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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은행 그라민은행, 한번 들어보셨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의 서민들을 위한 은행이며, 여성들의 은행입니다. 이 은행을 통해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신용대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도 수상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행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항상 끊임없이 변해나간다. 그 속의 새로운 제도나 기관들이 출현합니다. 우리는 분할구매를 통한 사회의 급진적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소액신용대출은 단어의 의미보다는 엄청나게 사회에 기여를 한다. 이 그라민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대출을 시작하여 전세계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라민은행의 고객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라민은행을 만났고, 어떻게 좀 더 삶이 나아졌는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과 그라민은행이 미친 영향 등을 미국인 기자가 현지를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관찰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방물장수 오이리시, 그녀가 어떻게 그라민은행을 만났고, 만난 이후 어떤 모습이 달라졌는지? 일단 서로 잘 아는 마을사람들끼리 5명씩 모임을 조직하고, 모임기금과 비상기금 등을 적립한다. 모임은 대출금 환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모임, 자율감독기구, 공동책임으로 이루어진다. 분명이 이 모임이 이익이 되기에 모임 가입문제(더 가난한 사람, 신용이 낮은 사람)가 발생하나, 센터회의와 훈련, 단합, 용기, 근면 등 그라민은행의 구호 16개항 발전방향으로 개선해 나간다. 아마 ‘이제 우리 사회가 여성들을 필요로 하다는 생각의 변화가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그라민은행의 이름은 벵골어 gram(마을)에서 유래하였고, 농촌마을에만 있다. 주로 여성들에게 소액을 단기대출 한다. 이의 설립자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자본가들이 농촌사람들에게 오도록 만들라는 유누스의 말처럼, “우리의 눈을 농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때이다. 사회의식이 있는 자본가기업이 더욱 필요하다.” 설립자 유누스, 그는 미국유학, 히피, 자유를 느끼며 살아오다, 귀국하여 대학교 교수로 경제학을 강의하나, 실생활과 떨어진 이론의 반복에서 회의를 느끼고, 실생활에 뛰어 뜬다. 새 시대의 3자 공유농장은 녹색혁명이 혜택은 부유한 마음사람들에게 갔고, 농장개혁과 농장 최저임금 정책의 실패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또 ‘조브라 땅 없는 사람들 협회’ 다양한 시도를 해나간다. 사회적 담보의 필요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게으름과 어리석음 때문에 끔찍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겪었다는 점과 고리대금업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가졌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 이 실험이 사업이 되어간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은 농촌사람들의 삶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유누스는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 도약을 맞는다. 그라민은행법 통과로 혁신적인 조직과 조직에 물들어 부패하지 않은 젊은 남녀 직원들과 소박한 기풍과 명확한 목적의식, 그리고 겉치레를 완전히 무시하는 자세, 실수는 용납할 수 있지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유누스가 함께 이루어 나간다. 무엇보다 여성을 위한 은행을 강조한다. 또 이 나라의 골칫거리인 이슬람근본주의자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실제 이자를 받지 말라는 이슬람교의 명령은 현실에서는 환상이었다. 그러나 부르카는 그들이 감수해야 할 고난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 딸은 부채로 생각한다. 결혼지참금을 마련해서 시집을 보내야 하기에, 또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짧은 나라이다. 이런 여성들을 위해 그들은 여성들이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직원채용 문제에서 두 개의 매우 다른 세계(사회적, 종교적)에 다리를 걸치고 있어야 하는 불편한 상태에서도 여성직원 비율을 높여 나간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성의 역할(가정, 사회)이 중요하기에 여성이 변하면 사회는 점점 빨리 변해가고, 안정화 되어간다. 일단 가족부터 변하기 시작하면 주변의 여성들에게 확산되어간다. 그러면 마을이 변하고, 나라가 변할 것이다. 세계의 미래는 여성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점점 확대되는 다양한 사업들, 주택대출사업과 농촌주택개량사업 등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투자로, 가난한 여성들에게 집은 작업장, 집은 여성들이 일하는 공장이다. 또 더 건조하고 따뜻한 집이 질병발생률을 줄였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젊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관리할 기회를 주고, 정직하게 일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라민은행도 순탄한 길로만 가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사건들, 특히 사잔푸르 지점의 위기는 대출금 정산과 은행직원의 부패에서 비롯 되었다. 부패에 어떻게 대응한 것인가는 모든 조직이 가진 숙제일 것이다. 또 금융업은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라는 시선을, 따뜻한 것이고 늘 변화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변화시킨다. 구호보다는 이상주의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되 그들이 돈을 갚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공동사업, 양어장 사업, 본사의 분권화, 투명한 운영을 이루어 낸다. 그라민은행의 계속되는 도전. 부의 불균등과 법과 제도의 빈곤, 비공식부문에서의 생산, 대량생산이 아니라 대중들에 의한 생산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출은 무기다. 엄격한 원칙이 없는 대출은 자선에 불과하다. 해외원조는 성장모델-> 균등성장-> 구조조정 모델로, 한해 600억 달러를 쓰는 사업(1980년 말), 투명성문제, 제 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과연 혜택을 주고 있는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붇고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을 왜일까? 개발구호단체들은 지역문화에 거의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누린고 있다. 대부분 그들은 돈 때문에 근무하기에 현장에 어떤 미련도 없다. 그러나 그라민은행 직원들에게 그 ‘현장’이 자신들의 집이요 터전이다. 원조나 구호의 전문가들은 ‘바로 이거예요 절대 잘못되지 않을 겁니다.’라고 하지만 현실과 결과를 보라. 그들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하지만, 유누스 자신도 원조를 받아쓰면서 원칙적으로는 그것을 혹평하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지적도 받는다. 원조를 사회적 의식을 지닌 기업들에 투자하거나, 기술이전, 금융지원사업을 통해 엄청난 빛을 없애야 하지만,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똑같이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조건부 원조는 원조국의 정치, 경제적 요구를 더 반영하고 있는 실상이다. 