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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을 시사회를 통해 보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건 박열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누구인가? 박열에 관해서는 드문드문
듣고 읽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가네코 후미코는 낯설었다. 그러나
사실 낯선 것은 나의 무관심에 의한 사정일 뿐이었다. 박열에 대해 드문드문 읽은 바를 추적해보면 늘
거기에는 가네코 후미코가 있었다(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냥
무시하고 잊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물을 수 밖에 없다.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누구인가?
그래서 찾은 책이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다. 『가네코 후미코』는
무척 잘 정리된 책이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간의 20년 남짓한 삶을 잘 추적하기도 했으며, 그녀와
박열과의 관계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조망하고 있다.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대역 사건의 전모도 성실하게
추적하고 있으며,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사망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영화에서는 타살의혹을 넌지시 던지는데, 여기서는 자살이지만 전향 공작에
따른 자살. 즉, 타살에 다름없는 자살이라고 본다). 또한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을 일본 민중사와 관련해서도 살펴보고 있다(너무
거창하게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네코 후미코가 쓴 글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러니까 가네코 후미코라는
한 일본인 여성이 한 조선 청년과 함께 일본 천황제와 싸우다 장렬히 산화해간 사연을 성실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그녀의 사상이
박열이라는 인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본과 조선에서의 삶에서 비롯된 독자적인 것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한 싸운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핍박 받는 민중의 편에 선다면 당연히 억압 받는 조선의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열과 그녀는 동지이기도 했지만, 서서 바라보는 방향이 약간 다르기도 했던 셈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조건이 없었기에 개인의 해방을 당연히 앞세울 수 있었고, 따라서 한 가지 질문에 심도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으나 박열은 개인의 해방과 민족의 해방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야마다 쇼지는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불철저함이 박열이 “얼마 안 있어 옥중에서 조신민족으로부터 이반하여 천황제에 굴복하고 전향한 내적 원인”이 되었지 않아 추측하고 있다(영화에서는 박열의 전향을 다루지 않는다. 또한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만을 본 사람은 가네코 후미코를 당돌한, 그러나 심지 굳은 예쁘장한 얼굴의 일본인, 박열이 사랑할, 박열을 사랑한 여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기억하기에는 가네코 후미코는 독자적인 인물이었음을 이 책은 줄기차게 지적한다.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그녀가 박열에게 종속되어 기억된다면 그것도 아이러니인 셈이다. |
| < "자유에 관한 생각이 날카롭지 못한 자의 외국관은 그가 외국에 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진부할 수 밖에 없다." - p.400 > 자기 자신을 국민이나 민족 등, 집단의 일원으로 밖에 구현할 수 없는 사람은 외국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속한 국민, 민족, 집단이 규정하는 추상적 외국관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의 눈과 귀는 이미 국민 혹은 민족이란 틀로 고정되어버렸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사람들로서의 외국(인)을 볼 수 없게 된다. 근대화기의 많은 일본인들이 근대 국민으로 재탄생하면서 필연적으로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인식의 한계가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박열을 자유에 관한 생각이 가네코 후미코보다 날카롭지 못한 인물로 판단한다. 그는 아무래도 자기 자신보다는 민족에 더 육감적으로 반응했고 그가 주장한 '자유'란 실제 경험보다는 상상에 그친다고 본다. 박열에게 자유에 대한 열정은 금새 민족적 억압이란 문제에 흡수된다. 반면 후미코의 경우는 자유 그 자체로 팽창하고 그녀의 자살도 그 자유를 억누르려는 전향공작에 대한 최후의 저항으로 해석된다. 저자 야마다 소지의 그런 관점은 적어도 결과론적으로 사실에 부합한다. 박열은 전향공작에 굴복하여 천황제를 긍정한다. (심지어 해방 후 친일 잔재 청산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일본에서 여러 좌파 계열 중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천황제로 돌변하고 독일의 좌파 계열 중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치즘으로 전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후미코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그녀는 국가(천황)의 공작도 뿌리치고, 천황-가부장제적 일본 근대의 틀 자체를 목숨걸고 거부한 것이다. 그것은 국가도 민족도 가족도 아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일본의 경우 폐번치현과 천황제 확립의 근대화 과정은 개인들을 '국민'으로 동원, 재탄생시키는 과정이었다. 근대화가 국민국가화와 병행되는 것이라면 다나카 쇼조나 가네코 후미코란 존재는 그런 방식의 근대를 뛰어넘어 삶의 구체적 경험에 바탕하여 탄생하는 '자율적인 개인'을 대표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일본 사상사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치를 높이 평가한다. 이 책의 부제,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란 말은 일본에서와 달리 여기 한국에서는 퇴행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며 이 책이 추구하는 주제와도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일본의 맥락에서 쓰인 부제라면 '민족적 정체성을 초월한 이상(혹은 개인)'을 의미하겠으나, 한국의 맥락에서 쓰인다면 후미코가 '조선 민족의 불행'이란 집단적 동원 코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의 민족주의적 우월감(피해의식)을 노린 상업적 고려로 오인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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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타면서 터미널에서 한겨레 신문을 사 집어들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그렇듯 토요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북섹션이 따로 있는데, 그 중 내 이목을 끈 글이 있었다. 