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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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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독서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록했던 18세기 조선의 문장가이며 지식인이었던 이덕무의 삶과 문장 그리고 그의 삶에 배인 철학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적서의 구별이 심했던 조선의 문화, 서얼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가난까지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했던 인물이었다. 책만 보는 바보라고 알려질 정도로 책과 함께 한평생을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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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독서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록했던 18세기 조선의 문장가이며 지식인이었던 이덕무의 삶과 문장 그리고 그의 삶에 배인 철학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적서의 구별이 심했던 조선의 문화, 서얼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가난까지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했던 인물이었다. 책만 보는 바보라고 알려질 정도로 책과 함께 한평생을 살았던 이덕무,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이렇게 소개한다. 병약해서 독서에 힘쓸 수 없었다고. 남들이 출세를 꿈꾸며 입신양명에 힘쓸 때에도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거나 명예를 구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 정도였고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소개한다.

이덕무는 북학파 또는 백탑 파라고 불리는 지식인 그룹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는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영재 유득공, 야뇌 백동수 등 여러 학자와 문인 그리고 예술인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문물과 제도, 인물과 역사, 문화와 풍속 등 백과사전적 지식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평생 성현(聖賢)의 삶만을 모델로 추구했던 성리학적 지식인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인 것이다. -p.6

이덕무의 젊은 날은 서얼이라는 사회적 멸시와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개인적 고통이 함께 했던 삶의 연속이었다. p. 95

 이덕무는 자신이 글을 쓰는 근간에 어린 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이 자리하고 있어서 '진정' 그대로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덕무에게 창작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진정성일라는 것이다.  예리한 통찰력과 거기다 겸손함까지 겸비한 인물, 당대에는 신분의 차별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못해지만 후세가 알아주는 진정한 문장가이며, 철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어떻게 볼지를 고려하지 않았던 사람, 다른 사람에게 과시 용이 아니었으며 명예를 추구하기 위한 글쓰기 아닌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이었기에 애써 꾸미거나 잘 쓰려고 억지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고 한다.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종종 이런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변할 수 없는 존재라고 결론을 지었었다. 이 책 「이덕무를 읽다」에서 이덕무가 자신에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 기록이 있어서 반갑게 읽은 대목이다. 사람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설명한다.  어려서부터 세상 오락을 끊고 가볍거나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신중하며 단정하고 정성스러웠던 사람, 그가 바로 이덕무란 인물을 잘 묘사해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덕무를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더러는 그가 성장 후에도 세상 풍속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너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한편으로 염려가 되었는지 이덕무는 남들처럼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을 뱉고 몸을 가볍고 덧없이 행동했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천성은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는 것이기에 며칠을 가볍게 생활해본 후 남으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즐거움을 찾지 못한 이덕무는 결국 처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학문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으로 이 책 이덕무를 읽다는 읽기가 버거운 책이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덕무의 삶 속을 들여다보고 학문 속에 깃든 그의 성품을 대하자니 은근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바른 말을 하려면 행실도 바르게 처신해야 하는 것,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면 남의 질책을 피하기 어렵지만 말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이 동일했던 인물 이덕무는 현시대에 꼭 필요한 지침을 주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남이 보든 안 보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루고야 마는 성격, 어떻게든지 다른 사람을 속이고 내 실리를 찾는 현대의 모습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기적인 욕심에 대해 말하면 기운이 빠지고, 산림에 대해 말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문장에 대해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학문에 대해 말하면 뜻이 가지런해졌다. -p. 82

 

 

