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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적자생존(適者生存), 야성(野性)을 불러일으키다.
"[11-46] 적자생존(適者生存), 야성(野性)을 불러일으키다." 내용보기
잭 런던이 살았던 19세기 말은, 사회진화론에 따라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살아남는 자가 모든 것을 획득하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여겼던 시절이다. 동시에 이러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는 ‘과학’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이 시절의 강자들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이 ‘진리’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인 잭 런던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야성
"[11-46] 적자생존(適者生存), 야성(野性)을 불러일으키다." 내용보기

런던이 살았던 19세기 말은, 사회진화론에 따라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살아남는 자가 모든 것을 획득하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여겼던 시절이다. 동시에 이러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는 과학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이 시절의 강자들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이 진리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인 잭 런던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야성이 부르는 소리가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것은 단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저자의 필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소설 자체의 힘 못지않게, 서부 개척의 과정에서 무수히 흘린 사악한인디언의 피 따위는 무시하고 단지 백인들의 프런티어 정신만 떠올리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이 웨스턴 무비처럼 하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은 양지바른 산타클라라 계곡에 있는 밀러 판사의 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었다. 하지만, “의 평온한 삶은 도박에 중독된, 정원사의 조수들 가운데 하나인 매뉴얼에 의해 유괴되어 썰매견으로 팔려가면서 변하게 된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에 의해, 뜻하지 않게 날벼락을 맞게 된 은 처음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항하였지만 결국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에 버티지 못하고 순응하게 된다.

 “이 팔려가서 처음 맞은 주인은, 다행히 공정하면서도 개들의 습성을 훤히 꿰뚫고 있는, 페로와 프랑수아 였다.

 “의 첫임무는 페로와 프랑수아를 도와 캐나다 정부의 우편배달 업무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은 다른 개의 어이없는 죽음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새로운 세상에 대해 온몸으로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평화도 휴식도 한 순간의 안전도 없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떠들썩했으며, 시시각각 생명과 사지를 위협하는 위험이 도사렸다.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1) 만약 방심했다가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는 개떼들에 의해 순식간에 고기덩어리가 돼버린다.

 

과 그의 동료들에게 불운이었던 것은 거의 한계치까지 부림을 당한 후에 거의 휴식 없이 무능하고 무계획적인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개를 부릴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개들은 하나하나 떨어져나갈 수 밖에 없었다.) 쓰러진 첫 타자는 더브였다. 어깨뼈를 삐었는데도 치료도 못 받고 휴식도 못 취한 탓에 증상이 점점 악화돼 결국에는 할이 대형 콜트 권총으로 녀석을 쏘아 죽였다.2)

 결국 , 그의 동료들도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몽둥이나 채찍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썰매를 끌 수 있을 때는 끌었다. 더 이상 끌 수 없을 때는 쓰러져 있다가 몽둥이나 채찍이 날아오면 다시 일어섰다. 그의 아름답던 털은 빳빳함과 윤기를 잃었다. 털은 축 늘어져 흐느적거렸고, 할의 몽둥이에 맞은 상처부위에는 마른 피가 엉겨 붙었다. 근육은 쇠약해져 울퉁불퉁한 힘줄만 남았고 살집이 사라졌으며, 살이 빠져서 생긴 주름지고 늘어난 가죽 사이로는 갈비뼈와 온갖 뼈들이 선명하게 들러났다.3)

 

런 상황에서 을 구원해 준 것은 손턴이었다. 그는 에게 문명사회에서의 마지막 행복을 안겨주었다.

 손턴이 벅에게 눈뜨게 해준 것은 뜨겁게 불타오르고, 흠모하고, 열광하는 사랑이었다.

 목숨을 구해준 것, 그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손턴은 그 이상으로 이상적인 주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무감에서나 일의 편의상 개들의 복지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손턴은 천성이 그래서인지 개들을 제 자식들인 양 신경 썼다.4)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러한 고용주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그러한 고용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 행복은 조그마한 불씨처럼 쉽게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 덩치 큰 수컷 무스를 잡으러 간 사이에 이하트족 인디언들에 의해 손턴 일행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 문명사회와의 끈을 끊고, 야만사회 아니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의 형제들인 늑대들과 함께……

 

쩌면 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교까지 부모의 따뜻한 품에 안겨 사회의 냉혹함을 전혀 모르다가 맨몸으로 찬바람이 부는 광야에 떨어진 것처럼 도 그렇게 썰매견으로 팔려왔으니까……

