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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채 흐른다.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며칠 전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사상 유례 없는 글로벌 경제 침체를 두고,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냥 세상 흘러가는 대로 관심 없이 본다면, 리먼 브러더스 파산 때처럼 경제 위기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번 위기는 확실히 개념 자체가 다른 듯 하다. 지금의 위기는 40년 가량 이어졌던 신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 체재가 글로벌 위기를 계기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시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해왔던 신 자유주의를 따른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도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에 동반 승차하면서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경제학자들도 김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를 하는 눈치이다. 이제 앞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떤 식으로 열릴 것이며, 주도권을 쥐는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 라는 것이다. 과연 미국일까? 중국일까?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문제로 떠오르고 해결하지 않으면, 발목을 부러뜨릴지도 모르는 가계부채와 경제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저 출산, 고령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의 극복과 동시에 패권을 쥐는 나라는 어디가 될 것이며? 과연 우리 나라도 어느 나라의 라인(Line)을 탈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듯하다.
패러다임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어떤 계기를 통하여,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위에 내용처럼 역사의 패러다임 속에서 개인의 패러다임도 따라 움직일 때도 있다. 국가간의 다툼이 절정에 이르렀던 12세기에, 정복의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던 칭키스 칸을 기억하는가? 가장 잔인했던 정복자로 기억되는 칭키스 칸이지만, 그는 정복이라는 개념을 넘어 땅의 가치, 즉 땅의 개념 자체를 바꿔버렸다. 그 시대에는 남의 땅을 정복해서 자신의 땅을 넓히고, 지배하는 자가 최고였다. 그러나 칭키스 칸은 정복의 개념에서 끝내지 않고, 통치가 가능한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드넓은 땅을 통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키스 칸의 업적은 역사의 한 축을 바꿀 만큼 실로 대단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대원제국의 창업자 역할을 했던 칭키스 칸을 더 많이 기억하다. 필자 역시 그랬다. 그러나 실제로 대원제국의 정점은 몽골의 5대 칸 '쿠빌라이'가 찍었다는 것을 이번에 읽은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칭키스 칸이 완성시키지 못한 통치의 개념을 자신의 방식으로 완성시킨 것도 쿠빌라이 칸이었다. 쿠빌라이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칭키스 칸의 손자였지만, 칸이 될 수 있는 자격은 한 없이 부족했다. 유모의 손에 키워졌으며, 칸의 위치에는 갈 수 없는 환경으로 둘러 쌓여져 있었다. 사촌들과의 칸 자리를 두고 펼친 암투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낮았으며, 기마병을 이용한 속전속결 전략의 대원제국 장군 답지 못하게 질병 때문에 말을 탈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쿠빌라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환경을 뛰어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결국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던 쿠빌라이는 선택의 기로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초원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정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할아버지 칭키스 칸을 뛰어 넘는다. 쿠빌라이 칸은 초원을 넘어, 바다의 영역으로 정복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일발적인 통치에서 소통을 통한 관리와 운영, 즉 경영의 시대로 만들게 된 것이다.
