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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열한 개의 계단이면 충분하다. 어떤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다. p19 열한계단은...문학, 기독교 ,불교 ,철학, 과학, 이상, 현실, 삶, 죽음, 나, 초월 이렇게... 열한 계단이다. 파트별로 짤막하게 적혀있어서, 짬내서 읽기 좋다. 나는...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여행하는 영혼 책을 선택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첫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책을 선택한다. 하나의 책을 읽고 지식을 쌓으면, 다음에는 지식을 더 깊게 하기 위해 비슷한 분야의 책을 다시 선택한다. 하나의 분야에서 그의 지식은 깊어지고,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간다. 이 사람은 우물을 파는 영혼을 가졌다. 두 번째 사람은 자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선택한다. 하나의 책을 읽고 그 지혜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면, 다음에는 앞선 책에서 얻은 세계관을 뒤흔드는 책을 선택한다. 그에게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강인함이 있다. 또 기존에 움켜쥐었던 세계를 미련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도 지니고 있다. 세계의 지평은 점차 넓어진다. 이 사람은 여행하는 영혼을 가졌다.p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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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이 5개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책을 펼치고 저자의 말이 시작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삶에 쫒기어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한 최근 몇년간의 숨가쁜 시간들이 있었지만, 정말 알기쉽게 그러면서도 감동적이게도 저자의 지식,지혜의 성장과정을 그리며
저자가 주장하는 2가지 독서방법중 익숙한 책을 심도있게 반복하며 깊이 파고드는 방법이 아닌, 문학(죄와벌)을 통해 첫 계단을 올라선 후, 기독교-불교-철학-과학-이상-현실-삶-죽음-나의 열계단을 거쳐 '나'를 벗어날 수 없는 '나'의 경계선인 마지막 열한계단에 올라선다.
계단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어렵고 심오한 주제들이다.
첫 계단'죄와벌'속으로 들어가 나는 '진행자'가 되어 주인공 로쟈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선구적인 영웅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둘째 계단 '기독교'이야기 에서 '재수생'인 당시의 나는 '예수'를 따라가며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궁금해하는, 오늘날 기독교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의혹들에 시원스레 물어본다.
세월흐름에 따른 성장에 따라 입대예정자, 회사원, 때론 환자의 처지가 되어 난해한 철학, 우주, 삶과 죽음에 대해 묻고 답하며 한계단 한계단 전진한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지적 허영심으로 두세번 수박 겉핡기로 훑고나서도 그야 말로 겉조차 알 수 없었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삶의 문제에 이르러 소사와의 대화에서는 삶을 지나 죽음의 계단을 거쳐 열번째 계단에서 '나'와 마주할때쯤, "범아일여의 깨달음이 영원한 자유에 이르게 하고, 그것은 윤회의 고리를 끊고 너를 놓아줄것이다."라는 우파니샤드의 가름침은 허무를 넘어 나를 극복하고 열한번째 초월의 계단에 올라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마지막 계단 '나'를 극복할 수 없는 출구가 없는 계단에서, 미래에 다음 계단이 눈에 나타나길 희망한다.
책을 덮었다.