사실, 원조는 부자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야 할 돈이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에게 이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개선되어야 한다. 자기 조직의 독립성과 방글라데시의 정체성, 분명 그라민은행 위험을 무릅쓰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고, 정치적 중립, 분권화(대규모 조직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 있어야 개인에게 너무 의존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를 이루어 나간다. 노동조합 문제에서 조금 아쉬운 대응이지만, 재해의 극복으로 우리 은행을 싫어했던 사람들조차도 태풍 이후에는 열렬한 지지자가 되게 만들었다. 현재와 미래. 홀로 지속가능 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그라민은행은 은행 이상의 역할을 했다. 합리적인 가격의 보건의료서비스 도입과 소액대출 선진국으로 소액대출 시스템을 여러 나라에 수출한다. 또 자영업과 사라지는 일자리, 교육과 소비중심에서 투자중심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사회적 비용과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공공영역 강화해나가고, 사회적 책임의식을 더 높인다. 새로운 조직형태는 경쟁적인 기업환경 속에서 긴급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조직으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는 자본가 기업일 될 것이라고 본다. “기회는 우리가 보는 곳 어디에나 있어요. 우리는 가난이 없는 세상을 창조할 것 입니다.” 라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남는다. 이런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우리나라에도 ‘신나는 조합’ 등이 소개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작지만, 자립이 가능한 자금을 제공하면 그들의 삶과 더불어 사회도 좀 더 나아질 것 같다. 인도에서 만난 릭샤왈라(릭샤운전수)들에게 자전거 한대나 시골 아낙네에게 염소나 소를 한 마리를 준다면 그들의 삶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과 자신이 노력을 해봐도 달라질 것 없다는 패배감을 가진 것을 다르며, 그들의 자신감에 작은 선물을 얻어 준다면 그들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고, 이 지구라는 곳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점점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이 의지할 은행은 없는 것 같다. 작은 자립의 기반은 돈의 적선보다는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소액신용대출이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 그라민은행에 대한 책이 몇 권 있으나, 이 책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라민은행과 유누스를 바라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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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신간 코너에서 만났을 때부터 책 읽기를 마친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건 바로 '착한 자본주의'라는 여섯 글자다. 사람마다 자본주의를 듣고 떠올리는 생각 혹은 장면이야 제 각각이겠지만 나는 영화 <홀리데이>의 명대사였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늘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모든 것이 돈과 결부되어야만 물 흐르듯이 평화롭게 돌아가는 세상, 돈이 없으면 제 목소리조차 당당히 내지 못하는, 인권은 약에 쓸래야 찾을 수 없는 씁쓸한 세상, 그것이 내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그런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의 조합에 반색하기에 앞서 착한 자본주의라니. 이게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
이 책이 앞서 반문한 착한 자본주의의 산역사인 그라민 은행을 다루고 있어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집약지라고 볼 수 있는 은행은, 정확히 말하면 그라민 은행이 설립되기 이전의 은행은, 한결같이 부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다소 억측이 심하다 싶은가? 그럼 정정하자. 최소한 자신의 돈을 은행에 맡길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을 위한 공간이 은행이었다고. 그 어떤 은행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담보, 무보증의 조건으로 선뜻 돈을 내어주진 않았다. 세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로 손꼽히는 방글라데시의 경제학 교수였던 무함마드 유누스가 1983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 최초의 은행을 설립하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단지 이 이유만으로, 방글라데시의 밑바닥 50퍼센트인 하층민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소원인 이들에게 위와 같은 조건으로 소액신용대출을 해 주었다고 저자는 착한 자본주의의 실현으로 그라민 은행을 제시한 것일까. 상당히 재미있는 건 그라민 은행의 창시자인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 역시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그럼 다시 한 번 묻자. 대체 무엇이 착하다는 건가? 저자가 들려주는 그라민 은행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가 나는 순간순간 여러 번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에게 감동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라민 은행의 회원들을 향한 그들의 투철한 희생정신과 직업정신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그 어떤 은행 직원이 하루에 몇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서 은행 회원들이 빌려간 돈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회원들이 홍수와 태풍에도 밤새 안녕한지를 수시로 점검한단 말이냐. 현장에서 쏟는 수고에 비해서 지지리 박봉인데도 밑바닥 인생들이 자신의 삶을 조금씩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믿고 격려해주는 이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을 안겨주곤 했다. 어디 이뿐이랴.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지 그때그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련 사업을 부지런히 실험하고 확장해 가는 모습, 방글라데시의 가장 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가난한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이들의 권리를 조금씩 향상시켜 주는 모습, 그라민 은행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도 다시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모습 등등 그 모든 궤적을 뒤쫓고 보니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서로 엇갈릴 것만 같고 늘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은 '착한'과 '자본주의'라는 이 두 개념도 충분히 연대와 결합이 가능하구나 라고.
