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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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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에서 신비주의란 신이나 절대자 등 궁극적 실재와의 직접적이고 내면적인 일치의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 또는 종교사상을 말한다. 뭔가 막연하고 어렵고 고차원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신비주의. 요즘처럼 현대문명이 발달되고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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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에서 신비주의란 신이나 절대자 등 궁극적 실재와의

직접적이고 내면적인 일치의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 또는 종교사상을 말한다.

뭔가 막연하고 어렵고 고차원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신비주의.

요즘처럼 현대문명이 발달되고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

그러니까 신의 소리를 듣는다든지, 신의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신비주의란 이렇게 몇몇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적인 것일까.

이 책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혼의 고양을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신과 만난 존재들인, 라마와 크리슈나, 헤르메스와 모세,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예수를 소개하면서 이 위대한 선각자들이

어떤 활동을 하였으며, 우리들에게 어떤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에두아르 쉬레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작가와 비평가이기도 하다.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책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1889년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대학과 교단에서 이단 취급을 받았으나

곧 대중에게 은밀히 전파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특히 1차대전 중에는 전장에 임한 병사들에게 경전처럼 읽혔다고 한다.

자신 내부의 영혼의 존재를 믿고 영혼을 갈망한다면 누구나 초월적 존재와 만날 수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단 취급을 받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확실히 쉽지 않은 책이다.

술술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막히고, 마음으로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들이 잘 몰랐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종교와 신비주의,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였던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가 어떻게 위대한 선각자들이 될 수 있었는지,

또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종교를 초월한 여러가지 의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는 특별한 책이였다.

   

 

 

i*****8 2009.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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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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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라는 책을 통해 신비주의가 단순히 기적이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신비주의라는 것은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거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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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라는 책을 통해 신비주의가 단순히 기적이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신비주의라는 것은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거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철학과 종교라는 것이 처음 생겨날 때 역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철학이나 종교라는 것이 생겨나거나 어떠한 신이 만들어내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인간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삶의 모습을 고민하면서 철학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8명의 선각자들은 자신들이 철학이나 종교를 만들고자 원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신비주의의 선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영혼에 대한 숭고함과 하나를 깨닫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각자(先覺者)는 선지자(先知者)와 다른 개념이다. 선지자는 무엇인가 신비한 것을 나타내거나 보여주는 사람,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선각자는 무엇인가 만들어져있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거나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다. 단순히 아는 것을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보여주었던 사람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8명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 책 이 처음 나올 때 종교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의 핵심에는 신성시되어오던 그들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다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그려져야 하며,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본받아야 할지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j****y 2009.08.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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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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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종교인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를 누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 읽어보아야할 책! 이 책은 말마따나 신비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에겐 터부시될 책이다. 기독교에선 신비주의 사상이 이단으로 몰렸는데 그러한 좁은 의미의 신비주의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삶의 초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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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종교인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를 누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 읽어보아야할 책!

