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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의 COVID-19 판데믹 상황으로 인해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거겠지. 플라시보와 이중맹검 실험이란 것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본 조건에서의 취약함을 시작으로, 가짜 의료인의 능력과 가치, 한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쉬우면서 흡입력 있게 읽혔다. 폴링의 비타민C에 대한 애정 해프닝, 편도선수술, 심폐소생술, 만성피로 증후군.... 이런 세부 증상 및 치료법들의 역사로부터 드러나는 그다지 '확실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기준'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에이즈 활동가와 백신거부 운동에 대한 간결하지만 밀도있는 서술로 부터 의료라는 분야가 가지는 수많은 복잡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공을 위한 과학과 개인치료/구원이라는 두개의 무게중심 사이에서 의학이라는 것이 취하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대체의학이라는 것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슬쩍 던져준다.(한의학이라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역자들은 조금 더 내세우고) 과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서, 과학은 합의의 결과다라는 이야기를 버릇처럼 하고 있는데, 저자의 입장을 거칠게 정리해서 물리과학보다 객관적일 수 없는(스타트랙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의학에서는 그 합의의 경과가 아무래도 덜 객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좀 더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하고 합의에 도달해 있는 것이 현재의 합의된 의료체계/전문가 체계인 것이라고 하겠다. 비교적 좁은 범위라 하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기상-기후 분야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종사자들은 자존심을 가지고, 또는 무언가 보호해야 한다는 내부적 압박에 의해서 과학지식에 근거한 예측와 판단, 그리고 정책지원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효과는 늘 기대 이하일 수 밖에 없는 무수히 많은 불확실한 변수 속에서의 활동과 담론들이니까 말이다. 기후변화-온난화의 경우, 난 여전히 30여년 전 대학에서 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가졌던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어떻게 변할지 확실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온실기체의 배출이 변화를 일으키는 경향에 대해서는 '확실하다'라고 믿을만 한 것이니, 이 강제력을 줄이려는 활동이 필요한 것은 확실한거 아니냐...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떠한 맥락에서는 그 활동의 비용과 그로 인한 효과, 혹은 그 활동이 없을때 절약할 수 있는 비용과 그로 인한 피해 가능 규모를 현실적인 비교해보려는 상황에 다가가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재난이 아닌 일상, 레저, 산업분야 등에 적용되는 이 불확실한 과학기술 기반의 예측정보 서비스의 가치에 대해서도 그렇고 말이다. 책이 다루는 의료를 생각해보면, 5-60% 수준에서 급격히 증가세가 둔화되어 있는 선진국의 COVID-19 백신 접종률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무작정 맞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축적되어 있는 기억과 개인의 이익에 대한 판단기준의 습성이 이런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겠다. 관심이 많고 걱정이 많으면 사람들은 매우 상세한 상황에 대한 판단들을 전문가에게 요구하지만(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에 따른 무한한 갈래의 경우가 될 지라도), 전문가들은 속된말로 퉁쳐서 내려지는 합의의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이 실용적이고 공리적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런 주장이 법적 물리적 구속력을 상대적으로 덜 갖게 되면, 개개인은 경험적으로 가지는 다양한 예외적 상황에서 일어났던 이익과 피해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의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 판단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큰 사회에서 백신에 대한 대중적인 프로퍼간다의 효과가 포화되는 정도가 강한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생화학적 지식, 그리고 통계적인 가공, 그리고 최근의 AI 기술들을 집합해봤자 여전히 무한대에 가까운 수요의 갈래(혹은 자유도?)를 충족시키는 맞춤형 컨설팅이 불가능한 것이 현대 의학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한의학이 4상의학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어차피 무한대이지만 이러한 자유도를 1/4로 낮추고 시작한다는 장점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한의사인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지금보다 월등한 수준의 생화학적, 분자생물학적 지식수준에 도달해 각종 질병의 발생-전이-소멸의 과정이 세포, 세포소기관, 분자수준에서 규명이 된다면, 그때 한의학은 어찌될까? 라는 질문을 해 본적이 있었다. 이 전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형태의 한의학은 그 효과성의 메커니즘도 이 수준에서 규명될 것이기에 자연 소멸할 것이다라는 결론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은 아직까지도 긍정적이진 않다. 저자들이 말하는 스타트랙의 시대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스타트랙의 시그니쳐 기술인 텔레포트가 가능하다면, 이런게 가능할 거다... 원자수준의 모든 메모리를 전산화-원격송신-재조합하게 될테니) 의료의 분야에 따라 차이는 많을 수 밖에 없겠지만, 결국은 불완전한 의료전문가들에 대한 신뢰의 수준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현실이지 않은가 싶다. 책을 읽다 생각한 성형외과, 피부과, 비만클리닉 같은 소위 유행하는 분야는 저자들이 언급한 19세기 미용업 서비스 수준의 전문가-소비자의 관계일 것이다.(선택과 판단을 소비자가 하고) 하지만 스타트랙 수준의 발전이 요원한 상황에서, 자동차 정비소 수준의 전문가 의존성의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분야는 외과수술 중심 혹은 다수의 전염병에 대한 대응 정도가 아닐까 싶고, 나머지는 어학강의 서비스와 같은 영역에 남아있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평가는 전문가가 하지만, 그 실제에 대해선 여전히 의구심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덧붙여서 기상예측도 이와 별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한 사회가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고민을 축적해 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역자들이 말하듯이 한국사회는(이 책이 번역된지도 오래되긴 했지만...09년 번역, 전자책은 20년) 이런 부분이 취약하니까 말이다. COVID 이야기도 기후변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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