물론 유누스가 강조하고 주장하는 그라민 은행의 기본 테제들이 오늘날의 모든 은행에 적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라민 은행이 철저하게 방글라데시의 농촌 마을을 실험집단으로 삼았기에 이를 보편화해서 적용하기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잔뜩 우려와 회의를 안고 시작했던 그라민 은행의 눈부신 활약상과는 별개로 각 나라마다 다양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기존의 은행 체제 그대로,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낡은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며 살 것인가.
아마도 저자와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의 사고가 바뀌길 바란 것 같다. 하루아침에 그들이 원하는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더라도,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더는 타인의 가난을 외면하지 않기를 소망한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희망적인 소식은 이러한 그들의 바람에 발맞추어 서서히 많은 국가들이 그라민 은행을 자국의 여건에 맞게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유누스가 희망하는 수준의 도약은 아니더라도 착한 자본주의를 향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자본가들이 늘어날수록 가난으로 고통 받는 자들은 모습을 감추게 되겠지. 유누스가 꿈꾸고 확신하는 것처럼 그의 후손들은 지난날의 가난이 어땠는지를 알기 위해선 박물관엘 가야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나 역시 간절히 바라며, 이 착한 자본주의 실현 운동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길 또 다시 간절히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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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주의를 실현?, 그라민 은행이야기다. 이 책은 그라민재단이 운영하는 은행의 궤적을 더듬어보고 은행이 쌓아온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그라민은행의 아주 특별한 안내서인 동시에 그라민은행이 누구에 의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 어떠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그 실질적인 시스템에 관해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소액신용대출, 절대 빈곤의 탈출구다. 소액신용대출은 언제나 은행업 이상의 일을 했다. 가난한 여성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전략이기도 하다. 대출은 수단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도 수단이다. 규모도 수단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가난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대출은 수단이 아닌 목적, 이익추구로 변절할 수 있고, 발생하는 수익 또한 목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규모 또한 너무 그러하다. 한국의 신용조합의 예를 잘 살펴보시라...소액신용대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 위에 덩그러이 생뚱맞게 걸려 있는 "일인의 만일을 위해, 만인은 일인을 위해" 이제는 어울리지 않게되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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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융권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아간다며 지탄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도가 높은 고객보다 낮은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매기는 것, 경기가 좋을 때 대출을 늘리고, 경기가 나쁠 때 대출을 줄이는 행태[1] 모두 제가 배운 경제학으로 바라보면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저는 작년 10월 “약탈적 금융사회”라는 글을 통해서, 합리적인 판단 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은행을 감정적인 근거만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현재의 실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학도이자 금융권 취업 준비생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매기는 이유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더 높다는 가정 하에서 채무자들의 “기대원리금[2]”을 일정수준으로 맞추기 위함일텐데, 기대원리금을 높이는 방법이 고금리밖에 없을까?’ ‘높은 금리가 채무자들의 채무상환의지를 꺾는 효과를 갖지는 않을까?’
