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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벽이다. 일주일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을 이제야 내려놓는다. 그 사이 여러 권의 책이 추월했다. 이 책의 부제만으로도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 지- 이슬람의 도전과 사라지는 강대국들- 짐작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일단 저자는 이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 대놓고 말이다. 얼마 전 접했던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과는 논조부터가 다르다. 급진적인 보수주의라고 하기엔, 덴마크에서 있었던 카툰 폭동과 같은 뒷감당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호기가 넘친다.
사실 내가 알고 있던 이슬람의 이미지, 약자, 피해자, 일부 테러리스트... 정도였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찬란한 과학적, 문화적 수준을 자랑했던 이슬람. 저자에 따르면 이슬람은 스멀스멀 전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해 폭탄을 손에서 놓지 않을 그 싹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된다.
흥미로운 논거들이 등장한다. 러시아(산 송장이라 표현), 벨기에,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을 비롯한 전 유럽이 죽기 일보 직전에 놓여있다. 바로 '최저저' 출산율에 따른 인구 감소와 자연 붕괴설이다. 이에 반해 예멘과 파키스탄의 출산율을 비교한다. 1점대와 5점대의 차이... 여기에서부터 미국에 대한 이슬람의 도전은 시작된다. 결국 러시아는 소멸될 것이고,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는 1세기 이내에 이슬람 인구들이 장악하는 새로운 칼리프 왕조가 건설된다고 말한다. 여타 종교와 달리, 이슬람은 종교이자 율법이다. 즉 정치 도구인 셈이다. 유럽이 정복당하고 있다는 근거로는 인구 저하와 과도한 복지 제도를 든다. 즉 유약한 다문화주의에 의해 이슬람의 실체(테러리스트, 전복을 통한 이슬람화)를 간과하다가 결국엔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얘기다.
영국의 런던올림픽 주경기장 옆으로, 세계 최대의 이슬람사원이 건설된다. 자그마치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믿기는가?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는 석유를 판 막대한 자금을 전 세계 과격 이슬람 단체들에게 지원한다. 급격한 이슬람 인구의 증가는 결국 종교의 우수성이 아닌, 강대국들의 다문화주의 속에서 발현한 그들의 성향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자살 테러, 폭동을 이 책에서는 언급한다.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아기의 이름이 모하메드란 말을 덧붙이며...
그나마 미국이 유럽과 달리 근근히 버티는 이유는, 그들보다 나은 출산율과 세계 다문화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는 것을 든다. UN 국가들 중 미국이 상정한 모든 안건에 반대를 던진 수치가 80%를 상회한다. 즉 세계는 이슬람, 이슬람 외의 모든 나라 VS 미국임을 보여주며,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며... 좀더 강한 미국이 되길 촉구한다.
이슬람에게는 군사력이 없는 대신 그것을 넘어가는 이념의 무장이 있다. 그 앞에서 전세계 모든 나라가 무장해제되며, 차례차례 정복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의 출산율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전개될 역사적 과정인 셈이다. 끔찍했던 9. 11 테러를 보는 시각도 천차만별이다. 자국 내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를 극렬히 비난하는 반면, 온건이든 급진이든 이슬람 세계에서는 오히려 승리라고 축복의 노래를 부른다.