알고 있는 바를 행치 않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덕무는 사회의 구석구석에 있는 모순된 모습, 특히 저속한 말이나 별명을 지어 부르며 다른 사람을 희롱하는 사회 풍속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모임을 할 때 삼가야 할 말들을 열거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그가 사대부가의 언어 습속을 자세히 밝은 이유는 무엇일까?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라는 속담처럼 사람에게 찾아오는 재앙은 수천수만 가지 중에서도 말로 인해 오는 재앙이 가장 가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생활 가운데 확인되는 바이다.  우리 각자가 말 한대로 이루어지는 것, 결코 모른다고 부인할 수 없는 것임을 지난 시간이 잘 말해준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말을 좀 더 잘 할 걸 그랬어!"라고 후회가 되더라는 경험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좋아 죽겠고.... 힘들어 죽겠고.... 배고파 죽겠는 등... 죽겠다는 말이 흔히 사용된다. 결단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이제 새해부터는 말도 긍정적이로 품격있게 잘 해서 더 기분 좋은 미래를 맞이하고 싶은 바람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덕무처럼은 아니어도 내 생각이나 전하고 싶은 말을 글로 잘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 바람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표현대로 좋은 문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좋은 문장이란 자연스러움과 천진함이 온몸에 스며들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가는 대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글이 나올 때 이루어진다. 그것은 "삶의 본연과 천진을 깎아 버리는 일이 없이 진부하고 낡은 잔재들을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옛사람의 글 쓰는 법과 길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대로 따르는 구속을 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스스로 오묘하게 풀어내고 투철하게 깨우칠 뿐으로 각자가 어떻게 또 얼마나 잘 터득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덕무가 전하는 글쓰기의 철학은 분명하다. 옛사람의 글을 배척하지 마라. 오히려 열심히 배우고 익혀라. 그러나 그 글이 아무리 좋고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본뜨거나 흉내 내려고 하지 마라. 또 억지로 꾸미려거나 인위적으로 지어내려고도 하지 마라. 그냥 자신의 진실한 정감과 참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 힘써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글을 갖게 될 것이다. -p.170~171

 



 

l*****1 2017.01.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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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주 「이덕무를 읽다」 (다산초당,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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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문장가, 간서치(看書癡) 이덕무(李德懋)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의 글들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이덕무의 글에 매료되어 그의 삶과 철학, 문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한정주는 이덕무의 저술 총서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재구성해서 현재적 관점에서 읽어내려 노력했다. 인문학에 열광하는 나 같은 자에게 이런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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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문장가, 간서치(看書癡) 이덕무(李德懋)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의 글들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이덕무의 글에 매료되어 그의 삶과 철학, 문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한정주는 이덕무의 저술 총서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재구성해서 현재적 관점에서 읽어내려 노력했다. 인문학에 열광하는 나 같은 자에게 이런 책은 꼭 읽어봐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서양 역사와 철학, 신화와 신학, 문학과 예술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냈지만, 우리나라 인문학 책들은 소홀히 했다. 서양이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을 때,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움츠리고 있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이순신의 거북선, 외에는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인문학에 대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무지했는지, 이 책을 통해 통감했다.

 

한정주는 머리말에서 조선의 18세기를 ‘위대한 백년’,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였다고 말한다. “성리학 질서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에 온갖 분야의 지식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혁신을”(p. 6) 이룬 사람들로 성호학파(星湖學派)와 북학파(北學派)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덕무가 북학파 또는 백탑파(白塔派)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고 소개한다. 한정주는 이덕무의 독서관과 그 지식탐구의 열정, 새로운 세계에 개방적인 태도,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비범한 관심, 그의 개성과 자의식, 이 모든 것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에 푹 빠졌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덕무의 글뿐 아니라 그의 인간됨에 대해 깊이 매료되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독서가, 문장과 비평가로서 이덕무의 모습을 볼 수 있고, 2부에서는 민속학자, 박물학자, 사상가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특히 1부에서 많은 감탄을 하며 밑줄을 긋고 모르는 내용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찾아보고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덕무는 자신의 시문을 모아 ‘영처고’(嬰處稿)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이덕무의 삶과 글쓰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 가식이나 인위가 아닌 진실함으로 글을 쓰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이덕무의 삶, 그의 됨됨이와 학문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었다. 이덕무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그리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관계도 알게 되었다. 1부 마지막까지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만일 내가 덥석 <청장관전서>부터 잡았다면 얼마 읽지 않아 손을 놓았을 것이다. 한정주가 쓴 <이덕무를 읽다> 덕에 이덕무와 친해졌다. 이제 나는 이덕무를 알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한정주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l******y 2017.01.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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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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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들려주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내면 풍경 이덕무는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학자 중의 한 명이다.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성호학파'와 함께 또 다른 축을 이루었던 '북학파'의 일원이었다. 북학파는 백탑파로도 불렸는데 이덕무는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영재 유득공, 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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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들려주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내면 풍경

 

이덕무는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학자 중의 한 명이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성호학파'와 함께 또 다른 축을 이루었던 '북학파'의 일원이었다.