신용도는 신상정보, 직장정보, 자체 거래정보(해당 금융기관의 여, 수신 내역, 연체 여부, 거래 기간 등), 한국신용정보 같은 신용정보회사로부터의 신용정보에 의해 판단된다고 합니다[3]. 이렇게 산출된 신용도를 바탕으로 채무불이행 확률을 추정한다면, 위와 같은 항목들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채무불이행 확률도 변하지 않고, 그에 따라 매겨지는 금리도 높은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더 높다는 가정을 비판없이 받아들여도 될까요? 채무자의 대차대조표와 거래내역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됨됨이, 경제활동과 채무상환을 위한 의지와 행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측에서 채무자의 경제활동의지를 다독여주고 행동을 직접 지원, 지도, 감시함으로써 채무불이행 확률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종전보다 낮은 금리 하에서 기대원리금을 원래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언급한 두 번째 의문이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금리를 낮추는 것이 채무상환의지를 높여 기대원리금을 더욱더 높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저신용자들의 기대원리금을 일정수준으로 맞추는 방법은 금리를 높임으로써 원리금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채무이행확률을 높이는 방법도 가능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2-3일 전까지의 생각의 결과가 위와 같았고, 구체적인 방안 및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하여 생각하지는 않고 있던 중,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중앙도서관에 갔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갖다주고 나서 빈손으로 나오기 아쉬워 무심코 꺼내든 책이 데이비드 본스타인의 “그라민은행 이야기”였습니다. 서민금융에 주력한 은행이라고 얼핏 들었던 이름일 뿐이었는데, 책을 펴고 읽어보니 위에 적은 제 생각들이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더군요. 지금 절반 정도 읽은 상태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전율이 밀려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서민금융업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경제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는 그라민은행과 같은 사례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라민은행의 창시자 유누스 씨는 2006년 서민생활 개선의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데 말이죠. 대한민국 버전 그라민은행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금융기관을 도입함으로써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며,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것에 대하여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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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은행 소개글: 그라민은행 이야기 발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 최초의 은행.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무함마드 유누스에 의해 1983년 설립되었다. 그라민은 벵골어로 시골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용만 있으면 누구든 돈을 빌릴 수 있는 무보증, 무담보의 소액신용대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처음 시행하였다. 1976년 고리대금업자의 횡포 때문에 빚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여성 수피야 카툰의 사정을 알게 된 유누스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마을 사람들 42명에게 사재로 27달러를 빌려준 것이 이 은행의 시발점이 되었다. 유누스는 가난하지만 신용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단돈 27달러도 빌려주지 않는 사회에 좌절감을 느끼고, 이내 일련의 실험기와 시범 지점 운영을 거쳐 1983년 그라민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하였다. 이 3년간의 실험기에만 500여 가구,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서 탈출했으며, 현재까지 그라민은행에서 대출받은 780만 명의 빈민들 가운데 60%를 상회하는 자들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대출금은 외부의 지원이나 기부금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100% 은행 회원들의 예금으로 충당하는데, 상환율이 98%에 이른다. 1993년부터 흑자 운영으로 전환되었고, 현재 84,237개의 마을에서 2,554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소액신용대출은 그라민은행의 눈부신 성과에 힘입어 현재 아시아를 비롯한 북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다. 1997년 미국 워싱턴에서는 139개국이 참가한 제1회 국제 소액신용대출 정상회의가 열렸으며, 유엔은 2005년을 소액신용대출의 해로 정하고 2015년까지 전 세계 극빈층 약 10억 명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국내에도 그라민은행의 한국 지부인 신나는조합, 사회연대은행 등의 소액신용대출 기관이 설립되어 어려운 이웃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그라민은행은 빈곤층과 여성 등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설립자이자 총재인 무함마드 유누스와 함께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다음은 무함마드 유누스의 한마디이다. “길바닥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도대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난 강단을 버리고 주민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이용하여 다른 은행들에 비해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했고(사업 초기에 많은 지원을 받음), 아예 생산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산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0이었던 그들의 노동생산성(생산량이 없었기 때문)을 0이 아닌 값(조달비용보다 높은 값)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노동생산성이 개선된 많은 대출고객들을 예금자로 흡수하여 은행의 규모를 점점 키우면서 자금 중 지원받은 금액의 비중을 점차 줄여나갔습니다.
그라민은행이 대단한 점은, 돈을 떼일 확률이 아니라 돈을 받을 확률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은행은 담보를 집어 삼키려는 게 아니잖아요.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싶을 뿐이지요.”라는 말 속에 간단하지만 많은 이들이 잊고 지낸 핵심이 담겨있습니다. 그라민은행은 담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그 돈을 돌려받을 확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채무자끼리의 상호감시(평판의 이용), 은행관계자의 수시 방문, 은행 담당자와 채무자들이 참여하는 회의 개최 등을 활용했습니다.
그라민은행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강조하듯 그라민은행은 자선단체가 아니라 영리기업입니다. 다만, 다른 은행들이 이미 생산성이 높은(혹은 잠재력이 높은) 부문에 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빌려주려고 노력할 때, 생산할 능력이 없으나 생산하고 싶어하는, 생산이 절실히 필요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돕기까지 했다는 게 다르지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라 할 만 합니다!