이 책은 말마따나 신비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에
겐 터부시될 책이다. 기독교에선 신비주의 사상이 이단으로 몰렸는데 그러한 좁은 의미의 신비주의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삶의 초자연적 존재인 신에 관한 인간의 본성을
담은 생각과 이해, 그리고 사상 등을 광범위하게 언급한 책인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구약시대쿰란동굴과 같은 은거지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려왔던 에세네파와 같은 신비스러운 종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아울러 마법사와 같은 잔뜩 흥미있는 이야기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책의 값어치는 읽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그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신비주의의 간단한 상식
정도는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가 있으며 종교란 우리의 삶에 있어 무엇
이며, 우리는 왜 철학적 사고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고, 또한 종교적 관념은 우리 삶에 있어서 불
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할까.. 그러한 모든 철학적 사고와 지식, 그리고 물음
들에 관한 - 즉 우리 삶의 본질과 이해에 관한 - 온갖 이론과 사상들이 정리되어 있는 훌륭한 책
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부터, 인간의 사회적 갈등은 종교간의 갈등, 즉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갈등이었다. 그건 태
곳적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으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종교적
동물(?)"이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이기에 단순한 하루하루의 삶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없고, 생각이 있고 사상이 있으며 목적이 있기에 우리 삶을 윤택하고도 풍성하게 건설
해나갈 수가 있다. 즉 우리의 의지를 계발할 수가 있을텐데 제목만 보면 사뭇 이런 내용들과는
달라보이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오히려 좋은 길잡이를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r****s 2009.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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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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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의 서문은 신비주의로 부터 시작된다. 고대사회에서는 신비주의,즉 미신이나종교가 그 우월성을 과시하며 권력집단과 더불어 사회를 통제하고 다스렸다. 하지만 현대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신비주의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달까지 왕복할 능력을 갖춘 현대사회에서 에두아르 쉬레는 신비주의란 단어를 통해 무엇을이야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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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의 서문은 신비주의로 부터 시작된다. 고대사회에서는 신비주의,즉 미신이나
종교가 그 우월성을 과시하며 권력집단과 더불어 사회를 통제하고 다스렸다. 하지만 현대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신비주의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달까지 왕복할 능력을 갖춘 현대사회에서 에두아르 쉬레는 신비주의란 단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할까? 물질문명이 발달된 21세기로 오는 동안 비과학적인 것처럼 여겨지신 신비주의가 그 가치나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잇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것도 신비스럽게 말이다. 그 신
비주의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이 발전할 수록 치러야 하는 많은 재난과 파괴등 부정적인
결과들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헤처나가는 것은 신비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신비주의
란 일반론적인 이론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서 이 세상을 이겨나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자리하고 있다
는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신비스런 힘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 영혼의 숭고함에 대한 깊은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달된 지금은 그 발전의 이면에는 많은 부작용이 있고 이제는 그러한 악영향을 이겨내기 위해서 신비
주의가 표면화되고 이슈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물론 신비주의에 대한 담론을 펼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영혼의 존재
를 믿는지, 우리가 신비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비주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반대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신앙심의 반대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모든 인간의 가슴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주의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건, 다신교의 진리를 갖고 있는 종교건 모든 장르는 통해 상호 소통할 수 있으며
그러한 종교들이 신비주의를 통해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통해 이 책은 단순히 신비주의에 대한 초월적인 힘
이나 그러한 존재와 만난 위대한 선각자들의 영혼의 모습을 그려 보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더 진리에 가깝고 우리가 가슴으
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 이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인 영혼의 구체적 경험을 서술을 통해 구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세상은 갈수록 병이 들고 있다. 지구는 인간의 과학발달로 인해 더욱 더 혹독한 자연의 시련을 겪고 잇으며 인
간의 수명은 더 늘어났지만 그 대신 인간이 앉고 살아야 가는 짐은 너무나 많이 늘어났던 것이다.이러한 대 재앙을 이겨나가는
것은 더욱 더 발전해야할 과학문명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까지도 그 들의 영혼을 순결학 지켜내고 고양
시키려는 그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라고 한다.즉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이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사회의 급속한 발전속에서 그 가치를 잃어버렸던 인간본연의 사랑, 즉 삶에 대해서 이
