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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공부할 시간은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서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문학이 그 어느때 보다도 주목받고 있는 현실에서 왜 사람들은 인문학에 주목하는 것일까. 인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무늬라 볼 수 있다. 인문학을 배움으로서 다른 사람이 먼저 경험한 시행착오를 활용하여 나 자신이나 사회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기에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목표는 소박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여행하는 삶, 앎을 좇는 삶, 꿈에 이끌린 삶, 변혁하는 삶, 유배당한 삶, 공감하는 삶, 읽고 쓰는 삶등 일곱 가지 고전적 삶의 경로들을 통해 그 안에서 현재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어떠한 삶을 추구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나는 공감하는 삶과 읽고 쓰는 삶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공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이다. 인간이 인간일수 있는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 때문이라는 맹자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경쟁으로 내몰리고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다른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살아가는 여유를 가질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부족해지는 것이 어찌보면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하는 삶에서 소개되어진 성호 이익과 레비나스의 삶을 엿보면 이들은 학문적 주체로서의 공감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학문에서 이를 제안하고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공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서를 성장이 아닌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읽고 쓰는 삶이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읽기와 쓰기의 근본은 변화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삶과 세계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책을 읽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페트라르카와 주희의 삶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책을 읽고 쓰는 삶을 택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바꾸거나 영향력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긴 호흡으로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택한 삶의 방식을 고수해 나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문학이 한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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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공부할 시간 】 :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 _김선희 저 | 풀빛
1. 인문학의 효용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살아가는데 인문학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까? 왜 필요할까? ‘인문학 열풍’이라는 바람은 어느 방향에서 불어올까
2.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이 담겨있다. “이 책의 목표는 소박합니다. 여행하는 삶, 앎을 좇는 삶, 꿈에 이끌린 삶, 변혁하는 삶, 유배당한 삶, 공감하는 삶, 읽고 쓰는 삶 등 일곱 가지 고전적 삶의 경로들을 들여다보려는 것입니다.”
3. 이 책에서 제시되는 일곱 가지 삶의 유형은 어떤 특별한 틀에 의해 짜인 것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삶의 태도가 곧 그들의 사상을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만난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성공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어떤 전환점과 어떤 결단으로 이어졌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4. 「여행하는 삶」에선 사마천과 괴테를 만난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여행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으로부터 그의 평생의 소명이자 임무였던 《사기》의 집필까지 물려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사마천은 스무 살 무렵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이 여행은 단순한 유람이나 휴가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위해 설계된 여행이었다. 무엇이 이 청년을 낯설고 두려운 길을 홀로 걷게 만들었을까? 분명한 것은 이 여행이 청년의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 여행은 죽음대신 궁형이라는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으면서까지 그를 살아있게 한 동기를 부여했음에 틀림없다. 괴테는 열여섯에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로 떠나 그곳에서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괴테는 평생 수많은 곳을 여행했고 죽기 직전까지도 등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 중 이탈리아 기행은 《이탈리아 여행》이란 작품으로 남겨진다. 1년 9개월의 긴 여정이었다. 그의 여행이 남긴 흔적이 많이 담겨있는 책으로 《파우스트》를 빼놓을 수 없다. 《파우스트》는 예술, 종교, 과학, 자연과학,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를 담은 총체적 문학작품이다. 그렇다면, 사마천과 괴테의 공통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마천이나 괴테 같은 초과적인 의지의 소유자들이 역사에, 문학에 이름을 남긴 것은 그 의지를 방향 없이 발산하지 않고 무엇인가 가치 있는 곳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5. 「공감하는 삶」에선 성호 이익과 레비나스를 만나게 된다. 성호 이익의 유, 청년 시절은 참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가세가 기울어서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기 급급했다. 25세 때 과거 시험을 보았지만 이름을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2차 시험을 못 보게 되었다. 