[1] 본고에서는 금융시스템의 경기순응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2] (채무이행확률)*(원리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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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쉽게 기적이란 말을 하지만 기적은 원래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것을 기적이란 말로 뭉뚱그려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의식이 있는 자본가 기업’이라고 유누스는 말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정말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와 같은 자본주의가 팽배한 지금 시대에서 실현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하고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71년 독립한 이래 250억 달러가 넘는 해외원조를 받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점점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고,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 않던가? 시끄러워서라도 한 번쯤은 열어 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게 유누스는 추진력있게 일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곳의 사람들과 분쟁을 크게 일으킬 일을 피해 맞서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먼저 그라민 은행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데에는 그들의 의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딸이 태어나면 부채가 발생했다는 의미로 딸은 돈을 벌거나 힘든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집 안팎의 일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중 딸들을 부채나 불행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지참금이다.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전긍긍 고민을 짊어지게 만드니 결혼 지참금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집안을 무력하게 만든다. 방글라데시는 특이하게도 여성의 수명이 남성의 수명보다 짧다. 통계적으로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을 뒤 엎는 것으로 아기가 태어날 때는 그렇지 않은데 아들을 딸보다 더 잘 먹이고 병이 났을 때도 딸보다 아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이다. <그라민은행 이야기>가 유누스 개인이나 은행의 역사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아, 그중에서도 가장 천대받고 살아가는 농촌의 여인들, 또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그라민은행의 직원들의 고된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돈이나 세고 있을 은행원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조사하여 단지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 앞으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회원들끼리 소모임을 조직하여 대출금을 갚을 수 있도록 하며 서로 감시자가 되는 등의 조직을 구축하여 소액신용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하나로 뭉치게 한 원동력을 만들었다. 착한 자본주의. 과연 이런 경제난에 그런 게 있기나 할까? 더구나 은행이. 하지만 소액신용대출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심은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를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였고 우리나라에도 그라민 은행의 지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지부가 아니더라도 국내의 소액신용대출 기관들은 더 있었다. 누구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지도 더구나 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생각조차 못했는데 참 대단하다. 착한 자본주의의 실현이 가능하구나...그라민 은행, 대단히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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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전혀 없다. 아니, 없었다. 소주 사먹고 자버리면 그대로 돈 날아가는 것 아닌가? 그런 자신이 있다면 이 책은 실용적인 목적(실제로 대출을 어떻게 수행할지)으로 읽힐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자신이 없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현재의 탐욕스러운 금융기관과 그들의 사기와 비리로 인한 금융위기만을 자본주의의 전부로 바라보는 굳어진 사고의 틀을 깨부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극도로 비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 너무나 현실적인 실화를 가지고 말이다.
처음 책을 기다릴 때만 해도 가볍게 읽을 그라민 은행에 대한 칭찬 일색의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450페이지가 넘는 책장에 빡빡하게 글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글자들은 쓸데없는 감상이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고, 대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운영방식에 대한 조사결과를 마치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내고 있다. 저자의 성실함에 감탄할 따름이다.
내가 그라민은행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2006년, 그라민은행과 설립자 유누스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때부터다. 신문들에 도배되기 시작한 그라민은행과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개념은 정말이지 도발적이었다. 극빈층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들의 상환율이 97%라고! 설마!
하지만 내가 그때 알았던 것은 정말 1/100도 안되는 "그라민은행 이야기"였다. 나는 그라민은행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30년 전에 설립되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까. 그라민은행이 유누스라는 독창적인 천재에 의존해서 만들어졌다고만 알았지, 어떻게 유누스의 작은 실험이 실제로 1억명이 대출받을 수 있는 실제 은행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우리에게 가치있는 건 바로 이 부분인데 말이다.
책은 유누스가 처음 실험을 시작할 때 자본금을 은행에서 빌리면서 겪는 갈등(유누스가 보증을 서야했다.)부터 시작해서 실험을 확장시키면서 은행직원들과 겪는 갈등, 은행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면서 그라민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과정에서 기금을 확보하는 노력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유누스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을 무렵 막 독립한 신생국이었고, 시스템은 후진적이고, 관료들은 부패해있었고, 은행들은 관료적이기 그지 없었다. 유누스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그들과 결탁하거나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은행을 만들어냈다! 국제구호기금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과정조차 얼마나 당당한지. 국제기구에 다니는 사람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후진국에 주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과 경력을 개발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작은 돈을 도와달라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어마어마한 돈을 부르면 자신들의 경력에 한 줄 남는 큰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서 적극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유누스는 그러한 속성을 이미 파악하고 그런 점을 이용하여 돈을 더욱 쉽게 빌린다. 서방 언론에 보도가 나가기 시작하자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더 자금을 쉽게 확보한다.
물론 자금이 있다고 모두 될리가 없다. 그라민은행은 대출을 받는사람들을 5명짜리 소규모공동체로 묶어내서 그들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관찰자 역할을 하도록 하여, 돈을 갚지 않는 일이 없도록 돕는다. 돈은 매주 조금씩 나눠서 상환해야하며, 모두가 꾸준히 돈을 갚아야만 그 그룹의 사람들이 추가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그라민은행은 돈을 빌릴만한 사람들을 찾아나섰으며 특히 여성에 대한 대출에 집중했다. 남성들은 돈을 벌면 자신을 위해 써버리지만 여성들은 돈을 벌면 그 돈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집안을 세우기 때문이었다.