살아있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의 삶에서는 끝임 없는 결단의 순간이 온다.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며, 선택한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단체의 수장에게만 놓이는 문제는 아니다.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인간 모두에게 오는 숙명과도 같다.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쿠빌라이 칸 역시 고비 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나 쿠빌라이는 달랐다. 절대적인 타이밍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다. 칭키스 칸의 자긍심이자 최고의 장점이었던 속도(Speed)와 정복에만 집중했던 여러 칸들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말이다. 칸을 놓고 펼쳤던 전쟁과 선택의 기로 마다 승리했던 쿠빌라이는 드디어 대원제국의 꿈을 꿀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고,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듯 말이다. 더불어 쿠빌라이는 느림의 경영을 넘어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칭키스 칸 때의 정복의 대상은 정복의 대상 그 자체에 불과했다. 정복의 대상들은 정복해야만 했다. 실로 무차별적인 정복이었다. 칭키스 칸의 기마부대가 지나간 곳은 해골이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강한 통치는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실패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것을 간파한 쿠빌라이는 과감히 할아버지의 통치를 버리고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신들과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정복한 나라를 포용하였다. 중국인과 아랍인, 티베트인에게까지 허리를 굽혀 타협하고, 소통했다. 그리고 대원제국의 힘이자, 자존심이었던 기마를 이용 할 수 없는 쿠빌라이는 적들의 손가락질을 무시한 채 죽기 전까지 코끼리를 타고 직접 전쟁에 참여하며, 현장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2009년도다. 출간 당시에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많은 이들에게 필독을 권했던 책이었다. 몇 년이 지나버린 지금 이 시점에 왜 이 책을 다시 주목해야 할까? 다시 한번 결단의 시기가 다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와 12월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그 분수령이 될 듯 하다. 그렇다면,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있는 지금의 리더십은 어떤가?
크게 보면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님의 리더십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확정적인 점수를 내기가 어려울 듯싶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는 괜찮은 점수를 받을 듯 싶다. 글로벌 포용력은 꽤 괜찮았다. 전 대통령들이 이루지 못한 외교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외교를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보여진다. G20도 그렇고, FTA도 잘 한 것 같다. 경제 방어율도 글로벌 경제 위기치곤 제법 선방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대북정책 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북 정책의 미래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4대강도 결국은 후대에 큰 덕을 볼 듯 하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될 일이었는데, 경제가 어려워져서 빛이 바랜것 같다.
허나 끊임 없이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했던 소통의 리더십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 가계부채는 좀 더 빨리 손을 댔어야 했다. 방만한 운영을 하는 공기업들은 빨리 수술대에 올렸어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 라디오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용기를 복 돋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뛰었어야 했다. 물론 국민들이 귀를 양손으로 막은 채 로또나, 카지노, 경마 같은 한방에 열을 올리고, 은행 대출을 자판기 커피 값 빌리듯 빌린 잘못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필요하다. 왜 그들이 한방에 열을 올리고, 은행 대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물론, 오천만의 입맛을 다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힌트를 찾을 필요는 있다. 아덴만 작전의 승리를 이끌었을 때, 통수권자라고 멋지게 나서는 것이 아니라, 처음 부터 발목 잡혀 가는 BBK 문제도,민들의 의심에서 벗어나 당당히 나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막바지다. 최후까지 코끼리를 타고 현장을 누볐던 쿠빌라이 칸처럼 대한민국 민생 현장 곳곳을 누벼주길 바란다. 생색내기, 왕의 행차가 아닌, 정말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는 교육의 현장과 산업의 현장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로 세계의 소비 심리가 위축 되면서 수출 위주의 대한민국 에게는 매우 좋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 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진 가계부채는 한번은 대한민국을 걸고 넘어질 큰 바위같이 기다리고 있다. 좌초될지도 모를 큰 바위다. 여러 문제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 대한민국에 결단의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다. 이 위기를 벗어나도 언제 다시 더 큰 재앙과 위기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럴 때 일수록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패러다임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 보다 결단력 있는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올해는 더욱 특별하다. 