미국의 지구가 이제 1세기를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나 급격한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인도보다도... 더 무섭고 악랄한 도전자로서 이슬람을 얘기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신자유주의, 다문화주의의 폐해나 이슬람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제대로 된 것들인지... 하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사실 기반의 내용이 다수다. 물론 100% 진실이 아닐 수도,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예정이다. 기존 나의 사고 체계에서 너무나 많은 부분 벗어나 있어, 주의깊게 읽어볼 필요가 생겼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 셀러로 팔릴 만큼, 격렬한 논쟁을 일으킬 만한 문제적 책이었다. 이 또한 미국이 말하는 다문화주의, 신자유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덧붙여... 댓글 이벤트로 선물 받은 책이라 더 재밌고 감사하게 읽었다. 눈이 마구마구 감기는 상황이지만, 약속한 서평날짜가 있어 최대한 집중된 정신에서 자판을 놀린다. 최근 이 책과 반대 편에 서있는 책들도 다수 나와있다. 많은 블로거들의 서평을 통해, 느낀 건... 정말 모르겠다는 거다. 알면 알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슬람. 얼마 전까지 이슬람을 처연하게 바라봤다. 이 글을 쓰면서는 당장 그들의 폭력성과 침탈이 걱정되기도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을 대하는 딜레마는 아닐까? 끝까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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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이슬람 “제국주의”의 “선진” 서구사회로의 진출에 대한 경고와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슬람 교도들이 그리고 이슬람 “제국주의”가 문제일까 이것은 저자가 “선진” 서구사회가 자멸해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사회복지를 위한 큰 정부를 추구하는 진보좌파에 의해 정부가 모든 일을 하여 국민이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이로 인해 “선진” 서구사회의 토박이들은 굳이 일을 하면서 자식을 낳아 양육하기보다는 쉽게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으려고 하여 점차 멸망에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사회유지를 위해 젊은 이슬람 교도들을 새로운 유럽인으로 수혈하지만, 이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기존의 사회에 동화되어 흡수되기 보다는 이슬람 교도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교도가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즉, “선진” 서구사회를 이끌어 가던 노쇠한 기득권자들과는 달리 자기정체성의 뿌리를 이슬람에 둔 젊은 이슬람 교도들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기존 사회를 자신들의 이상에 맞게 적극적이던 소극적이던 바꿔나가려고 하기때문이다. 게다가 “선진” 서구사회가 다문화주의의 이름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악조건이기 더해져서 “선진” 서구사회는 점차 이슬람화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이 왜 문제일까? 저자는 이슬람 세계를 거만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사는, 폭력에 찌든 제국주의 사회로 보기때문이다. 저자가 이슬람 세계를 보는 관점은 아래의 문장들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이슬람 안에 잠재된 세계적 지하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교 자체가 정치적인 프로젝트이며, 사실상 제국주의적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현대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가 추구하는 방식과 다르다. 더욱이 이 특정 종교는 역사적으로 볼 때 폭력이 거의 언제나 정당화되는 어느 정도 피에 굶주린 신앙이었다." 1) "이슬람주의자로서 당신은 그저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을 계속하면 된다. 유일한 차이라면 이러한 일들을 이제는 새로운 종교를 위해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기만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강간을 해도, 여자와 어린이를 살해해도 괜찮다. 당신이 알라를 위해서, 이교도들에 대한 알라의 승리를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하는 한 그것은 근사한 일이다." 2) " 이슬람을 뺀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입니다. 이슬람을 안 믿고 죽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3) 그런데 세번째 인용부분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기억이 나지 않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전철 안에서, 혹은 거리에서 “ 개신교를 뺀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입니다. 예수를 안 믿고 죽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줄여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라는 전도 문구를 한번도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기독교와 유사한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4) 라고 언급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의 격돌은 쌍둥이 형제간의 치열한 골육상쟁이라고 표현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너희를 공격하는 하나님의 적들에게 맞서 싸우되 그러나 먼저 공격하지 말라. 하나님은 선제 공격하는 자들을 사랑하지 아니하시니라." 5) "종교가 강요받아서는 아니 되니라." 6)
강압적 선교가 없었음은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이슬람 세계에 경제혁신이 부족한 한 가지 원인은 항상 사회의 자금제공 부담을 주로 이교도들에게 부과해 온 데 있다." 7)
