.


h*******8 2009.08.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