포용의 리더십과 소통의 리더십도 필수가 되었다. 포용의 리더십과 소통의 리더십, 현장에서 직접 뛸 줄 아는 리더를 찾는가?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 이 책에서 그 힌트를 찾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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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이 중원 즉 중국을 지배하고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게 된 원동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은 유목민 정신을 주창하며 그들의 영토 확장과 중국의 지배력을 가지게 된 바탕의 정신을 경영에 접목시키려는 노력도 어렴 풋하게 진행 되는 것 같습니다. 징기스칸에 대한 연구에 이어서 이번에는 쿠빌라이 칸 즉 그의 손자이면서 몽고제국의 5대 황재가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저에게 왔습니다. 머릿말에 결단의 리더라는 단어을 앞세우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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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칭기즈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에 불세출의 영웅이었던 칭기즈칸과 같은 조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영향력과 그 꼬리표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막내로 태어나서 자신이 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쿠빌라이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은 아버지에 의해서 아버지가 살해되었던 상황, 작은 아버지는 쿠빌라이의 아버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과연 그것을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그 이후에 어머니가 완전히 무장 해제되는 것을 경험했다. 작은 아버지는 자기 아들과 재혼을 시키려고 했지만, 쿠빌라이의 어머니는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분명한 자기의사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쿠빌라이가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강하게 성장하는 법과 결단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형으로부터 당했던 수많은 일들이 오히려 쿠빌라이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외에도 쿠빌라이에게 강점이 있다면, 싸워서 제압해야 할 대상과 싸우지 않고 회유해야 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쿠빌라이는 싸워야 할 대상과는 무섭게 싸워서 반드시 정복하고, 자기 동족과는 일정수준 이하로만 싸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말 위에서는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는 부하의 말을 정확하게 들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려는 노력은 리더로써 분명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볼 수 있다. 리더로써 결단의 순간에, 그리고 자기 민족 전체의 정체성을 놓고 그렇게 정확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또한 남송을 정벌할 때, 남송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송에 대한 회유책을 벌이고, 남송을 완전히 두손들게 만든 정책은 지금의 기업들이 배워야 할 가치있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먼저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세계에서 유일한, 동서양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태까지는 이 모든 제국이 그저 칭기즈칸에 의해서 정벌되고 형성되었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도 재확인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에서 무엇이 중요할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더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책이 또 한가지 좋은 지름길을 가르쳐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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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리더 쿠빌라이칸'
쿠빌라이칸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책은 크게 세가지 중요한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첫째로 쿠빌라이칸은 통합의 리더십을 추구한 인물이다.
두번째로 끊임없는 창조적 정신이다.
세번째는 자세를 낮추는 CEO가 진정한 CEO임을 쿠빌라이칸은 보여준다.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칸'을 통해서 진정한 CEO가 가져야 하는 덕목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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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 김 종래 지음 「잘라 결정하거나 단정을 내림. 또는 결정이나 단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결단’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이 ‘결단’이다. 무엇보다 위에 선 사람들 일수록 빠르고 정확한 결단이 필요하다. 윗사람의 결단으로 인해 아랫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소망을 갖고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된 책. 이 책을 읽어가면 갈 수 록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정말 빠르면서도 정확한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징기스칸의 손자로 할아버지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똑같은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정반대의 삶을 살아갔던 쿠빌라이. 