이슬람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던 일반 백성들은 이슬람의 진출을 오히려 환영하였고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선택하였다. 물론 지즈야(jizya)라는 병역 의무를 수행할 나이가 된 남성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종교세를 내기만 하면 신앙을 유지하고 자치적인 생활권을 지닐 수 있었으며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까지 받을 수 있었다. 옛날 고려시대 불교의 사원과 조선시대 유교의 서원에 면세와 병역의무 면제 혜택이 주어지자 그 해당되는 자들이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사회에서는 오히려 개종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해서 사실상 개종을 억제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자, 생각해 보자. 이 책의 저자는 이 시대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되고자 하는가? 저자인 마크 스타인은 미국주류사회인 WASP(White with Anglo-Saxon Protestant), 그중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에서 이슬람 사회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그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답은 “예스”이다.(보기에 따라서는 극우 인종주의자로 간주할 여지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슬람 “제국주의”는 그 자신의 내심이 반영된 것일 지도 모른다. 아래의 인용문구를 보면 “선진” 서구사회에 의한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있지 않은가. "오늘날 인도는 ~ 거만하고 무식한 시민들이 사는 매우 불안정한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셰익스피어, 대헌장, 아이작 뉴턴 경을 소개함으로써 식민지 신민들에게 근대 사회로 가는 여권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 아마도 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날 인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거만하고 무식한 시민들이 사는 불안정한 지역이 되지 않은 것이 “선진” 서구사회의 식민지배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P.S.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쓴 이후에 발생했지만, ‘무하마드’ 못지 않게 이슬람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는 미국 대통령 9)이 선출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1) 마크 스타인 지음, 2) 같은 책, p. 139 3) 같은 책, p. 147 4) 5) 6) 같은 책, p. 28 7) 마크 스타인 지음, 8) 같은 책, p 283 9)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후세인”이라는 이름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손자이자 시아파 제3대 이맘인 후세인 이븐 알리 때문에 ‘중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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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럽의 인구증가율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고,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일한 인구감소가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많은 러시아 주변국가들도 마찬가지의 증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중이다.
인구는 국가의 핵심적인 하드웨어이고, 인구는 모든 자원에 우선하는 중요한 자원임에도 이렇게 핵심적인 인적자원 자체가 감소한다는 것은 국가의 어떤 과제보다도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과제이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이에 적극적인 행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큰 재앙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이러한 인구증가를 방치하는 동안 날로 높아가는 노령인구의 증가는 복지국가에서의 폭탄돌리기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유시민의 저서에서 우리나라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거기에 동조했었지만 그 전제에는 적정인구의 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간과한 듯 하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복지란 개념은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는 부실한 가정하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성향은 어떠한가를 생각해보면 끔찍하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미 유럽에서의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일단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한 무슬림을 퇴거시킬 방안은 없다. 그렇게 유럽에 뿌리는 내린 무슬림은 여타의 이민자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
나날이 멕시코에서 리오 그란데를 넘어 텍사스로 불법이민자가 들어오지만 그들은 오래지 않아 미국인으로 정착을 하고 미국의 관습에 따르게 된다.
그렇지만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이슬람에 입교는 자유지만 배교는 곧 죽음이다. 이러한 전제를 깔면 이슬람인구는 결코 줄어들지 않고 나날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슬람의 부작용이라는 것은 실천하고자하는 것이 '코란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이교도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한다는 데에 있다. 십자군 운동에서 재발된 이슬람과 기독교의 전쟁에 있어 수많은 중동인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결말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요는 이슬람에는 젊음과 의지가 있고, 유럽에는 노인과 복지가 있다는 말로 압축된다.
'시리아나'라는 영화에서 묘사한 몇가지 상황에서는 필리핀에서의 가난이 공산화의 기폭제가 되었듯이 아랍국가들에 있어서도 가난, 실직 등이 자살폭탄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실제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건실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남자가 어느날 자살폭탄으로 되어버리는 일도 흔하다. 스무살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살공격으로 죽자 그 가족들이 결혼식을 한 것 처럼 기뻐했다는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자는 이에 대한 결론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세가지 옵션이 있다. 이슬람에 굴복하거나, 저항하거나 개혁하거나, 그렇지만 지금 진행되는 형태는 굴복이다. 그리고 그 굴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항을 미미하다. 그리고 원제목 America alone이란 말은 그나마 유일하게 미국이 이슬람의 공격에서 -지속가능한 상태로-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스패닉의 공격에 무력하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중이다.
