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딸이라면 사제는 지팡이를 들어 삼각점이 천장으로 향하게 하며, 아들이라면 마룻바닥을 향하도록 한다. 딸이라면 후주곡은 장조로 연주되고 아들이라면 단조로 연주된다. 2. 월경이 없다면, 자연의 주기와 조화를 이루는 움들의 빛나는 힘이 없다면, 땅을 경작할 수 없을 것이다. 3. '섹스'를 생각하지 않고 '맨움'이란 낱말을 생각할 수 있는 움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맨움의 반란을 성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 그 유명한 "메갈련아..!!!" 소리 듣는다는 작품 완독?? 1975년에 쓰여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감탄을 절로 부르는 미러링의 대모님?? 20년간 여혐민국의 딸로 살았으니, 여생은 이갈리아의 딸로 살고 싶다 |
|
이 책을 여성분들 뿐만 아니라 남성분들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미러링의 쾌감을 얻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한 미러링 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 여성 운동의 역사, 억압의 기원, 성과 계급의 문제, 동성애 논의, 가사 노동에 대한 논의 등에 대해, 의미 구조와 상징체계, 지식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 아무것도 소위 ‘자연 질서’와 조화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인류의 간계였다. 어떤 종류의 인류는 억누르고 다른 종류의 인류는 그들을 착취하고 기생해서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가진 체계적인 간계였다. 노동자계급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맨움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훨씬 더 지독하고 극단적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성적 억압이 계급 억압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극심하기 때문일 거야. 당신이 당신 생각만을 강요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제가 당신을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내 생각에 정말 중요한 것들을 비웃기만 하는데요? 하지만 왜 우리는 만족을 얻는 게 그렇게 힘든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어.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알 낳는 가축으로 생각해. 왜냐하면 사춘기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적인 느낌을 감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욕망을 따르면 당장 아이를 임신시키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두렵고 수치스럽게 만들면서 얘기하기를 꺼리게 만들지. 한 성이 다른 성에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한, 양성 간에 실제로 어떤 차이가 -심리학적으로- 존재하는지 구명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맨움은 실질적인 선택권을 박탈당했으며 오직 두 가지 기능만을 - 노동자로서 그리고 애를 키우는 가축으로서 -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일들 때문에 맨움은 낮은 임금을 받거나 아니면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합니다. 노예 주인이 노예에게 의존하는 것은 노예 국가의 특징입니다. 노예는 주인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어리석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믿게끔 합니다. 그리고 나는 권력 관계를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고 싶단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음 나는 나 자신이 권력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지. |
|
청소년 필독목록에 1번으로 들어가야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 동안 얼마나 당연하게 성차별이 있었는데 모르고 살아왔는지 알게 됩니다. 성별의 지위가 반전된 사회에서 실제 사회의 특권층인 남자가 소설에서 표현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기이한지를 보면 실제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방식과 모습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성차별 문제가 대두 되면서 '옛날에나 그랬지 요즘은 성차별 없다'라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뭘 좀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과연 이걸 읽을까,,, |
|
최근 이슈가 된 여러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는 현재 페미니즘 열풍이다. 미투(me too)와 여권운동이 강렬해질수록 한국 사회에 내재된 성차별 ·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성 관련 ‘문제’ 자체는 어디서나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었으되, 일상 속에서의 보통 사람들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사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도록 받아들이게 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윤리적 민감성을 지닌 사회이므로, 페미니즘의 목표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지지하는 바이다.
한편 페미니즘과 함께 주목받는 이 책의 출판연도를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노골적인 주제를 담은 이 책의 미학적 가치를 내가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19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이 주는 교훈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남녀 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이 아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하거나, 작가의 국적인 노르웨이가 시대적으로 앞서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둘 다 일수도 있고. (참고로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2015 성 불평등지수 순위에서 노르웨이는 세계 6위를 차지했다. 순위가 높을수록 성 불평등 정도가 낮다.) ‘남성과 여성이 성적 구분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당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불공정한 혜택을 누렸던 가부장적 남성이라 할지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성전환자의 예와 같이 이 전제에도 반론을 제기할 순 있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남성은 여성이 될 수 없고, 여성 역시 남성이 될 수 없기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남자로서 같은 남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프게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 점을 인정한 상태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바로 남녀의 사회적 지위와 성역할을 완전히 뒤집어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더 나아가 자연적으로) 완벽하게 여성 우월적 사회를 창조함으로써 문명이라 자부하는 현실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그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는 점에서 성공했으며 박수 받아 마땅하다.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활과 윤리’ 수업시간에 ‘양성평등’을 설명하는데 상당수의 남학생들이 페미니즘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 첫째, 미성년자인 현재 남성들은 같은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권력 측면에서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누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어!’) 