내가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슬람율법에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슬람 율법 때문에 여성의 사회활동이 극도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들에게 자영업을 강조하는 이러한 은행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라민은행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다른 은행들이 이자를 받고 대출하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빈곤층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제공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무시될 수 있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문제가 되었다.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가능했으나 여성이 직장을 가지는 것은, 특히 모르는 지역으로 배치받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여성회원의 비중은 매우 높지만, 여성직원의 비율은 낮았다.
그밖에도 사실 유누스는 굉장히 좋은 집안 출신이어서, 그는 돈에 어려움을 겪어본적이 없으며, 15살 때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보이스카우트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을 이끌고 세계를 여행했는데, 폴크스바겐 소형버스를 3대 사서 유럽과 중동을 돌았다고 한다. 보통 방글라데시 사람으로서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 대다수의 한국사람들도 어려운 일을 50년 전에 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귀족집 자제분이랄까. 시중은행들이 그라민은행의 돈을 떼먹고 분쟁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유누스는 오랜 대학친구인 탕가일의 군사령관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친구가 군사령관으로 있는 경우는 많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개인적 재능도 뛰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연극을 하기도 하고 문학잡지를 찍어내기도 하고 유학가기 전 포장사업을 시작해 실제로도 큰 돈을 만지기도 했다. 유누스는 정치적 의제를 다루는 재능도 뛰어나서 미국 유학시절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하게 하기 위해 상원, 하원의 모든 의원에 대한 색인카드를 만든 후 그 사람의 배경이나 중요시 여기는 이슈, 품성, 주요 비서관 등에 대해 모두 조사해서 그에 따라 운동을 펼쳤고, (물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군사원조가 중단되는데 일조했다. 그 어떤 엄친아도 이런 유누스에겐 못당할 것 같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다니면서, 그라민은행에 대해 들어봤냐고 물어보면 아직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2/3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우리 언론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긍정적인 발전이 이토록 알려지지 않게 된 것은 언론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고나면서 맨 처음 서문에서 읽었던 이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좀더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또다른 모습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책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을 빌려서 생활이 나아진 방물장수가 중간에 센터와 갈등이 생기면서 그라민은행의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된 사연, 큰 홍수로 마을이 폐허가 되고 아기가 죽은 엄마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던 그라민은행의 직원의 소문, 결혼지참금 때문에 딸을 낳으면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등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방글라데시의 남녀차별적 문화, 미국에서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단체들이 많이 있었지만 실제로 자리잡은 건 소규모 사업가를 지원하는 단체 정도인데 그 과정의 이야기,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캐나다인인 저자에게 미국의 이야기만 물어보면서 쌀을 아냐고 질문하는 일화, 국제구호기금에 대한 유누스의 신랄한 비난과 유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라민은행의 향후 생존가능성에 대한 의문, 유누스의 신념인 대출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에 대한 외침 등.. 이 모든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책장을 펼치길 권한다.
덧. 리뷰의 제목에 관해 덧붙이고 싶다. 나는 이제 그라민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서 유누스의 작업에 일조하고 싶다. 나도 빈곤층에 돈을 빌려주고, 그렇게 나랏님도 어찌못하는 빈곤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걸음에 동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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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매년 홍수피해로 뉴스에 등장하는 세계최빈국중 하나인 나라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은행이라는 통념을 깨는 그라민은행이 탄생하였다.
경제학자인 유누스가 강의를 하면서 작은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생계를 꾸리는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여 재료살돈이 없었고 그래서 굶주렸다. 그걸 보고 유누스는 신용대출 프로그램을 실험적으로 대학원생들과 함께 만들었다.
1990년에 이미 80만명의 영세사업자에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하니 지금 현재는 그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은행은 기준치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주로 큰도시에만 은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시골을 위주로 개설되어있고 본인이 기준 이하의 수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대출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어떤 이들은 그라민 은행을 기적이라고 봤지만 그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시골마을 3만 5천개로 확대되었다.
그럼 왜 여성 위주로 대출이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이다. 이슬람 율법은 이자를 받는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남성 채무자들은 은행에 대해 종교적 반감을 확산시키려 했다. 그라민은행의 이자율이 16%정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독실한 신을 가진 동네부자들은 고리대금을 자행하고 있으면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그라민은행을 비난하기 바쁘다. 가장 통쾌했던 부분이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마을 여성들에게 그라민은행에 가지말라고 하면 '그라민 은행이 빌려준 2000 타카를 당신이 빌려준다면 당신 말을 따르겠소.' 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친 대목이였다. '딸이 태어나면 티크나무나 망고나무를 심으세요. 그래서 나중에 딸이 시집갈때 그 나무를 팔아서 결혼 비용으로 쓰세요.' 이런말은 가난한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조언이였다.