북학파는 백탑파로도 불렸는데 이덕무는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영재 유득공, 석치 정철조, 야뇌 백동수 등과 함께 교류하였다.

이들은 동서양의 학문을 섭렵하고 조선의 문물과 제도, 인물과 역사, 문화와 풍속 등 백과사전적 지식을 탐구했다.

이덕무 하면 흔히 '간서치'라는 수식어와 함께 기억하기 쉬운데 저술 총서인 <청장관전서>를 통해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이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홍대용의 <의산문답>, 박지원의 <열하일기>, 박제가의 <북학의>, 유득공의 <발해고>와는 달리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

간서치 이덕무는 위대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이였다.

저자는 애초에 이덕무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저자인 그의 손자 이규경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로 자칭 '이덕무 마니아'가 되었다고 하는데...

 

첫째,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독서관과 신이한 문장론

둘째, 공간적으로는 동양과 서양, 시간적으로는 고대와 당대(18세기)를 넘나들며 백과사전적 지식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겼던 지식욕과 탐구열

셋째, 자신이 속한 세계 밖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와 왕성한 호기심과 상상력

넷째, 전통적인 지식, 문화 권력에 의해 구획된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 질서를 해체하고, 자기 주변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보인 비범한 관심

다섯째, 개성과 자의식의 만개, 그리고 자기 취향과 기호의 자유로운 표현

 

책 팔아 밥을 먹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학문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이덕무의 삶이 재조명되는 순간이다.

이제까지는 그가 남긴 참신한 표현들에 치우쳐 문장가로서의 이덕무만을 떠올렸다면 앞으로는 북학사상가이자 민속학자, 박물학자로서의 모습도 떠올려볼 수 있겠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안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김수영

 

따사로운 모래는 맑고 깨끗해 온갖 물새 떼가 서로 서로 짝을 지어서 바위에 앉거나 꽃나무에서 지저귀고, 날개를 문지르고, 모래를 끼얹거나 자신의 그림자를 물에 비춰본다. 스스로 자연의 모습으로 온화함을 즐기니 태평세월이 따로 없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웃음 속에 감춘 칼과 마음속에 품은 화살과 가슴속 가득 찬 가시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 항상 내 뜻을 3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선귤당농소, 158

 

산문 뿐 아니라 소품에 있어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이덕무의 글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선명히 드러낸다.

문체반정에 걸릴 만큼 당대의 틀에 박힌 문체와 다른 개성 있는 문체는 여전히 살아 남아 있다.

재야에서 자유로운 문체를 구가하던 그가 문서 교정 및 대규모 국책 사업에 참여하면서 관료 지식인이 된 후에는 퇴색한 것 아니냐는 평이 있다. 하지만 참다운 지식인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불온성을 찾아볼 수 있는 바, 그가 평생 지켰던 삶의 방식과 철학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청장관, 해오라기라는 뜻의 호가 암시하는 바, 다른 새들처럼 먹이에 대해 욕심 부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 앞에 지나가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 해오라기처럼 순수함, 청결함을 추구했던 이덕무의 삶의 궤적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간서치 이덕무, 청장관 이덕무 ...

쓰는 글마다 호를 새로이 바꿔 쓸 정도로 많은 호를 사용했던 이덕무를 살펴보는 과정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새로운 발견!

2016년을 정리하고 2017년을 여는 마당에 읽기에 딱 적합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6.12.3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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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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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간서치라는 별명답게 저술 내지 기록물이 많아보인다.  <이덕무를 읽다>를 일목에 정리하면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뉜 구성이다.    첫 섹션은 이덕무를 읽다 앞에 '조선 최고의 문장'이라 이름지은 것과 같이 이덕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덕무만의 '문장론'을 중심으로 글쓰기란 행위란 기교와 그 표현(방식)보다는 그 이전에 글쓴이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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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는 간서치라는 별명답게 저술 내지 기록물이 많아보인다.