이 일로 성호는 과거의 뜻을 접는다. 당쟁으로 혼탁해진 정국에서, 몰락한 남인이라는 그의 배경은 족쇄와도 같았다. 성호는 사회적 실천의 경로가 막힌 재야의 독서인 신분으로 나날을 보내야했지만, 올바른 가치와 도덕성이 구현되는 유가적 세계를 구상하며 각종 제도의 틀을 내놓았다. 조선 후기의 실용적 학풍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한 큰 유학자로 기록된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유대계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이라는 자신의 저서 머리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어떤 종파나 민족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웃이었던, 국가사회주의에 의해 학살된 600만 명의 사람들 중 가장 가까웠던 이들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와 똑같은 반유대주의적 증오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타인의 존재감은 타인이 나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가? 나와 어떠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느냐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질 것이다. 성호와 레비나스에게 타인의 존재감은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그들에겐 타인이 나의 잉여가 아니었다. 고통 받는 타인들이 단지 나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나이게 하는 또 다른 나라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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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치열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며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동서양의 인문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를 보니 기대되는 인물들, 알고 싶은 인물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저자는 <사기(史記)>의 사마천(司馬遷)과 <파우스트>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여행하는 삶’으로 엮어 설명한다. <백과사전파>의 중심인물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와 조선의 백과사전파라 할 수 있는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을 ‘앎을 좇는 삶’으로 규정한다.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崔濟愚)와 범신론적 일원론과 무한 우주론을 주창한 조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는 꿈에 이끌려 살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을 주도한 홍수전(洪秀全)과 이상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여성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분명 ‘변혁하는 삶’을 추구한 자들이다. 이외에도 <에티카>의 스피노자(Spinza)와 조선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성호 이익(李瀷)과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와 주희(朱熹) 등, 이들이 추구했던 삶의 궤적과 업적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김선희는 왜 이런 역사의 인물들을 독자들에게 들여 주는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문진표(inquiry)를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일곱 개의 삶의 유형을 제시하면서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 어떤 유형의 삶을 살고 싶은가’ 도전하고 있다. 그렇다.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밖에서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p. 9).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가야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만의 삶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이 아니라 치열하게 추구해야 하는 삶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역사와 사상사에 남았다는 점에서는 영광스럽지만, 그들의 삶의 여정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고 질곡(桎梏)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저자도 고백했듯 “언제나 그렇듯, 자기를 견디며 사는 것이 가장 힘든”(p. 11) 일이다.
현재 나의 인생길을 생각해 본다. 내가 택한 길뿐 아니라 내가 가지 않은 길에도 내가 있어, 지금의 나의 길이 되었다는 것, 모두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괴테는 “남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보다 방황 속에서 자기 길을 가는 몇몇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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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의 ‘나를 공부할 시간’은 사마천과 괴테, 디드로와 이규경, 브루노와 최제우, 홍수전과 로자 룩셈부르크, 스피노자와 정약용, 성호 이익과 레비나스, 페트라르카와 주희를 각기 다른 주제로 묶어 설명한 책이다. 사마천과 괴테는 여행하는 삶, 스피노자와 정약용은 유배당한 삶, 성호 이익과 레비나스는 공감하는 삶 등이다.
세창출판사에서 나온 프레너미 시리즈가 있다. 사상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학문을 발달시켜온 둘 이상의 사상가를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극대화시키는 시리즈라고 한다. 니체 vs 바그너, 하이데거 vs 레비나스,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 루터 vs 칼뱅 등의 책이 나와 있다. 궁금한 것은 정약용 vs 듀이란 책이다. 시대적으로 겹치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묶였기 때문이다. 공명하는 부분과 대조적인 부분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나를 공부할 시간’을 사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동양철학 스케치 2‘를 통해 저자의 역량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를 공부할 시간’에서 큰 관심을 부르는 사람들은 로자 룩셈부르크, 스피노자, 주희(朱熹) 등이다. 특히 유대교로부터 파문(破門)당한 스피노자와 오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용이 한데 묶여 설명된 것은 흥미마저 부른다.