출판사 대표가 자신들이 자신있게 출간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안타까웠던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매우 강한 느낌으로 글이 다가왔다. (기사 참조) 결국, 참지 못하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교보문고에 들러 그 좋다는 책을 냉큼 충동적으로 구매해버리고 말았다. ‘가네코 후미코’ 라는 책을. 가네코 후미코는 23세에 요절해버린 일본 여성이다. 조선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박열의 동지이자 아내였으며, ‘천황 폐하’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쓰고 무기징역형을 받던 중 자살로써 그 짧은 삶을 끝맺는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가 살았던 삶의 궤적을 세세하게 뒤따르면서 때론 상상력을 가미하여 재구성해놓는다. 어느덧 주인공인 가네코 후미코에게 바싹 다가서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짧은 스물 세 해는 오롯이 독자 앞에 나타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인 저자의 치밀한 고증과 연구는 이런 현장성의 바탕이 된다. 야마다 쇼지가 책을 쓰기 위해 검토했다는 관련 자료 목록은 웬만한 논문 이상의 것이다. 백여 년 전에 이 세상을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을 통해서, 슬며시 내 삶과 비교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빠르게 반응했던 부분은 지리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친척들로부터 갖은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충북 부강은 유년시절, 내가 조부모님 댁에 기차를 타고 갈 때 외며 귀여움을 받았던 ‘대전-회덕-신탄진-매포-부강-내판-조치원’의 그 부강이라는 것은 신기하다기 보다, 가슴을 저미게 했다. 자살을 생각했을만큼 고통스러웠던 그녀의 유년시절이 내 어릴 적과 자연스럽게 겹쳐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나로 하여금 또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적어도 내가 읽고 이해한 바로는, 그녀의 삶을 규정한 것은 그녀의 환경이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그녀가 겪었던 비정상적일만큼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과, 주변 사람들의 학대는 그녀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식민지 조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근원적으로는 그녀가 갖게 된 피해자 중심의 입장 때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적어도 관동대학살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미끼로 걸려들었던 ‘불령사 천황 암살미수 사건’에 말려들 때까지도 가네코 후미코를 대단한 아나키스트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야마다 쇼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환경결정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가 수 년에 걸친 재판을 자신의 모국인 일본과 제국주의에 대한 싸움터로 규정한 채 치열한 사상적 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그녀의 지적, 사상적 성장과 무관하지 않으며, 저자는 전체에 맞서 개인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했던 그녀의 위치가 현대 일본 사회에 있어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재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삶이 내게 인상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얼마만큼의 사상적 위치를 차지하는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 가졌던 불완전성에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의 시간 딱 그만큼만의 삶 속에서 그녀는 비슷한 연배의 또래들이 겪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투쟁의 장이었던 재판 과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광기라고 할 만큼의 열정이다. 그것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스물 세 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이 사상가로서 대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충분한 나이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썩 좋아하지 않는 충동구매를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전에 읽었던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이 느끼게 해 주었던 감정이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에서 언급되었던, 신 선생님의 스승이라는 이구영 선생님이 기사 속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었기도 한 것 같다. 가슴 속에 다시금 불을 지펴주고 떠난 가네코 후미코는 또 어떤 책을 내게 소개시켜줄 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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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그녀의 삶을 배우고 싶다!! 가네코 후미코(야마다 쇼지 지음 / 정선태 옮김 / 산처럼 )는 1920년대 치열한 삶을 살아간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녀의 이름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 귀에 각인된 것은 작년 ‘박열’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던 무렵인 듯하다. 그녀를 알기 보다는 박열이라는 사람의 연관검색어쯤으로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열이라는 사람보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자에게 쏠리는 나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녀의 사상과 삶에 대한 나의 가슴앓이는 시작되었다. 우연히 언니의 책장에 ‘가네코 후미코’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바로 빌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그녀를 알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꽤 고민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그녀의 당당했던 삶과 사랑 그리고 사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박열과의 동거 계약서에서 보듯이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그 반대로 혜택 받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녀는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며 조선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박열과 함께 사상투쟁을 전개한다. 어떤 사람보다 더 강렬하고 열심히 살았던 그녀!! 