저자의 글쓰기에서 드러난 점은 무당이 작두위에서 춤을 추듯 사실에 대해 정신없이 늘어놓다보니까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강하고 로동미사일에 대한 사실의 오류도 눈에 띈다.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다. 이슬람에서 여권운동을 촉발시키라는 등의 미미한 저항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미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행중인 유럽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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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제목에서 짐작했던 상반된 생각들을 소개한다. 미국이 벼랑 위에 서 있으니 자국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 떨어지지 말자는 건가, 아니면 미국이 벼랑 위에 서 있으니 반미국 모두 힘을 합쳐 확 밀어버리자는 건가. [벼랑 위에 선 미국]이라는 제목은 이처럼 자석의 양극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결론만 얘기하면 이 책 저자의 관점은 전자다. 조금은 의아하다. 후반부 즈음 저자는 자신이 외국인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캐나다인이다. 물론 외국인이 반드시 미국 편이 아니라야 옳은 건 아니지만 이슬람을 이토록 혹독하게 몰아치며 미국의 손을 높게 들어주는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깊게 생각해야 할 주제지만 나는 제법 간단하게 미국의 반대편 입장을 고수한 채 읽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슬람 편을 들 수도 없는 나는 그냥 멀리서 구경하는 중립적이지도 못한 동양의 구경꾼이 되기로 했다.
저자 마크 스타인이 주장하는 내용의 요지는 이것이다.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모든 면에 있어 미국이 앞섰지만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인구감소율이 심각한 위기로 대두되고 있으니 조만간 유럽 땅 대부분을 인구증가율이 높은 이슬람 국가 출신들이 점유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 법이 통용되기 시작한다면 이슬람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조만간 최강자인 미국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미국은 부디 현재 우월한 위치를 잘 활용하여 이슬람을 무찌를 대책을 세우자. 왜 이토록 태평하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는가. 지금보다 훨씬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만 한다. 한 마디로 테러나 일으키는 악질스럽고 표독한 이슬람의 확장을 미리 막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유럽에 있고, 복지혜택이 흘러 넘치는 나머지 노동시간보다 여가시간이 훨씬 많은 나라들도 유럽에 있다. 저자에 의하면 유럽의 복지혜택이 흘러 넘치는 이유도 빵빵한 국방을 담당해주는 미군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부풀려졌다. 그런데 이토록 자신감에 찬 미국이 왜 이슬람을 두려워하는 걸까. 구경하는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재밌다. 미국도 결국 이슬람인들의 타고난 조직성과 단합을 염려하는 것이다. 또 이슬람의 강력한 인구에 대항할 유럽 주요국가들의 감소가 미국에게 썩 이로운 일이 아님을 잘 아는 것이다. 다양한 국가와 문화 속에 깊게 침투한 이슬람 세력에 대처하려면 이전보다 훨씬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온건한 대응으로는 그들을 잡을 수 없다는 오만함이다. 그러면 이라크 전쟁 때처럼 한 국가를 고립시켜 놓고 무작정 폭격기를 투하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국의 대응법은 그런 것 밖에 없다. 그러면서 살며시 겁이 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이 사태에서 슬그머니 빠질 수 있는 제 3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율은 유럽 비스무리하게 하위권을 맴돌고 이 땅에 미래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인구문제를 우리도 겪고 있으며 무엇보다 북한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편에 놓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이슬람인들이 유럽을 점령한다면 아시아라고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또 이슬람 인과 이슬람 문화를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좁은 나라일 수록 그들이 미치는 위험의 영향력은 더 클 것이다. 중동의 위력은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온 세계가 안전할 수 없고 어느 국가든 승리를 예상할 수 없다. 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개 속에서 이념만을 무기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려는 미국의 뻔뻔한 자신감이다. 중동은 왜 평화로우면 안되는가. 9.11 테러는 중동의 평화를 거부하던 미국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벼랑 위에 선 미국]은 기존 도서들이 이슬람을 건드리는 방식과는 반대로 이슬람의 도전에 심각하게 대항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를 촉구하는 미국을 그렸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그로인한 지식들이 저자의 주장을 철저하게 뒷받침해 주기는 하지만 간혹 긴 논거들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번역본 임에도 저자의 입담이 생생하게 녹아있어 가기 힘든 곳으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의외로 간단하지만 주장하는 이론으로 향해가는 논거와 현실은 때로 끔찍하기까지 하다. 