남자들은 돈을 빌리면 주로 자신을 위해서 쓴다. 하지만 여자들은 대부분 그 돈을 빌려서 가정을 위해 생계목적으로 사용한다. 그건 어느나라나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것 같다. 그래서 결국 그라민 은행은 여성을 위해 대출을 하는것이다. 그 여성들이 빌려가는 단돈 500카타가 얼마나 그 여성의 가정을 변화시킬지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클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과 방글라데시가 직면하고 있는 가난은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우리는 자신이 노력하면 아무리 실업이 심하다고 해도 당장 일을 하면 돈을 벌수 있는 구조지만 방글라데시는 워낙 나라가 가난하여 일자리 자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무능하다고 무시했던 방글라데시에서 지금 큰 변화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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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본스타인의 전작 <달라지는 세계>(지식공작소, 2008년)를 읽으며 달라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환경,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사회적 기업들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동안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나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속성을 뛰어넘는 혁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시도는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근본적인 모순들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기업이 바로 그라민은행이다.
데이비드 본스타인이 이번엔 그라민은행의 사례를 특화시켜 책을 펴내었다.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라는 부제를 담은 <그라민은행 이야기>(갈라파고스, 2009년)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는 그라민은행의 설립과 발전, 현재의 모습이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직원과 회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의 해석과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인물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록되기에 그라민은행의 궤적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저자가 이러한 기록 방식을 택한 이유는 그라민은행이 여느 기업과는 달리 회원들을 위한,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유지되는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바로 그라민은행의 역사요, 그라민은행 그 자체였다.
이전에도 그라민은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종 들어왔지만, 그 활동상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그라민은행 이야기>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그라민은행을 잘못 인식하고 있었음을 먼저 깨달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담보 대출을 하는 은행이기에 당연히 이자율은 낮거나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라민은행의 이자율은 여느 은행들보다도 높아서 20%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텍스트를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그러나 바뀐 사실은 없었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주었지만, 대신 높은 이자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292쪽)라는 무함마드 유누스의 말을 되새겨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의 잘못된 인식대로라면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기업이 아닌 자선단체나 재단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라민은행은 “첫째, 빌린 돈은 제 날짜에 꼭 갚게 한다. 둘째,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셋째, 될 수 있으면 여성들과 함께 일한다.”(60쪽)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자본가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농촌 사람들에게 오도록 만들자.”(35쪽)는 유누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현장을 찾아 움직이고 현장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본사와 지점, 센터, 모임으로 이어지는 조직체계는 그라민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섯 명을 기초 단위로 하는 모임을 통해 돈을 꼭 갚도록 격려하고, 그들 스스로 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가난했던 그들은 대출금 상환율이 낮을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95% 이상의 높은 상환율을 보였으며, 대출하는 액수도 점점 커져갔다. 높은 사채 이자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짓눌려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던 이들이 대출금을 통해 암소나 인력거, 물건 등을 구입해 매주 대출금을 조금씩 갚고, 결국 그것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라민은행의 회원들은 삶의 질을 조금씩 높여갔다.
“신용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있는 특권이라는 잘못된 신화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우 능력 있고 총명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바꿔갈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29쪽)
그라민은행은 순탄하게 확장되지만은 않았다. 초기부터 성공하지 못할 거란 야유를 들어야 했으며, 지점이 확대되면서 직원의 부정과 비리, 대출금의 저조한 상환 등의 위기 등을 겪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동시에 그라민은행을 비판했으며, 그라민은행의 성공을 유누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이 농촌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가난을 참아내게’ 하고 ‘유누스 한 사람의 놀음’이며 ‘시장을 시시한 장사꾼들로 가득 채우면서’ ‘부를 재분배할’ 뿐 ‘의미 있는 생산력 증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며 험담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247쪽)
그라민은행의 성공과정을 긍정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나 또한 이러한 지적을 들으며 이것이 그라민은행의 한계는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 바로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비판 이전에 그라민은행이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서만큼은 긍정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좌파나 사회활동가들이 모색해나가는 거시적인 이념이나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그라민은행에서처럼 풀뿌리 단위에서 사람들의 자립을 돕는 일도 중요하다. 오히려 거대 담론만을 이야기하고, 민생을 돌보지 않거나 지역의 자립을 도외시한다면 그들이 거꾸로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이 책에도 등장하는 거대 자선단체의 직원들은 공무원 조직만큼이나 경직되고 안일한 태도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사회적 기업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라민은행 이야기>를 읽으며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사회적 기업도 분명히 생존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분만큼이나 과정과 절차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라민은행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by 꽃다지, 2009년 8월 10일