그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초원과 말의 시대를 과감하게 마감하고, 바다와 배의 시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할아버지 징기스칸이 열었던 정복과 약탈과 정치의 시대를 단호하게 끝내고, 통치와 통합과 경영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말 위에서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수는 없다고 여겼던 쿠빌라이, 그래서 빠름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함께 조율하였던 인물. 빠른 자를 이기는 것은 느린 자다, 느린 자를 이기는 것은 더 느린 자다, 느릴 줄 알아야 빠를 줄도 안다고 여겼던 사람. 무엇보다 넓고도 큰 땅을 정복하고 그것을 통치함에 있어 억압과 강요가 아닌 관용과 포용함을 통한 평안한 통치를 이룬 쿠빌라이. 이러한 통치의 모습은 빠름을 강조하던 할아버지의 정복을 위한 삶의 정반대적인 느림과 함께 그들을 등용하여 활용할 줄 아는 상생의 정치의 모습이었다. 현재 몽골대통령의 고문으로 한국에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김 종래는 이 책을 통해 현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한 인품의 사람, 어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피력하고 있는 듯하였다. 어렵고 힘든 역경의 삶을 통해 큰 나라를 칼로 인한 피바람의 정치가 아닌 협상과 평화, 그리고 약자들을 아우르는 돌봄의 정치를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인물로 성장하여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자신의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어려움을 겪게 하였던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보복을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쿠빌라이는 그들을 향한 보복의정치가 아닌 그들을 포용하고 필요에 따라 일군으로 등용하여 곁에 두고 함께 일하였던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었다. 결단은, 무조건 빠른 것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변함없이 꾸준한, 그리고 먼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참고 기다릴 줄도 아는 것이 참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굴욕을 택하기까지 하며 스스로 택한 굴욕은 굴욕이 아니라고 여겼던 쿠빌라이. 이러한 쿠빌라이의 모습을 통해 먼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앞만을 바라보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과 함께 겸손히 낮아짐의 모습을 싫어하는 현 시대의 정치인들을 떠 올려보았다.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의 소유자는 단호하고 변함이 없는 결단을 할 수 있다. 그 미래를 바라 볼 줄 아는 혜안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고 힘들다. 다양한 인물을 포용하고, 그들의 지혜와 명철함을 인정하여 그들을 등용하고 그들과 함께 정치를 할 때 미래를 바라 볼 줄 아는 혜안이 생겨질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 진정한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과 명철한 자를 가려낼 줄 아는 자신만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몽골의 제 5대 칸이었던 쿠빌라이칸은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쿠빌라이. 사람들의 삶은 늘 형통한 것이 아니라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형통한 날이 있으면 곤고한 날이 있기 마련이며,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도 성공의 기회로 삼을 줄 안다. 그것은 자신이 설정한 나름대로의 잣대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포용할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징기스칸의 손자로 사상 첫 세계제국을 만들었던 몽골 제국의 제5대 칸 쿠빌라이, 이 책을 통해 무조건 빠른 것만을 좋아하는 현 시대에 느림의 미학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단은 단호하고 빠르게, 그러나 그 결단을 실천함에는 느림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아니하고 소외되지 아니하도록 포용하고 아우르는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나는 빠르고 단호한 결단과 함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기다림과 느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리더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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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을 읽고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온 쿠빌라이 칸에 대한 설명은 너무 간단하다. 나라 이름을 ‘원’으로 하고, 남송을 정벌하고 등으로 요점만 겨우 몇 줄 언급하고 만다. 우리는 교사이지만 솔직히 교과서 내용을 벗어나기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 이외의 것을 준비하려면 별도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수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읽게 된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책은 내 자신 많은 것을 느끼면서 배운 독서 시간이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직접 현장에 찾아가서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 최고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바로 이와 같이 책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느끼는 것도 그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할 때 앞으로 독서 시간을 더욱 더 늘려 나가는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중국의 역사를 공부할 때에 중국의 역사는 결국 북방 유목 민족들과 중국의 원래 종족인 한족의 투쟁의 역사라고 하였다. 