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내용보기
사라진 신성(神性)을 향한 과도한 욕망-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멜로드라마가 자본주의의 도래와 맞물린 예술양식이라는 점은, 이제 정설로 굳어진 듯싶다. ‘탈주술화’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근대성의 역학은, 주술화된 세계의 신성성을 개인주의적 주체성으로 뒤바꿔버림으로써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피터 브룩스는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내용보기

사라진 신성(神性)을 향한 과도한 욕망

-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멜로드라마가 자본주의의 도래와 맞물린 예술양식이라는 점은, 이제 정설로 굳어진 듯싶다. ‘탈주술화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근대성의 역학은, 주술화된 세계의 신성성을 개인주의적 주체성으로 뒤바꿔버림으로써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피터 브룩스는 멜로드라마가 신성한 것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서 발생하며, “재신성화(resacrilization)의 충동,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 이외에는 신성화를 생각할 수 없는 현실 모두를 재현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변용되어 드러나는 재신성화의 욕망은 멜로드라마의 서사구조에 과장된 형태로 반영된다. 사악한 힘에 반복적으로 유린당하는 주인공의 고통스런 상황을 보며 관객들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격분을 느끼고, 그것은 사악한 세력을 향한 도덕적 분노로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도덕적) 영웅의 고난이 과장(과잉)되게 표현될수록 관객의 파토스는 깊어지고, 멜로드라마의 재신성화 충동 역시 극적으로 깊어지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신성성이 사라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멜로드라마는 사라진 신성(神性)을 향한 열망을 과도하게표현함으로써 대중들의 숭고한 감정을 유발한다. ‘대중적 숭고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대중 스스로 멜로드라마의 상징화 과정을 수행하는 역설을 동반한다. 타락하고 부패한 귀족들을 악마화함으로써 정치 이데올로기적 권력의 혁명을 반영한 19세기 초의 멜로드라마처럼, 근래의 멜로드라마 역시 타락한 권력자와 싸우는 영웅의 활약상을 로맨스의 서사양식으로 그려낸다.

 

한 시대의 영웅들이 벌이는 저항과 사랑(로맨스)의 서사는 근대적 개인주의의 담론과 연결되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영웅들이 시련에 빠지면 빠질수록, 자본주의라는 추악한 제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은 뜨겁게 반응한다. 자신들을 얽매는 실존적 조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련에 빠진 영웅들이 권력자를 향해 정의의 칼날을 뽑아 들 때, 그들의 실존적 상황과 동일시되어 있던 대중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권력에 대한 저항의 서사와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사랑의 서사는 이 지점에서 맞물린다. 한 개인의 영웅적인 행동은 권력에 저항하는 지점을 산출하고, 동시에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형상을 불러낸다. 영웅들은 영웅이기 때문에 권력에 저항해야 하고, 그 대가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아야 한다.

 

탈주술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욕망이 멜로드라마의 재신성화전략과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권력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향한 대중들의 환상(희망)은 온갖 영웅들의 형상을 통해 지금 이곳으로 되돌아온다. 타락한 세상을 인정하고 살아가되, 희망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영웅서사를 기반으로 온갖 멜로드라마의 서사구조를 규정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모더니티의 산물인 멜로드라마는 지금 이곳의 대중들의 환상과 연결됨으로써 현대의 대표적인 극 양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초기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대변한 멜로드라마는 이제 한층 발전된 텔레비전 기술을 매개로 하여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조건을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은 대중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으로 멜로드라마를 이용한다. 그들은 폭력에 대한 불안을 폭력(의 이미지)으로 해소하고, 존재에 대한 불안을 존재(의 이미지)로 해소한다.

 

과거의 영웅들이 지금 이곳에서 되살아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웅은 대중들의 실존적 불안을 뛰어난 무술능력으로 잠재워야 하고, 순수함을 향한 대중들의 갈망을 한 여인에 대한 지순한 사랑으로 채워줘야 한다. 멜로드라마는 이렇게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정서를 영웅으로 전이하고, 질서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정서를 ‘(낭만적) 사랑으로 채색한다.

 

대부분의 영웅 서사에 나타나는 사랑담론은 낭만적 사랑의 미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8세기 후반의 자본주의적 상황과 가족제도의 변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낭만적 사랑의 담론에는 모성의 발명(invention of motherhood)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노동자가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했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노동자의 상황은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과 맞물려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의 변화를 이끌었다.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으면, 가정에서 일하며 노동자의 재생산을 돕는 사람(여성)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개인들의 자율적인 사랑의 결과로 가정이 만들어지고, 그 가정을 통해 모성이 발견되는 과정은 이렇듯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맞물려서 진행되었다. 멜로드라마는 이러한 낭만적 사랑의 개념을 유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재생산 담론을 문화적으로 상징화한다. 맺어질 듯 맺어지지 못하는 극적 긴장감 속에서 서서히 무르익는 낭만적 사랑의 상황은 존재의 불안을 운명으로 감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o*****s 2018.01.1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