  <이덕무를 읽다>를 일목에 정리하면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뉜 구성이다. 
  첫 섹션은 이덕무를 읽다 앞에 '조선 최고의 문장'이라 이름지은 것과 같이 이덕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덕무만의 '문장론'을 중심으로 글쓰기란 행위란 기교와 그 표현(방식)보다는 그 이전에 글쓴이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덕무의 철학은 일전 저자의 <글쓰기 동서대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양의 이탁오, 서양의 니체와 비슷한 동심, 이덕무식으로 표현하면 '영처'의 철학적 자세이다. 이렇게 첫 섹션은 이덕무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째 섹션은 부제인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들려주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내면 풍경'이다.(책을 처음 봤을 때 이 문구에 크게 이끌렸다)
이렇게 이름지은 것처럼 이덕무가 지식인으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여정이었던 서해 중북부기행과 당대의 문화,지식권력이 '북학'이라는 사상을 두고서 북학파를 비판하던 환경에서 18세기 진경시대, 조선 고유의 색과 멋을 지향하던 학류의 형성, 남학(일본학)까지도 포섭하려는 그의 자세를 초점맞춰 다루고 있다.


  북학파 중 이덕무는 덜 부각된 가운데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 속 텍스트를 인용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동안 북학파를 연구한 인문학자들은 이덕무를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와 비교해 북학 사상이나 사회 개혁론에서 중요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별반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다루었다. 실제로 이덕무의 연행록인 <입연기>를 읽어보면,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볼 수 있는 북학 사상이나 사회 개혁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북학파 지식인 그룹이 북학의 큰 뜻을 공유하면서도 각자 특정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의산문답>에서 홍대용은 천문지리와 과학에서, <열하일기>의 박지원은 문장에서, <북학의>를 쓴 박제가는 사회 개혁론에서, <발해고>의 유득공은 역사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덕무는 어떠했는가? 그는 <청장관전서>라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당대를 아우르는 백과사전적 지식 탐구의 저술을 남겨 당시 최신 학문이었던 고증학과 변증론 및 박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펼쳐보였다."    -    380면 中

  <이덕무를 읽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18C 지식의 형성과 지식인에 대한 자료이자, 그 시대를 작가 나름의 시각과 견지에서 풀이, 포착하고 있는 책이다.


i*****2 2017.01.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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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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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국사시간에 얼핏 들은 듯 하면서도기억에 남지 않는 한 명의 이름이덕무저자는 본인이 이덕무마니아라고자부하면서 이덕무를 소개해나간다.일반적인 위인전이라기 보다는이덕무의 글, 독서, 저술에 대하여우리가 몰랐던 이덕무의 모습을하나씩 알려준다.다른 사람의 시를 발굴해내고새로운 지역에 가면그 곳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중국과 일본의 변화에 대해 주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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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





국사시간에 

얼핏 들은 듯 하면서도

기억에 남지 않는 한 명의 이름



이덕무



저자는 

본인이 이덕무마니아라고

자부하면서 


이덕무를 소개해나간다.




일반적인 위인전이라기 보다는

이덕무의 글, 독서, 저술에 대하여

우리가 몰랐던 이덕무의 모습을

하나씩 알려준다.




다른 사람의 시를 발굴해내고

새로운 지역에 가면

그 곳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중국과 일본의 변화에 대해 주의하면서

 우리나라의 변화를 모색하던

또 한 명의 실학학자.




그를 자세히 알게 되는 시간이

진행되는 책이다. 

a******h 2016.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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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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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 이덕무라는 이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풍부한 학식을 가진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지식인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다. 그를 탐구함으로써 당시 조선시대의 지식인의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당대 조선의 대표적 지식인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서이수 등과 주고 받았던 편지가 수록되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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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 이덕무라는 이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풍부한 학식을 가진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지식인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다. 그를 탐구함으로써 당시 조선시대의 지식인의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당대 조선의 대표적 지식인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서이수 등과 주고 받았던 편지가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 지식인들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g********k 2017.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즐기는 삶, 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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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 한정주 / 다산   [중3 연우의 글]   작년 10월에 교과서에 <간서치전>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어떤 바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만히 앉아 좋은 글을 보면 웃고, 슬픈 내용을 접하면 울면서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바보가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구나!’라는 것만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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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 한정주 / 다산