책제목의 '계단'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단순히 저자의 지적사고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것이다. 책의 시작에 '읽기전에'를 통해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으면 이책이 실제 말하려는 바를 이해할수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순차적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라고 경고(?)하여 그 의미를 어림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계단 하나하나는 각각이지만, 각각의 계단의 각자 자신이 있어야 할 높이에서 있어야 진정한 계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계단 하나로서는 그냥 단순한 '턱'의 역할 밖에 할수 없다. 계단과 계단이 만나고 계단에서 다음 높이의 계단으로 이어지며 목표를 향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나는 내 삶의 어느 계단쯤에 서 있는가? 제대로 위로 올라서고 있는지? 혹여나 낮은 계단으로 곤두박칠 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무래도 지금 나에게는 이책 열번째 계단에서 말하고 있는, 아무 말도없이 깊은 내면으로 고독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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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 사심 가득 독후감 주의, 스크롤
주의, 평소와 같은 독후감 못 씀 주의, 두서없음 주의, 개인사 대량 방출 주의 – 책만 알고 싶으시다면 인용문이
있는 부분부터 읽으세요^^)
이 책을 왜 구입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난다. 바로 작년 오늘 난
정말 ‘채사장’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이 책을 샀다. 자서전적인 내용의 책이 참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이유로 사두고도 나중에 읽어보지 싶은 마음에 미뤄뒀었다. 왠지 그가 출간한 책들을 차례대로
읽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15년 말 겨울. 임신도 수월하게 되었고, 입덧도 전혀 없어 다들 임신 체질이라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아기가 빨리 나올 수도 있다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조산위험. 덕분에 침대에 갇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을 줄이면서나마 앉아 있을 수는 있으니 내 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병원으로부터 강력한 권고를 듣게 되었고, 결국에는 대학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하게 되었다. 철저히 내 생활은 없어졌고, 내가 하는 거라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일뿐이었다. 한없이 비참했다. 2017년까지 우울로 얼룩지게 만든 나의 우울증은 이 때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한없이 쓸모 없는 인간이 된 듯 했다. 임신으로 인해 호르몬이 날뛰어서
더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미친듯이 울다가도, 아기한테 안
좋을 거란 생각에 울면서 입은 웃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정말 누가 옆에서 봤으면 미친 사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독서를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책 읽는 산모였다. 침대 옆에는 몇 권의 책이 항상 쌓여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우울해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들이 있었다. 폰 게임을 하고 웹툰을 읽기
시작했다. 웹툰도 무겁고 스토리가 방대한 것들은 싫어, 한
없이 가벼운 것들만 읽었다. 폰에 게임을 세 개를 깔아 돌아가면서 하기 시작했다. 귀가 심심했다. 그 전에는 팟캐스트가 뭔지도 몰랐다.
팟캐스트 중에 지대넓얕을 듣는 게 아니라, 지대넓얕만을 듣게 된 이유다. 그 때 그나마 지적인 내 욕구를 채워주는 (적어도 가만히 누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그러면서 즐거운,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아 외로움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지대넓얕은 나에게 단순한 팟캐스트 방송 중에 하나가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나약하던 시기에
내 곁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어준 친구다. 지금도 다른 팟캐스트는 들을 생각이 없고, 지대넓얕만 반복해서 계속 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이
듣는 것 같은 건 왜 일까-_-;;)
이 책을 사고는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읽을 시기를 놓쳤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너무 늦지 않게 읽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강연 이후 푹 빠진 ‘채사장’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나마 조금이나마, 알게 될 수 있어서 기뻤다. 이런 삶을 살았던 거구나, 그래서 그런 사고관념을 가지게 되었구나. 내가 ‘채사장’이라는 사람이 좋은 이유는 이러한 인생을 걸쳐 인생을 살아
만들어진 지금의 그 모습을 좋아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인지 라는 말은 그런 모든
과거의 일들도 아끼고, 존중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채사장 책은 다 읽었지만 그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좋은 건, 가장 진솔하고 가장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제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서론만 500자라닠ㅋㅋㅋ) 확실한 건 채사장의
필력이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채사장이 글을 편하고, 쉽게
쓴다는 데는 동의할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도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철학적으로 쓰지 않았다. 과학 부분
빼고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은 너무 어렵다.. 이렇게 쉽게 써줬는데도 어렵다..) 게다가 팟캐스트를 너무 많이
들은 나는 그의 육성으로 청독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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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다. 이제 기존의 세계는 해체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 더 높은 단계에서 나의 세계가 재구성될 것이다. 하나의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이다. (p.19)
채사장은 성장을 위해 불편한 책을 읽을 것을 권고한다. 채사장의 말
스타일은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아요. 근데 이것도 좀 생각해봐줘요,
식이 많다. 다양성을 존중해준다. 이 책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가 권해주는 불편한 책들이 마음에 든다. 심지어
생각이 많아진 요즘의 내게 길잡이 되어 줄 것 같은 책들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 성경책을 읽어볼까
싶은 생각을 많이 하는데, 확고히 결심했다.)