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은 많은 부작용과 실수들을 일으키게 된다. 한 걸음 나아갈
때 마다 뒤를 돌아보고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시점이 지금이고 그래서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게 아닌가 한다.
b*********2 2009.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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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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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휴가동안 읽은 첫 번째 책이었고 쫓기듯 바쁘면서도 권태로운 반복적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존재의 의미와 철학적 사고를 자극한 의미 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이 책에 담긴 종교적, 철학적, 신화학적 내용들은 아름답고 문학적이면서 존재와 초월, 깨달음에 대한 심오한 상징과 사색을 담고 있지만 한편 현대의 시각으로 봤을 때 19세기적 서구 세계관이 투영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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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휴가동안 읽은 첫 번째 책이었고 쫓기듯 바쁘면서도 권태로운 반복적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존재의 의미와 철학적 사고를 자극한 의미 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이 책에 담긴 종교적, 철학적, 신화학적 내용들은 아름답고 문학적이면서 존재와 초월, 깨달음에 대한 심오한 상징과 사색을 담고 있지만 한편 현대의 시각으로 봤을 때 19세기적 서구 세계관이 투영된 다양한 문제점들과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당시 세계를 식민화하던 제국주의 아래에서 역사학, 신화학, 인종학 등이 서구의 우월성을 합리화 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면 저자의 사상 역시 그런 범주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인종의 기원과 특성, 역사에 대한 오류 - 물론 당시엔 사실로 믿어졌을 수 있지만 현재엔 명백한 오류로 드러났다 - 신화, 또는 신화적 존재에 가까운 인물들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진술은 역사학 보다는 신화학, 또는 하나의 신화를 새로운 문학작품으로 창조해 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미롭고 멋진 내용들이 담겨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종교인이 아니고 종교에 흥미가 없더라도 신비주의가 갖는 그 비밀스러움과 ‘신비’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이 신비주의의 본질을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를 다양한 인종과 민족 그리고 그들의 종교와 지도자들의 독특하고 비밀스런 통과의례, 초월적 깨달음, 신 또는 신적인 것과의 합일을 통한 진리에의 도달 등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매우 서사적이면서 인상적이었다.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장마다 한 명씩의 위대한 인물들의 신비주의적 사상과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라마에서 예수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북아프리카, 인도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문명을 아우른다. 그들 중엔 ‘라마’처럼 수 천 년 전에 유럽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넘어 영향을 미치고 문명의 진보에 신비주의 지식을 통해 기여했다던가, 오직 신화적 존재로만 보이는 인도의 위대한 신 크리슈나의 다양한 신화들을 모아 인간 크리슈나의 삶을 재구성 하는 것, 서구의 유명한 비밀결사체 프리메이슨의 원조이기도 한 이집트의 비밀 결사 ‘헤르메스 제의의 신비적 체험’, 그리스 신화로 유명한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의 신비주의적 색채, 또 놀라운 건 수학자로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결사체와 그의 삶, 그리고 그의 사상을 소개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서구 철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기독교의 위대한 존재들인 모세와 예수까지, 이 정도면 이 책이 당시 이단으로 취급 받은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비록 백년이라는 시간도 더 흘러 낡은 사고를 담은 책이 되었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깊은 비의와 신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과학의 세기에도 종교는 시들지 않고 있으며 물질문명이 인류 역사상 최고조에 달했지만 그 내면은 여전히 공허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는 징조들이 사회에 넘치고 있다. 다만 일부 종교에서 보이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태도는 새삼 신비주의를 통해 참된 인간의 존재와 신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z***a 2009.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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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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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종교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70~80%가 손을 드는 것을 보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종교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이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종교를 선택한 사람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뜻에 의해 종교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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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종교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70~80%가 손을 드는 것을 보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종교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이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종교를 선택한 사람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뜻에 의해 종교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천주교 신자이지만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부모님 모두 천주교 신자이기에 태어나자마자 영세를 받은 경우다.