물론 정약용과 주희를 한데 묶을 수도 있고 괴테와 성호 이익을 한데 묶을 수도 있다. 정약용과 주희는 신유학에 대한 입장 차이를 주제로, 괴테와 성호 이익은 박물지적 관심으로. 그러면 전자는 대립적인 면이, 후자는 공통점이 요점일 것이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여행으로 큰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천문관측과 의례(儀禮)를 담당하는 태사령(太史令)이었다. 그러나 국가 제사인 봉선제에서 배제된 뒤 화병을 얻어 통한 속에서 아들에게 역사서 집필의 과제를 안기고 눈을 감았다.
사마천이 행한 여행이 사마천의 사기 집필에 큰 역할을 했다. 아예 저자는 사마천이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사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란 의미의 말을 한다. 사마천에게 여행을 권한 사람은 아버지 사마담이었다. ‘사기’ 가운데 백이, 숙제 이야기도 있다. 그들이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은 것은 제후국인 주나라가 천자국인 은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사기‘의 특징은 인물과 사건 중심의 서술을 했다는 데 있다. 편년체가 아닌 기전체다. 편년체는 연도 중심의 서술 즉 왕조의 변천을 서술한 연대기란 위상을 갖는다. 괴테는 평생 수많은 곳을 여행했고 죽기 직전까지도 등산을 멈추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괴테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그의 이탈리아 여행을 든다. 괴테는 자신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했다.
“괴테의 여행이 남긴 가장 본질적인 흔적은 아마도 그의 주저 ’파우스트‘에 담겨 있을 것이다.”(39 페이지) 앎을 좇는 삶의 디드로와 이규경 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식을 수집하고 분류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 체계에 대한 재평가와 재배치란 것이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 및 저항으로 연결된다.
이규경은 간서치(看書癡) 이덕무의 손자다. 이규경의 호는 오주(五洲)다. 그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백과전서다. 오주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과 그 지식을 길어올릴 수 있는 여행에 대한 동경을 담은 말이다. 연문(衍文)은 군더더기 문장이란 의미다. 장전(長箋)은 길게 쓴 주석이란 의미다. 산고(散稿)는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있는 글이라는 의미다.
브루노와 최제우(1824 - 1864)는 꿈에 이끌린 삶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두 사람 다 비범한 꿈을 꾸고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이다. 최제우가 산 시대는 순조(재위: 1800 - 1834), 헌종(재위: 1834 - 1849), 철종(재위: 1849 - 1863)의 시대였다. 정순왕후 김씨(경주 김씨)의 수렴청정, 순조 비 순원왕후 김씨(안동 김씨), 순원왕후의 부친 김조순 등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린 시대였다.
백성을 가혹하게 쥐어짠 세도정치로 파탄난 민생이 란(亂)을 초래한 시대였다. 홍수전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변혁하는 삶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혁명가란 이름은 실천의 결과에 관계 없이 부여되는 이름이다. 로자 룩셈부르크(1871 - 1919)는 폴란드 출신의 여성 혁명가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초 독일에서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거의 모든 국면에서 억압받고 차별받았던 소수자였다. 마르크스 이후의 최고의 이론가, 탁월한 연설가, 진정한 혁명가 로자는 독일 민병대원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비운의 인물이다. 유대인이었고 차별받는 여성이었고 어려서 앓은 좌골 관절염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던 장애인이었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에서 일종의 종교적 중립지에 가까웠다. 유럽 곳곳에서 박해받던 종교 분파들이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보장한 신생 독립(스페인으로부터)국가 네덜란드로 몰려들었다. 스피노자는 예수회 출신의 반 덴 엔덴을 만나 장래 희망을 랍비에서 철학자로 바꾸었다. 가업을 잇거나 랍비가 되는 것 외에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었던 스물네 살의 스피노자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신이 성장한 유대교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뒤 그는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인 렌즈 깎는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스피노자가 렌즈만 연마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고 친구들과 꾸준히 교제했다. 헨리 올덴부르크 같은 친구와 계속한 서신 교환은 학술적 토론장의 역할을 대신했다.