책의 전반부 ‘죄와 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경우는 워낙 강연이나 방송에서 많이 이야기 했던 지라,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한 번 글로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주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끔은
아예 똑같은 듯한 문구들도 눈에 띄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련 부분은 건너뛰고 읽어도
좋다. (채사장은 차례대로 잘 읽어 줄 것을 바란다.) 뒷
부분의 ‘티벳 사자의 서’의 책에서부터도 사실 팟캐스트에서
자주 이야기 하던 내용이다. 단편적으로 들을 때는 또 그 이야기군,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계단씩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오다 보니 너무나도 다른 느낌의
내용이라 다르게 와닿았다. 내가 직접 읽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답은 불분명하다. 어쨌건 이 책들을 읽어 볼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저자나 가수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들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등 표면적인 이야기를 여러 번 듣기는 했지만,
채사장의 대화 내용을 보며 꽤나 충격적이었고, 놀랍고, 깊게
마음이 갔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대화 부분들은 읽고 또
읽었다. 나도 채사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라며 읽고 또 읽었다.
이 부분은 집에
도착해 내리기 전에 잠시 읽고 내리려다,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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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 혹시 놓고 온 것이 있어서 불러 세운
것은 아닐까요? (중략) 아니면,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아서 불러 세웠을 수도 있지요. 지금 무엇을
가져가고 있나요? 당신 혼자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지키려는 것들은 뒤에 버려진 채 당신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의 이상. 모두 뒤에 있는 걸요. (p.313) (중략) 삶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만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선택해야 해요. 받아들여 해석할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고 고통을 지속할 것인가. (p. 314) (중략) 당신은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지만 반 쪽짜리
삶이었지요. 굳이 이상을 저 멀리 내팽개칠 필요는 없었어요. 지금처럼
현실을 묵묵히 걸어가세요. 동시에 언젠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이상도 함께 품고 가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p.315)
팟캐스트에서 채사장이 이 가수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다른 곳?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이제 채사장이
왜 이 가수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지 알 것 같다. 지금도 흐르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슬프고, 아련하며, 따뜻하다. 내가 느끼는 걸 당신이 느끼진 않을 것이다. 채사장이 느꼈던 걸
내가 느끼고 있는 건 아닐테지. 하지만 꼭,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내용을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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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놀라워하며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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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세계는 단지 내 마음의 환영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동일하니, 삶의 세계도 사실은 내 마음의 환영일 뿐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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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이 곧 존재의 근원이다. 본래 텅 비어
있고, 모습도 없고, 색깔도 없는 빛. 이러한 빛이 곧 나의 마음, 나의 ‘의식’이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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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삼바바 : 허망해하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해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만들지 마라. 심판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를 심판하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p.359)
파드마삼바바 라는 이름을 내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팟캐스트 듣기
이 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얼마나 자주 채사장이 이야기 했으면 외우고 있는 그 이름. 모든 근원은 나다. 나에 대한 고찰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책인 듯
하다. 어떤 상황이든 결국 나만 존재한다. 세계는 피상적인
것일 뿐, 중요하지도, 연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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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당신이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p.391)
내가 유일한 주인공이다. 이겨내고,
깨닫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든 과정들이 결국에는 내가 나임을,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그러므로 나를 소중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의
책만 본다면 더 이상의 단계는 없을 듯 하다. 그 위에 무엇이 있을까.
모든 것을 초월했다고 이야기 하는 그에게 무엇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경계를 볼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도 경계가 어찌 분명하게 보이겠는가. 그의 경계가 그에게 보이지 않는데, 나에게 보일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다음 계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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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 때 내 눈의 안개는 걷히고, 가려져 있던 다음 계단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여기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편안함을 떨쳐내고 불편한 세계를 향해 한 발을 더 내디딜 것인 것. (p.404)
내가 그와 같은 계단을 오르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계단들을 예시로 관찰해보면서 나의 계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항상 그를 응원할 것이다. 그는 나의 친구니까. 내 든든한 마음의 의지이니까.