 그리고 불의에 반항하던 젊은 패기가 점차 사회에 길들여지는 과정은 마치 이 몽둥이와 어금니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각해보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필요에 의해 다른 존재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문명사회에서는 필요 없이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다른 존재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희생을 피하기 위해 남을 짓밟고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양심도 도덕성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멀리 갈필요도 없이 청문회장에서 보여지는 장관후보들의 모습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읽을 수록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 하고, 읽는 사람이에게 자신을 이입할 수 밖에 없게 강한 흡입력을 가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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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런던, <야성이 부르는 소리>, 곽영미 옮김, (궁리, 2009), p. 25

2) 런던, 앞의 , p. 84

3) 런던, 앞의 , P. 87

4) 런던, 앞의 , P. 97

w******f 2011.08.09.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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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야만을 만났을 때
"문명이 야만을 만났을 때" 내용보기
책은 잭 런던의 <야성이 부르는 소리>, <불을 피우기 위해>,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세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소설이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 무명의 잭 런던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야성에 대한 미국인의 환상이 이 소설에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부 개척의 과정을 '프론티어 정신'으로 미화하면 그리
"문명이 야만을 만났을 때" 내용보기
책은 잭 런던의 <야성이 부르는 소리>, <불을 피우기 위해>,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세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소설이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 무명의 잭 런던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야성에 대한 미국인의 환상이 이 소설에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부 개척의 과정을 '프론티어 정신'으로 미화하면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에게 폭력과 적자 생존의 법칙만이 통용된 곳에서의 '생존'이라는 주제는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본능만으로 무장한 채, 극한의 추위와 무자비한 폭력을 견뎌나가는 개가 드디어 자연을 정복하고 왕좌에 오르는 이야기는 총 한자루만으로 인디언의 숲을 누비는 서부영화와 자꾸 오버랩 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잭 런던을 미국 내 가장 많은 돈을 번 작가가 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잭 런던이 살았던 19세기 말은 초기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던 시기였고 사회주의 작가였던 잭 런던은 힘의 논리가 지배되던 그 사회를 소설을 통해 묘사하면서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피튀기는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잭 런던이 찾은 살아남은 방법은 튼튼한 육체와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생존본능이었다. 가장 강한 개였던 '벅'만이 그 사투에서 살아남고 나머지 개들이 전부 죽음 당하는 과정은 철저한 적자생존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평에서는 그의 이런 사상을 다윈의 적자생존,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니체의 초인사상과 연관시키고 있다.

 

잭 런던은 미국 최고의 사회주의 작가이자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소설가, 낭만적 이상주의자이자 과학적 사실주의자, 과격한 선동가이자 온정적 연민가, 노동자들의 친구이자 자본주의 정신의 표상, 시대의 희생자이자 스스로 만든 늪에 빠진 도피자 등등으로 불리는 모순에 찬 사람이었다고 한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가 가지는 이런 두 가지 이미지가 그의 이런한 삶이 반영된 것이었구나라고 이해하게 된다. 순수한 창작열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대중적인 통속소설을 썼던 작가라니... 적응과 순응을 강조하는 미국판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의 필력은 상당하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이야기에 독자를 흡입시키는 능력이 대단해서 매우 재미있게 읽은 것은 확실하다. 다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진화론적 법칙이 읽으면서 불편했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불을 피우기 위해>, 사투하는 인간의 모습. 결국 죽어가는 인간. 도둑당한 신부를 되찾기 위한 인디언 남자의 긴 여행을 그리는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 두 편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c****m 2009.12.1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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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는 땅, 알래스카
"혹독한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는 땅, 알래스카" 내용보기
잭 런던의 책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십여년전 강철군화를 읽으면서였다. 그러다가 작년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잭 런던 걸작선을 펴내면서 비포 아담을 읽게 되었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 올 여름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게 되었다. 이건 아마도 몇달전에 읽은 다니구치 지로의 동토의 여행자 때문이리라. 동토의 여행자에 수록된 작품 중 잭 런던의 화이트 팽을 바탕으로 한 만화가 있었
"혹독한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는 땅, 알래스카" 내용보기
잭 런던의 책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십여년전 강철군화를 읽으면서였다. 그러다가 작년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잭 런던 걸작선을 펴내면서 비포 아담을 읽게 되었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 올 여름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게 되었다. 이건 아마도 몇달전에 읽은 다니구치 지로의 동토의 여행자 때문이리라. 동토의 여행자에 수록된 작품 중 잭 런던의 화이트 팽을 바탕으로 한 만화가 있었고, 그때문에 잭 런던의 소설 중 알래스카를 무대로 하는 또다른 작품인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기 때문이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는 총 세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벅이라는 개를 주인공으로 혹한의 알래스카에서 살아남으며 자신의 본성을 되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뜻한 남쪽 지방, 판사의 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던 벅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알래스카의 썰매견으로 팔리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에게 반항하고,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던 벅은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에 순응하며 서서히 적응해나가게 된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벅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1800년대 말,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금광때문에 골드 러시가 일어나게 되고, 그곳에 수많은 백인들이 찾아간다. 얼음과 눈의 땅이 알래스카를 횡단하기 위해서는 썰매개처럼 유용한 운송 수단이 없었고, 벅을 비롯해 수많은 개들이 썰매개로서 이용된다.  