당시 스피노자를 충분히 비난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판을 받았을 정도로 스피노자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유대 - 기독교적 세계관과 전통 신관을 전면 부장한 그의 행보 때문이었다. 스피노자는 이 세계가 초월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로 이원화된 것이 아니라 일원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본 자연은 목적이나 의도 없이 무한히 생성 변화하는 이 세계 자체다. 현실 세계 외에 초월적 세계가 없다는 의미다. 이 세계는 신이라는 실체(다른 사물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존재와 그 특성이 그것 자체에 의해서만 설명되는 것)가 변용된 모습으로 이를 양태라 한다. 그에게 세계 자체가 신이다. 스피노자는 인격적이며 오로지 사유로만 존재하는 신 관념을 버리고 자연의 물질성까지 신의 속성으로 바라보았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가 신의 양태며 따라서 모든 것이 신 안에 들어 있다. 신은 자연의 원인이지만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 신이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라는 말을 원인과 결과가 함께 하는 바다와 파도의 관계로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바다가 파도의 원인이지만 바다는 파도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연 역시 결과로 존재하지만 원인인 신 안에 존재한다.
이 자연 세계는 인격적 신의 초월적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법칙으로 질서잡힌 합리적인 세계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인간은 우연적이며 유한하다. 그런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 욕망이다. 스피노자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은 자기를 지키려 하며 자기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코나투스)에 의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코나투스가 정신에 관계될 때 의지라 하고 정신과 육체 모두에 관계될 때는 충동이라 한다.
충동을 의식하면 욕망이 된다. 충동과 욕망을 구분할 줄 모르는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이는 결국 자연의 필요성에 따른 행위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해서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 의지하고 욕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노력하고 의지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이라 판단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유배되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정약용을 스피노자와 유사한 사람으로 본다. 그가 산 시대는 정조, 순조, 헌종 시대였다. 정조와의 좋은 시절이 끝나고 순조, 헌종 시대에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다. 정조는 정약용이 서른 아홉에 유배되기 직전까지 그의 최대 후원자였다. 정약용을 이해하려면 정조만큼이나 광암 이벽(정약용 형수의 남동생)을 알아야 한다. 이벽은 성호 이익의 제자 권철신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였는가 여부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그에게 서학은 현대적 개념의 종교였다기보다 새로운 학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배 기간 내내 정약용은 가난과 병을 짊어져야 했다. 몸이 갇힌 만큼 정약용은 강렬한 의지로 자신의 학술을 완성해 나갔다. 정약용이 그토록 많은 저술을 남긴 것은 유배 기간이 길어서만은 아니다.
강진에는 어머니 종친인 해남 윤씨들이 살았는데 처음에는 죄인으로 유배 온 정약용을 외면했지만 결국 그를 후원했고 정약용은 해남 윤씨 가문의 장서들을 연구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남 윤씨 자제들이 제자로 들어와 정약용의 저술을 돕기도 했다. 정약용의 작업 중 상당 부분은 제자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정약용은 제자들이 필사하고 분류하고 정리해 놓은 전거들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저술을 완성해 나갔다.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온 것은 1818년 가을,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그 후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정약용은 언젠가 자신의 학문이 세상에 쓰일 날을 기대하며 저술을 정리했다. 이 당시 그가 선호했던 호는 후대를 기약한다는 의미의 사암(俟菴)이었다.(俟: 기다릴 사)
그의 사상 전체가 시대와 불화했다거나 시대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정약용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당대의 지배 학문이었던 주자학과 거리를 두었다는 점이다. 그가 젊어서 접한 천주교는 그의 정치적 생명을 끊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새로운 세계관은 정약용에게 유학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했다.