읽어내기 수월한 책은 아니지만 힘들게 읽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매력에 반하게 되는 책이다. 미국과 이슬람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어 좋았고 한국 또한 세계의 조류에 발맞추어 우리만의 철저한 전략구사로 이슬람 세력에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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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씨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은 2004년을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뿐인가. 2007년에는 탈레반에게 납치되었던 인질들과 엉성한 정부의 교섭 때문에 지금 우리 나라 여행객들은 테러 단체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벼랑 위에 선 미국』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기억은 그 두 기억이었다. 아직도 내 귀에는 살려달라고 호소하던 김선일 씨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온 국민이 마음을 조이며 인질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랬던 기억도 생생하다. 살아있으리라고 무사하리라고 믿었지만 다음 날이 되면 ‘000씨 사망 확인’이라는 기사가 뜨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것만 같았다. 한달 넘게 지속되었던 인질극은 전국민을 무기력증에 빠지게 만들었었다. 책의 저자는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되어 왔던 책들과는 다르게 과격한 논지를 펴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 제목을 처음들었을 때 자기 중심적으로 나아가다가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목표물이 되었던 미국을 지탄하는 내용이 실려 있는 지 알았다. 예전 이라크 전쟁이 비 양심적인 전쟁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내용은 정반대였다. 이 책의 내용은 다분히 국수주의적인 관점에서 쓰여 졌다. 조금 거칠게 책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테러단체들이 극단적으로 나오는데 미국은 너무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는 곤란하지 않은가? 좀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라.’ 솔직히 미국을 실리 추구의 나라로만 파악하고, 이기적인 국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는 충격적인 도서였다. 그동안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들만 읽어서, 이렇게 정반대로 말하는 책이 번역된 것은 관점의 충격이었다. 미국이 어떤 국가인가 선한가, 악한가 판단 내리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가중되어지는 테러의 위협을 경고하며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나라도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종교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요즘 이슬람 포교가 우리나라에 전폭적인 물량공세로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공짜로 이슬람 국가에 유학을 보내준다’고 까지 말하며 포교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취업이 힘든 학생은 기쁜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국의 문화, 생경한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견문을 넓게 해주는 듯한 기분도 들 것이다. 새로운 문화체험, 종교 체험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마크 스타인이 간파한 것처럼 그들이 문화를 타고 안보의 위험이 섞여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태어나 엄격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슬람들은 자유주의 분위기에서 태어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통일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이 책에는 과거 서양인들이 징키스칸 후예에게 공포심을 느꼈던 것과 동일한 공포를 이슬람 사람들에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굉장히 오만한 진술을 만날 수 있다. 인간사랑이 편찬한 번역본 보다 원문을 찾아보면 훨씬 과격하다. “It is absurd: how can the most advanced society in human history fall to death cultists? Well, who do you think advanced societies fall to? Something worse, something barbarous, something prepared to fight when you're not”
자기네 사회를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된 사회(the most advanced society in human history)”라고 지칭하고, 그 적국을 'death cultists'라고 묘사했다. 'death cultists'가 어디를 뜻하는지 다들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death cultists'는 잘못되고, 야만스럽고, 당신이 싸움에 준비되지 않았을 때 싸움을 연마하고 있는 자들이라고까지 쓴다. 이 책은 이런 진술들이 종종 나와서 읽는 동안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쓸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안보 위협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열강이 이슬람을 위협세력으로 본다면 북한도 위협의 대상으로 보여지는 건 당연하다. 3년 전 쯤 일본에 살 때 나는 금방이라도 우리나라가 전쟁이 일어날까봐 매일 염려했다. 조금만 위험요소가 생기면 일본 언론들을 날 뛰며 북한을 비난하고 무서운 존재로 묘사했다.