단지 운송 수단으로 이용되던 개들에 대한 인간들의 학대, 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서열 다툼과 썰매개로서 이용되는 개들의 참혹한 죽음 등은 너무나 잔혹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개들은 그저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된다. 따라서 벅은 이 사람에게 팔렸다가 저사람에게 팔렸다가 하는 물건 이상의 효용가치이외의 가치는 없었다. 게다가 개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다른 개들을 비롯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늑대들에게도 맞서야 한다.

인간의 지배하에 있지만 혹독한 자연과 자신의 목을 물어 뜯으려는 다른 개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한 알래스카는 생존의 각축장이자 벅에게 숨겨진 본성을 조금씩 드러내게 만든 야생이기도 했다. 썰매개로서의 주인에 대한 복종, 썰매개들 사이의 우두머리 각축전등은 잔혹하기만 했다. 야생에서는 인간보다 더 강한 존재이지만, 몽둥이에 길들여져 인간의 종속물이 된 썰매개들. 벅도 그렇지만, 난 특히 데이브의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다 죽어갈 지경이 되어서도 썰매를 끌기 위해 움직이던 데이브. 죽어가면서도 썰매을 끄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는 데이브를 보면서 인간은 저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 존재하는 알래스카에서 벅은 손턴이라는 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손턴이 키우는 개들을 만나면서 개들사이에서도 엄니의 법칙만으로 지배와 피지배가 아닌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손턴과 손턴의 개들의 죽음으로 벅은 완전히 야생으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자신을 붙잡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벅은 세퍼드와 세인트 버나드의 잡종으로 몸무게만 70KG에 육박하는 초대형견이다. 따라서 개의 조상인 늑대의 피를 많이 물려받은 개이기도 하다. 벅의 몸속을 타고 흐르는 야성의 유전자, 그리고 좋은 머리와 타고난 보스기질은 벅을 생존의 각축장에서 살아남게 만들었다. 만약 벅이 유약한 성향을 가진 개였다면 알래스카에 끌려가기도 전에 수명이 다했을지도 모르겠다. 벅이 생각하는 것중에 무척 인상깊었던 것은 양심이나 도덕성은 야생에서의 삶에서 사치요 허영이란 것이었다. 생존이란 것 앞에서는 어쩌면 도덕성이란 것은 따질수 없을 정도의 무가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명화된 인간사회.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은 문명화될 수록 야만성이 더 커진다. 야생에서는 필요를 위해 희생이 불가분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목적에 의한 희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사람을 짓밟고 우위에 올라서려 한다. 그러는 동안 양심도 도덕성도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사회 아래에서는....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으면서도 인간 사회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두번째 수록작품인 불을 필우기 위하여는 무척이나 짧은 단편이다. 알래스카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길을 떠난 한 남자. 극한의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생존을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스러지고만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굴복했다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의연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쩌면 인간의 가소로운 자존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작품인 북쪽 땅의 오디세이야는 원주민들의 땅에 들어온 백인과 그 땅의 부족장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여인을 백인에게 빼앗긴 아쿠탄의 추장 나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친다. 유색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처음 보는 세상에 힘겨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행적을 쫓아간 나스. 그런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여인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렸다. 그새 백인 사회에 물들여져 자신의 기반이었던 고향을 싸그리 잊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짧지만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평화로운 공존의 땅에 침략한 백인들의 원주민에 대한 만행은 이루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연과 공존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살던 원주민들을 문명화시킨답시고 백인들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은 원주민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소수부족이 사라지고,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편 모두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골드 러시 당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개, 백인, 그리고 원주민의 추장을 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알래스카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러한 것은 작가 잭 런던이 직접 알래스카에서 2년간 생활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잔혹한 존재도 혹독한 존재도 아니다. 자연이 잔혹하고, 혹독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자연은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고 있다. 거대한 존재인 자연앞에서는 인간도 그 일부일뿐이다. 벅이 본성을 찾고 야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지배하기 보다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벅도 자연의 법칙을 따랐다. 오직 인간만이 그렇지 못할 뿐이다. 지금도....

y*****5 2010.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