가네코 후미코. 짧았기에 더욱더 불타올랐고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픈 그녀의 삶. 박열과 사상적 동지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이로서 당당히 삶을 살았던 그녀!! 그녀의 삶과 투쟁은 현재의 우리의 상황에서도 하기 힘들 일인 듯하다. 어떤 사상적 힘이 그녀를 그토록 투쟁적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그녀의 짧고 강렬한 삶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무서우리만큼 당당했던 그녀를 항상 기억하고 싶다. ‘만약 그때 박열이 내게 김한과의 일을 상의했더라면 과연 내가 반대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모르긴 해도 신뢰하고 맡겼을 것입니다.“(재판기록) “내가 나 자신의 행위에 요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자신을 위해 자신을 표준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내가 ‘올바르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완전히 ‘자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답한다-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동은 살아가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행위가 있고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을 때. 그 행위가 비록 육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하더라고 그것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라고 (재판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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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인으로 태어나 박열의 천황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어 자살하기까지 그녀의 기구한 운명과 사상사를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독특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아나키스트로서 그녀의 사상형성에 관심이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알면 알 수록 그녀는 어떤 행동을 했으며,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면 알 수록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주제이다. 다 읽고 나니, 그녀의 인간상은 읽기전에 혼자서 상상했던 강렬한 아나키스트 또는 독립투사로서의 모습이 의외로 아니었다. 일전에 이 책의 서문을 소개한 바 있는데, 서문을 통해 좀 더 궁금증이 증폭될 것이라 생각한다. :) 이 책은 일본인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고, 왜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는가는 말미에 소개된 저자 후기에 나와있다. 이 저자후기도 좀 인상깊었는데, 저자는 일본인이 안고 있는 역사적 부채를 직시 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여 한단계 더 진보하기 위한 과정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부를 발췌해 본다. p461-462
이 책은 그녀의 전기라 생각될 만큼 그녀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의 환경과 개인적인 생활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무척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어보면 정말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없다. 진짜. 학대받고 불우했던 그녀의 어린시절로 뛰어넘어가서 우리집에 데려오고 싶어질 정도다-_- 그녀의 재판을 담당한 예심판사조차 그녀의 수기를 읽고 세상을 저주할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그녀가 니힐리즘 계열의 아나키스트로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무척 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그녀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는데, 내용자체에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너무 많이 녹아 들어있는 것이 약간 흠이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 조사의 방대함과 구성의 치밀함에 대해서는 상당히 존경할만 하고 따라서 이 책의 가치도 높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에 의해 그녀의 자서전과 편지의 많은 정보들이 검열삭제 당하였고, 달변인 그녀가 상식적으로 당연히 작성했을 유서조차 누군가에게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서 잃어버린 정보가 기본적으로 너무 많다. 정보수집에 대한 비협조적인 형무소의 태도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다음 주석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p494-495
그녀는 수감당시 일본은 그녀의 시신을 거둬주지 못할 것 같아, 박열과 옥중결혼을 하였고, 따라서 조선땅에 묻히게 되었다. 그녀의 무덤은 현재 경북 문경시 박열 기념관 뒤편에 안장되어 있다. 참고로 당시 박열과 가네코를 변호한 사람 중 한 명은 일전에 소개한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이다. 책의 전반부는 그녀의 성장과정, 중반부에는 그녀와 박열의 검거과정 및 재판과정을 다루고 있고 책의 말미에는 그녀의 사상형성과정과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에서 천황사상이 형성하는 과정까지 설명하고 있어 유익하다. 특히 책의 말미에 있는 천황사상이 형성화는 과정에서 메이지 유신 초기에는 일본에 천황사상이 거의 없었는데 급격히 천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근대사상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 부분이 약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딱딱한 주제의 책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한겨레 기사로 출판사 대표의 책 소개글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할 것이다. :) |
| 박열의 정신적, 육체적 동반자랄 수 있는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평범과는 멀고 먼 성장기를 거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자의식을 키워 자신만의 신념으로 살다간 여인이다. 솔직히 책소개나 뭐 기타 등등 나의 기대치를 상승시킬만한 많은 장치들이 존재했지만, 기대 이하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은 사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느낌, 기대했던 박열이란 인물의 심약함, 변덕스러움(물론 드러나 있는 성향이라기 보다는 유추되는 것에 가깝지만)정도의 요인이 그랬다는것. 타 국민의 독립성을 확보키 위해서라기 보다는 기존 체제에 대한 강한 반발이 가네코 후미코를 있게 한 원동력이랄 수 있겠다. 사상 검열이 극심했던 당시니 만큼, 많은 자료 확보가 어려웠겠지만,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었던 듯하다. 또 하나의 교훈이라면.... 책 제목과 서평에 휩쓸리지 말자.. 정도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