둘째, 페미니즘의 목표가 ‘여성 해방’으로 그치지 않고 ‘양성평등’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 ‘여성주의’로 번역되는 –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이퀄리즘’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남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 ‘남성주의’로 번역되는 - ‘매니즘’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반응은 어떠하겠느냐고 덧붙였다.) 그 남학생들은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코리아의 딸들’이 남성을 지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오버스러운) 생각에 두려워했다. (이 얘기를 여학생 반에서 했더니 ‘남자답지 못하다.’는 성차별적 발언이 나왔다.) 우리들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 아내, 딸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에 비해 과거 불이익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며, 그들의 권리 신장은 결과적으로 남성들에게도 이로울 것이라며 학생들의 인식을 교정해 주었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같은 남성의 입장에서)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남성들을 타도의 대상, 즉 적으로 돌리는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의 공감과 협조를 얻지 못해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견해를 성차별적 사고로 간주한다면,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들도 지금 당장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군대를 마땅히 가야 한다고, 갈 수 있다고 여성 스스로 주장해야 한다.) 남성들이 더 반성해야 하는 것은 합당하나, 이 소설을 읽고 통쾌함을 느낄지언정 소설 속 내용(특히 ‘페트로니우스’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여성은 없으리라 기대하는 것도 합당하리라. (‘브램 장관’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야근하다가 과로사하거나 ‘그로’가 물고기를 잡다가 배가 침몰하여 익사하는 내용은 없었다. 성범죄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지만, 산업재해 사고 피해자의 96.46%(2015년, 국내 기준)도 남성이다. 요컨대 이 책이 완전한 데칼코마니 미러링은 아니라는 뜻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의 남성들의 삶도 – 여성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 그리 녹록치 않다.)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성범죄는 주체와 대상이 어떤 성이든 상관없이 –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조차도 – 범죄다. 책의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개인적 일탈 행위를 전적으로 남녀 성적 권력 관계 문제로 환원하여 남성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일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남성들이 동참한다면 여성들이 투쟁하지 않더라도 양성평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어머니의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한 적 없고 오히려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감히 ‘멘움’ 주제에) 나는 아내의 희생을 원치 않으며 반대로 나의 희생을 통해 아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아내 스스로 원치 않으리라 믿고, 아내가 행복해짐으로써 나 역시 – 아내와 함께 더불어 – 행복해지길 바라는 페미니스트다. |
|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껴진 감각은 초반부에 느껴졌던 통쾌함이나 우스움, 유쾌함 따위가 아닌 이 소설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부당한 성차별과 억압을 이겨내기 위한 맨움들의 반발과 노력들을 보면서도 단순한 앙탈정도로 취급하는 움들과 그 사회의 모습이 처음엔 유쾌했지만 점차 현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화가 나더라고요. 현대사회의 미러링 그 자체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문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향한 애잔한 눈빛을 보내고 싶습니다. |
|
나온 지 40년이나 된 이 책이 아직도 읽힐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친구에게 내가 이 책을 어느 부분까지 읽었는지 설명하다가, 내가 움(여성)인 루스 브램 장관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내 실수를 깨닫고 경악했다. 소설이다보니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읽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성별을 바꾸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미러링이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
|
유명한 페미니즘 도서 중 하나라서 구매해서 봤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성 역할이 반전되어있는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가모장제라 할 수 있는, 여성은 가장으로 남성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역할이고 남성은 여성의 보호 아래에서 여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외모를 가꾸고 여성들이 허락한 한정적인 직업을 가지며 무엇보다 가정을 우선하고 신경써서 꾸려가고요. 이미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도서를 꾸준히 봐왔었고,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저항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 책을 보면서 제가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제 하에서 사회적 여성성을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신경써왔던 모든 게 다 부질없고 얼마나 헛된 것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라면 꼭, 아니 모든 사람이 꼭 한번은 읽길 바라는 도서예요. |
| 처음 딱 펼쳤을 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완전히 정반대의 세상이라 웃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기괴한지를 느낄 수 있는 책. 끝까지 불쾌감이 온몸을 감싸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
|
사람을 man 이 아니라 wom 이라고 칭하는 세계관의 이야기다. 첫번째 생각, 지속되는 불평등의 의문 이 미러링된 세계를 읽은 내 첫 감정은 우울함이었다. 잠깐이나마 다른 세계를 엿본 내가 이렇게나 우울한데 어떻게 가부장제라는 불평등한 체제가 이렇게 오래 유지되고 있는걸까?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런 현실은 이미 바뀌었을텐데. 두번째 생각, 의외의 희망 하지만 wom의 세계는 man의 세계만큼 처참하게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연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 알고 그와 조화하며 살아간다. 환경 파괴 같은 것도 작작 하고 있고. 처음에는 끔찍하다고 생각한 이 wom의 세계가, 사실은 현실의 man의 세계보다는 훨씬 이상적인 세계인 것이다. |
|
네네혜택을 통해 평소 읽고 싶었던 이갈리아의 딸들을 저렴하게 구입하였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지 약 50년이 되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그래도 여성들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간다는 사실이 꽤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82년 김지영이 그냥 일상적인 여성의 삶을 그려낸 평범하디 평범한 순한맛이라면, 이 책은 제대로 뇌를 관통시키고 깨우치게 해주는 얼얼한 매운맛입니다. 성별 가리지 않고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