채사장은 책에
대한 모든 리뷰를 읽으신다 하셨다. 문득 궁금하다. 내 이야기는
그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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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이 '지대넓얕'을 진행하던 게 10년이 넘은 것 같다. 글자 그대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표방하는 팟캐스트로 대박을 쳤고, 출판과 강연으로 매우 바쁘고 성공적인 나날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 것도 근 칠팔 년은 된 것 같다. 나는 '지대넓얕'을 일부 들었고, 서로 다른 성격과 전문 영역을 가진 네 명의 젊은 패널들의 짜이지 않은 대화 속에서 재미와 그야말로 얕은 지식을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연구하는 전문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딱딱한 책이나 정리된 지식보다는 이렇게 캐주얼한 접근이 유익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략 내가 느꼈던 '지대넓얕'에서 채사장의 포지션은 다른 패널들의 인문학적 논의의 반대편에서 질문하고 비판하는 역할이었다. 다이내믹한 토론과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위악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상이 강했는데, 예를 들자면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로는 '보수우파'의 시각을 견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패널들인 깡선생이나 김도인 등의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시각의 대비를 위해 연출한 면이 있을 것이나 채사장의 발언이 탐탁지 않게 생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채사장의 책을 세 권정도 읽었는데, 책은 좀 달랐다. <시민의 교양>에서 그는 치열한 삶을 사는 우리나라 국민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말한다.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세계 최장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자살하고, 노후 생활을 가장 빈곤하게 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민의 자유는 확대되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개선되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구조적으로 개인의 삶이 행복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그 주범으로 꼽는다.
방송에서의 그의 발언이 진심인지 아니면 책에서 쓴 글이 그의 생각에 더 가까운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책 <열한 계단>에서 그는 철학과 종교, 이념, 문화, 영성성에 걸쳐 다양한 주제에 자신의 생각을 녹여 내는데, 어느 것 하나 가볍거나 얕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다양한 지식을 섭렵한 제네럴리스트의 면모를 책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뒷부분은 영성과 죽음, 초월에까지 그의 지식 영역을 확장한다. 저자는 불편한 지식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는데, 나에게는 죽음과 초월, 경계를 다룬 부분이 그랬다. 불편보다는 난해하다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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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읽게 되면서 채사장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지대넓얕 책이 좋았던지라, 같은 작가의 시민의 교양 책도 괜찮을 것 같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내용을 읽으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두통만 생겨서 어렵지 않고 쉬운 인문학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책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앞으로 채사장 책이라면 그냥 믿고 사도 될 정도로 선호하게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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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반대말은
직장동료와 친구에게 물어봤다. 즉답으로 말했다. “민주주의” 그리고 뒤이어 하는 말. 아닌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다. 모른다고 살아가는데 크게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욕하고 비난한다. 서로가 조금도 이해하지 않는다.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같은 말을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저자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을 구분해서 이야기한다. 이 다섯 가지의 틀은 독립되어 있지 않고 뿌리가 같다. 이 영역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공통분모도 갖고 있다. 그것은 둘로 양분된 이분화된 세계다.
첫 번째는 소수지배자의 세계다. 역사에서 왕, 영주,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노예, 농노,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고 권력을 유지해왔다. 특히 근대의 부르주아는 공장과 자본을 소유함으로써 자본주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를 일으켰으며, 해결 방법으로 식민지 개척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에 들어서 냉전과 신자유주의가 도래했다. 경제에서 초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자본가와 기업가를 위한 경제체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고 정부의 개입을 반대한다. 세금인하와 규제는 기업가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된다. 정치에서 보수는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입장을 말한다. 생산수단의 민영화, 정부 개입 축소, 세금 및 규제 완화, 경제 성장이 이들의 지향점이다. 사회에서 미디어는 기업들의 광고비를 통해 유지된다는 특징 때문에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보수적 견해를 반영하기 쉽다. 윤리에서 의무론은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절차가 보장된다면 그 결과로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결과가 아닌 절차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무론적 윤리설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기에 적합하다.
두 번째는 다수의 피해자 세계다. 역사에서 그들은 노예, 농노,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했다. 냉전 이후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현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 계급을 유지하게 되었다. 경제에서 수정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체제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려 한다. 세금이 인상되고 복지가 확대된다.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복지정책 추진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직접적인 이익이 된다. 정치에서 진보는 노동자와 서민,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입장을 말한다. 생산수단 국유화, 정부 개입 확대, 세금 인상 및 규제 강화, 사회적 재분배가 이들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사회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전체주의화함으로써 자본가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자본가의 이익이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지지되고 있다. 윤리에서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의 재분배 중심 제도는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과 만족을 높인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윤리설에 의해 정당화된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다. 이번에 알았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고 신자유주의는 경제 체제라는 것도. 기업가와 언론, 보수당과 검찰이 모두 보수인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존재한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며 모두 북유럽에 있으며 성숙한 사회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미디어가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디어가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주관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 것은 수익 구조 때문이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오직 광고 수익을 통해서다.