한 때는 흉노,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들의 북방 유목 민족들이, 또 사이사이에는 전통의 한족들이 차지함으로써 치열한 다툼을 벌인 것이다.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국가는 바로 몽골족이 세운 몽골제국인 것이다. 몽골 고원에서 여러 부족들로 이루어진 것을 처음으로 통일한 사람인 테무진이 바로 칭키즈 칸이 되었고, 이어서 동에서 서쪽으로 서남아시아를 거쳐서 동유럽까지 이르는 사상 최대의 대 제국을 형성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제국이 너무 넓어서 4한국으로 나누어 다스리기도 하였고, 또는 정치적 대립과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잰 등으로 결국 그 넓던 원제국도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인 칭기스칸과는 완전 다른 방법으로 몽골족의 기상과 진정한 결단과 함께 많은 교훈을 남겨 준 쿠빌라인 칸의 결단의 리더십은 우리가 얼마든지 배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 위에서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수는 없다.’고 한 쿠빌라이 칸은 칭키즈칸이 취했던 각 종 정책들을 과감히 버리거나 전환시킴으로써 많은 위기도 자초하지만 스스로 그 길만이 할아버지의 창업정신을 되살리고, 원제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힘들게 생활하면서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대우를 받기도 하였지만 이를 꾹 깨물고 참아내면서 다가 올 미래를 예상하고 활동하는 그 결단력은 정말 무서우면서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이라 생각하였다. 드디어 남송을 정복하면서 전체 중국을 다스리면서 초목과 말의 유목 시대를 과감히 청산해버리고, 바다와 배의 중국 대륙을 요람으로 하는 통치와 통합과 경영의 시대를 개척한 진정한 영웅 쿠빌라이 칸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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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서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쿠빌라이 칸의 재상이 한 말이다. 그의 말은 쿠빌라이 칸이 대칸이 되던 때 몽골제국의 과제이기도 했다. 제국을 창업한 칭기스칸의 사후 몽골제국은 칭기스칸의 그림자에 갇혀 정체되어 무너져 가고 잇었다. 칭기스칸이 만든 제국을 물려받은 그의 후손들(황금씨족)은 칭기스칸의 흉내를 내며 거기서 한치도 벋어나지 않았고 형제와 사촌들이 칭기스칸이 물려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을 반복할 뿐이었다. 후계자들은 칭기스칸이 하던대로 흉내만 낼 뿐이고 물려받은 것에 만족할 뿐 물려받은 것을 어떻게 더 다듬을 것인가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책의 저자는 쿠빌라이 칸이 문제삼은 것은 바로 그런 정체상태였다고 말한다. 쿠빌라이 칸은 이대로 가면 몽골제국은 다른 유목제국들이 그러했듯이 안으로부터 썩어 무너질 것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쿠빌라이 칸은 제국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칭기스칸의 흉내에서 벗어나 칭기스칸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칭기스칸의 정신을 저자는 유목정신이라 말한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유목제국의 약탈경제에서 벗어나 제국을 경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러면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시스템은 어떠해야 하는가? 쿠빌라이 칸의 답은 대원제국의 건국으로 나타난다. 몽골초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칭기스칸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정권을 잡은 쿠빌라이 칸은 제국의 중심을 황량한 몽골초원에서 제국의 물류기지인 중국으로 옮기고 중국의 제국과 같은 행정시스템을 채택한다. 쿠빌라이 칸은 몽골인의 군사력만으로는 제국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을 제국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는 중국인들을 등용해 행정력을 얻어 제국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제국의 뼈가 군사력이라면 행정력은 살이다. 그러나 뼈와 살만으로 제국이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색목인들(중앙아시아인, 이슬람인, 유럽인)을 활용해 상업 네트웍을 제국전역에 조직해 제국에 피가 돌게 했다. 쿠빌라이 칸이 세운 대원제국의 시스템은 군사력과 행정력, 상업력 3가지가 합쳐진 다원성을 가진 말그대로 세계제국이 되었고 아시아인이 만든 최초이자 최후의 세계제국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상이 이책의 요점을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대원제국은 최초의 세계제국이었고 그 세계제국은 지구 최초의 세계화 위에 번영했다. 근래 몽골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세계화의 시대에 지구 최초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책의 저자는 쿠빌라이 칸이 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제국을 만들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책의 전반부를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그가 기획한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이책은 그리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다. 전문학자도 아닌 저자가 대원제국에 대해 깊이 있는 책을 쓰기는 힘들다. 당시 몽골제국의 진면목을 알려면 전문학자가 쓴 두꺼운 책을 보는 것이 낳다. 그러나 그런 책을 보기 전 쿠빌라이 칸과 대원제국에 대한 맛보기로서 가볍게 대략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책의 가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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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일수록 결단이 빨라야한다. 