 

[3 연우의 글]

 

작년 10월에 교과서에 간서치전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어떤 바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만히 앉아 좋은 글을 보면 웃고, 슬픈 내용을 접하면 울면서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바보가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구나!’라는 것만 느꼈지만, 이덕무가 간서치전을 썼다는 사실과 이덕무의 수많은 업적들을 접한 이후에는 간서치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이덕무와 그의 주변 사람들은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자신을 바보라고 칭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벼루에 미친 바보’, ‘골동품을 너무 좋아하는 바보라는 식으로 자신의 호를 지어, 자신의 취미활동, 시쳇말로 덕질을 강조했다. 이덕무 또한 자신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를 자신의 호로 삼았을 뿐, 그가 정말 바보였던 것은 아니다.

 

이덕무는 무엇이든 기록하는 기록광이었다. 그는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을 매우 가는 글씨로 빼곡하게 다시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러한 그의 광적인 모습은 그가 박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것과 연결된다. 이덕무는 자신이 접한 모든 물건과 현상을 총망라하는 양엽기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써냈다. <양엽기에는 광대들이 어떻게 재주를 내는 것인지, 그 재주의 행동이 어떤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등 기존 성리학자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적혀있다.

 

그의 모든 것을 탐구하고 기록하기 좋아하는 마인드는 일본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기득권자들은 청나라와 일본을 모두 무시했었다. 그나마 일부 깨인 지식인들은 청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덕무처럼 일본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드물다. 이덕무의 청비록에는 일본의 문학과 관련된 평이 적혀있고, 이덕무가 가지고 있던 일본 관련 자료가 조선 정부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풍부했을 정도이다. 비록 일본을 오랑캐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는 한계는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일본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덕무는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덕무가 가지고 있었던 지적 호기심의 모든 원천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습관에 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에서 뻗어나가는 다른 사실들을 궁금해 하는 것이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메모하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이덕무는 자신의 눈에 포착된 거의 모든 현상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방법을 공부할 때도 응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을 수첩에 기록해두는 것이다. 그 기록해둔 내용을 생각날 때마다 보고, 관련된 정보를 더 찾아 적는 과정에서 지식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h******2 2017.0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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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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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란 인물을 익숙하지도 않았고 그가 역사서에서도얼마나 등장하지는 모르지만그가최고의 문장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접근하는 책을 보는 순간그의 문장이 탐나기라도 하듯 홀리게 읽었다 도깨비에서 나오는 문체가 얼마나 아프고 아름다고현대에서 주지는 못한 그 감동은 다르게 다가오기에 조선시대에서 주는 그 맛을 보고 싶은면 읽게 되는 것 같다. 간서치 이덕무가 그 의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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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란 인물을 익숙하지도 않았고 그가 역사서에서도

얼마나 등장하지는 모르지만

그가

최고의 문장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접근하는 책을 보는 순간

그의 문장이 탐나기라도 하듯 홀리게 읽었다

 

도깨비에서 나오는 문체가 얼마나 아프고 아름다고

현대에서 주지는 못한 그 감동은 다르게 다가오기에

조선시대에서 주는 그 맛을 보고 싶은면 읽게 되는 것 같다.

 

간서치 이덕무가 그 의 벗들이 들려주는 그 시대의 풍경과 함께 다양한 접근 상황들을 보게 만들기 때문에

그 당시에 보다 적절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또한 이 책을 집필한 작가 또한

고전에 심취한 작가이게 보다 그를 잘 이해하고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꼼꼼히 우리에게 전달하고 또한 이해를 잘 도와주는 길잡이 역활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뛰어난 문자가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라고 한다.

이덕무의 개방성과 확장성 그리고 혁신성과 창의성은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가 되는 방향으로 알려주기에 보다 그를 알고자 했던 저자의 욕심이 그대로 드러난 책이라고 할수 있다.