]성호 이익에게 가난은 일상적인 삶의 조건이었다. 레비나스와 이익은 공감하는 삶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페트라르카와 주희(朱熹)는 읽고 쓰는 삶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페트라르카는 거의 중독에 가까울 만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읽고 또 썼다. 주희(朱熹)도 페트라르카처럼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학자 중 하나다.
주희가 태어났을 때 송나라는 금나라의 침입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53세의 주희는 태주의 지사였던 당중우라는 인물을 집요하게 탄핵하다 직위도 잃고 사상적으로도 탄압받았다. 주희는 말년에 학문적 활동을 금지당하는 위학(僞學)의 금(禁)을 겪기도 했다. 이런 불운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주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읽고 쓰는 삶에 헌신했다. 주희는 성리학의 집대성자다. 주희가 당한 위학지금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물론 주희가 받은 모든 탄압과 불명예는 주희 사후에 대부분 풀렸다.
“모든 삶의 가능성을 한쪽으로 기울여, 읽고 쓰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읽고 쓰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지루하고 반복적인, 그토록 오랜 시간을 투자해도 성취를 보장할 수 없는, 노력에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무엇보다 평생토록 끝나지 않을 일에 자신을 헌신하게 하는 것일까... 읽고 쓰는 삶을 택한 이들은 상당한 이상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어쩌면 현시의 자기보다 더 큰 자기를 상상하는 몽상가들일지도 모른다”(246, 247 페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읽고 쓰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은 부박하고 과시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고, 당장 생활을 바꿀 현실적인 힘과 영향력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페트라르카도 주희도 묵묵하게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먼 시각으로 자기와 세계에 대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얻을 효과가 보다 일찍,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엄밀히 말해 읽고 쓰는 삶이 아니라 성공하는 삶을 택한 것에 가깝다.(249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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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홍수전이 감당하고 겪고 버려졌던 그 혁명은 백성의 고혈로 유지되는 봉건적 체제, 민중을 착취하는 폭압적인 자본주의, 전쟁을 유발하는 제국주의와의 목숨을 건 전쟁이었고 이들은 그 전쟁의 선두에 선 전사들이었다..."
나는 김선희교수님께서 저술하시고 <풀빛출판사>에서 펴낸 이책 <나를 공부할 시간>을 찬찬히 읽다가 윗글을 읽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
체 게바라야 너무나도 유명한 혁명가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나 의사를꿈꾸며 의대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24세였던 1952년 오토바이를 타고 8개월간 남아메리카를 여행한뒤 착취당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직시한후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때 8개월간의 남아메리카 여행의 여정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나중에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글고 그는 마침내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하여 장관에까지 오르게된다...
홍수전은 1851년에 평화롭고 평등한 지상천국을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태평천국>을 세우고 자신을 천왕이라 칭했다... 그리하여 1853년에 남경을 점령하고 마침내 신국가 건설에 착수하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출신이었고 대학진학을 비롯해 사회진출이 막혀있었던 유대인이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차별받던 여성이었고 어려서 앓던 좌골의 관절염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던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초 러시아와 독일의 혁명을 주도하며 새로운 자유와 평등사회를 꿈꾸던 정열의 혁명가였다. 또한, 마르크스 엥겔스이래 가장 뛰어난 사회주의 이론가로 일컬어졌던 그녀는 베른슈타인과 레닌과도 맞서 논쟁을 펼쳤으며, 그 명성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다.
그런데, 나는 이책 <나를 공부할 시간>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알고있었던 이 세분의 혁명가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되어 넘넘 뜻깊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가 유대인이고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이책을 통해 세삼 알게되었고 또 키가 150cm에도 못미쳤던 왜소한 체격의 여성이었던 이분께서 어떻게 최고의 사회주의 이론가로서 활동하실 수 있었는지 경하롭기까지 하였다...
세상을 변혁하고자 했던 체 게바라, 로자 룩셈부르크, 홍수전... 그분들이 이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 <변혁의 삶>은 21세기를 살아가고있는 현대인들에게 뭔가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주고 계신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현실에 안주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기보다는 뭔가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추진하고 변화를 꾀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하지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되었다.