* 주요 용어
- 빈곤선 : 영국의 사회학자 벤저민 라운트리가 처음 제기한 개념으로 육체적 능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생활수준 - 러다이트 운동 : 1811년에 영국의 중부와 북부의 섬유 공업지대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반 자본주의 운동.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실업의 원인을 기계 때문이라고 여겨서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인 것을 말한다. - 중간 기술 : 적은 자본으로 고도의 지식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기술로, 전통적인 기능과 첨단 과학 지식을 매개한다. - 버블업(bubble-up) 경제학 : 영세 사업자에게 직접 돈을 빌려줘 경제 활성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저자가 만들어낸 용어 - 트리클다운(trickle-down) 경제학 : 정부의 재정지출을 공공이나 복지 부문에 직접 투입하는 것보다 대기업을 통해 중소기업과 일반 소비자에게 침투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론
* 좋은 글귀
“신용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있는 특권이라는 잘못된 신화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우 능력 있고 총명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바꿔갈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29쪽)
“마을 사람들이 자본가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농촌 사람들에게 오도록 만들자. 그것이 바로 유누스의 생각이었다.” (35쪽)
“이들이 재료를 사서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서는 맨 처음에 856타가(약 27달러)가 필요했다. 유누스는 깜짝 놀랐다.” (53쪽)
“유누스는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빌린 돈은 제 날짜에 꼭 갚게 한다. 둘째,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셋째, 될 수 있으면 여성들과 함께 일한다.” (60쪽)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이 농촌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가난을 참아내게’ 하고 ‘유누스 한 사람의 놀음’이며 ‘시장을 시시한 장사꾼들로 가득 채우면서’ ‘부를 재분배할’ 뿐 ‘의미 있는 생산력 증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며 험담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247쪽)
“그라민은행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귀납적 방식을 좋아했다. 유누스는 이것을 실천 활동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액션리서치’라고 불렀다.” (273쪽)
“유누스는 자영업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별히 중요한 장점은 ‘여성들로 하여금 임금 고용 상황에서 요구되는 희생을 치르지 않고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에서 블랙홀 같은 영역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290쪽)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에서 배우는 전통적인 지혜를 개발이 진정으로 필요한 바로 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다. 거대화와 자동화를 맹종하는 경제학은 19세기 사고의 잔재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사상체계가 필요하며 그 체계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들에 의한 생산’이라는 문구가 그 뜻을 잘 요약한다.” (291쪽, 슈마허)
“우리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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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책임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데이비드 본스타인과 함께 그라민은행의 설립시기부터 현재와 미래, 그리고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자선, 경제학적 의미의 소액대출에 관하여 폭넓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유누스는 가난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복잡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가난을 예측할 수 있으며, 가난을 멈추는 방법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라민은행은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p.32
시간은 오래걸렸지만 유누스의 생각은 결국 정말 눈앞에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 역시 그들 스스로가 먹고 살 능력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슬람교의 '푸르다'라는 전통때문에 여자들은 사리를 두르고 가족 외의 남자와는 말도 섞을 수 없는 형편인데 어떻게 여자들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라민은행은 '푸르다'를 뛰어넘어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이끌어 낸다.
그 당시에는 남자들이 집 안에 들어가 여자들과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남자가 들어가면 집 중앙에 사리를 쳐야 했어요. 그래야 그가 여자들을 볼 수 없으니까요. … 그 집에는 약 스무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유누스 교수가 들어서자 모두 얼굴을 돌렸어요. 그러나 유누스 교수는 계속 질문을 하고 설명했어요.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점점 여성들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요. 그리고 그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여성들이 그를 향해 얼굴을 돌리기 시작했어요.-p.82
그리고 그라민은행은 이러한 소액대출사업을 자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라민은행이 그냥 은행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은행이라고 부르는 다른 모든 기관들이 은행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p.375
유누스의 방침대로 그라민은행은 다른 은행과도, 그리고 다른 어떤 자선단체와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현실적이며 헌신적이다. 또한 그라민은행은 이러한 사업을 최대한 투명하게 관리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라민은행은 빈곤층의 전반적인 생활을 향상시키고, 그에 발맞춰 주택보급과 의료지원에도 앞서서 나선다.
이게 바로 말뿐인 자선과는 구별되는 '살아있는 자선' 이다.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저자인 데이비드 본스타인이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저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상식만 알고 있던 나를 방글라데시 속속들이, 마을 깊숙이, 사람사는 곳 어디든 뿌리내린 그라민은행에 관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를 알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세계적인 소액대출사업의 전망이나 경제학적인 이야기들은 아마 이책이 아니면 잘 알지 못했을 보너스임에는 틀림없다. 더불어 맨 마지막의 우리나라의 소액신용대출 기관이 있다는 사실또한 놀라운 정보.! (..무식함을 뽐내고 있다..)
궁금해서, 그라민은행의 마크를 찾아봤다-!
"붉은색은 속도를 상징하고 녹색은 우리의 앞날을 뜻합니다. 생명과 평화,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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