이 책은 미국이 얼마나 이슬람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는 보여준다. 동시에 그 시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테러단체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 나라에 대한 반성적인 입장을 촉구하고 또한 우리와 어찌되었던 한배를 탈 수밖에 없는 북한까지 고민하게 해준다. 김정일이 병중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급변을 겪고 있는 북한을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열렬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안보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되고 있다. 여러가지 서적이 번역되어야 하는 의의는 바로 이런 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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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위에 선 미국" 뉴욕타임지 선정 베스트셀러 라고 한다.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구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구세계가 이슬람에 포교되어 가고 있다고 믿는 저자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이 미국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서구세계가 미국편에 붙기를 종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캐나다출신의 정치평론가 이자 문화비평가인 '마크 스타인'이라는 저자는 9.11테러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슬람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고 믿으며, 이슬람에 대한 경고와 비판을 넘어 아예 강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조국 캐나다는 미국과의 문화적 유사성이 확일하게 드러난 상태, 즉 같은 언어를 쓰는 이웃한 두국가가 경제로 통합되어 있는 상태이며, 세계에로의 동참이 아닌 미국으로의 동참을 실천 하고있는 국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크 스타인'은 1970년 세계인구중 선진국 인구비율은(30%) 이슬람세계 인구(15%)의 두배정도 이었지만 2000년 이 수치가 같아져 각각 20%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 나라의 인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수 있는 출산율을 대체출산율 이라고 하며 이는 2.1이라고 한다. 선진국가중 미국만이 이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은 1.2내지 1.3정도이며, 유독 이슬람국가들의 출산율만이 대체출산율 이상으로 높다고 한다.
유럽 선진각국의 출산율 저하는 당연히 인구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노령인구의 비중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나라의 대부분은 사회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기 때문에 복지혜택을 받는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국가는 파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젊은사람들의 세금으로 복지기금을 충당하여야 하는데, 출산율 저하로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고, 머지않아 도시는 비게되고, 결국은 이민자들로 그 자리를 메울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이민자들은 출산율이 높은 이슬람들이 될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서구 선진사회 각국에서 이슬람들이 차지하는 인구비율은 계속 높아가고 결국에는 유럽전체가 이슬람화 되어 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슬람에 대한 전문가라고 한다. 그는 지하드를 외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경계를 넘어 증오(?)하고 있다. 이슬람에도 온건주의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온건주의자들도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결국은 9.11테러에 자부심을 느끼는 예비 근본주의자 들이 되고만다. 이슬람 전체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슬람과 테러의 등식을 성립시키기 위해 애쓰는 기독교인의 편견과 오만을 보는것 같아 씁쓰레 하기까지 하다.
9.11테러나 자살테러를 옹호하고 싶은마음 굴뚝만치도 없지만, 저자는 각종 테러를 예로들며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비판과 경계를 촉구하면서도, 성서에 손을얹고 선서를 하는 대통령이 있는나라 미국, 그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학살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아래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행한 만행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양..아니 못본체, 못들은체 하면서 오히려 옹호하고 있기까지 하는 느낌을 주고있다.
그는 또 말하고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한창때 그러했듯이, 이슬람주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불만을 퍼뜨리는 자들이 선택할수 있는 이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 이념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56페이지) 나아가 이슬람은 종교를 정치프로젝트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오늘날의 대역병은 세균이 아니라 이슬람주의 바이러스라고 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나약한 인간의 몸부림과 오만을 보는것 같아, 일제강점기 우리네 지식인들의 자화상이 겹쳐지는것은 나만의 또 다른 편견일까?
저자는 미국대 나머지세계, 즉 이슬람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대 이슬람을 파괴할수있는 세계 중 어느편에 설것인지를 강요하고 있다. 다극화시대, 지나친 패권주의로 고립되어 가고있는 미국, 그러한 미국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관념은 다 사실과 반대이며 미국만큼 역사적으로 가장 온건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패권국은 이제까지는 없었다고 강변하는 저자. 혹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추락이 주는 두려움과 조바심의 표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슬람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는 별도로 서구사회의 사회민주주의가 갖는 위기에 대해서 한번 생각 해볼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다. 출산율이 낮아질때 어떤 위기가 올수 있는지에 대해서... 출산율이 1.3일때 최저저출산율 이라고 하며 이는 한세대후 인구가 반으로 줄어듬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노령인구의 증가로 반으로까진 줄지 않겠지만.. 그리고 역사상 어떤사회도 출산율이 이 지점에 도달한후 헤어 나온적이 없다고 한다. 어제 아침에 본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출산율 1.19명 한국경제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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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외국에 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을 시절에는 이민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나절정도면 지구 반대편으로도 갈 수 있는 지금은 얘기가 다릅니다. 이민을 통해 한 나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민족들이 섞이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한 국가로 묶이게 되면 필요한 것이 '다문화주의'라고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들을 배척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거지요. 우리나라만 해도 이제 농촌에서는 베트남 등지의 새색시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기서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도 우리 민족은 아닐 지언정 우리 나라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우리와 다르게 생겼다고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일단 익숙한 것이 아니면 사람들은 거부감부터 가지기 마련이니까 말이죠. 저도 그렇구요. 하지만 앞을 내다 봤을 때 그런 태도로는 이곳을 꾸려나가기 힘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문화주의'라는 말의 뜻을 좀 더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다문화주의' = 관용 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 이민해오는 이슬람교도들의 편의를 봐주고 그들의 독특한 문화나 관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해줍니다. 