 

하지만 종교를 가진 것과 종교의 교리를 믿는 것, 또 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의 본질인 신비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의 예식으로, 또 습관적으로 일주일에 또는 일 년에 한  두 번 교회, 성당, 절에 가는 사람과 죽음이후의 세계를 믿고 종교의 교리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아, 자신의 가치관과 달라, 친한 사람이 믿는 종교란 이유로 쉽게 종교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마치 운전자격증이나 영어테스트 성적표를 받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이든지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비적인 요소로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정신, 영혼, 육체)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을 정의할 때, 그리고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가치를 설명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준이자 종교로서 위치를 얻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종교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 내용을 인정하는가? 우리가 신비주의라고 하는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없는,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기에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고, 사고할 수 없는, 일상적으로 생길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종교의 핵심이 신비주의라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야만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믿는 종교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믿는 대로 이뤄진다는 교리를 알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 천상과 지옥이 있다는 교리에 대해 문제 삼지는 않지만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 이런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바라볼 때 생기는 관념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종교를 가진 것이지 미신을 믿는 게 아니라는 시각 말이다.

 

이 책에는 종교가 갖고 있는 ‘신비주의’라는 개념을 세계 종교의 흐름 속에서 찾아보고 있다. 고대종교에서 가장 최근에, 물론 최근이라고 해봐야 일천년 정도 이전의 이야기지만, 생긴 기독교까지 그 안에 내재된 신비주의의 내용을 정리했다. 결론은 인간은 ‘정신과 영혼,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신의 모습이자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중재자이고, 이를 통해서만이 신비주의의 핵심인 무엇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종교가 이 내용을 담고 있고, 또한 동의하지만 시대에 따라, 종교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종교는 영혼을 강조함으로써 현세와의 관계를 차단했고, 또 어떤 종교는 육체를 강조함으로써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반감시킨 것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저자는, 기독교적인 사고를 갖고 책을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정신 아니 특정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예수의 행적과 표현이 담긴 종교로서의 기독교 교리를 통해 신비주의가 완성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즉 정신과 육체를 인정하며, 동시에 이들을 연결시키는 영혼의 존재도 함께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밖에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나도 천주교, 넓은 의미로 말하면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 정신만이 모든 종교 중에서 최상의 가치를 지닌 종교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종교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절대자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기 나름대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조직이란, 제도라는, 형식이라는 틀을 통해 신비주의의 순수성을 일정 부분 제거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신비주의를 인정한다는 것, 인간은 영혼과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고, 영혼은 내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무엇인가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일정의 자격증 같은 것은 하나 더 장만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필요에 의해 바꿀 수 있는.

 

역사책처럼 정리되어 있어 오랜 시간의 신비주의 변화상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l*****e 2009.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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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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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장장 500여 페이지에 걸쳐 신비주의를 설파한 8명의 선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라마이다. 두 번째는 크리슈나, 세 번째는 헤르메스, 네 번째가 모세, 그리고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가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신비주의 라는 기본적 베일에 싸여있다. 신비주의는 비과학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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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장장 500여 페이지에 걸쳐 신비주의를 설파한 8명의 선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라마이다. 두 번째는 크리슈나, 세 번째는 헤르메스, 네 번째가 모세, 그리고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가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신비주의 라는 기본적 베일에 싸여있다. 신비주의는 비과학적인 것 처럼 보이는 불확실하고 역설적인,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같은 과학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신비주의가 판을 칠 수 있는가? 하지만 헐리웃 스타들이 종종 이상한 종교(카발라?)에 빠진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아무리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들에 대한 절대적 동경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체험하고 느껴봤다면 무조건 믿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는 유리된 절대적 믿음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비주의란 인간의 누구에게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강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신비주의를 설파하기 위해서는 초월을 경험한 이들이 필요하다. 인간 영혼이 가장 고양된 사람들이 바로 신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위대한 종교를 세운 선지자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들이 앞서 말한 8명의 선지자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낮은 존재가 신이라는 드높은 존재와 하나로 맺어지고, 연결될 수 있다 말한다. 그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종교들은 선지자들을 둠으로써 신비주의를 믿게 하고, 천상과 맺어지게 한다.

 

 

지은이인 에두아르 쉬레 박사는 이러한 종교의 공통점을 신비주의로 묶고 있다. 제각기 다른 종교들이지만, 신비주의의 분모 하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선지자를 통한 천상과의 연결, 접신이 이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

 

이들 8명의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경이롭다. 분량이 방대한 만큼 그들의 기원과 과업, 이동과 정복, 그들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여러가지 사실을 접할 수 있다. 모세가 실현한 임무와 비전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라마나 크리슈나가 이룬 인도와 베다의 종교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헤르메스에 대해서는 단지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인줄만 알았지만 이 책을 보니 나름의 비전을 가진 걸출한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신화 속의 인물들은 사실 살아있던 사람으로서 인구에 회자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으로서 예수가 있고, 예수 외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것이 기독교의 법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8번째로 예수가 소개된 것이 다소 충격적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의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오신 것 만큼 다른 7인도 자신의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왔다 하였다. 문화가 다를 터이니 종교도 다른 것이 지당하나, 왜 예수가 마지막, 끝 순인 8번째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것이 단지 시대순인 정렬인지 아니면 에두아르 쉬레 박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이 세상의 선진국에, 가장 많은 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꼭 1등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시대순으로 보면 엄연한 꼴찌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가? 기분이 묘하다.

p*********d 2009.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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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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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인은 가장 먼저 사교(邪敎)가 떠오른다. 비밀의식을 행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그런 이상한 종교 말이다. 동시에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숨겨져 있는 뭔가를 캐내고 싶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과학이 놀랍도록 발전한 21세기. 지금의 시대에 신비주의를 논하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과학이 이성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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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인은 가장 먼저 사교(邪敎)가 떠오른다. 비밀의식을 행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그런 이상한 종교 말이다. 동시에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숨겨져 있는 뭔가를 캐내고 싶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과학이 놀랍도록 발전한 21세기. 지금의 시대에 신비주의를 논하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과학이 이성과 지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사고는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거부한다. 신비주의는 그 중 하나이다.