 

4장에 걸처서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 라는 타이틀로 시작하여 그의 눈과 마음으로 전달하는 순수함과 함께 그의 인연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독서하고 기록하는 고로 존재한다는 2장에서는 책에 미친 바보라고 그을 말하고 있다

책을 읽고 그것을 실천하고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바다를 넘나드는 힘을 가지게 된 그를 보여줌으로써 책의 힘을 그대로 전달이 되고 있다

 

3장에서는 그의 눈으로 보여지는 조선의 모습을 담아내어서 조선의 풍경과 진경산수화를 통해 접해지는 산문과 소품 국풍을 말로 표현하고 있다

 

4장에서는 삼국의 문예에 대한 자기의 비평을 담아서 실었다.

 

조선시대의 서점을 보고 있노라면 이덕무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 생각이 든다

새로운 학문과 사상 그리고 최신 지식 정보가 공급이 되는 그 곳에서 방대함에 경악을 하게 되고 그 거리에서 얼마나 미친듯이 좋아했을지 상상이 가도록 그를 펴현해주고 있다

 

그 문집속에서 살아 있는 정신을 이덕무를 통해 그 시대상을 알게 만들고 그를 좀 더 이해하기 좋은 글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있다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적은 책이 아닌

이 덕 무가 쓴 글을 통해서 그를 재현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역사서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

글을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서렵하여 조선의 문물과 함께 폭넓게 적용과 혹은 절대적인 활동의 이야기를 그가 성리학을 넘어서 실학사상쪽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그의 이야기를 볼수 이는 활동적인 이야기 책이다 

j********1 2017.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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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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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인문학자들은 조선의 18세기를 '위대한 백 년'이라고도 부른다"(5).<조선의 최고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18세기 성호학파와 북학파가 양대 축을 이루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 등장했고, 그들이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형성했으며, 그 중심에 '이덕무'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덕무는 "북학파 또는 백탑파라고 불리는 지식인 그룹의 핵심 인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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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인문학자들은 조선의 18세기를 '위대한 백 년'이라고도 부른다"(5).



<조선의 최고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18세기 성호학파와 북학파가 양대 축을 이루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 등장했고, 그들이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형성했으며, 그 중심에 '이덕무'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덕무는 "북학파 또는 백탑파라고 불리는 지식인 그룹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6). 그런데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이덕무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면서 동시에 낯선 역사적 인물일 것입니다.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라는 별명으로 독서, 글쓰기 관련해서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대하 사극이나 역사 드라마에서 비중 있게 그려지거나 조명을 받아본 적은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덕무는 아직 대중적이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최고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 대중적이면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이덕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 미친 바보 정도가 아니라, 그가 남긴 사료를 중심으로 그가 섭렵한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전방위적으로 읽어냈습니다.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조선의 문물과 제도, 문화와 풍속 등 백과사전적 지식을 유산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책만 보는 바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책만 보는 바보는 아니였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빌려서라도 온갖 서적을 폭넓게 읽은 이덕무는 독서가, 문장가, 비평가였을 뿐만 아니라, 민속학자, 박물학자, 북학사상가이자 남학(일본학)의 최고 권위자로서도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하며, 사소하고 하찮은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능력과 생활 철학을 가지지 못했다면 이처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학문의 세계를 형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덕문의 이러한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의 특징을 개방성, 확장성, 혁신성, 창의성이라는 네 가지 단어로 특징짓습니다. 그리고 이덕무의 이렇나 특징은 그가 "평생 성현의 삶만을 모델로 추구했던 성리학적 지식인들"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세계, 즉 조선이라는 세계에 갇혀 있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의 최고 문장 이덕무를 읽다>가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덕무의 모습과 학문의 세계 중에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던 내용은 바로 '영처의 철학'이라는 한 단어였습니다. 이덕무라는 한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처의 철학은 "이덕무가 지형한 삶과 글쓰기의 철학"이 무엇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자는 독자에게 짧막한 설명과 함께 아래와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줍니다.


