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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의 논리로 펼쳐내는 예술인류학의 세계 - 나카자와 신이치,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는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에서 신화시대에 펼쳐진 야생의 사고를 자연 파괴로 치닫는 현대문명의 대안적 지성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야생의 사고는 대칭성의 원리에 근거한다. 대칭성은 모순을 인정하는 사고이다. 대칭성의 맥락에서 보면 인간과 자연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신화시대의 인간들은 마음으로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수렵민들은 동물을 자연의 선물로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동물을 사냥했지만, 그 동물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걸 그들은 분명히 인정했다. 수렵민들은 그래서 사냥한 동물의 뼈가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죽은 동물은 영혼 상태로 그네들이 사는 세계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은 인간의 마음이 잘 나타난 사례라고 하겠다.
지은이는 이러한 야생의 사고를 예술에 적용하고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동아시아, 2014)에서 지은이는 예술과 인류학에 스며든 야생의 사고를 서술한다. 10만 년 전에 출현한 ‘신인新人’이 어두운 동굴 속에 그린 그림에서 지은이는 인간이 창조해낸 가장 이른 예술의 흔적을 찾는다. 이전의 인류(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르게 신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은 대뇌 내부의 뉴런과 뉴런을 접속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대뇌 구조의 변화는 유동적 지성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유동적 지성을 통해 신인은 예술 창조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유동적 지성은 이질적인 대상을 연결하여 비유나 상징을 탄생시키는 언어 능력과 이어진다. 비유나 상징 능력은 인간에게 언어 너머의 세계를 사유하는 힘을 제공한다. 현생 인류의 마음을 구성하는 두 종류의 사고 시스템은 유동적 지성의 발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우리 현생 인류의 마음은 구조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사고 시스템의 공존에 의해 작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외부 환경 세계의 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 논리(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의 본질입니다)에 따라 작동하는 언어의 모듈로, 그런 모듈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생 인류의 마음에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즉 대칭성의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층層 혹은 영역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언어의 논리가 분리시키는 벽을 돌파하며 시간의 질서로부터도 자유로우며 다차원적으로 끊임없이 유동하는 지성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인류의 마음은 합리적인 언어의 모듈에 따라 조직되어 비대칭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층과, 현생 인류의 마음을 특징짓는 ‘유동적인 마음’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대칭성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층이 하나로 결합된 ‘복논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0~41쪽) 위에서 이야기하는 ‘복논리’는 우뇌(대칭성의 논리)와 좌뇌(비대칭성의 논리), 정서적 지성과 논리적 지성, 분별지와 무분별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요컨대 인간은 대칭성의 논리를 통해 무분별지와 이어지고, 비대칭성의 논리를 통해서는 분별지와 이어진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사물을 분별하며 살아간다. 일상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분별지, 곧 대칭성의 논리에서 보면 인간과 동물은 소통이 가능한 생명들로 인식된다. 이러한 무분별지로 일상 너머를 보는 순간 우리는 ‘초월적인 것’과 마주한다. 분별지=비대칭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거부되는 일이 무분별지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진리로 통용될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대칭성의 논리에서 예술인류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작품 <구속의 드로잉9Drawing Restraint9>를 예술인류학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매튜 바니는 이 작품으로 서구 예술을 지배하는 구속과 자유의 이분법을 넘나들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이교異敎’의 사고는 끊임없이 억압받아 왔다(대표적인 게 마녀사냥이다). 이교의 사고는 대칭성의 논리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교가 억압해 온 이교의 논리는 매튜 바니의 작품에서는 무정형의 거대한 힘으로 나타난다. 무정형의 힘은 자연 속에 움트는 거대한 힘을 가리킨다. 서구 예술이 억압한 자연을 매튜 바니는 ‘고래’를 매개로 불러낸다. “유럽의 신화적 사고 전통에서 고래는 동일성을 갖지 않은 거대한 존재를 의미”(157쪽)한다. 그리스도교의 구속 원리와 동일성을 갖지 않는 고래에 주목함으로써 매튜 바니는 구속에서 자유로 향하는 예술적 힘을 발견한 셈이다.
매튜 바니의 예술에 적용된 논리를 지은이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해석하는 데도 사용한다. 언뜻 대칭성의 논리를 기반으로 형성된 매튜 바니의 예술이 플라톤 사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은이는 플라톤이 지은 『티마이오스』에 주목한다. 이 책에는 ‘코라’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코라’에는 밖에서 들어와서 질서를 부여하는 부성父性적인 ‘법’ 같은 게 없어도 스스로 유연한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물질세계를 잇는 중요한 사고로서 ‘코라’라는 개념을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철학은 ‘코라’라는 비철학적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지은이는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철학에서 비철학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성립된 근대철학은 ‘코라’라는 말 앞에서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근대철학의 밑바탕을 형성한 근대과학 또한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과학의 성과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현대과학은 하나의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무한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무한의 맥락에서 사고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식하기 힘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비대칭성의 사고로는 이를 수 없는 이 세계를 지은이는 대칭성의 논리에 입각한 야생의 사고와 연결시킨다. 예술인류학은 (서구)철학이 배제한 비철학적 요소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지은이가 전체와 부분을 나누지 않는 불교의 화엄 사상에 주목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지은이는 예술인류학을 통해 근대문명이 억압한 인류의 무의식을 야생의 사고로 되불러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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