말로만 들으면 근사하지만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법을 조금씩 고쳐 이슬람교도들의 법으로 바꾸어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얼마 전에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기술한 책을 읽어서인지 이슬람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이 책을 처음 집었을때는 반발감이 들었습니다. 이슬람문화는 미개하고 이슬람사람들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하고 있어요. 이슬람이 지식에 대한 욕심이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들보다 관용을 더 많이 베푸는 편이었다고 알고 있었던 저에게 이런 문장들은 머리속에서 혼란을 일으켰지요. 열심히 혼자서 정리해 본 결과, 과거의 이슬람에서는 분명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었고 학문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다른 종교의 현자일지라도 그의 덕이 높은 경우에는 그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었죠.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 왜곡되어 그들이 전반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띄고 있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생생한 예가 바로 9/11 쌍둥이빌딩 테러와 런던 지하철 테러, 그리고 스페인에서 있었던 열차 테러 사건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럽에서는 출산율은 낮아지고 이슬람교도들의 이민율이 높아지면서 이슬람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럽에서도 이슬람법 아래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람법과 상충되는 면도 있는 유럽 국가들 고유의 법이 고쳐지거나 없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용을 베푼다는 것이 진정 관용일까요? 자기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면서 좀 더 다채로운 색상을 추가시키는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이렇게 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유럽으로 이민오는 많은 이슬람교도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면 이들의 폭력을 막아낼 수 있는 힘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힘이 없는 문화는 이슬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요.
유럽의 이런 앞선 예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미국은 어떻게 해야할까 살펴보았습니다. 미국은 아직 유럽만큼 출산율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유럽만큼 이슬람인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는 유럽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겁니다. 그렇게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힘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죠. 많은 경우 미국은 모든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긴급하게 대처해야 하는 테러상황에서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때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정부가 뚜렷하고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물론 그 방법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긴 해야겠지만) 재빨리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껏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정책이 행해졌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정부나 정책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네요. 독재정권이 아니라면 말이죠. 반대하는 파가 없을 수 없다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관철시키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이슬람이 온건했더라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이슬람이라는 시스템이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런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겠죠.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도 이슬람교의 범주 아래에 있게 되는 것이죠. 상대방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데 미국이 '어줍잖은 문화 상대주의'(책 속 표현입니다.)로 유한 태도를 보인다면 미국 사람들도 언젠가 이슬람법 아래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책의 논지는 위의 내용과 같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많아지네요. 왜냐면 평소에 나라 차원에서 제공해야 하는 복지가 많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 한몸 편하게 살기 위해 아이 키우는 데 지원이 많이 들어오고 여자들이 사회생활 하기 편해지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아주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제도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어떤 경우 이런 제도들을 악이용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것만 잘 단속하면 세상이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방에 지불할 금액이 모자라게 되고 문화를 위해 힘을 희생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문화와 힘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가 딱 적당한 시점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를 일관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불편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문화주의라는 개념을 조금 확실하게 밝혀봤을 때, 이슬람교도들이 무조건 다른 나라의 스타일에 맞추어 살 필요는 없지만 그 나라의 핵심을 해치치 않는 한도 내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만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양보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라는 속담도 있지만 그런 속담을 적용시키기에는 너무 지금이 현대적인가요?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래 있던 문화를 파괴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의 문화를 관철하는 것은 이민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이 책은 아주 신랄한 어조로 쓰여있어서 읽는 분들이 많이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서양의 정세를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면 저보다 더 쉽게 이 책을 읽으실 수 있게 되겠지요. (저는 역주를 보고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긴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천할 만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제 예상보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하니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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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제국 미국은 저리도 건제한데 무슨 근거로 미국이 고립되어 심지어 벼랑끝까지 밀렸다고 주장하는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세계화와 다문화적인 입장이 대세인데 반대입장에서서 그리도 강경한 주장을 펴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에서도 길을 가다 이슬람 복장의 사람들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날이 갈수록 한국이 이슬람주의의 확산에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식의 다문화주의를 표방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을 읽고보니 미국에서 말하는 다문화주의와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 주의는 그 의미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우리나라에선 미국이나 서구유럽처럼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이 모여 살지 않아 문화나 민족의 차이 보다는 경제적 차이에 따른 구분이 문화에 앞서 사람들은 구분하는 기준이지만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선 문화적 다양성에서 다문화의 입장을 확실하게 제시해준다.