 

 사실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다. 오늘날 알아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에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별 도움이 안 되는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은 시간과 힘 낭비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신비주의에 관심이 간다.

 

 신비주의는 세상에 대한 다른 이해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 곧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정확한 이해와 정의는 아니지만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노력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신비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우리를 앞서 간 종교와 철학자들 중 8명의 대표를 통해 신비주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종교와 철학사를 추적하여 신비적 주장과 전통을 설명한다. 어느 종교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이해할 수는 있으나 수긍할 수 없는 해석들이 있다. 전통적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넓게 써서 읽으면 흥미로운 지식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긍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 하였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각력과 이해력, 그리고 설명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떤 것들은 도저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다방면으로의 노력은 칭찬 할만 하다. 그것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이해를 통한 인간 삶의 근원을 캐고, 삶의 목적을 알아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인간 삶의 지속성으로 연결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좋은 것이지만 신비적 탐색이나 이해는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이해는 좋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삶의 지속성을 헤친다.

 

 항상 전통적인 것과 주류인 것이 참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과 비주류인 것 중에도 참인 것과 좋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이고 주류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이 인간을 더 이롭게 하는지는 역사가 판단 할 문제이긴 하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씌어진다"는 것이다.

f********3 2009.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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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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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500쪽 가량의 두꺼운 두께에 압도되어 읽는 것을 망설이겠지만 일단 용기를 내면 라마,크리슈나,헤르메스,오르페우스,모세,피타고라스,플라톤,예수 등 8개의 장으로 나눠져있어 하나하나 정복해가는 맛이 있어, 그렇게 어려운 책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신비주의란 단어에 혹하면 마치 판타지같은 상상속의 달콤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것 같지만 이 책은 굉장히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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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500쪽 가량의 두꺼운 두께에 압도되어 읽는 것을 망설이겠지만 일단 용기를 내면 라마,크리슈나,헤르메스,오르페우스,모세,피타고라스,플라톤,예수 등 8개의 장으로 나눠져있어 하나하나 정복해가는 맛이 있어, 그렇게 어려운 책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신비주의란 단어에 혹하면 마치 판타지같은 상상속의 달콤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것 같지만 이 책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종교에 접근했다.  한 명의 인간, 즉 선각자에 초점을 맞춰서 종교를 서술하고, 종교를 통한 인간 영혼의 고취에 중심을 둔 내용으로 종교의 신성함과 신의 모호함을 자신의 내면에 살아있는 영혼이란 또 하나의 신성과 연결시켜 지극히 인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라고 할까.

 

 신비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책에서는 인간은 정신,육체,영혼의 세가지 조합으로 이뤄져있다고 이야기하기에 영혼의 존재와 신을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어떤 부분이 현실적이냐고 느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현실적인 책이 맞다.

 

 신이란 저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존재라서 우리는 그저 믿고 따라야한다는 식이 지금까지 느꼈던 '종교'라면, 책에서 설명하는 종교란 인간 내면에 영혼이라는 신성적 존재가 있고, 그것에 인간과 신이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으며, 인간은 종교를 통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며 다뤘다는 어쩐지 접했던 종교들과는 다른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설명이 '종교'를 다루는 책 치고는 현실적이란 느낌을 받게 한 것이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어떠한 신적 존재를 믿는 다수의 사람들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든 생각은 종교라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의지나 사상으로 시작되어 그 '선각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게 시간이 지남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파,변이되어 점차 그 존재를 키워나가며 사상을 넓혀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하면 신적이고 영적인 존재가 존재하지만 그것의 힘을 빌어 이런저런 교리와 사상을 낳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신이 있기에 종교가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상이 신성시되면서 인간의 의도로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퍼져있는 붉은 십자가를 보며 저렇게 전파력이 좋으며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를 언젠가 한 인간이 중축이 되어 새로이 탄생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종교와 신이란 그저 역사 속에서 멈춰있는, 믿지 않는다면 내 인생과 별개의 존재라 여기는게 대부분의 사람의 생각아닌가. 그런데 앞으로도 태어날 수 있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종교에 대해 다시바라보게 되지 않는가?