멈칫하는 순간 돌파구는 멀어지고 그만큼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추종자들과 리더를 둔 조직의 경우, 리더는 신속한 판단력과 발 빠른 결단으로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결단은 누구나 주저하는 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멸에 빠지기도 하고, 공멸은 아니더라도 뼈아픈 실책의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자가 물러나야 하는 일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 위험을 감내하는 리더야말로 추종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위기의 시대에 특히 그런 리더의 탄생을 고대하는데, 그것은 과거와 달리 리더와 추종자 사이의 정보의 습득차가 별로 나지 않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과거와 같이 리더가 중요정보를 먼저 알고 그것을 추종자들에게 알려준 후 리더가 방향제시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리더와 거의 같은 시기에 정보를 취득한 추종자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가능한 의사결정의 수를 마련한다. 그리고 리더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지켜본다. ‘온당한 리더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잠정적인 답안도 가지고 있다. 이런 때 리더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까? 우선 과감해야한다. 어떤 결정이든 위험은 따르기 마련이다. 쉽게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 추종자들의 눈이 리더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리더가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주면...? 추종자의 리더에 대한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쉽다. 리더에게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결정이든 함께 하겠다는 의사표시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준의 응답이라면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신뢰가 더욱 높아지고 조직의 결속력 또한 크게 신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CEO 칭기스칸〉으로 유명세를 탄 김종래의 서적 제목과 같이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이 그런 리더다. 칭기스칸이 이루지 못한 원대한 제국의 꿈을 현실화한 인물, 정치력과 국제 감각을 두루 갖춘 경영자, 동양에서 최초로 발원한 세계제국의 창시자 등 그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많다. 하지만 저자가 관찰한 쿠빌라이 칸은 그런 ‘간판’을 뛰어넘는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결과론적인 타이틀이다. 그런 타이틀을 얻기까지 그가 고투한 정신을 촘촘히 추적하는 데 목적을 둔 저자가 이 책을 여느 책과 같이 연대기적으로 풀지 않은 것이 사려 깊다. 연대기적 서술은 일정한 시대적 흐름을 타기 마련이라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저자가 주인공을 통해 조명하려는 핵심사항을 강한 어조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이와 대조적으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버리면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를 주인공의 특정 자질을 빗대 핵심적으로 전달하기가 용이하다. 그와 같은 의도를 담아 저자는 이 책을 총 5개의 장으로 나눴다. 제1장, ‘말 위에서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수는 없다.’, 제2장, ‘꿈을 잃어버린 신바람의 땅’, 제3장, ‘오늘은 어제의 끝이자 내일의 시작이다.’, 제4장, ‘매 초마다 지구 단위로 생각하라.’, 제5장, ‘세계를 뒤흔든 대원제국 쇼크’가 그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대목은 지구 단위로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경제위기를 예로 드는 게 좋겠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순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일은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정보와 자본과 물건의 유통이 매초 단위로 이뤄지는 초고속의 세계 속에서 그것들을 다루는 사람의 선택이 어떠해야하는지는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분초를 다투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금’인 시대가 아니라 ‘매 초가 달러’인 시대인 것이다. 국경 없는 경제의 시대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찻잔 속 태풍과 같은 일국 단위의 위기와 해법은 의미 없게 되었다. 선택을 했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남의 나라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징후를 우린 지난 경제 위기에서 여실히 보았다. 이제 지역단위, 또는 국가 단위의 사고로는 어림없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그런 시대의 선구를 저자가 쿠빌라이 칸에게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게 쿠빌라이 칸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리더였다. 십수 년 전 아이엠에프 위기를 맞아 황망한 세월을 보내던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는 목적에 〈CEO 칭기스칸〉을 집필했다는 저자가 오늘 또 다시 몽골의 후예를 거론하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가 리더의 부재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가 어떤 리더를 요구하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물론 자질 있는 한 사람의 리더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영웅주의 사관의 영향으로 시대를 바꾸는 영웅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리더가 추종자들과 연합할 때 나타나는 강력한 효과가 근원적인 힘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리더의 모습을 쿠빌라이 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렵고 힘겨운 시대다. 대륙을 호령한 리더를 읽고 웅혼한 기운을 북돋을 일이다. 깊은 산이라고 길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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