이슬람인구의 확산 다수의 이슬람 인구와 그보다 훨씬 적은 서구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때 이슬람은 유럽과 북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인 동시에 출산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여 이슬람인들의 평균 연령대를 낮추고 있으며, 이슬람의 확산을 부추키는 현상이 되었다. 이는 서구인들이 자식을 낳고 양육하기보다는 인생을 즐기다가 노후에 사회복지 혜택이나 받으며 여생을 즐기겠다는 태도로 인해 출산율 감소로 고령화 사회가 되고, 이는 이슬람의 확산을 막을 수없는 현상으로 만들어버려 결국 미래에는 세계가 이슬람화될 것이라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유럽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이슬람이 주류에 밀려나면 밀려난 가난한 이슬람교도들이 부유한 지역보다 많은 문화적 확산을 보임을 지적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이슬람주의와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와 예를 통해 이슬람안에 잠제된 자하드가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그 종교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며 세계적 테러리즘은 세계적 정치 목적안에 속해있고 이는 경향이 심각한 종교 안에 감싸여 있으며 이종교의 신봉자들은 선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 집단이기에 이슬람은 매우 효과적이고 분권화되고 널리 퍼져 있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잇으며 잘 보이지 읺는 곳으로 숨을 수 있다.
서구의 다문화주의 물론 서구 세계의 위기는 이슬람의 위협 탓만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서구는 이슬람을 위해서 다문화주의란 이름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조치들을 취한다. 강하고 부유한 문화는 약한 문화를 수용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받는쪽에서는 관대함은 약함으로 해석하고 민감하고, 관용적이고, 다문화적으로 되기 쉽다.
벼랑으로 몰린 미국 맥도널드화로 상징되는 경제의 세계화나 그린피스로 상징되는 환경 문제 세계화를 떠올리지만 또 다른 세계화인 테러리즘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세계화되고 조직화 되었다. 이슬람세력이 서구 세계의 핵심부에서 동조자들을 규합하고 있으며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안방까지 차지하고 있다. 서구 세계의 자기혐오와 다문화주의의 이름으로 내어준 양보들이 결국 서구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사우디가 자하드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해진 후에도 더 많은 현금을 그들에세 퍼붓고 있으며 사우디 왕가가 통제하는 오일세입은 전세계 나라들을 매수하는데 쓰이고 미국인들에게 총구를 들이데는 셈이 되었다. 이슬람교로가 되기는 쉬워도 개종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교리로 명확히 하고 잇다. 이는 이슬람이 게속해서 번성하리란 이야기와 같으며 9.11테러 용의자들은 불법 취업자 집단의 일원 이었으며 수백달러와 현금 카드만 있으면 미국에 들어와서 미국을 폭발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들은 미국인들의 대안은 무엇일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글을 쓴 저자의 박식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미국의 블랙 코미디를 시청하는 기분이다. 그들의 정서와 다른 시청자의 입장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다들 웃을때 시기를 놓치고 홀로 가만히 있는 기분. 이 책을 읽으며 대부분 그런 기분이었다.미국은 쓰러져가는 식민지가 아닌 가장 부유한 동맹국에 군대를 주둔시켜 이를통한 조세 수입으로 테러와의 전쟁을하고 있다.그들의 적은 과연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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