그것은 이책에서 제시하는 7가지 삶의 모습들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삶의 표상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싶다.
"여행하는 삶 - 사마천과 괴테 앎을 좇는 삶 - 디드로와 이규경 꿈에 이끌린 삶 - 브루노와 최제우 변혁하는 삶 - 홍수전과 로자 룩셈부르크 유배당한 삶 - 스피노자와 정약용 공감하는 삶 - 성호 이익과 레비나스 읽고 쓰는 삶 - 페트라르카와 주희..."
나는 <풀빛출판사>에서 펴낸 이책 <나를 공부할 시간>을 찬찬히 읽다가 14인의 인문학자분들의 면면을 읽고 과연 저분들께서 삶의 귀감이 되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실지 무척 궁금해졌으며 이에 이책 꼼꼼이 읽게되었다.
나는 사실 요즘에 인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아졌다.
철학, 역사, 문학 등 인문학이 요즘에 대세이고 많은 분들께 힐링을 줘서 우리나라에도 가히 <인문학열풍>이 불고있다.
그런데, 이책은 괴테, 사마천, 정약용 등 14인의 인문학자께서 제시해주시는 7가지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시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그 본보기를 제시해 주셨다는데 큰의의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비록 유배당한 삶을 살게된 정약용... 그러나, 그는 18년간의 유배생활동안 약 500권에 달하는 명저들을 저술하시기도 하였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걸작들도 많이 남기셨고 또 수원성축조에 거중기까지 도입하게 하셨다...
근데 그는 놀랍게도 암행어사로도 파견되어 혁혁한 성과를 올리시기도 한 분으로서 내가 보기엔 조선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아니신가 생각될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과학, 기술, 건축 등 다방면에서 빛나는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셨다고 본다.
아무튼 힐링과 위안을 동시에 주신 이책 아주 잘읽었다...^^*
따라서, 이책은 이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이신 분들은 께서는 꼭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싶다...
물론 이책에서 소개된 7가지 삶중에서 어떤 삶을 사는게 좋은지는 바로 독자여러분의 몫이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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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공부할 시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거기에 대한 깨달음을 가질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주어질수 있을까.사는게 바빠서..또는 우리가 남을 들여다보고 위해줄수 있는 시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의 묘한 심리전에서 우리는 너무 우리를 바라보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는건 아닐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대부분에 시간을 내가 아닌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갔다.그러면서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은 꿈도 못꾸는게 현실이 되었고 나에 대한 자존감이나 생각들은 할수 없으므로써 나를 잃고 살아온 세월이 반복되는것에 지쳐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속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나를 공부할 시간"이란 책은 정말 나에 대한 시간들을 깨달을수 있을것만 같은 생각으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수 있었다.
이책은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가지 삶의 길을 소개한다.총 일곱가지에 삶을 인문학자들에 이야기와 삶을 통해서 이야기하는것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애기가 잘 전달되므로써 자칫 어렵고 지루할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다가갈수 있다는것이 참 와닿은 부분이었다.