인터넷에서 상대진영에 대해 무조건 욕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책 정도는 읽어보고 논쟁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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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전도사인 저자의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편이다. 역사적 맥락은 잠시 제쳐두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 대한 진단이자 해법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예의 지대넓얕 정신에 입각,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때론 도식과 그림으로 친절하게 과녁 중앙으로 이끈다.
이번에 다루고 있는 주제는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및 미래이다. 하나 같이 지적 호기심으로 꿈틀거리는 이들을 자극할 만한 것들이다. 보는 순간 혹할 정도로.
글의 전개 방식은 도입 부분에서 콩트나 에세이 같이 현실감 있고 재미까지 곁들인 예화를 들어 흥미를 돋운 다음 각 주제들이 함의하고 있는 것들을 지적으로 정리하며 톺아본 후 저자 나름의 제안을 덧붙이고 최종 정리하는 순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고등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실력 있는 선생님의 인문학 강좌 같다. 이를테면 정의 편의 한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추상적 발문을 한 후 논리정연하게 핵심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질문1-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답부터 말하면 오늘날의 한국은 경제체제의 스펙트럼상에서 신자유주의에 위치해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세율에서 찾을 수 있다. 개별 국가들의 세율을 일괄 비교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복잡하고 다양한 까닭에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국가총생산 대비 차지하는 세금의 비율을 기준으로 대략적인 비교는 가능하다. 우선 초기 자본주의부터 공산주의까지의 경제체제들을 분배의 정도에 따라 배열해보다. 이렇게 배열된 체제들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율을 갖는다. (그림 생략)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의 세율은 대략 20%대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 일본, 한국이다. 수정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는 이보다 높아져서 대략 40%대의 세금이 부과된다. 프랑스, 영국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 사민주의는 50~60%대의 세금이 부과된다. 북유럽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272~273쪽)
만약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라면 눈망울 초롱한 학생들에게 모호한 질문을 던진 후 한 동안 뜸을 들인 다음 구름 위의 스승이 한 수 가르쳐주는 격이다. 아이들의 눈에 방울방울 어릴 감탄의 빛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정의 편에 곁들인 저자의 미래 지향적 선택은 수정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쪽이다. 지식을 객관적으로 툭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내비치며 간곡하게 들려주는 것이어서 감화력과 설득력이 한층 무게 있게 다가온다 하겠다.
스스로 넓고 얕은 상식이라고 낮췄지만 넓으면서도 깊이까지 갖춘 글이 분명하다. 깊이 있고 정확한 좋은 글로 지식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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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에는 참 여러가지 종류가 있어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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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책 그동안 나에게 경제는 어려워 잘 모르겠고, 교육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기 바빴고, 정치는 늘 싸워서 보기 싫은 존재였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제야 내가 중심을 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세금, 국가, 정치, 경제, 교육, 미래에 대해 설명해 줘서, 내가 이 사회와 세계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그러면 나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써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은지 어느 방향을 지지할 건지 가닥을 잡을 수 있었고, 논리로서 내 주장을 쭉 지켜나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채사장님의 책을 계속 읽어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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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인상할 것인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근원에 세금에 대한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세금의 인하는 복지를 축소하는 사회로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라 한다. 세금의 인상은 복지를 확대하는 사회로. 이런 사회를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사회라 한다. 시장의 자유에 대한 주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근거로, 세금이 낮으면 노동자의 근로의욕이 높아지고 자본가들의 투자의욕도 높아진다. 이에 따르면 세계적인 장기 불황 속에서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세금을 낮춰야 한다. 이에 반해 정부의 개입에 대한 주장은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지금과 같은 양극화는 성장을 명분으로 낮은 세금과 복지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상대적 빈곤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높여야 한다. 누구의 세금을 인상할 것인가? 하나는 부유층의 세금(누진세와 부유세)을 누진적으로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전체의 세금(소비세와 주민세)을 일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소비세와 주민세는 간접세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된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개인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할 경우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부담이 높아지는 불평등한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자유를 선택하는 사회는 세금의 양을 줄일 것을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높여야 할 때는 국민 전체의 세금을 높일 방법을 찾는다.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선택하는 사회는 세금 전체의 양을 늘리기 위해, 특히 부유층의 세금 징수를 강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