그의 나이 스물이 되는 해인 1760년(영조 36) 3월, 자신의 시문을 모아 엮은 최초의 원고에 '영처'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영처는 그가 사용했던 수많은 자호 중 하나다.글자 뜻 그대로 보면 '어린아이와 처녀'를 말하는데, 글 쓰고 독서하는 일을 전업으로 삼은 선비가 느닷없이 어린아이와 처녀를 가리켜 자신이 뜻을 둔 곳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인가?(35)


이에 대한 이덕무 본인의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덕무는 자신이 글을 쓰는 근간에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이 자리하고 있어서 '진정' 그대로임"을(36) 말합니다. 


글을 짓는 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다르겠는가? 글을 짓는 사람은 마땅히 처녀처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 그러나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은 천진 그대로이며, 처녀가 부끄러워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 그대로인데, 이것이 어찌 억지로 힘쓴다고 되는 것이겠는가?(35)


이덕무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글에만 들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또한 매탕, 즉 '매화에 미친 바보'라는 자호를 지을 만큼 매화 마니아였다는 것도 이덕무라는 한 인물이 가진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덕무의 새로움에 대한 시대적인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덕무의 작풍은 중국의 고문을 문장의 전범처럼 추앙하던 당시 사대부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샀다. ... 그렇다면 이덕무는 과연 옛것 곧 중국의 고문을 배척했을까? 아니다. 그는 옛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결코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동안 옛 문인과 학자들이 남긴 시문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는 독서인의 삶을 살았다. 다만 옛것을 비슷하게 모방하거나 그대로 답습하는 일을 배척한 것이다. 그는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짓을 인명창, 즉 사람 몸에 나는 종기나 부스럼이라고까지 질타했다(168).


학문의 대가로 고결한 선비이면서도 동시에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처럼 글쓰기를 즐기며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이덕무의 가르침이 한 편으로 엄중하고 매섭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입니다. 


견문과 지식을 쌓더라도 동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만약 동심은 잃어버린 채 견문과 지식에만 의존해 글을 짓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옮겨 적은 '가짜 글'에 불과할 뿐이다(39).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덕무라는 지식인을 통해 본 18세기의 역사(지성사)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오랜 연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흥미위주로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교양서적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무거울 수도 있겠다 싶지만, 역사적인 한 인물에 대해 전문적으로 탐구한 연구서 한 권을 깊이 있게 읽는 것도 이덕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반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을 가졌고, 그를 즐거이 연구한 연구서가 출간되어 모든 독자에게 공평히, 그리고 널리 읽힐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c***1 2017.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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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읽다” 짦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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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읽다” 짦은 서평 이덕무는 조선의 제2대 정종의 열다섯째 아들인 무림군 이선생의 14세손입니다.즉 멀고먼 왕족이지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신분 역시 서얼이여서 그의 삶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p95)이런 현실은 그가 정규수업은 커녕 스승이라고 할 분도 없이 혼자서 학문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읽다” 짦은 서평" 내용보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읽다짦은 서평

 

이덕무는 조선의 제2대 정종의 열다섯째 아들인 무림군 이선생의 14세손입니다.

즉 멀고먼 왕족이지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신분 역시 서얼이여서 그의 삶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p95)

이런 현실은 그가 정규수업은 커녕 스승이라고 할 분도 없이 혼자서 학문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요.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그가 편견 없이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고 받아 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었나 합니다.

 

이덕무도 십구사략을 읽었더군요.. ㅎㅎㅎ 작년에 서평을 써봤던 책입니다. 이덕무는 완전하게 이해해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불혹을 바라보는 저로서는 솔찬히 어렵기만 했던 책이었습니다. ㅠㅠ

 

맹자를 팔아 배고픔 면하고 이를 친구에게 자랑하니 친구 역시 춘추좌씨전을 팔아 같이 술을 마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고 비싼것이라도 현실에 쓸모가 없는 이상이라면 과연 그것이 필요한 것일까요? 당시 시대의 주류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그렇다고 책 자체에 의미를 보유하지 않는 이덕무.. 그 내용을 나의 것을로 만들 때 그 책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서재에 들어가 빼곡이 차있는 책을 보면서 언젠가 한번 읽고 책장에 방치되어 있는 책들을 만져 봅니다.

 

과연 나는 무엇에 미쳐있는가..

k***s 2017.01.16. 신고 공감 0 댓글 0