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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학교교육을 받은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2007년 7월에 "조국과 민족의'라는 구절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라는 구절로 바뀌었으며 '몸과 마음을 바쳐'는 빠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었다는 행정자치부의 설명을 비춰 볼때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름에 담긴 구태의연함과 몸과 마음을 바치는 데 대한 폭력성을 의식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태극기 앞에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이러한 구절에 거부감을 느끼는 대중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기에 대한 맹세 개정후 반대와 우려의 여론이 더 커졌다. 국가의 정체성과 사라져가는 애국심,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가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이른바 '진보'로 구분되는 많은 학자와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통일을 열망하는 한민족의 개념은 유효하다.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언론의 명칭이 '한겨레'라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더군다나 세계화시대와 경제난에 따른 위기에 민족의식과 애국심의 중요성이 더욱 환기되는 지금 시점에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라는 제목은 일견 도발적이며 교차하는 생각과 호기심에 책을 들추게 한다. 저자는 대전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인 권혁범으로 9년전에 낸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이어서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등의 저서를 통해 꾸준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비판하며 탈민족주의에 앞장서 왔다. 2007년 <<한겨레>>지면에서 '진보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에도 참여하였고 최근에 또 한겨레에서 벌어지는 '민주적 애국주의'논쟁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칼럼 : '대한민국주의’에 바치는 진보진영의 위험한 짝사랑) 이처럼 활발하게 또 일관되게 민족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논평하는 저자의 책 답게 두껍지 않지만 충실하고 깔끔한 구성과 내용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출판사인 '생각의 나무'의 책 답게 표지도 깔끔하며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그러나 선호하는 진영과 행보가 전혀 다른 김구와 박정희의 사진을 표지에 넣으면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표지에는 이 외에 백두산 천지와 무궁화, 그리고 태극기의 사진이 실려있어 책의 화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보기에도 좋게 꾸며져 있다. 앞선 꾸준한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책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민족주의가 아무리 긍정적인 속성을 일시적으로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죄악'이라고 본다. 책의 서두격인 1장 <'우리', 민족, 민족주의>과 2장<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서 민족과 민족주의의 기본적인 개념과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또 한국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는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민족은 근대에 들어와서야 만들어진 개념이며 한국에서도 독립운동과정에서 만들어진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3장<민족의 '안'과 '밖';위험한 민족주의>에서는 그 민족주의의 해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4,5,6장에서도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민족주의라는 틀이 갖고 있는 배제와 갈등의 외면이라는 속성을 파헤치며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폐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적 지평에서 민족주의의 폐기라는 극단적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풍부하게 소개해주며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균형잡힌 사고라는 것이 단지 중간자적 위치를 고집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느끼게 해준다. 특히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근대국민국가의 속성으로서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자본주의의의 한 기축 이념으로서 논의되는점도 매우 흥미롭다. 책의 후반부에서 4장 전체를 할애하여 민족주의와 여성주의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루는데 사실 저자가 민족주의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하부이념으로 취급되는 사례를 얘기한것은 환경, 계급, 인권등 여성주의 말고도 많다. 아마도 현재 진보진영내의 가장 큰 문제가 진보진영 내의 젠더 문제이기 때문에, 또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싶어서, 또 여성주의의 예를 들어 문화적 상대주의 논쟁에 대한 얘기까지 한데 묶어 서술하기 위해서이지 싶다. 저자는 민족주의의 속성자체를 죄악으로 간주하고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이념이지만 과거 민족주의가 가졌던 진보성과 현재에도 여전히 가지는 유효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식민지 시대부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제3세계, 즉 주변부의 저항테제로서 민족주의가 가졌던 진보성을 인정한다. 또한 분단상황이 한국사회에 많은 모순과 사회문제를 낳고 있고 분단을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앞으로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민족주의가 엄연히 현실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잘못되었으며 민족주의가 잘못되었지만 유용하므로 갖고 가야 한다는 주장들에 대하여 엘리트 의식이라고까지 비판한다. 저자의 이러한 비판의 화살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도 피하기 힘들정도이다. 우파는 말할것도 없고 좌파의 가장 극단적인 진영도 민족주의를 최상의 가치로 삼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저자의 주장은 급진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결국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라고 물으며 시작하는 이 책은 민족주의를 장례지낼 것을 요구하며 차분하게 끝난다. 저자는 책의 표지에서부터 세계 시민주의 위에 그 이념적 기초를 두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철저히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도 역시 가장 주요하게는 세계시민주의이다. 책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의 개념, 문제점, 폐해, 민족주의의 여러 기조 설명과 비판, 극복방안에 대하여 서술하는데 할애되어 있어 그 대안이념인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자세한 주장은 둘째치고서라도 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세계시민주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설명이나 민족주의에 대응되는 전환적인 대안은 찾기 어렵다. 또한 민족주의 자체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다루는 마지막 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통일을 지지하며 통일의 수단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인정하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인다. 