여행하는 삶 앎을 좇는 삶 꿈에 이끌린삶 변혁하는삶 유배당한 삶 공감하는 삶 읽고 쓰는 삶 . . . 일곱가지 고전적 삶의 경로들을 들여다 보면서 지나간 이들이 택한 그들의 삶의 방식을 현재의 우리들이 내가 택할수 있는 하나의 유형으로 이책을 읽으므로써 자신에게 적용해 볼 가능성을 제안하므로써 저자는 우리들에 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바라볼수 있는것을 알수 있게 하고자 함이 이책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책속에 각 삶속에는 동서양에 인문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 삶속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어떤삶을 살고 싶은것일까 우리가 원했던 것과 포기할수 없는것을 동시에 설명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속에서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이 어떤 사상을 결정했던 문제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삶의 태도와 그들이 살아온 인생에서 만난 문제들을 이겨내고 극복한 방식들을 살펴보며 그 시간들 속에서 문제점을 이겨내고 성공할수 있었는지를 바라보고 읽어 보므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속에서 그들처럼 그들만의 삶속에서 우리가 바라보면서 느끼고 깨달을수 있는 눈으로 바라보고 거기에서 내가 있음을 깨달고 느껴보면서 나를 찾아간다는 의미가 이책 "나를 공부할 시간"속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일것이다. 지루하고 힘든 이야기라고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지루한 이야기로만 생각하지말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차분히 읽어가다보면 이해하고 수긍이 가며 나를 그속에서 들여다볼수 있는 시간이 될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학생때만이 공부할수 있는 시간이 있는것이 아니다. 사람은 배울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국어,수학,영어를 배우라는것이 아니다..물론 그 과목들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배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책을 읽고 나를 일곱가지 삶속에서 그들에 삶을 엿보며 나에게 주어진 삶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고 인문학이란 장르에 대한 무한한 어려움으로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 공부하고 어려운 세상속에서 그래도 내가 묵묵히 노력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나를 공부할 시간"이 될것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이책으로 시작해보자.
저자가 말하는 나를 넘어서는 무기,인문학 14인의 인문학자가 전하는 자신과 세상을 견디는 법을 공부해보는걸로 우리를 나를 찾아갈수 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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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것이 어디론가 꼭 몸이 떠나야만 하는 여행을 말한다면 일상적 우리의 삶은 다양한 삶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경로를 가지고 있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깨달아야 한다거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지적 답사만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저 여행의 즐거움을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자 나와는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과거, 삶의로의 여행이 자신의 선택이든 아니면 선택됨이 주어졌든 우리는 살아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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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요즘은 인문학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마치 인문학을 알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말이다. 기업의 CEO들을 비롯해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서점에 뒤덮인 인문학 서적들이 넘쳐난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문학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고, 근대 이후부터는 확연하게 소홀해진 영역의 학문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과거 공부도 그렇지만,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었던 탓에 근대 이후에는 외면받기도 한 학문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동안 검증된 인문학 서적들도 넘쳐나지만, 그만큼의 세월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에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인문학에서 무엇을 얻으려하는가를 독자들에게 먼저 묻고 있다. 열풍이라고 해서, 남들이 보니까 뒤처질 수 없어서인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없다. 인문학 자체가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결코 바로 일상에서 써먹을 수 있을만큼의 얕은 깊이를 가진 학문이 아니다.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이 책은 현재 세대들이 인문학자라고 할만한 인물들의 일생과 업적들을 짧게 돌아보고 그들의 삶과 행적을 쫓는 책이다. 저자가 나눈 카테고리 별로 동서양의 인물들을 나누고, 엮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면 문화 차이때문에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판이하게 다를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도 많았다. 그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쫓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입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인물들이 무엇을 했든지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들에게서 당최 배울점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굳이 책 자체를 봐서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라고 되묻고 싶기도 하다. 자기 계발서를 보든, 인문학 서적을 보든, 책은 큰 의미에서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다. 물론 실용서적들에 비해서 인문학이나 예술 서적들은 활용도에 있어 개인차가 큰 편이긴 하다. 이 책 역시 그럴테지만, 과거 인물들의 인생을 돌아보며 현재 나의 고민들과 겹쳐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기에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복잡하기만 우리네 인생은 오직 나만의 인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들의 인생과 관여하며 그들에게서 배울 점은 충분히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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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하는 건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살아가면서 지식을 얻고 그 지식들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이 옳고 그른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갑니다., 때로는 직진을
하기도 하고 꾸불 꾸줄 길을 가면서 목적지에 다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나타납니다. 목적지를
찾다가 길을 잃을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흔들릴 때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그것이 인문학을 배우는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과 인생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기에 때로는 어려울 수 있고,깊은 사유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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