 

 너무 현실적으로 종교를 풀어내어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쪽엔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였으니 그 옛날 종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종교자체를 너무 인간중심적, 현실적으로 바라본 이 책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거란 데 납득되기도 했다.

 

 읽기 전엔 그냥 종교 찬양적이거나 혹은 신비주의, 영혼에 대한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색다른 시선으로 종교를 접하게 되어 누구든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g*****1 2009.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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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위대한 영적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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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위대한 종교가 설립되기까지의 뒷편에는 언제나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이 책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인류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다루고 있다.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 이렇게 여덟 분이다.   평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인도철학에 가닿게 된다. 불교 역시 인도 문명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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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위대한 종교가 설립되기까지의 뒷편에는 언제나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이 책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인류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다루고 있다.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 이렇게 여덟 분이다.

 

평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인도철학에 가닿게 된다. 불교 역시 인도 문명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힌두교에까지 관심의 영역이 넓어졌다. 최근에는 인도문명의 위대한 경전인<바가바드 기타>를 읽었다. 이 책을 통해 크리슈나의 목소리를 경험했던 터라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의 목차에서 이 이름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더군다나 이 책은 인도문명의 탄생기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 

 

또한 나는 서양철학자들 중에서 피타고라스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를 단순히 '철학자'라고 부르기엔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에겐 '뭔가가 더 있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 분에 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않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에는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에 가장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어 있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 많은 기록들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차례를 무시하고 피타고라스편부터 펼쳐들었다.  

 

그런데 난해하고 어려웠다. 왜 이집트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장황하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기원전의 역사는 나의 시간관념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3분의 1쯤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책의 맨 앞 장으로 돌아갔다. 라마편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옳았다. 이 책은 홍인종,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이 어떤 시기에, 어떤 환경에서 사회를 이루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최초의 문명인들로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 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인도문명의 탄생기를 이해할 수 없는 구성이었다. 라마와 크리슈나는 인도문명이 낳은 위대한 영적 스승들이다. 그리고 다음이 이집트였다. 이집트 문명야말로 신비주의의 원류였다. 피타고라스 역시 고향을 떠나 이집트로 갔다. 그곳에서 영적 수업을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진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이집트로 몰려들었다. 

 

이런 시대상황을 몰랐으니, 피타고라스 편부터 읽기 시작한 독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신화라는 것에 관해 생각해본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무엇,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무엇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옮긴이는 서문에서 "신비주의란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존재,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영혼의 숭고함에 대한 깊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기원전 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역추적해 들어가보니, 거기엔 현대인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크리슈나의 삶을 따라가는 그 이야기는 말그대로 '이야기의 원형'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크리슈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인간은 신비주의자이다. 풍부한 영혼의 소유자들 말이다. 현대인의 메마른 영혼과는 비교할 수없는 감성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신학자들이 신에 대해 유치한 개념을 품고 있는 한, 과학자들이 단순하게 신을 모른다며 부정하는 한 절대적인 신 아래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 인류를 통합한다는 것은 헛된 꿈이거나 위험한 욕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오래전에서 쓰여진 책이지만 작가의 통찰은 오늘의 우리 사정에도 꼭 들어맞는다. 영혼을 공부하는 방법만이 " 이 세상의 열쇠"이자 "이 삶의 열쇠"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아래는 몇몇 인상깊은 구절을 옮겨보았다.

 

"베다 시인들은 영혼의 운명에 대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도 초조하게 묻고 있다."

 

"브라만교와 불교, 그리고 이집트인들에게서, 더 나아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인, 비법들 중의 비법인, 부활 재생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 이 정도이니 어떻게 베다교가 체계적인 종교의 원칙들, 우주에 대한 철학적 개념들의 원천적 토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우리의 관찰 너머에 존재하는 그리고 그에 앞서 존재하는 절대진리에 대한 심오한 직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이해, 자연현상의 변화와 배열, 조화에 관한 통일성과 드넓은 통찰력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높은 신비와 세속적 믿음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다를 유심히 살펴보면, 제사장과 시인 사이에, 즉 신비의 집전자와 일반 신자 사이에 아주 중요한 한 인물이 개입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챌 수 있다. 바로,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현자, 선각자가 그이며, 그가 바로 라마였다."

k*****1 2009.08.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