물론 통일에도 많은 명분과 이유가 있는만큼 무조건 통일을 반대하는 것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민족주의라는 틀을 버린다면 과연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강한의문, 즉 통일이 아니더라도 공존하는 두 국가체제로의 전환은 어떨까, 또 대륙적인, 세계적인 근대국민국가체제 이후의 체제는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가 어찌됐든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그 때문에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아직은 시인하는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인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 또 민족주의 이후의 체제에 대한 고찰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또 하나 들었던 궁금증은 물론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근대에 들어와서 생긴 개념이지만 우리가 어떤 개념으로 또는 이념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전에 형성된 의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나라 밖의 세계를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분명 세계가 존재했던 것 처럼 꼭 민족주의라는 이념으로 개념화 되어야 그 실재가 있다고 볼순 없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처럼 비교적 고립된 지리적 위치에서 독립된 중앙집권국가가 대를 이어 존재했던 나라라면 그것이 꼭 한민족 주의는 아니더라도 또 애국주의는 아니더라도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저자는 조선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국가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양반과 양민, 노비들이 각각 이해관계가 달랐고 민족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달랐던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든 피해자든, 지배층이든 피지배층이든 서로 작용하고 반작용하고 같은 무대위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겪어오고 같은 언어로 사유해오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를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필자의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에 공감한다. 그러나 비교적 고립된 역사적, 언어적 공동체의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하는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필자가 최장집 교수에 대해 가지는 태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장집 교수를 좋아하여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되었는데 저자또한 최장집 교수에 대해서는 유독 비판의 칼날이 비교적 누그러지는 모양이었다. 저자는 최장집 교수의 의견에 공감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그 인용과 해석, 그리고 비판이 친절하게 느껴지는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두 교수의 개인적 관계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함성과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반대의 촛불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각인되어있는 장면일 것이다. 몇안되는 분단국가라 불리며 단군을 시조로하는 단일민족신화가 여전히 지배하는 한국. 또한 국기와 국가의 영광에 대한 충성을 다짐해야 하는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이념적 지표를 가리지 않고 지배적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단지 자본의 세계화가 아닌 진정한 화합과 공생의 세계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도 다문화시대로 나아가려는 시점이다. 민족주의라는 낡은 틀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와 그늘을 가리며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준비를 가로 막고 있다. 또 민족주의의 장벽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모순을 덮게 만든다. 한민족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민족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한가지 주장만을 단편적으로 펼치지만은 않는다. 진보와 보수에서 다양하게 또 빈번하게 논의되는 민족주의 논쟁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또 풍부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물론 저자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목적인 글이지만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들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책장에 놓고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해볼때라면 언제든지 꺼내어 펼치고 싶으며, 민족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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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남아서 버리는 음식. 음식이 남아서 버리면서도 굶어 죽는 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다면, 과연 이 둘은 무슨 관계인가.
둘은 싸웠다. 둘의 생각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여 도저히 마주앉아 이야기할 상황이 안 되었다. 그래서 싸웠다. 상처는 컸다. 집이 부서지고 마당이 불탔으며, 기껏 심어 놓은 온갖 곡식들도 다 타고, 심어 놓은 나무도 죽어버려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건물과 공장도 다 부셔져 완전히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되다. 둘만 싸운 것이 아니라 둘의 싸움에 그 형들이 끼어들어서 싸움이 커져버렸다. 둘은 후회하지 않았다. 싸움을 끝낸 것이 아니라 잠시 쉬기로 한 것이다.
이 둘은 형제다. 피를 나눈 형제. 그 형제는 각기 자신의 땅을 보유하고 자신만의 체제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다. 그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형제가 누구 이었는지 잊고 있다.
어떤 때에는 서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휘장을 휘날리며 한마음이 되기도 한다. 더 큰 나라들을 상대로 싸움을 할 때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서로 마주보기조차 거부한다. 서로를 헐뜯고 오해하고 욕하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다. 애증의 관계인가. 형제는 한 ‘민족’이다. 몇 천 년의 역사를 하나로 가지고 있다. 그 역사는 ‘민족’을 규정한다. 그들의 역사 밖의 사람들은 모두 ‘외세’가 된다. ‘우리’만의 색깔이 있다. 그 색깔에 맞지 않는 이들도 문밖에 세운다. 흐름을 따르지 않으면 ‘이지메’ 당한다.
엄밀히 한 민족이면서 서로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의 규정은 국가 통치의 권력에서 유래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한 민족에 대한 정의의 모순이다. 모순은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발에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은 우월하고 검은 피부에 검은 머리를 한 이들은 천시한다. 그러면서도 그네 나라의 침략때는 동맹이니 협력이니 하는 단어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죄악인가>의 저자는 민족주의가 악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민족’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의미. 오늘날에 민족주의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알린다. 언제나 ‘타자’를 적으로 놓는 것으로 작용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민족주의다. 히틀러의 독일이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파리 잡듯이 가스실에 가두어 죽였던 것처럼, 유색외국인에게 험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더럽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우리의 동남아인에 대한 적의감이 자연스레 솟아나는 것도 다 태어난 이후 교육을 통해 습득한 민족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다민족화가 진행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사고는 갈등과 반목만을 낳을 뿐이다.
이를 좀 더 진보적으로 해석하고 현재의 불합리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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